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3
메네스테일 10층의 보스는 던전의 바위가 뭉쳐 만들어진 투박한 인상의 골렘이다.
던전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층계 보스답게 특별한 능력이 있지는 않다. 그 대신 기본적인 스펙이 높지.
공격력 강하고. 덩치가 커서 그런가 공격 범위도 넓고. 방어력도 엄청나게 높아서 특정 기믹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면 체력도 깎지 못한다.
한창 소울 아카데미가 흥겜이었을 적엔 메네스테일 던전 뉴비 절단기라는 소리까지 듣던 녀석답게 정공법으로 이 놈을 공략하는 건 꽤 고된 일이다.
패턴자체는 단순해서 어렵지 않지만 기믹 수행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
더럽게 두꺼운 골렘의 피부를 박살내서 핵을 때리는 걸 대 여섯 번은 반복해야 하니까.
메네스테일 던전의 특성 때문에 실시간으로 체력이 깎여나간다는 상황에서 실수로 쟤한테 한 대 얻어맞는다? 그 순간 게임의 장르가 RPG에서 서바이벌 게임으로 바뀌지.
근데 이 모든 건 아무것도 모른 채 10층에 돌입했을 때의 이야기다.
골렘을 공략하는 꼼수를 알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당연하게도 소울 아카데미의 고인물인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고 말야.
‘알새틴. 잘 부탁해요.’
“정보팔이. 이 정도도 못하는 허접은 아니면 좋겠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것에서 실수하진 않으니까요.”
브리핑을 끝마친 나는 알새틴의 손에 특정 마법이 인챈트된 화살을 쥐어준 후 보스룸의 문을 열었다.
그 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동굴처럼 보인다.
바닥 이곳저곳에 용암으로 이루어진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데다가,
천장에는 우리를 가뿐히 꼬챙이로 만들 수 있을 듯한 석영이 무수히 존재하고,
그 안의 온도가 얼마나 후끈한 지 숨이 턱하고 막힐 수준이라는 것을 빼면 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다.
바로 10층의 보스가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 세 사람 모두가 발을 들이자 보스룸의 문이 턱하고 닫힘과 동시에 동굴의 한 가운데에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그 위에 마석이 하나 떠올랐다.
저 마석이 바로 10층 보스인 골렘의 중심이 되는 핵이다.
그래. 10층의 보스는 처음부터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아.
유저가 던전 안으로 들어온 후 보란 듯이 합체를 한다고!
그리고 놀랍게도 저 골렘의 핵에는 피격 판정이 존재하지.
이게 무슨 소리냐. 합체 하는 도중에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알새틴!’
“정보팔이!”
“알겠습니다!”
내가 소리를 치기도 전에 알새틴은 이미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칼에 비해 약하다고는 하나 알새틴도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강한 축에 속하는 녀석.
그가 쏘아낸 화살이 목표를 빗나갈 일은 없다.
마법이 인챈트 된 화살은 정확하게 골렘의 핵에 박혔다.
메네스테일에 존재하는 여러 NPC에게서 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걸 보면 이 때 공격이 가능한 건 제작진이 의도한 사안일 것이다.
10층의 보스치고 골렘의 난이도가 높은 편이니 꼼수를 만들어 둔 거겠지.
허나 그들은 몰랐다.
게임을 하는 유저들의 발상은 언제나 제작진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화살이 꽂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살의 끝에서 얼음 꽃이 피어오른다.
저 화살에 인챈트 된 마법은 바로 전염되는 눈꽃.
얼음계열 도트 데미지 기술로 저 꽃이 점차 퍼져나가며 데미지를 입히지.
적의 전체를 얼렸을 때 커다란 데미지를 주는 보너스도 존재하고.
까놓고 말해서 저 마법은 쓰레기다.
보너스 데미지가 강한 탓인지 도트 데미지는 쥐꼬리만한데 얼음 저항이 약간이라도 있으면 꽃이 전염되는 속도가 더럽게 느려져서 보너스 데미지를 먹이는 게 불가능.
사실상 예능이나 고인물의 제약 플레이용 기술이라고 봐야 하지.
허나 저 골렘을 상대할 때만큼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곳 골렘의 핵에는 얼음 저항이 전혀 없거든.
거기에다 표면적이 작아서 전염이 완료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저 골렘의 핵이 지닌 체력이 더럽게 낮다는 사실.
원래도 핵 주변을 감싸는 바위를 부수는 게 힘들었던 거지 정작 저 핵 자체는 공격 몇 번만 성공할 수 있으면 박살낼 수 있을 정도다.
생긴 거에 비해 내구도는 허술한 저 골렘의 핵은 눈꽃이 완벽히 전염되는 순간 박살난다.
저 골렘은 완성되기도 전에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라고.
이제 우리 셋에게 남은 일은 하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한부가 되고만 골렘이 쓰러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게임상으로는 1분 정도면 충분했었는데 현실이 된 지금이라면 어떨까.
게임보다는 오래 걸리는 게 정상이겠지 아마도.
골렘의 핵에 화살이 꽂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이곳저곳에 퍼져 있던 거대한 돌덩이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것들이 핵을 중심으로 해서 뭉치더니 이윽고 골렘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이야. 웅장하네. 게임 컷신으로 볼 때도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서 직접 보게 되니까 로봇이 합체하는 것 같아서 장난이 아냐.
어느새 완성이 되어서는 자신의 거대한 다리로 대지를 내리 찍으며 위엄을 뽐내는 골렘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멋있긴 한데 죽어가는 중인 녀석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니까 왜 이렇게 허접해 보이는 걸까.
“안녕♡ 텅빈 깡통?♡ 혹시 그렇게 하고 있으면 멋있다고 생각해서 포즈 잡고 있는 거야?♡ 쿱♡ 개웃겨♡ 쓰레기장에 내놓아도 안 들고 갈 것 같은 허접 쓰레기 주제에♡”
도발을 검에 따라 녀석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지만 칼도 알새틴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도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협의한 사안이다.
저 녀석을 상대로 시간 끄는 걸 전적으로 나한테 맡겨달라 말해놨거든.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냐고?
지금 내가 방패로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내가 여태까지 상대한 적은 대개 둘 중 하나였다.
무슨 공격을 하더라도 가뿐하게 막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녀석.
그게 아니라면 내 방패를 가볍게 박살 낼 수 있는 녀석.
어느 쪽이라도 내 객관적인 실력을 평가하기에는 어려운 놈들이었지.
지금 내 방패가 상당히 두텁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내 방패가 정확히 어떤 공격까지 막아낼 수 있는지는 몰라.
이건 현실이니까.
허접 주신이 나한테 상태창을 내려주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허접 주신은 짠돌이거든. 그런 사기 기능을 쉽게 내어주지 않지.
그래서 모든 공격을 피하는 게 정공법인 골렘의 앞에 방패를 내미는 것이다.
지금 내 방패술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저 녀석은 내가 지겹도록 잡아 죽여 본 녀석 중 하나니까. 데미지 들어오는 걸 보면 대충 판단이 된다고.
자아. 어디 한 번 얻어맞으러 가볼까.
팔을 치켜드는 골렘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여러 버프를 건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내질러지는 골렘의 주먹을 지켜보며 방패를 치켜들었다.
저 녀석의 공격은 분명 위협적이지만 그만큼 느리다.
피하기도 쉽고 패링하기도 간편하지.
신성을 몸 전체에 퍼트리면서 그 공격을 받아냈다.
콰앙!
주먹이 닿음과 동시에 확신했다.
패링을 하는 데에 성공했음을.
방패에 공격이 닿은 순간 충격이 확연히 줄어드는 그 느낌은 분명 패링의 느낌이었다.
“크으읍!”
허나 패링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골렘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이 꽤 버거웠다.
이를 악물고서 버텨낸 끝에 주먹을 튕겨내는 데 성공한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괜찮으냐?>
‘문제는 없어요.’
저 골렘을 상대하는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난 저 녀석이 내지르는 모든 공격을 패링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패링에 성공하기만 하면 공격을 받아내는 것이야 어떻게든 할 수 있다.
바꿔서 말하자면 패링에 실패하는 순간 그대로 날아갈 거라는 이야기지.
지금 내 수준은 이 정도인가.
저 골렘이 기본적으로 모든 공격을 회피하고 공격하는 것을 기본으로 설계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이 레벨 대의 보스가 가져서는 안 될 비정상적인 공격력을 지니고 있지.
게임을 기준으로 해도 1학년 1학기를 막 마쳤을 뿐인 캐릭터가 저 녀석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건 꽤 대단한 일일 거야.
그렇지만 이제부터 나는 메네스테일 던전의 아래로 향해야 한다고.
이 정도로 만족해서는 곤란해!
또 다시 골렘이 내리치는 주먹을 버텨낸 나는 심호흡을 하고 재차 자세를 잡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이를 악물 필요는 없어.
칼과 알새틴에게 버스를 타면 그만이니까.
저 두사람의 무력이 있으면 어지간한 문제는 해결 될 거야.
그렇지만 이건 현실이잖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고.
그 상황에서 최악을 면하려면 나도 한 사람 분을 할 수 있는 게 좋은데.
곤란하게 됐네.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이 약하단 사실에 이를 악물고 있으려니 할배가 말을 꺼냈다.
<여아야.>
‘왜요! 할아버지! 저 지금 바빠요!’
<내 아직은 이르다 싶어 안 알려주고 있었던 기술이 하나 있다만.>
‘갑자기요?!’
나는 할배가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도 골렘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발을 위로 치켜 든다. 천장의 날카로운 돌을 떨어트리는 패턴인가.
난 방패를 움직이는 대신 머리 위에 신성으로 이루어진 벽을 구성했다.
그것의 강도는 내 방패보다 낮지만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돌을 막기에는 충분했으니.
난 아무런 피해 없이 골렘의 다음 패턴을 살필 수 있었다.
<생각해보거라. 메이스에 신성을 담을 수 있는데 방패에 신성을 담을 수 없을리 없잖으냐. 방어에도 신성박투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걸 왜 이제 말해주는 건데요?!’
<네가 신성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는 걸 기다리고 있었지.>
아직 신성박투술의 숙련도가 높지 않은 나다.
그를 이용해 메이스를 휘두르면 강제로 신성 중 절반을 날려야 하는 것이 내 현실이지.
신성박투술을 방패에 활용하더라도 상황은 비슷하리라.
그만한 효과는 내겠지만 효율은 끔찍하게 안 좋겠지.
<필살의 공격은 괜찮다. 일격으로 적을 죽일 수 있다면 그 후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허나 방어에 전력을 쏟아 부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 다음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뿐인데.>
그래서 할배는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 생각이었다는 듯 했다.
<그치만 저 골렘의 공격을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앞으로 저보다 더한 녀석들이 나타날 터 아니냐. 네가 한 번 공격을 막아내면 그 놈의 숨통을 끊어줄 수 있는 이들도 옆에 있겠다. 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는 편이 낫지.>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방식은 똑같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골렘이 두 손을 움켜쥐는 게 보였다.
두 손을 위로 크게 치켜들어서 아래로 내리 찍는 기술.
골렘이 지닌 공격 중 가장 커다란 위력을 지닌 녀석.
본래라면 피하는 것이 옳지만.
<잘 됐구나. 상대가 전력을 다하니. 너도 전력을 다해 막아보자꾸나.>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정 위험하면 브로치가 대신 박살나 주겠지 뭐.
방패의 면에 신성을 담는다.
어젯밤에도 연습모드에서 할배와 메이스로 연습하던 것이다.
본래 신성이 인챈트 되어 있는 메이스보다야 어렵지만 뭐 이 정도면 할 만 하네.
신성이 모여듬에 따라 방패의 면에 온기를 뿜어내는 빛이 피어올랐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골렘이 움켜쥔 손을 내리쳐진다.
나를 짓뭉개겠다는 의지가 담긴 일격.
그를 본 순간 확신했다.
내가 저 공격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할배가 이야기한다.
철벽이 고한다.
내가 판단한다.
방패를 위로 치켜들어!
콰아아앙!
‘할아버지. 이런 걸 미리 알려줬으면 얼마나 좋아요.’
신성이 담긴 방패의 너머로 골렘의 손이 보인다.
너무도 거대해서 내 주변 일대에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손이 말이다.
나라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 내리쳐진 그 주먹은.
“개허접 깡통♡ 약해♡ 약해빠졌어♡ 하여간 디자인이 구린 잡몹은 다 이렇다니까♡”
너무도 허무하게 방패에 가로막혀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