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5
프레이의 검을 받아낸 순간 몸이 뒤로 밀려났다.
아니 잠깐만. 지금 프레이의 검 위에 넘실거리는 저거.
‘오러?!’
<음. 아직 형체가 완전히 잡히지는 않았다만 오러에 가까운 물건임은 분명하구나.>
프레이 이 무친 재능충련아!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 1학년 1학기에 그 경지에 진입하는 건 너무하잖아!
할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발가락을 살짝 들인 수준인 것 같지만 그렇다 한들 대처하는 게 어려워졌음이 바뀌진 않는다.
신성으로 만든 방패와 프레이의 검이 부딪힐 때마다 팔로 충격이 전해진다.
위험하네.
아직 나는 신성을 다루는 데에 능하지는 못하다.
어지간한 평사제급의 신성마법은 펼칠 수 있다고 자부하지만 그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부족한 실력을 사도 특유의 넘쳐나는 신성력으로 보충하고 있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신성으로 만들어 낸 내 방패가 그리 견고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야 방패의 모자람을 내 방패술로 보충하고 있었지만 프레이가 오러를 사용함에 따라 그것이 버거워졌다.
패링을 하는 데에 성공한다면이야 별 문제가 없지만 패링에 실패를 할 때마다 방패를 이루는 신성에 금이 가는 것이다.
그 때문에 방패를 움직이는 것에 집중을 하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이전에 할배가 가르쳐 준 전략을 따라 방패의 뒤에 자의적으로 숨은 것과는 다르다.
지금 나는 프레이에게 밀려나고 있었다.
‘진짜 괴물이 따로 없네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으냐?>
‘그건 그렇지마아안!’
<걱정 마라. 버티면 이긴다. 저 아이는 네가 막 신성박투술을 배웠을 때와 같으니.>
지금 프레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러 비스무리한 것을 발현시켰다.
당연히 그를 다룰 줄도 모르고 제어할 줄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마력이라는 연료를 불태워가면서 폭주하고 있을 뿐.
그러니 머잖아 마력이 떨어지고 한계가 찾아오면 나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버티는 건 내가 제일 잘 하는 일이지.
나는 탱커니까 말이야.
내가 노골적으로 방패 뒤에 숨으려는 모양새를 취하자 프레이가 눈썹을 살짝 치떴다.
소울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서 매일 같이 나와 대련을 하던 프레이다.
내가 무얼 하려는 지 즉각적으로 눈치를 챘겠지.
근데 그럼 뭘 할 수 있는데.
네가 내 방패를 뚫을 수 있을 리가…
“또 방패 뒤에 숨어? 겁쟁이.”
뭐? 이 년이 진짜.
순간적으로 머리에 열이 살짝 올랐지만 다급히 그를 가라 앉혔다.
이 상황에 분노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니까.
그렇지만 분노 탓에 생겨난 짧은 망설임이 문제가 됐다.
어느새 프레이의 검이 내 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다급히 철벽이 알려주는 바에 따라 방패를 치켜들었지만 거기에 내 의사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패링은 발동하지 않았고 안 그래도 서서히 부서지고 있었던 신성의 방패가 박살이 나버렸다.
프레이의 검이 내 목을 앞에 두고서 멈춘다.
주변의 침묵.
프레이의 거친 숨소리.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선명한 검면.
그 곳에 비친 나의 얼굴.
그 모든 것이 증빙하는 것은 분명했다.
‘졌네요.’
아아. 머리에 열이 뻗쳐서 좀 제멋대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져버릴 줄이야.
이러면 프레이를 허접검사라고 부를 때마다 반사딜이 들어오잖아. 그 허접한테진 왕허접이 되버린다고.
<그러게 왜 바보처럼 앞으로 달려든 게냐. 그러니까 지지 이 놈아.>
‘할아버지도 허락했잖아요!’
<그랬던가? 늙어서 그런가 잘 기억이 안 난다만.>
‘할아버지?! 그게 무슨 소린가요?!’
예상치 못한 패배를 앞에 두고서 할배와 떠들고 있자니 대련을 마무리 짓기 위해 안톤이 다가왔다.
그 누가 보더라도 결과는 명백했으니 나도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프레이가 오러를 각성하지 않았다면 이겼을 텐데! 라고 자위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다고 내 앞에 있는 프레이의 검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진 건 진 거야.
얌전히 안톤의 선언을 기다리던 때에 프레이가 안톤의 접근을 가로 막았다.
“기다려. 아직 안 끝났어.”
“켄트 영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대련은 이미.”
“루시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으니까. 방금 건 가짜.”
프레이는 그리 이야기를 하고서 다시금 내 쪽을 쳐다봤다.
“루시. 아직도 내가 허접 검사야?”
“푸훗. 푸하핫.”
웃음이 샜다. 내 목 바로 옆에 검이 있음에도 그러했다.
푸핫. 그래. 프레이 네 목적은 그거였구나?
어찌되었든 이겼으니까 그걸로 만족할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프레이의 목적은 단순히 나를 상대로 승리하는 게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전력을 내기를 바랐다.
그럼으로써 자기가 내 바로 옆에 서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기를 원했다.
내 무엇이 프레이의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무관심하고 무감정해야 할 그녀가 왜 열기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말야. 어쨌든 간에 난 이미 한 번 패배한 입장이잖아? 승자가 원하는 걸 이루어줘야지.
“좆밥 교수♡ 방해되니까 꺼져 줄래?♡”
“흐음. 두 분 다 동의하신다면이야. 알겠습니다.”
안톤이 물러선 후 속으로 여러 신성마법의 구문을 외웠다.
그로써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능력이 상승했다.
그런 후에 남은 신성력을 몸 전체에 둘렀다.
처음에는 이를 다루는 것에 서툴렀다.
지금도 능숙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얼마 전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매일 밤마다 할배가 만족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구르는 데 성장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인벤토리에서 미스릴 방패를 꺼내들고 주머니에서 루엘의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이게 지금 나의 전력.
“덤벼♡ 개허접 좆밥♡”
“응.”
자신의 마력을 불태우며 내달리는 프레이의 입가에는 웃음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미스릴 방패는 굳건하다.
칼이 꽤 진심을 담아 휘두르는 검에도 흔들림이 없을 정도로.
프레이가 오러 비스무리한 걸 쓰고 있다 한들 이런 방패를 박살낼 수 있을 리 없잖아?
난 그 사실을 알기에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프레이의 검을 튕겨내며 전진했다.
검이 방패에 닿을 때마다 충격이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 뿐.
내 발을 멈추기에는 부족하다.
이전에 내가 뒤로 밀려났던 건 어디까지나 방패의 부족 때문.
다른 신체 능력이 부족했던 게 아니니 말이다.
내 굳건함을 보고 전략을 바꾼 걸까.
프레이가 뒤로 물러나려 하지만 내가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그 뒤에 신성마법으로 벽을 세운 것이다.
본래는 방어를 위해 사용하는 녀석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지.
물러서다 퇴로가 막힌 걸 확인한 프레이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되래 앞으로 돌진했다.
물러설 수 없다면 정면을 돌파하면 된다는 생각일까?
방금 전의 나라면 모를까 지금의 내게 먹힐 전략은 아냐.
프레이가 휘두르는 검을 바라본다.
마력이 덧씌워져 푸른색의 궤적을 그리는 그 검을.
먼저 내가 방패를 움직였고 그 뒤를 따르듯 철벽이 제언을 한다.
나와 철벽의 판단은 정확히 일치했으니.
프레이가 휘두른 검이 내 방패에 닿은 순간 패링이 발동하며 그 위력이 급감했다.
내가 방패로 프레이의 검을 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질량과 위력을 지닌 방패는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둔기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검 채로 얻어맞은 프레이가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그녀는 충격 속에서도 다급히 정신을 다잡았지만 그 때는 이미 내가 프레이의 품 안으로 파고든 뒤였다.
서로 간의 숨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이는 검의 거리가 아니다.
메이스의 거리도 아니다.
손의 거리다.
당혹에 빠진 프레이의 시선을 향해 웃어주며 그녀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그렇다 한들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순 없었으니.
나는 위로 치켜 든 프레이를 그대로 땅바닥에 내던!… 지려다가 멈췄다.
이건 어디까지나 대련이니까.
굳이 상대를 박살낼 필요는 없잖아?
바닥에 내리 꽂히기 전에 멈추어져 가뿐하게 착지한 프레이는 멀뚱히 나를 바라보다가 두 손을 들었다.
“졌어. 역시 루시는 강해.”
조금은 분해하리라 생각했지만 프레이의 표정은 어느 때처럼 무덤덤했다.
이 무감정한 녀석이 진심으로 울분을 터트리는 꼴을 보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려나.
‘수고하셨어요. 프레이.’
“나쁘진 않았어. 바보검사.”
“…응? 바보?”
나는 프레이의 되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놀란 것은 입 밖으로 말을 꺼낸 나였으니까.
바보검사?!
뭐야. 왜 갑자기 호칭이 바뀐 건데?!
이거 변하기도 하는 거였어?!
나 한 번 정해지면 영원히 가는 줄 알았다고!
이는 나쁜 정보가 아니었다.
지금은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여러 별칭들도 언젠가는 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그도 그럴 게 메스가키 스킬의 별명은 대개 문제와 불화를 일으키는 걸!
아서를 불쌍왕자라고 불렀을 때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생각해봐!
그리고 앞으로 세실을 병신왕자라고 불렀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해봐!
너무 끔찍하잖아!
그치만 부르는 호칭을 바꿀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
상대방을 이름으로 부르는 건 원하지도 않아. 그냥 서로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의 호칭이면 충분하다고.
당장 조이만 해도 그렇잖아. 걔를 얼빵 영애라고 부르는 건 별 문제가 안 돼.
솔직히 말해서 귀엽잖아! 얼빵이를 얼빵하다고 부르는 건!
다른 사람의 별명도 그 수준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분명.
<잔뜩 기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꺼내서 미안하다만.>
‘미안한 말이면 하지 마요. 할아버지.’
<여아야. 바보검사나 허접검사나 거기서 거기이지 않으냐?>
할배. 민감한 부분 건드리지 말아 주실래요?
지금 희망회로를 굴리고 있는데 굳이 거기에 사견을 끼워 넣어야겠어요?
행복한 상상하게 내버려 두라고요.
그리고 뭐 어때요. 바보검사 정도면 귀엽죠.
<그리고 말이다. 예전에 호칭이 바뀐 적이 있지 않았느냐?>
‘그랬던가요?’
<아아. 그래. 페이비 그 아이를 허접 성녀가 아닌 음란 성녀라고 불렀었지.>
아. 그런 흑역사도 있었지. 허접 변태 주신이 메스가키 스킬을 강화했을 때였던가.
…으음. 그 때 그건 허접주신의 괴롭힘일 가능성이 높긴 한데.
그래도 이 호칭 변화가 긍정적인 쪽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단 이야기이기도 하겠네.
하아. 어렵다 어려워.
갑작스러운 일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으려니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프레이가 내 팔을 잡아 당겼다.
“루시. 루시. 한 번 더.”
‘뭐를요?’
“뭐래는 거야. 바보검사.”
“…잘못 들은 게 아냐. 바보. 허접이 아니라.”
내가 자신을 인정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프레이는 바보검사로 호칭이 바뀐 것에 만족하는 듯 했다.
본인이 의식하는 지 아닌지는 몰라도 입꼬리를 약간이나마 끌어올릴 정도면 엄청나게 기쁜 거겠지.
하아. 그래. 네가 기쁘다니 잘 된 일인 걸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