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연금술사인가?]
영체로 된 인형 대가리를 뒤집어쓴 오브젝트는 나에게 ‘연금술사’냐고 물었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는 언어로.
예린이도 처음 듣는 언어인지, 어떤 언어인지 전혀 모르는 기색이었다.
인형 대가리 오브젝트 뒤에 숨어 있던 여자애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언니, 갑자기 왜 그래?”
소녀는 인형 대가리의 등 뒤를 콕콕 찌르면서 작게 말했지만, 인형 대가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내가 취하는 행동은 한가지였다.
무시하기!
말 못 하고,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의사소통할 수 없는 컨셉이니까.
히히.
그나저나 저 인형 대가리는 인간에게 적대적이긴커녕, 인간에게 우호적인 느낌을 풍기고 있어서 조금 신기했다.
파란 도마뱀이나 유령 고양이도 꽤 인간에게 우호적인 오브젝트였지만, 저 인형 대가리는 더 심해 보였다.
특히 뒤에 오브젝트의 보호를 받는 인간 소녀가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격리실에 가득한 미니 사신들도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한 것을 보는 것처럼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인형 대가리는 나를 향해 계속 이상한 말들을 했다.
[안개 도롱뇽의 눈과 개구리의 날개.]
[바다의 심장과 공기의 숨결.]
[하얀 꽃과 어둠 뿌리.]
[수정에 담긴 달빛과 썩지 않는 도마뱀의 꼬리.]
마치 소설 속 연금술에 쓰일법한 재료 이름들의 나열이었다.
아니지. 연금술사냐고 물어봤으니, 진짜 연금술 재료인 건가?
오브젝트가 날뛰는 세상이니만큼 연금술사가 있을 법도 해서 조금 흥미가 생기긴 했다.
연금술과 마법, 그리고 검과 모험!
심장은 이미 없어졌지만, 없어진 심장이 뛰게 할만한 마력을 가진 단어였다.
[그런가, 모르는 건가.]
인형 대가리를 뒤집어쓴 여자는 조금 시무룩한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인형 대가리는 ‘마지막으로….’라고 중얼거리면서 가방 속에서 커다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엄청 무거운 물체인지, 바닥에 내려놓을 때 바닥이 ‘쿵’ 하고 울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 무거운 물체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형형색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색이 칠해진 하얀 아귀였다.
오.
오오오.
알록달록한 별사탕 아귀 같아!
왠지 맛있을 것 같은 생김새에 호기심이 동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아귀의 앞으로 달려가서 품에 안으려고 했지만 들어 올릴 수조차 없었다.
엄청 무겁네, 이거.
천천히 흔들거리는 더듬이가 왠지 맛있어 보여서 물어뜯으려고 했지만, 그저 딱딱한 돌멩이였다.
물리 면역이 없었다면 이빨이 다쳤을 정도로 단단한 돌멩이였다.
실망이야.
나는 실망감을 치유하고자, 커다란 하얀 아귀를 품 안에 불러낸 뒤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뀨힝.
보들보들하고 폭신폭신한 하얀 아귀를 뜯어먹다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하얀 아귀는 맛있어.
나는 하얀 아귀를 바닥에 던져두고, 다시 예린이 품에 안겼다.
인형 대가리 여자는 굉장히 실망한 기색이었다.
내가 연금술사이길 바랐던 건가?
동생으로 보이는 소녀는 한 손에 황금 사신을 들고 언니와 달리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이것 봐봐. 귀여워!”
인형 대가리는 자기 동생이 황금 사신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며 장난치는 것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하나 더 씹고 있어.”
그러면서 짙은 약 냄새를 풍기는 단약 같은 것을 여동생에게 건네주었는데, 인간이 만든 약으로 보였지만 오브젝트였다.
그 단약은 미국에서 만든 첨단 오브젝트 도구들보다 더욱 오브젝트 같은 느낌을 풍겼다.
오브젝트라서 만들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연금술사라서 만들 수 있었던 걸까?
“두통이 생기면 다시 먹어야 하니까, 바로 말해줘야 해. 알았지?”
“응.”
조금이지만 연금술에 흥미가 생겼다.
***
도대체 무슨 말인 걸까?
문신투성이 여자가 사신이를 향해 말한 언어는 자작 언어치고는 꽤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억양도 독특하고, 다른 언어의 구조를 베낀 것도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소수 언어였던 걸까?
기억나는 모든 종류의 언어랑 비교해 봐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사신이는 이 언어를 아는 게 분명했다.
영어나 한국어를 제외하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더듬이가 내 입속에서 깜짝 놀란 것처럼 일어섰으니까.
옴뇸뇸.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사신이를 품에 안고, 푸딩을 조금씩 사신이에게 먹여주었다.
쿵.
사신이에게 밥을 주던 도중 큰 소리가 나서 살펴보니, 문신투성이 여자가 꺼낸 색 아귀가 격리실 내부를 쿵쿵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말 아귀랑 똑같이 생겨서 그런지, 미니 사신이들도 신기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콩콩 두들겨 보았다.
뚜시뚜시.
작은 주먹으로 콩콩, 두들기고 왠지 즐거운 표정으로 키득거리는 미니 사신이들.
마치 ‘딱딱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묘하게 하얀 아귀보다 취급이 좋아 보였다.
붉은 사신이도 하얀 아귀는 보자마자 불을 뿜었었는데, 색 아귀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신기해하기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돌아다니던 하얀 아귀와 색 아귀가 서로를 마주 보게 되자, 둘 다 입을 벌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입을 벌리면 똑같이 입을 벌렸고, 발을 움직이면 똑같이 발을 움직였다.
마치 거울에 비친 상처럼 똑같이 생긴 아귀들.
놀란 표정의 아귀가 거울상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뒤뚱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황금 사신이들도 자기들끼리 마주 보고 거울상 놀이를 시작했다.
서로 똑같은 표정으로 즐겁게 웃으면서 팔다리를 휘적휘적.
별것도 아닌 놀이인데, 미니 사신들은 정말 즐거운 놀이인 것처럼 정말 신나 보였다.
아, 저러면 홀수인 미니 사신이들은 어떡하지?
아니나 다를까, 똑같이 생긴 자매가 없는 붉은 사신이만 시무룩한 얼굴로 탁자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 붉은 사신이 곁으로 머리를 트윈테일로 묶은 황금 사신이가 히히 웃으면서 널브러진 붉은 사신이를 일으켜 세웠다.
머리를 트윈테일로 묶고 피부도 빨갛게 칠했지만, 표정만 봐도 황금 사신이였다.
분장한 황금 사신이와 붉은 사신이는 해맑게 웃으며 거울상 놀이를 즐겼다.
혹시 사신이도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했지만,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사신이는 전혀 관심 없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왠지 얄미운 표정이라 말랑한 볼을 마구 주물러 버렸다.
***
세희 연구소 견학을 빙자한 탐색을 마친 문신투성이 여자와 그 여동생은 저물어 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언니, 원하는 건 찾았어?”
여동생은 황금 사신이랑 실컷 놀아서 만족했다는 표정이었다.
“모르겠어. 처음에는 실패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지나고 보니까 일부러 모르는 척했을 것 같기도 해.”
회색 사신은 어느 데이터를 찾아봐도 문자와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으니, 정말로 회색 사신이 연금술사라면 의도적으로 자신의 언어 능력을 속이고 있다는 뜻이겠지.
만약 연금술사였다면, 정말 감탄할 정도의 연기였다.
수호자의 더듬이를 이빨로 물어뜯으려고 하는 연금술사라니.
상대가 그 정도로 속이는 데 진심이라면, 정체를 밝히는 데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정확하게 알아내려면 몇 번 더 가봐야겠어. 좀 더 정교한 함정을 파두면 걸려들지도 몰라.”
“정말?”
황금 사신을 또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에 여동생은 싱글벙글했다.
“그러면 푸딩 같은 간식거리 좀 만들어서 가지고 가자. 황금 사신은 엄청 사소한 간식이라도 선물로 가지고 가면 엄청나게 좋아한대!!”
너무 좋아하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고, 여자는 조금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 분명 정신 오염 차단약을 잔뜩 먹였는데도 정신 오염이 된 것 같아.’
화기애애한 동생을 바라보며, 여자는 돌아가서 조금 더 단약을 개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황금 사신이 잠드는 늦은 저녁.
‘귀여운 강아지’는 그 틈을 틈타, 자신의 격리실을 나와서 어두운 연구소 복도를 천천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귀여운 강아지는 이 ‘늦은 밤의 산책’을 꽤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귀여운 강아지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보안팀 직원이 문을 살짝 열어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뒤뜰에 도착한 귀여운 강아지는 우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하늘 위에 떠오른 차가운 달빛을 올려다보았다.
끼힝.
무거운 숨을 내뱉은 귀여운 강아지는 자신의 개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개집으로.
격리실로 돌아가던 중, 새로 생긴 지하로 뚫린 통로가 귀여운 강아지의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꼭 가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지하 통로였다.
약간 어두운 계단을 끝까지 내려가자, 커다란 휴양 시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거대한 휴양 시설의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로 보였다.
간간이 보이는 인부들이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밤늦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이나 시설들 따위는 귀여운 강아지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휴양 시설의 중앙을 장식한 거대한 황금상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또르르.
귀여운 강아지는 눈물을 흘렸다.
‘내… 내 개집이 여기에 있었구나.’
그리고 그 눈물이 점점 붉게, 피눈물처럼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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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르.
귀여운 강아지의 덩치가 점점 커졌다.
집채만큼 거대해진 귀여운 강아지는 있는 힘껏 대지를 박차며 뛰어올랐다.
“어? 저거?”
집채만 한 귀여운 강아지를 발견한 인부들의 깜짝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깊은 슬픔에 휩싸인 귀여운 강아지의 눈동자가 분노에 불타오르며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가득 차올랐다.
귀여운 강아지가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기 위해서 질주를 시작하자, 인부들의 작업을 돕고 있었던 엄청난 숫자의 황금 사신들이 튀어나와서 귀여운 강아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드물게 화가 난 표정을 한 황금 사신들이 노려보고 있었지만, 분노에 휩싸여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강아지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강아지는 결국 가장 가까이에 있던 인부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 무모한 돌진은 결실을 보지 못하고, 황금 사신 모양 구멍이 잔뜩 뚫리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털썩.
귀여운 강아지는 반란의 부질없음을 증명하듯 너덜너덜한 채 쓰러져 버렸다.
귀여운 강아지는 자기 몸에서 새어 나오는 핏물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음 생에는 진짜 귀여운 강아지로 다시 태어나기를 빌면서 말이다.
***
언제나 달콤한 냄새가 가득한 미니 사신 정원.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대지와 따뜻한 핫초코 바다가 파도치는 아름다운 정원 속에서 귀여운 강아지는 다시 눈을 떴다.
오브젝트였지만, 육체에 묶인 존재였던 귀여운 강아지는 이제 육체의 생사를 초월한 것이 느껴졌다.
하얗고 푹신한 솜사탕이 둥글게 뭉쳐서 몸을 구성했고, 단단하게 굳은 초콜릿 칩이 눈과 코를 만들었다.
솜사탕 강아지가 되어 정말 귀엽게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귀여운 데다가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의 오브젝트!
귀여운 강아지는 자신의 새로운 몸을 돌아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활한 강아지의 주변으로 불길한 그림자가 점점 드리우고 있었다.
악동 같은 표정을 한 황금 사신들이 강아지를 향해 잔뜩 모여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