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초코의 바다 한가운데 둥실둥실 떠다니는 마녀의 과자집.
한때, 잔혹한 회색 사신 상어에게 부서졌던 과자집은 좀 더 튼튼하게 다시 지어진 상태였다.
그래봐야 과자집이었지만.
좀 더 크고 화려해진 과자집 안에 푸른 사신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모두를 소집한 푸른 사신은, 결연한 표정으로 허공에 문자열을 새겼다.
<애착 인간이 위험해요. 도와주세요!>
애착 인간이 위험하다는 끔찍한 소식에 푸른 사신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각자의 빗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제부터 애착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위험한 상황에 빠진 소식을 들었다는 이야기까지.
푸른 사신들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슬퍼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슬픈 표정을 짓는 푸른 사신을 향해 나머지 푸른 사신들이 다가가서 토닥였다.
행동력 있는 푸른 사신을 위한 위로였다.
다른 푸른 사신들은 애착 인간이 사라지면, 과자집에 틀어박혀 3일은 울면서 지낼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두 합심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늘을 향해서 날아올랐다.
동쪽으로.
애착 인간을 구하기 위해 동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푸른 사신이 모두 떠나버린 순간, 핫초코의 바다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 올랐다.
푸른 사신이 날아간 쪽을 바라보는 회색 사신이었다.
***
푸른 사신들이 날아간 하늘 쪽을 바라보며, 핫초코의 바닷속에서 솟아올랐다.
푸른 사신의 애착 인간이 사라진 건가?
미니 사신 표고버섯 찌개를 만들던 도중에 푸른 사신들이 모두 어딘가로 모여드는 것을 발견하고 궁금해져서 몰래 숨어들었더니, 예상외의 정보를 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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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번처럼 마시멜로 망치 계획 mk.2를 세우는 중이라면 나도 회색 사신 상어 mk.2를 해줄 생각이었는데,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푸른 사신들 용감하네.
물리 면역도 없으면서 나한테 일언반구도 없이 돌진해 버렸어.
그만큼 애착 인간 사태가 급하다는 뜻이겠지.
연약한 푸른 사신들만으론 불안한데, 다른 미니 사신보고 쫓아가라고 해야 하나?
누구를 보내야 할까.
황금 사신이나 검은 사신은 해맑아서 잠입이 불가능하겠지.
새싹 사신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데다가, 단독 행동이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어.
그럼 붉은 사신이나 주황 사신인 건가.
나는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손바닥 위로 주황 사신을 불러냈다.
둥글둥글한 하얀 털뭉치가 내 손 위에 몽실하고 튀어나왔다.
보드라운 주황 사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더니, 털뭉치 속에서 느긋해 보이는 주황색 얼굴이 튀어나왔다.
말랑말랑한 볼을 주물 거리며, 주황 사신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푸른 사신을 지켜보고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불러.’
나와의 스킨쉽을 즐기던 주황 사신은 거절이나 의견 조율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푸른 사신을 따라 정원과 연결된 안뜰 하늘로 둥실둥실 날아가 버렸다.
하늘을 보니, 온갖 구름 고기들이 모여 주황 사신을 따라서 대이동을 시작했다.
그냥 차분해 보이고 날아다녀서 선택한 건데, 생각보다 수색이나 감시에 최적화된 인재인 건가?
나는 여전히 느껴지는 푸른 사신에 대한 불안을 애써 무시하며, 예린이가 있는 격리실로 걸음을 옮겼다.
***
강남구에 있는 오브젝트 협회 건물 안쪽, 오브젝트 연구소 관리부 파트.
개별로 나뉜 사무실 안에서 서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 지금 협회에서는 ‘눈동자 교’에 대한 대처를 할 생각이 없다는 건가요?”
“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서아는 답답한 마음에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마음을 추슬렀다.
관련 서류 부족으로 5번이나 퇴짜를 맞고, 힘들게 미팅을 잡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엔딩?
우리나라 오브젝트 협회가 엉망진창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푸른 사신이가 슬퍼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니!
오토바이 헬멧 같은 수상쩍은 헬멧을 쓴 협회 직원은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저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 차례 상부에 건의를 올렸지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지침만 내려올 뿐이라 답답할 뿐입니다.”
협회 직원은 ‘결국 저는 기다리라는 말밖에 해드릴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이며 고개를 숙였다.
결국 세희 연구소 보안팀을 꾸려서 쳐들어갈 수밖에 없는 건가….
협회의 도움은 받을 수 없다는 사실만이 명확해졌다.
허탈한 생각에 축 늘어진 서아는 문득 직원의 이상한 헬멧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직원들은 저런 헬멧 안 쓰고 있던데, 왜 저런 걸 쓰고 있는 걸까.
엄청 불편해 보여.
“그 헬멧, 왜 쓰고 있는 거예요?”
“아, 이거 말인가요?”
서류를 깔끔하게 정돈하던 협회 직원은 서아의 질문을 듣고 행동을 멈추고 대답했다.
“요즘 오브젝트 협회 건물 전체에 정신 오염이 감지돼서 쓰는 중이에요. 정신 오염이 감지된다고 건물 폐쇄 건의를 올렸는데, 심각한 오염이 아니면 보고조차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정신 오염?
정신 오염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따스한 햇살 향기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마?
키득키득.
깜짝 놀란 서아가 고개를 돌려 어깨 위의 새싹이를 바라보자, 뭔가 재밌는 일이 있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설마 황금 사신이 연구소를 나와서 협회로 숨어들었나?
우리 연구소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도, 일부러 반출하지는 않았겠지?
***
똑. 똑. 똑.
물방울이 천천히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덩그러니 매달린 백열전등 하나만이 빛을 밝히는 어두운 토굴 안에서 세희 연구소 보안실 직원은 눈을 떴다.
“후. 후우.”
제대로 호흡하려고 했지만, 호흡은 뚝뚝 끊어지면서 정상적으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숨을 이어서 쉬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엉망진창이었다.
‘으으, 총을 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교주라는 사람이 공터에서 수십 명이랑 패싸움해도 이길 정도로 강할 줄이야.
보안실 근무에서 쓰이는 가스총이라도 가지고 나왔으면 이런 상황에 처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보안실 직원은 뼈마디가 죄다 부러진 것인지 제대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저절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보안실 직원은 굳은 의지로 이를 악물었다.
동생을 구해서 돌아가야 해.
그리고 돌아가서 푸른 사신이를 봐야지.
돌아가면 푸른 사신이가 반겨줄 거라는 생각을 하면 고통이 누그러들고 희망찬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협회에서 사람이 나오든, 연구소에서 구출이 오겠지.
우리 연구소는 뭐든지 대충이지만 복지는 확실하니까….
문득 푸른 사신이가 슬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니 사신들의 해맑음을 생각하면 금세 잊어버리고 즐겁게 뛰어다닐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저벅저벅.
푸른 사신과의 행복한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고통을 이겨내고 있던 도중,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괜찮아?”
보안실 직원의 귓가로 실종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정갈한 흰색 옷을 차려입은, 멀쩡해 보이는 동생이 있었다.
“아, 아직 정신이 있었구나. 보통은 고통에 다들 정신을 잃어버리던데, 누나는 역시 대단해.”
하지만 보안실 직원이 보기에 뭔가가 달랐다.
이상했다.
“누나도 어서 육신을 벗어던지고, 같이 눈동자 속에 귀의하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정신 오염당한 건가?
하지만 보안실 직원이 느끼기에는 이곳에 정신 오염은 없었다.
무자비한 폭력만이 있었을 뿐.
보안실 직원의 말을 듣자, 동생은 슬픈 표정으로 눈동자 교의 교리를 읊조리며 그녀의 팔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요. 고통을 통해서만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으그극.”
부러진 곳을 강하게 움켜쥐는 동생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던 보안실 직원은 결국 까마득한 고통에 정신을 잃어버렸다.
***
옴뇸뇸.
예린이의 품에 안겨 푸딩을 한가득 퍼먹었다.
하지만 왠지 별로 맛이 없었다.
으음.
한쪽 팔이 잘린 푸른 사신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그토록 맛있던 푸딩이 맛을 잃어버렸다.
내가 심란한 기색을 풍기자, 근처에서 쉬고 있던 검은 사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엄마, 아파?’
그리곤 어디선가 커다란 아귀를 데려오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먹으면 나을 거야!’
역시 내 아이들은 다들 착해.
푸른 사신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별거 아닌 검은 사신의 착한 짓에 약간 감동을 받았다.
‘고마워.’라고 짧게 의지를 전달해 주고, 검은 사신이 전해준 하얀 아귀를 받아서 들고는 냠냠 뜯어먹었다.
뀨힝힝.
오늘은 왠지 몸통을 먹을 기분이 아니라서 발을 모두 뜯어먹고 아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음을 다잡았다.
너무 불안하니까, 푸른 사신을 직접 구경하러 가야겠어.
위험하면 살짝 도와주고, 안 위험하면 그냥 푸른 사신의 활약을 구경하면 되겠지.
나는 검은 사신을 살짝 쓰다듬어 준 뒤, 검은 펭귄의 능력으로 주황 사신이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
구름 고기가 잔뜩 날아다니는 강동구의 하늘.
푸른 사신은 세심한 표정으로 하늘을 천천히 날아다니며, 애착 인간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흔적을 찾아주세요.>
마법의 인도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푸른 사신들은 왠지 목적지를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브젝트 사태로 버려진 커다란 폐건물.
그 건물 안에서 끔찍한 감정들이 밀려 나오고 있었다.
고통, 절망 그리고 비틀린 환희.
건물 위로 내려선 푸른 사신은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너무 아파서, 인간들이 너무 아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