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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1

무서운 김중뢰 선배와 일거리가 잔뜩 있는 사무실과 달리, 귀여운 사신이와 놀거리가 가득한 격리실.

하지만 평소처럼 말랑 따끈 사신이의 뱃살을 주물거리고 있었는데도 사신이의 분위기가 심란해 보여서 그런지 평소처럼 즐겁지 않았다.

뭔가 걱정거리라도 있는 건가?

좋아하는 푸딩도 맛을 즐기는 게 아니라 건성건성 기계적으로 입 속에 넣는 수준이었고, 말랑한 팔다리를 마사지 해줘도 별 반응이 없었다.

평소였다면 팔다리 조금만 주물러줘도 표정이 흐물흐물해지면서 잠들어버렸을 텐데!

언제나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리던 더듬이도 시들어 버린 난초처럼 축 처진 상태였다.

검은 사신이도 그걸 느꼈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얀 아귀를 납치해 왔다.

뀨힝힝.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하얀 아귀의 귀여운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왔다.

사신이는 하얀 아귀의 팔다리를 뜯어먹고 의지를 되찾았다.

힘을 되찾은 싱싱한 더듬이처럼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사신이, 가버렸네.

이번에는 내가 우울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사신이랑 놀고 싶었는데….

팔다리가 사라진 귀여운 아귀를 품에 안고, 침대 위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아 일하기 싫다.

의욕을 잃은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검은 사신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서 뺨을 토닥여 주었다.

마치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보는 표정이었다.

사신이들은 내가 조금만 시무룩해도 호들갑이 너무 심해서 귀여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 반응을 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역시 사신이들도 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겠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검은 사신이를 확 낚아채서, 품 안에 꼭 껴안았다.

악동 같은 상어 이빨을 가진 검은 사신이지만, 성격은 해맑은 황금 사신이랑 비슷하네.

반전 매력인 것 같아서, 한층 귀엽게 느껴졌다.

검은 사신이는 내 생각을 들은 것처럼 팔다리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더니, 내 손에 장갑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헤실헤실 웃었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검은 사신 장갑이었다.

한 손으로는 장갑으로 변한 검은 사신이의 말랑한 감촉을 즐기고, 다른 손으로는 사신이가 남긴 하얀 아귀를 베어 물었다.

사신이, 이번에는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네.

***

순간 이동을 하고 시야가 밝혀지자, 보이는 것은 드넓은 하늘.

밑으로는 운해가 펼쳐졌고, 위로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태양이 보였다.

아, 하늘이네.

주황 사신 쪽으로 순간 이동했더니, 드넓은 하늘에서 자유 낙하를 시작했다.

주황 사신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내 손을 급히 붙잡았지만, 주황 사신의 힘으로는 나를 끌어당기는 건 무리였다.

이대로 주황 사신과 함께 지면에 격돌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때쯤, 푹신한 무언가가 나를 받쳐주더니 공중으로 둥실 들어 올렸다.

솜사탕으로 만들어진 구름 고래였다.

주황 사신은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깜짝 놀란 심정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래, 그래. 괜찮아.’

나는 주황 사신 털뭉치를 손에 집어 들고는 천천히 쓰다듬었다.

검은 사신을 제외하면 형형색색의 미니 사신들은 다들 힘이 부족하네, 내가 근력이 약해서 그런 건가?

검은 사신은 조립식 거대 검은 사신으로 변신할 정도니까, 나 정도는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름 고래는 천천히 나와 주황 사신을 지표면 근처로 옮긴 뒤, 하늘로 다시 날아올랐다.

좋겠다. 비행.

날개 달고 날아다니는 천사 사신 해보고 싶은데, 아마 조류형 오브젝트를 아무리 죽여도 날개는 안 생기겠지.

뚜방뚜방.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푸른 사신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주황 사신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내 뒤를 날아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새로 생긴 아이들이랑은 돌아다닌 적이 별로 없구나.

나랑 같이 나와서 즐거워 보이는 주황 사신을 들어서 내 머리 위에 얹었다.

주황 사신도 내 더듬이는 좋아하는지, 순식간에 자신의 털뭉치 속으로 집어넣더니, 꼭 하고 껴안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끔찍한 감정이 흘러나오는 건물이 보였다.

사이비 종교라면서 사람을 고문하고 있는 건가?

주변 건물을 타고 올라가서 살펴보니, 고통과 절망이 미친 듯이 흘러나오는 건물 옥상에 푸른 사신들이 모여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인간들이 아파하고 있어!’

‘어떡하지?’

이런 분위기로 보였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으로 건물 안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애착 인간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모험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약간 시간 간격을 두고 푸른 사신을 유령화로 살금살금 따라가기 시작했다.

***

황금 사신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협회 직원들의 관심을 끌어당긴 사이, 레이첼은 부모님의 집으로 몰래 들어올 수 있었다.

어둡고, 아무도 없는 집.

당장이라도 마당에 놓인 흔들의자에서 아버지가 일어나서 반겨줄 것만 같았고,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집안에서 휠체어를 탄 오빠가 밝게 웃으면서 반겨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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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들어온 집안은 쓸쓸하고 차갑기만 했다.

“분명히 단서가 있을 거야.”

레이첼은 작은 목소리로 다짐하며 한산한 집안을 천천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협회에 맡겨두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레이첼은 방구석에 앉아서 그저 기다리고만 있고 싶지는 않았다.

불안했으니까.

협회는 우수했지만, 희생자가 전혀 안 나올 정도로 완벽하진 않으니까.

가족을 구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돌아온 황금 사신의 미약한 불빛에 의지하며, 집안을 돌아다니길 수 분.

‘눈동자 교’라는 사이비 단체에서 보낸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교주는 불멸, 영생.

장님은 눈을 뜨고, 앉은뱅이는 다시 걷는다는 식상한 문구가 적혀 있는 전단지 뒷면에는 지도와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찾았어.”

단서를 찾아서 들뜬 레이첼은 작은 목소리로 기쁨을 표현했다.

황금 사신도 폴짝폴짝 뛰면서 같이 즐거워했다.

레이첼은 빛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황금 사신을 품속에 넣고 천천히 마을 밖으로 향했다.

황금 사신이 ‘나를 지켜봐 줘!’ 하면서 마구 뛰어다녀서 그런지, 중무장한 차량과 사람들이 잔뜩 도착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새로 도착한 인원들이 많아서 그런지, 어수선한 틈을 타 천천히 마을 인근 숲을 통해서 레이첼은 탈출할 수 있었다.

“빨리 가자. 가족들이 위험할지도 몰라.”

협회가 저렇게 민첩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이번 사이비 종교는 심상치 않아 보였다.

레이첼은 애써 걱정을 삼키고, 자동차를 타고 지도에 표시된 위치로 향했다.

***

푸른 사신들은 텅 빈 건물을 지나, 지하에 숨겨진 토굴을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철저히 숨겨진 토굴의 입구였지만, 강렬하게 흘러나오는 감정 때문에 푸른 사신은 쉽게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들어갈수록 감정이 강해졌다.

그리고 푸른 사신들도 점점 더 슬퍼졌다.

‘왜 인간을 괴롭히는 거야?’

‘미워.’

푸른 사신은 천천히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다, 깜짝 놀라서 공중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주변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휙휙 둘러보았다.

토굴 복도의 양옆에는 대충 만든 감옥이 잔뜩 있었다.

그 안에는 전신의 뼈가 성치 않은 사람들이 널브러져서 고통의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아프지 말아 주세요.>

<아픈 곳, 모두 나아주세요.>

푸른 사신은 자기 몸을 이루는 모든 액체를 쏟아낼 기세로 눈물을 끊임없이 흘리면서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착 인간을 잃어버린 푸른 사신은 유독 창백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면서 토굴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문자열이 허공을 수놓고 깨지면서 텁텁한 토굴 속에 청량한 향기가 감돌기 시작하자, 기절했던 보안실 직원이 눈을 떴다.

‘푸른 사신이가 왔어.’

직원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기어서 푸른 사신의 청량함이 감도는 곳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감옥은 잠겨있지 않았다.

아마 전신의 뼈가 박살 난 상태에서는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냥 자리에 누워서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직원은 이를 악물고 기어갔다.

푸른 사신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직원의 희망처럼, 식은땀을 뻘뻘 흘려가며 기어간 끝에는 푸른 사신이 있었다.

푸른 사신은 애착 인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직원의 머리에 달라붙어서 펑펑 울었다.

<아프지 말아 주세요.>

<다시는 이러지 말아 주세요.>

“괜찮아. 조금만 쉬면 나을 거야. 울지마.”

직원은 소리를 너무 질러서 잔뜩 쉰 목소리로 푸른 사신을 위로했다.

쓰다듬고 싶었지만, 손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푸른 사신은 펑펑 울면서 주먹으로 정수리를 약하게 툭툭 때렸다.

이런 짓하지 말라고 힘껏 때리고 싶었지만, 아플까 봐 최대한 약하게 투닥투닥.

푸른 사신의 마법 덕분일까, 직원은 움직일 수 있게 된 손을 천천히 뻗어서 톡톡.

상냥하게 푸른 사신의 머리를 두들겼다.

그러자, 푸른 사신은 무엇이 그렇게 서러운지 더욱 펑펑 울었다.

***

펑펑 우는 푸른 사신을 유령화로 흙벽 속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주황 사신은 자기 머리카락에 흙을 묻혀서 위장한 뒤, 천장에 붙어서 흙벽인 척했다.

다행히 이제까지 위험한 일은 없어 보였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라고 생각이 들 때쯤, 꺼림칙한 녀석이 나타났다.

인간처럼 생겼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오브젝트 같았지만, 뭔가 달랐다.

슬픈 표정으로 과장된 동작으로 양손을 펼치는 화려한 복장의 중년 남성.

“고통은 축복이고, 영생으로 향하는 길인 것을.”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목소리에 푸른 사신은 보안실 직원을 지키듯이 서서, 긴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푸른 사신은 중년 남성이 인간이 아닌 데다가, 애착 인간을 괴롭힌 존재인 것을 순식간에 눈치를 챘다.

인간도 아니면서,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

미니 사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적이었다.

<물로 만든 바늘 10개!>

물로 만든 바늘이 10개가 빠른 속도로 중년 남성을 향해 뻗어나갔다.

“흡!”

하지만 남성은 기합 소리와 함께 손을 휘둘러서 바늘을 모두 쳐내버렸다.

마치 차력 쇼와 같은 묘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짝짝 박수를 쳤다.

저 물바늘은 적어도 화살 정도의 위력일 텐데, 맨손으로 막아버리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물바늘을 튕겨낸 남성을 기다리는 것은 어느새 모여든 푸른 사신 10마리와 물바늘 1,000개였다.

<물로 만든 바늘 1,000개!>

푸른 사신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빗자루를 휘둘러 바늘을 쏘아 보냈다.

“흡!”

빈틈없이 날아오는 물의 바늘 앞에서 남성은 다시 한번 기합 소리를 내고 유려한 동작으로 팔을 휘저었다.

마치 힘을 뺀 것처럼 흐릿하게 쥔 주먹과 물처럼 흐르는 손놀림.

설마 저것도 막아내는 건가?

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결과를 구경했다.

하지만 남성은 온몸이 물바늘에 고슴도치처럼 꿰뚫린 채, 시체가 되어버렸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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