Switch Mode

Chapter 161

금발 소녀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검은 요원은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서 건물 밖으로 나섰다.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평온한 마을.

검은 요원이 보기에 이 마을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이상함을 증명하듯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구름 고기가 검은 요원의 앞을 지나갔다.

검은 요원은 수첩을 펼치고, 몇 가지 요소들을 적어 내려갔다.

<외부와 왕래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폐쇄적인 마을이 대개 보이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외지인을 꺼리지도, 신기해하지도, 반기지도 않았다.>

이 구름 고기 마을에는 전반적으로 평온함과 느긋함이 깔려있었다.

‘설마 정신 오염인가?’

검은 요원은 주황색 달을 올려다보며 정신 오염을 의심했다.

오브젝트로 보이는 안개로 둘러싸인 마을이니 합리적인 추론이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짝.

이제 슬슬 마을 주민을 찾아서 정보 수집을 하려는 찰나,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요원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서둘러서 돌아갔지만, 검은 요원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예상과는 조금 다른 장면이었다.

주황빛이 내리쬐는 창문 근처, 금발 소녀가 손바닥 위에 붉은색 사신을 올려놓고 있었다.

생김새나 크기,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회색 사신의 하수인인 ‘황금 사신’ 같은 미니 사신으로 보였다.

“아, 아저씨! 얘 좀 보세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소녀가 손바닥 위에서 사탕을 품에 안고 핥아먹는 붉은 사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회색 사신의 하수인으로 보이는군요. 도대체 어디서 난 겁니까?”

검은 요원과 금발 소녀의 대화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사탕을 핥아 먹던 붉은 사신은 혀가 사탕에 달라붙어서 울상을 지었다.

금발 소녀는 그런 모습을 보고 붉은 사신처럼 혀를 베-하고 내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붉은 사신의 혀를 사탕에서 떼어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형형색색의 미니 사신들이 잔뜩 나오는 꿈을 꿨는데, 그거 때문일까요?”

검은 요원은 금발 소녀의 말을 듣고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Y0RFbWtUeCtjSzhCQmZuVG16OGxGUmdXNDYxcVB5Mkh2bi9UNGdPQ2lKZQ

뭔가를 유추하기에는 회색 사신이나 미니 사신에 대해 밝혀진 사실이 너무 없었다.

세희 연구소에서 제대로 된 보고서를 보내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서울숲 마을 전소 사태 이후로 점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였는데, 세희 연구소장 납치 사건 이후로 연구소 운영 방침을 바꾼 건가?

붉은 사신은 자기 머리만 한 사탕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더니, 금발 소녀의 어깨에 새침한 표정으로 앉아서 소녀의 옆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붉은 사신은 아가씨에게 우호적으로 보이는군.’

검은 요원은 붉은 사신의 태도를 보고 한시름 덜 수 있었다.

미니 사신 중 가장 유명한 황금 사신의 무력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걱정이었다.

정확한 분석 데이터는 아니었지만 ‘황금 사신’은 단독으로 ‘특급 오브젝트’에 준한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만약 황금 사신이 인간에게 적대적이었다면, 한국이 사라졌을 거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가끔 보일 정도였다.

금발 소녀와 붉은 사신이 장난치는 와중에,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평화로운 분위기를 강조해 주고 있었다.

오브젝트 한복판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평화로운 한때였다.

금발 소녀는 붉은 사신을 손바닥에 올려두고 마치 말이 통하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검은 요원이 생각하기에 미니 사신은 말이 통하지 않는 오브젝트일 텐데도, 즐겁게 웃으면서 소녀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점점 침울해지던 소녀에게 다시 활력이 생긴 것만 같아서 검은 요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평온한 순간은 갑자기 끝이 나버렸다.

검은 요원이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안개의 벽이 점차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은은한 바람 소리만 간간이 들리던 평온한 마을에 갑작스러운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콰르릉.

검은 요원은 심상치 않은 공기를 느끼고 금발 소녀를 벽 뒤로 숨긴 뒤, 상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온화한 빛을 뿜어내던 주황색 달은 망가진 형광등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안개의 장벽은 거칠고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고,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따금 천둥이 안개 속에서 내리치며 흉흉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무언가 사건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이 공간의 지배자로 보이는 주황색 달을 올려다보니,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검은색 액체를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철퍽.

굉장한 점도가 느껴지는 검은 점액은 바닥에 떨어지자, 석유 냄새를 마을 전체로 흩뿌렸다.

여유롭게 허공을 날아다니던 구름 고기들은 급박한 움직임으로 마을 곳곳으로 흩어졌는데, 그중 몇몇 구름 고기들이 검은 요원이 밖을 내다보는 창문 쪽으로 날아왔다.

검은 요원은 황급히 창문을 닫고, 금발 소녀의 손을 이끌고 방문을 열었다.

“아… 아저씨.”

하지만 방문을 열어젖히자 보이는 것은 금발 소녀와 검은 요원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구름 고기들이었다.

성인 팔뚝만 한 구름 고기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주황색 눈빛을 쏘아내는 섬뜩한 광경이었다.

***

문신투성이 여성은 여동생을 데리고 세희 연구소로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언니, 구름 고기가 이렇게나 많아.”

여동생은 근처까지 다가온 구름 고기를 손 위에 올려두고 애완동물을 다루듯이 정성스레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여동생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던 여성은 주변을 돌아보면서 생각했다.

‘확실히 허술하군.’

이런 큰 사건이 터졌는데도, 보이는 것은 기자들과 구경꾼들뿐.

경찰이 소수 보일 뿐, 협회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오브젝트와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국가 규모의 계획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여성이 살던 곳보다 교통, 통신, 사회 시스템이 우월한 곳이니만큼 국가 규모의 계획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든 허술함이었다.

어디서든 사고가 터지면 1분 내로 보고를 받을 수 있는 통신 수단.

나라 안 어디라도 금세 도착할 수 있는 교통수단.

여성이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축복받은 기술들이었다.

갑작스럽게 강하한 구름 고래는 그 강하만큼 급작스럽게 하늘로 떠오르더니, 아름다운 구름 고기의 강을 하늘에 수놓고 사라져 버렸다.

구름 고래가 떠나자, 아쉬워하던 여동생도 하늘을 수놓은 구름 고기의 은하수를 보면서 감탄했다.

이제 슬슬 세희 연구소의 연금술사와 그 유명한 ‘회색 사신’을 만나기 위해 세희 연구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런….”

하지만 회색 사신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상태라는 허무한 답을 얻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관리 중이라는 오브젝트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도 괜찮은 건가?

이상하군.

***

사신이와 함께하는 콜로세움 후일담은 끝나버렸다.

사신이를 끌어안고 푸딩을 잔뜩 먹여주고 싶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버리다니.

구름 고래의 습격이 끝나자, 사신이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사신아, 같이 푸딩 먹자!”

푸딩을 미끼로 애타게 찾아봤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먹고 싶어 하는 표정의 미니 사신이들이 내 주변으로 우르르 모여들기 시작했다.

힝.

사신이가 또 어디로 가버렸어.

미국에서 사건을 많이 겪어서 좀 쉴 줄 알았는데, 사신이는 부지런하네….

바닥에 주저앉아 푸딩의 뚜껑을 열자, 황금 사신이들과 검은 사신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어서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고 푸딩을 기다렸다.

“그래, 그래. 알았어.”

나는 그 귀여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뒤, 푸딩을 한 숟가락씩 떠서 사신이들의 입에 먹여주었다.

한 입 먹여주면 행복한 표정으로 입을 닫고 맛을 음미하는 미니 사신이들에게 전부 푸딩을 먹이고 나니, 어느새 하늘은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어두운 안뜰에는 미니 사신이들이 가져온 정체불명의 화톳불만이 남아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왠지 달콤한 향기가 나는 화톳불이 조금 신기해서 그쪽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

화톳불의 내부를 살펴보니, 투명한 무언가가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불꽃 속에서 끊임없이 녹아내리는 것은 투명한 플라밍고였다.

설마 황금 사신이가 해치운 유리 플라밍고인 건가?

사라진 줄 알았던 유리 플라밍고가 여기에 있었다니.

불길 속에서 녹아내리고 있는 플라밍고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녹아내리는 설탕이 마치 눈물처럼 플라밍고의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플라밍고의 애절한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를 격리실로 돌려보내 줘.’

불쌍하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했지만, 이미 파괴됐다고 보고한 오브젝트가 살아있으면 발생할 귀찮은 사태가 뇌리에 떠올라서 애써 고개를 돌리고 무시해 버렸다.

미안해, 플라밍고.

우리 직원이랑 푸른 사신을 공격했던 죗값을 치른다고 생각하렴.

***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구름 고기의 강이 하늘을 가로질러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구름 고기의 강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산 정상에서 그 끝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바닥에 떨어진 안내판이 이곳이 어딘지 알려주고 있었다.

<오대산 국립 공원 안내도.>

산을 오르는 길은 오랫동안 방치된 흔적이 폐허처럼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도로와 무성한 수풀은 한데 어우러져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강조해 주고 있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하늘을 수놓던 구름 고기의 강은 무의미해졌다.

목적지에는 거대한 장벽처럼 뻗어나가는 안개의 돔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안개 근처에 도착하자,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안개에 불과한데도 내부에서 번개가 치고 있었고, 희미하게 느껴졌던 석유 냄새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그나저나, 또 검은 점액인 건가.

이번 일을 해결하고 나면 관악구에 있는 검은 점액을 싹 치워버려야겠어.

될 수 있으면, 이번 사태의 주범도!

아무리 그래도 관악구를 박살 낸 액체를 활용하려는 인간이 튀어나오다니.

주황색 달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서 안개 속을 뛰어 들어가자 왠지 장작이 심장처럼 두근거리는 느낌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에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안개 속을 파고들어 가자, 하얗게 보였던 안개는 빛을 잃어버리고 검게 물들어 있었다.

유일한 광원은 안개 속에서 간간이 몰아치는 천둥과 번개뿐이라서 마치 소나기구름이 지상으로 떨어진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폭풍의 장막을 뚫고 안개를 빠져나오자, 구름 고기들이 사납게 돌아다니는 마을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온순한 것으로 유명한 구름 고기들이 서로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검은 점액으로 얼룩덜룩 검게 물든 구름 고기들과 하얀 구름 고기들이 서로 솟구치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구름 고기의 움직임은 마치 격렬한 바다처럼 파도치고, 부딪치며 적을 제압하고 물어뜯으려고 하고 있었다.

일견 막상막하의 상황처럼 보였지만 하얀 구름 고기들의 열세였다.

하얀 구름 고기들은 얼룩 구름 고기들에게 한 입만 물려도 그대로 오염되어 적으로 돌아서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불리한 전장에서 붉게 타오르는 불꽃이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다.

붉고 작은 존재, 붉은 사신이었다.

붉은 사신은 온몸을 불꽃처럼 활활 태우면서 사방으로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붉은 사신은 자유롭게 거대한 산불처럼 불을 키웠다가, 작은 불티처럼 하늘을 빠른 속도로 날아다녔다.

붉은 사신이 뿜어내는 불꽃은 굉장히 위력적이라서 휩쓸린 얼룩 구름 고기들은 허무하게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나와 연결은 미약했지만, 붉은 사신은 확실히 미니 사신이었다.

또 새로운 막내가 생겨나 버렸네.

그런데 보이는 미니 사신은 한 마리인데, 느껴지는 미니 사신은 두 마리였다.

어디 미니 사신이 숨어있는 건가?

붉은 사신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가자, 갑자기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려보니 몇 번 본 기억이 있던 금발 소녀의 시선이었다.

금발 소녀는 마치 못 박힌 것처럼, 시선을 뗄 수가 없는 것처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