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은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고슴도치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바늘 1,000개도 막았으면 진짜 멋있었을 텐데….
물론 다음에는 10,000개가 날아와서 고슴도치가 되었을 테지만.
푸른 사신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보기 드물게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애착 인간을 잃어버렸던 푸른 사신은 누워있는 애착 인간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얼굴 바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싱그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이제 다 끝났어, 같이 돌아가자.’라고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애착 인간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라서, 그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애착 인간의 볼을 토닥이던 푸른 사신은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다른 푸른 사신들이 자신을 보지 않는지 확인했다.
다른 푸른 사신들이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는 것을 확인하자, 푸른 사신은 모자를 꾹 눌러쓰고 애착 인간의 볼에 다가가서 꼭 껴안았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푸른 사신이 발견한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9명의 다른 푸른 사신들이었다.
<!>
푸른 사신의 용감한 행동을 본 다른 푸른 사신들은 약간 부러운 표정으로 <대단해!>를 연발하고 있었다.
칭찬을 듣는 푸른 사신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부끄러우면서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런 즐거운 미니 사신들의 이야기 속에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무의미하다.”
죽었던 중년 남성과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생김새를 가진 녀석이 천천히 통로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브젝트이긴 해도 존재감이 너무 약해서 재생이나 부활은 불가능해 보였는데,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던 거지?
갑자기 궁금해져서 파괴 조건을 확인했다.
<생명 활동의 정지.>
오브젝트치고는 생명체에 가까운 파괴 조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슴도치가 된 남성의 시체는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부활이 아니라 쌍둥이였던 건가.
중후한 목소리로 무언가 말하려고 했던 남자였지만, 푸른 사신들은 신속하게 문자열을 허공에 나열하기 시작했다.
<물로 만든 바늘 1,000개!>
아쉽게도 이번에는 막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쓰러졌다.
“무의미하다.”
“무의미하다.”
하지만 통로의 저편에서 똑같이 생긴 중년 남성이 잔뜩 나타나기 시작했다.
똑같이 생긴 사람이 통로를 가득 채우고, 똑같은 말을 하면서 다가오는 장면은 굉장히 섬뜩했다.
푸른 사신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문자열을 써 내려갔다.
<물로 만든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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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을 지켜주세요!>
애착 인간을 침대에 태우고, 커다란 물방울이 푸른 사신과 애착 인간을 모두 감싸 안듯이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도플갱어 같은 남자들이 푸른 사신들을 향해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푸른 사신과 남자들의 거리가 좁혀지자, 나는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푸른 사신이 가진 장작과 한없이 닮은 무언가를 저 남자들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매우 흡사했지만, 뒤틀린 거울로 비춰본 일그러진 거울상처럼 보이는 불길한 장작이었다.
***
레이첼은 얻어낸 단서를 바탕으로 인적이 드문 산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가파른 경사에 사람의 흔적이 별로 없는 산길을 걸어가며, 레이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협회는 아직도 마을을 뒤지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하겠지?”
레이첼은 숨을 몰아쉬며, 황금 사신에게 현재 상황을 떠들기 시작했다.
가족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숨기기 위한 행동이었다.
오브젝트 협회는 더없이 믿음직스럽지만, 레이첼은 불안했다.
협회의 제일 중요한 목적은 ‘더 이상 오브젝트 사태가 퍼지지 않는 것’이었기에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눈동자 교’의 본거지 근처에는 이미 엄청난 숫자의 협회 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울리는 총성이 숲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갑자기 들리는 총성에 레이첼은 엄청나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가족에게 큰일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레이첼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몸을 숙이고 높은 언덕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이비 종교와 총격전.
그 두 가지 요소를 생각하니, 레이첼의 뇌리에 테러 행위를 일삼는 수많은 종교 단체가 떠올랐다.
그런 위험한 종교 단체가 건물을 끼고 총격전을 펼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도착한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예상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장면이었다.
화려한 복장의 중년 남성이 건물 입구와 창문에서 쉴 새 없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레이첼이 봤던 전단지에 ‘교주’라고 소개되었던 남자였다.
“도대체 이게 뭐야?”
클론처럼 똑같이 생긴 교주가 계속 협회 소속 요원들을 향해 뛰어들었고, 죽어버렸다.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총알 앞에는 무력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끝없이 몰려나올 것 같은 교주의 무리도 결국 그 끝을 보였다.
그와 함께 총성도 멈추자, 숲속은 고요 속에 잠겼다.
인질극도, 다친 민간인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드디어 끝났어.”
레이첼은 황금 사신을 품에 꼭 안고, 당장에라도 협회 쪽으로 뛰어들 기세였다.
하지만 황금 사신은 오히려 긴장한 표정으로 레이첼의 행동을 막아섰다.
“사신아? 왜 그래?”
언제나 화기애애한 황금 사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자, 레이첼은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
구멍 하나 뚫리지 않은 투박한 강철 투구를 쓴 남자가 폐건물처럼 엉망진창인 콘크리트 건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국 오브젝트 협회 특무대 소속, 제1 팀장이었다.
제1 팀장은 자신의 탐지기를 내려다보며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정신 오염 수치가 전혀 없군. 사이비 종교치고는 이례적인 일이야.]
남자의 목소리는 꽉 막힌 투구 속에서 울려 퍼져서, 조금 특이하게 들렸다.
대 오브젝트 장비를 잔뜩 사용할 수 있는 특무대이니만큼, 정신 오염을 막는 장비도 든든하게 챙겨왔지만 별로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오브젝트와 관련이 없는 일반적인 사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임무는 임무.
그런 사건 외적인 사안은 임무를 해결한 뒤에 생각해도 충분했다.
[팀장님. 구출 작전이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갑자기 제1 팀장의 투구 안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슬슬 진압 작전을 시작하겠다. 그쪽에서도 교전에 대비해라.]
투명화 오브젝트를 가진 구출팀의 성공 소식에 제1 팀장은 본격적인 소탕 작전을 시작했다.
제1 팀장의 수신호에 따라서 특무대 소속 진압팀이 천천히 콘크리트 건물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숲속에 숨어있던 진압팀이 모습을 드러내자, 콘크리트 건물의 입구가 열리더니 화려한 복장의 교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통은….”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과장되게 양손을 휘두르며 나타난 교주는 입을 열자마자, ‘투두둥’하는 사격음과 함께 그대로 시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콘크리트 건물의 입구와 창문에서 끝도 없이 교주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기이한 현상.
오브젝트 협회 소관이 아닌 일반적인 사건처럼 보였던 사건은 이제, 확실히 오브젝트 관련 사건이 되어버렸다.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교주는 계속 해서 달려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하지만 계속 이어지던 불나방의 행진은 결국 멈춰버렸다.
총성이 멈추고, 으스스한 정적이 울창한 숲을 감싸 안았다.
그 섬뜩한 고요 속에서, 제1 팀장은 왠지 이대로 끝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수많은 오브젝트와의 전투를 치르며 발달된 본능이었다.
그는 수신호로 그대로 대기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며, 진압팀이 경계를 늦추지 않도록 했다.
조용한 건물 입구를 향해 총구를 겨눈 진압팀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콘크리트 건물의 입구가 산산이 조각나며, 거대한 교주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5m에 달하는 엄청난 신장으로 우뚝 솟은 교주는 온몸에 하얀 불꽃을 두르고, 진압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깊은 슬픔에 잠긴 교주의 눈동자에는 광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아, 육신의 미몽에 휩싸인 불쌍한 자들이여.”
슬픔에 잠긴 교주의 목소리는 발밑의 땅을 떨게 하는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듣는 이들의 심장을 옥죄는 것 같은 폭력적인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제1 팀장은 즉시, 사격 재개를 명령했다.
숲속에 깔린 정적은 다시 울려 퍼지는 총성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결과는 믿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오브젝트를 대상으로 탁월한 위력을 발휘하는 ‘대 오브젝트’ 탄환은 그 힘을 잃어버렸다.
가장 강력한 수단인 특수탄이 통하지 않는다니?
그것은 지금 등장한 교주가 현재 장비로는 대적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런 현실을 깨닫는 순간, 다급해 보이는 제1 팀장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지금 당장, 모두 후퇴해라!]
하지만 제1 팀장이 후퇴를 명령하고 뒤를 돌아서 도망치려는 순간,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다양한 장비를 보조하기 위한 외골격이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육신은 영혼의 감옥에 불과하거늘.”
교주는 외골격 때문에 발이 묶인 진압팀을 향해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제1 팀장이 확인해 보자, 외골격을 이루는 핵심 부품인 ‘오브젝트 배터리’가 하얀 불꽃에 휩싸여 불타고 있었다.
“오브젝트 외골격이 작동을 정지했다. 장비를 버리고 빨리 탈출해라!”
제1 팀장은 투구를 벗어 던지고 소리쳤다.
탕. 탕.
그리고 권총을 뽑아 들고, 교주를 향해서 사격을 가했다.
외골격이 작동을 멈춘 이상 특무대는 상당한 피해를 볼 게 분명하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보려는 속셈이었다.
쿵. 쿵.
천천히 다가오는 교주의 발걸음 소리.
소총 사격처럼, 역시 권총도 오브젝트를 태우는 불꽃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제 끝인가.’
담담한 표정으로 제1 팀장은 최후를 기다렸다.
죽는다면 분명 오브젝트와 싸우다가 죽을 거로 생각했으니, 마땅한 최후였다.
이미 특무대는 외골격을 벗어던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물론 5m나 되는 괴물이 쫓기 시작한다면 많은 특무대가 죽거나 다치겠지만, 피해는 최소화했다.
제1 팀장은 점점 다가오는 거대한 교주를 바라보며, 멈추지 않고 사격을 계속했다.
***
황금 사신은 산길을 마구잡이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가짜 인간.
온몸에 고통과 절망을 두른 해로운 인간.
인간이 위험했다.
유령화로 마구 달리던 도중, 갑자기 유령화가 풀려서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황금 사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하얀색 불꽃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왠지 기분이 나빠져서 손바닥으로 털어내려고 했지만, 그 불꽃은 떨어지지 않았다.
불꽃을 떼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유령화를 하려고 했지만, 유령화가 되지 않았다.
어떡하지?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는 유령화를 할 수 없게 되자, 황금 사신은 당황했다.
쿵. 쿵.
하지만 커다란 발소리가 들려오자, 황금 사신은 당황을 멈추고 우선 인간을 향해 뛰어나갔다.
인간이 위험하니까.
유령화를 못 해도, 우선 도와줘야 해.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인간이 있어.
‘내가 여기 있어!’
황금 사신은 뛰어 내려가며, 장작을 마구 태워서 태양 같은 불빛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인간 말고 나를 봐!’
유령화를 못 하니,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모르겠지만.
황금 사신은 숲속에 태양이 떨어진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환한 빛을 뿜어내었다.
황금 사신의 노력이 통했는지, 거대한 괴물은 황금 사신을 향해 돌아보았다.
황금 사신이 조금 더 위협적이라고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빨리 도망쳐!’
황금 사신은 도망치기 시작한 인간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괴물의 주먹이 황금 사신을 강타했다.
우드득.
절대로 부서지지 않았던, 황금 사신의 육체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하얀 불꽃 때문이야.
주먹이 치워진 밑에서, 황금 사신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너덜너덜해진 황금 사신은 깨진 도자기처럼 사방으로 갈라지고 깨져가고 있었다.
한쪽 다리도 없었고, 갈라진 틈으로 장작이 천천히 핏물처럼 배어 나왔다.
‘아파.’
하지만 황금 사신은 더욱 환한 빛을 뿜어내었다.
유령화도 시간 가속도, 그 외 온갖 능력도 못 쓰는 상태지만.
장작을 태워서 빛을 뿜어낼 수는 있었다.
인간이 도망갈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해!
황금 사신은 다시 다가오는 주먹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