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66

늦은 아침,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세희 연구소 안뜰에 황금 사신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황금 사신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의 중앙에는 세련된 여성 정장을 잘 차려입은 여성이 행복한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그 주변에는 그 여성을 따라 하는 것처럼 똑같은 자세로 누워서 잠자는 척하는 황금 사신들이 잔뜩.

황금 사신들은 눈을 감고 있다가도, 가끔 눈을 떠서 정장 여성을 힐끗 쳐다보고는 자세를 고치곤 했다.

언제나 피곤하고, 지쳐있던 감사관은 오랜만의 휴식에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출세가 뭐라고, 상식 밖으로 멍청한 일 처리를 하는 협회에서 아등바등 노력했을까.

이렇게 누워서 쉬면 더없이 행복한 것을….

따사로운 햇살과 그 햇살을 후각으로 표현한 것만 같은 향기를 풍기는 황금 사신들의 사이에서 감사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뜰에서 휴식을 취하는 감사관을 바라보며, 세희와 예린은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와, 이번에는 진짜 위험했네요. 세희 언니.”

“왠지 감사관이 올 것 같기는 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보통은 사건 터지고 한 달은 걸릴 텐데….”

세희는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황금 사신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내려다보았다.

“고마워. 덕분에 연구소 징계나 회색 사신 이송 같은 소리가 안 나오고 끝났어.”

황금 사신은 그 말을 듣고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하기만 했다.

세희는 그런 모습이 또 너무 귀여워서 손아귀에 들고는 황금 사신의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도록 마구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황금 사신이를 왜 이렇게 잔뜩 챙겨서 나온 거야?”

세희는 의아한 얼굴로 예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

예린이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를 표정으로 띄웠다.

“사신이의 정신 오염 수치는 엄청 미약하지 않아요? 자기 진단 테스트를 해보면 엄청 미약하게 나와요.”

“아… 그거.”

세희는 ‘오브젝트 정신 오염 자가 진단’이라는 서적이라는 게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정신 오염도 측정 장비가 만들어지기 전에 출간된 책이었는데, 정신 오염을 상중하 세 가지 단계로 나눠서 소개하는 책이었다.

적중률이 한 70%쯤 되던 걸로 기억했다.

물론 측정 장비가 나온 순간 폐기된 방법이었다.

그래도 측정 장비가 나오기 전까지는 꽤 정확한 측정 방법이라고 유명했었다.

황금 사신의 정신 오염을 책의 방식으로 체크해보면 매우 미약한 정신 오염 수준이라고 나온다.

세희는 기억을 책 내용을 떠올리며 자가 진단을 해봤다.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의 공백, 없음.

감정과 단절된 느낌, 없음.

일관성 없는 행동, 없음.

오염원과 떨어졌을 경우 심각한 두통 발생, 없음.

분리 불안 증세, 있지만 귀여운 걸 보고 싶은 건 정상 아닐까요?’

항목들을 꼼꼼히 살펴봐도 모두 정상으로 통과되었다.

역시 황금 사신은 귀엽고 안전해!

그도 그럴 게 황금 사신의 정신 오염은 딱히 해로운 행동을 유도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감사관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뜰을 나서는 것이 보였다.

세희의 앞에 서서 목을 가다듬던 감사관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흠흠, 별문제가 없는 것 같군요. 회색 사신도 제자리에 있었고요. 감사는 이걸로 끝입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감사관은 뒤를 돌아서 세희 연구소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도 감사관의 정장 주머니에서는 조그마한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세희 연구소 안쪽에 위치한 내 안락한 격리실.

얼룩덜룩한 회색 페인트를 몸에 묻힌 검은 사신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달라붙어 있었다.

이 아이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검은 점액을 꼼꼼하게 제거하고 세희 연구소로 돌아오니, 가짜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마치 나갔다 돌아오니 클론이 내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던 영화 속 한 장면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특정 대상을 모방한 뒤 자리를 차지하는 사악한 오브젝트인 줄 알고, 하마터면 ‘뀩’ 해버릴 뻔했네.

다행히 내가 도착한 것을 본 검은 사신들은 순식간에 원래 크기로 분해된 뒤, 나를 열렬히 반겨주어서 해프닝에 그쳤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서 능숙하게 TV를 켜고 푹신한 이불 속으로 몸을 눕혔다.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이 전신에 퍼져나가서, 만족스러운 희미한 미소가 내 입가에 걸렸다.

침대 위에 편안하게 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더니, 격리실 허공 위로 정체불명의 하얀 솜뭉치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솜뭉치에선 황금색 해맑은 얼굴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하늘을 날아서 즐거운 것처럼 히히, 웃는 황금 사신들이었다.

이번 오대산 사태에서 얻은 새로운 미니 사신 같네.

하늘을 떠다니는 것을 보면 구름 고기랑 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둥실둥실 떠다니는 꽤 많은 숫자의 하얀 솜뭉치들을 보고 있으니, 괜히 화가 났다.

왜 나는 이번에 비행 능력을 못 얻은 거지?

구름 고기도 엄청나게 잡았고, 아이들이 날아다니는 모양새를 보면 신체 변형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주황달을 파괴하고 능력을 얻기는 했지만, 비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능력이었다.

‘왜 나는 못 나는 거야!’

상심해서 투덜거리고 있었더니, 하늘에서 황금 사신들이 떨어져 내렸다.

‘엄마, 슬퍼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떨어져 내리는 황금 사신 폭격이었다.

검은 사신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의지를 전해왔다.

‘엄마는 못 날아.’

‘못 날아!’

검은 사신은 마치 내가 영원히 비행 능력을 얻을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이거 하극상인가?

SDVIMVFoanVzY1YwSVhjamMzUkt1Y0RFbWtUeCtjSzhCQmZuVG16OGxGU25ZMkRVMU1LNDhPK2FPbE1kVytvZQ

검은 사신들이 나를 놀리는 것 같은데!

‘왜 못 날아? 다른 오브젝트 능력을 흡수하면 되지. 반드시 얻고 말 거야!’

‘?’

그 말을 들은 검은 사신들은 더욱더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마구마구 뭉치면서 크기를 키웠다.

그러면서 미니 사신 정원, 검은 구체 속의 시체 같은 모습을 취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애매모호하게 보이긴 했지만, 전처럼 심하게 뿌연 그림처럼 흐릿한 모습이 아니라 좀 더 분명한 모습이었다.

길쭉한 팔을 가지고, 아홉 개의 눈동자를 가진 이형의 존재.

다리가 없고, 지면에 뿌리내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엄마는 원래 날 수 없잖아?’

그리고 검은 사신들은 굉장히 단정적인 어투로 말했다.

으앙, 검은 사신이 나를 괴롭혀.

상심한 나는 눈을 감고 침대 위에 대자로 뻗어서 누워버렸다.

황금 사신들은 엄마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위로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황금 사신 하나가 내 얼굴 위로 기어 올라오더니 때찌때찌했다.

‘엄마! 거대 동생이 왔어!’

거대 동생?

아, 검은 요원이랑 같이 있던 금발 소녀를 말하는 건가?

생후 1년도 안 된 미니 사신들보단 금발 소녀가 훨씬 나이가 많을 텐데, 동생 취급인 것이 조금 웃겼다.

황금 사신의 재촉에 유령화로 격리실 밖으로 나가보니, 금발 소녀와 검은 요원이 세희 연구소 안뜰에 도착해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 미니 사신에게 우호적으로 만드는 향기가 가득한 연구소라서 그런지, 금발 소녀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았다.

***

검은 요원은 뭔가 불편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엉망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제 예상을 뛰어넘는 곳이었군요.”

안뜰을 자유롭게 뛰노는 오브젝트들.

‘이런 곳을 ‘연구소’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연구소였다.

“그런 곳이니까, 저희가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었겠죠.”

금발 소녀는 달콤한 핫초코의 향기가 가득한 안뜰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금발 소녀가 가리킨 곳에는 하얀 아귀를 처음 본 붉은 사신이 해맑은 표정으로 하얀 아귀와 즐거운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아귀 입장에서는 입에서 불을 뿜는 주인집 아기가 쫓아오는 기분이겠지만 말이다.

“저 아이도 굉장히 즐거워 보이니까, 괜찮은 거 아닐까요.”

금발 소녀는 후후, 웃으면서 잔에 담긴 핫초코를 한 모금 마셨다.

금발 소녀들 주위에는 미니 사신들이 잔뜩 몰려들어 있었다.

‘거대 동생!’

‘거대!’

“얘네들이 저보고 동생이래요.”

금발 소녀는 ‘동생’이라고 연발하는 귀여운 미니 사신들을 보면서 웃었다.

“아가씨,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검은 요원의 담담한 물음에 금발 소녀는 입술에 손을 대고 곰곰이 생각했다.

“잘 모르겠네요. 회색 사신을 만난 뒤부터,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어요. 할아버지의 일도, 트리니티 연구소의 일도, 그리고 갑자기 사라져 버린 부모님의 일도 이상하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아요.”

소녀는 손을 펼쳐서 황금 사신 한 마리를 움켜쥔 다음, 천천히 황금 사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마치, 걱정 없는 이 아이들처럼 즐거운 감정이 마음속을 가득 채운 기분이에요.”

‘아마 저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죠.’라고 소녀는 작게 덧붙이며 핫초코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우선은 탐정 사무소로 돌아가서, 감사의 인사부터 하죠. 그리고 다음의 일은 여기서 충분히 쉬면서 생각해 볼 것 같아요.”

반짝이는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올려다본 소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검은 요원을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금발 소녀는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검은 요원은 살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막에서 죽었을 목숨이니, 아가씨께서 원하신다면 언제까지나 아가씨를 따라가겠습니다.”

검은 요원의 말을 들은 금발 소녀는 약간 불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는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요?’ 작게 중얼거렸지만, 검은 요원은 듣지 못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세희 연구소에 머무는 것은 찬성입니다. 회색 사신의 영향으로 아가씨나 저에게 뭔가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니 시간을 두고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검은 요원은 안심하라는 듯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소녀는 왠지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