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이상한 소리가 격리실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끼힝힝.
솜사탕으로 만들어진 강아지가 미니 사신들에게 뜯어먹히며 내는 소리였다.
새하얀 솜사탕으로 이루어진 둥글둥글한 몸.
광택이 도는 단단한 초콜릿 칩으로 만들어진 눈과 코.
잘 관리된 애완견처럼 잘 꾸며진 솜사탕 강아지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니 사신들은 약간 화가 난 것 같은 분위기로 강아지를 마구 뜯어먹고 있었다.
나는 전투적으로 강아지를 뜯어먹던 황금 사신들을 가득 품에 안고 들어 올렸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렇게 물어보자 수많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쁜 강아지!
인간을 공격했어!
엄마 황금상을 부수려고 했어!
단편적인 설명을 하는 황금 사신들의 설명을 잔뜩 듣다 보니,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저 녀석이 귀여운 강아지구나….
순식간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해했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귀여운 강아지’는 어느 순간 화가 나서 그럴 법도 했다.
황금 사신들에게 붙잡혀 불쌍한 표정으로 뜯어먹히는 강아지를 보다 보니,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히히.
고작 뜯어먹기라니.
워낙 착한 아이들이다 보니, 아직 장난은 서투른 것 같았다.
그런 심심한 처벌은 재미가 없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미니 사신들을 내려다보며 의지를 전달했다.
‘솜사탕 강아지에게 적합한 처벌이 있어.’
미니 사신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내 의지를 전해 받고는 귀여운 강아지로부터 우르르 물러났다.
내가 솜사탕 강아지를 집어 들고 즐거운 것처럼 웃자, 솜사탕 강아지는 무서운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커다란 물통 속에 솜사탕 강아지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솜사탕 강아지는 화들짝 놀라서 물 밖으로 나오려고 허우적댔지만, 팔다리가 순식간에 녹아내려서 제대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끼힝.
가까스로 물 밖으로 나온 앞발이 물통의 난간을 붙잡았지만, 스르륵 하고 녹아내리며 무너져 버렸다.
솜사탕 강아지는 부스러지는 자기 발을 바라보며, 슬픈 표정으로 다시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지만, 솜사탕이 물에 녹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재생의 속도가 도저히 따라가질 못했다.
솜사탕이 물에 녹는 것뿐이었지만, 여기저기가 녹아내리고 재생한 강아지는 반쯤 녹은 좀비 같은 모습으로 물속에서 발버둥 쳤다.
끼힝힝.
그리고 가까스로 물 밖으로 나온 솜사탕 강아지는 머리만 남아서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초콜릿 칩이 살짝 녹아서 흐른 흔적이 마치 눈물처럼 보였다.
‘어때? 재밌지?’ 하고 뒤를 돌았는데, 이상하게 황금 사신들이 조금 강아지가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
세희 연구소 회의실에는 오랜만에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하고 있었다.
회의실에 마련된 화이트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귀여운 강아지 긴급 대책 회의.>
귀여운 강아지가 솜사탕 강아지로 바뀌어 버린, 이 참담한 사태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김중뢰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다행히도 탈출한 ‘귀여운 강아지’로 인한 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부들에게서 비밀 유지 서약서에 서명을 받아냈습니다.”
분명 깜짝 놀랐을 것이 분명한 인부들이 미소를 띤 채, 금방 서명을 해줘서 다행이었다.
김중뢰는 서명받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인부들은 생각보다 훨씬 우호적이었다.
“그건 정말 다행이네. 말이 새어나가면 서울 연구소 때보다 훨씬 심하게 여론이 타올랐겠지.”
안도감에 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김중뢰는 보고서를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먼저 재발 방지를 위해서 격리실을 개방한 직원들에 대한 처벌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세희는 영 꺼림칙한 표정이었다.
“흠, 그래도 큰 처벌은 필요 없을 것 같아. 딱히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니까.”
세희 자신도 대충대충 근무해서 그런지, 처벌에는 부정적이었다.
세희 자신이 처벌 대상자로 꼽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면 감봉 정도로 처리….”
김중뢰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도중, 서아가 끼어들었다.
“절대로 안 돼요!”
서아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절대로 감봉 같은 걸로 넘어가면 안 돼요. 우선 전반적인 보안 교육부터 다시 하도록 하죠. 그리고 처벌 수위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해요.”
그리고 서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더욱 시급한 의제를 꺼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귀여운 강아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에요.”
서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담담히 사실을 말했다.
“귀여운 강아지가 한 달에 평균적으로 찾아내는 오브젝트의 숫자는 5기 정도인데, 당장 이 숫자가 줄어들면 당연히 협회에서 감사가 들어오겠죠.”
귀여운 강아지는 사설 연구소에 관리를 맡기고는 있었지만, 사실상 서울 오브젝트 방비의 주요 한 축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가 제기되자, 회의실 안은 정적 속에 잠겨 들어갔다.
“아!”
짜증 난다는 것처럼 인상을 마구 찌푸리고 있던 세희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 것처럼 탄성을 질렀다.
“역시 저번에 쓴 그 방법뿐이야.”
“소장님,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김중뢰가 기대감을 안고 세희에게 물었고, 서아는 세희의 대사에서 묘한 점을 발견했다.
저번에 쓴 방법?
이번이랑 비슷한 사건이 있었나?
서아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세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솜사탕 개를 데리고 와서, 빨갛게 칠하자!”
“네?”
중뢰와 서아가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세희는 회의실 구석으로 쭈그러들며 시무룩해졌다.
‘예린이는 동의해 줬었는데!’
‘성공한 적도 있었는데!’
세희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회색 사신 감사 건은 비밀이었기에 세희는 서럽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지만, 결국 특이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똑똑똑.
정공법으로 최대한 빨리 사실대로 보고하자는 의견으로 모일 때쯤 회의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허가를 받고 회의실로 들어온 예린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솜사탕 강아지도 오브젝트 위치를 추적할 수 있어요!”
솜사탕 강아지가 귀여운 강아지처럼 오브젝트를 향해 짖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회의의 끝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
내가 전해준 소식으로 ‘귀여운 강아지’ 사태가 해결된 뒤, 연구소는 한가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사신이는 가출하지도 않고 얌전했고, 세희 연구소 내의 다른 오브젝트도 아무런 문제 없이 격리 중이었다.
평화롭네.
나는 사신이의 격리실에 느긋하게 누워서 사신이의 작은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꾹.
사신이의 말랑한 손바닥을 누르자, 사신이의 손아귀가 살짝 오므라들었다.
조그마한 손가락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게 재밌어서, 습관적으로 누르게 되는 마성의 손바닥이었다.
사신이의 격리실에는 나 말고도 방문자가 몇 명 더 있었다.
“자, 누구를 줄까?”
황금 사신이들과 검은 사신이들에게 둘러싸인 소녀가 푸딩을 살짝 뜬 수저를 들고 있었다.
소녀는 마치 아기 새처럼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미니 사신이들을 돌아보며 작게 웃으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으로 누구를 고를지 고민하던 소녀는 한 황금 사신이를 고르고 수저를 내밀었다.
오물오물.
작은 입으로 푸딩을 받아먹은 황금 사신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헤실헤실 웃었다.
황금 사신이가 유독 좋아하는 걸 보니, 수제 푸딩인 것 같았다.
그리고 소녀의 언니로 보이는 사형수는 폭신폭신한 하얀 아귀를 손가락으로 찔러보면서, 뭔가를 노트에 적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저 사형수는 사신이를 보러 자주 찾아오고 있었다.
처음 몇 번은 회색 사신이에게 뭔가 말을 걸거나 그랬었는데, 요즘은 관찰 쪽으로 선회해서 미니 사신이들과 회색 사신이 그리고 하얀 아귀를 관찰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미니 사신이들은 거의 모든 종류의 인간들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저 사형수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황금 사신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해맑은 미소로 달려드는데 말이다.
사형수라서 그런 건가.
하지만 저 사형수는 사신이들이 피할 정도로 살인을 의도적으로 반복한 사람은 아니라고 들었다.
그리고 왠지 사신이들의 태도가 마치 오브젝트를 대하는 것만 같았다.
설마 저 사형수는 인간이 아닌 걸까?
인간이면 거의 무조건적인 애정을 주는 미니 사신들의 태도를 볼 때,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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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안락한 예린이의 품 안에서 TV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너무 심심했다.
요즘 사건이 자주 터져서 그런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 조금 지루한 기분이었다.
분명 얼마 전만 해도 하루 종일 격리실에 누워있어도 행복했는데….
아마 격리실에 누워있어도 행복했던 시절은 일종의 번아웃 아니었을까?
서울 연구소에서 끊임없이 일하다 죽고, 서울숲에서 목숨 걸고 능력을 수집하던 반동으로 찾아온 무기력증.
그래도 분명 사건이 일어날 테니, 조금만 기다리면 재밌는 일이 찾아오겠지.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 심하게 다쳤던 황금 사신은 아직도 가출 중이었다.
도대체 무슨 애착 인간을 찾았길래,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 걸까?
뭐, 질리면 돌아오겠지.
나는 이따금 가출한 황금 사신들의 장작을 확인하며, 위험 여부만 확인하고 있었다.
멍하니 보고 있던 TV가 갑자기 속보로 바뀌며 급하게 찍은 것처럼 마구 흔들리는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꽤 유명한 공원이 화면에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더욱 잊을 수 없는 공원이었다.
서울 연구소 폭탄 테러 사건이 터졌던 공원.
그리고 그 사건으로 내가 죽었던 공원이었다.
드론으로 찍은 것 같은 영상에는 커다랗게 무너져 내린 무저갱이 보였다.
테러 피해자들을 기리는 커다란 위령비 밑으로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리고 대리석처럼 하얀색을 띤 커다란 오브젝트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근육질의 남성을 정교하게 표현한 대리석 조각상처럼 생긴 오브젝트들이었다.
하지만 얼굴이 너무 하찮게 생겨서, 약간 하얀 아귀를 닮아 보였다.
[수호자?]
TV 화면을 본 인형 대가리 여자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수호자’라고 중얼거렸다.
저 하찮은 얼굴의 대리석 조각상들이 뭔지 아는 건가?
혹시 연금술 관련인가?
재밌어 보여.
나랑 관련이 깊은 공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흥미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