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투성이 여자는 여동생을 품에 안은 채,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떨어져 내려 단단한 바닥에 착지했다.
그 뒤를 따라서, 색 아귀가 묵직한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바로 앞도 보기 힘들 정도의 어둠 속에서 여자는 유리병을 하나 꺼내서 흔들기 시작했다.
끈적한 두 종류의 액체가 들어있는 유리병 속에서 두 가지 액체가 천천히 섞이자,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그 빛으로 품에 안긴 여동생의 얼굴을 비춰보니, 두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을 꼭 붙들고 있었다.
여자는 그 여동생의 모습이 조금 귀여워서, 손가락으로 코끝을 통통 두들겼다.
그러자 슬쩍 실눈을 떠서 주변을 살펴보던 여동생은 곧 안전한 것을 깨달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깜짝 놀랐어! 언니, 방금 그 녀석들이 갑자기 물어뜯으려고 한 거지?”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랬지. 입구 정도는 안전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내 실수야. 연금술사가 죽었을 가능성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여동생은 고개를 살랑살랑 저으면서 부정했다.
“괜찮아. 놀라긴 했어도, 다친 곳 없잖아?”
여동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깜짝 놀라서 식은땀을 잔뜩 흘리고 있었다.
어찌나 놀란 건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심장이 작지만 빠르게 뛰고 있었다.
여자는 여동생의 말을 들어주며 안정될 때까지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심장 소리가 안정되고 안색도 괜찮아지자, 번쩍 들어서 바닥 위에 제대로 일으켜 세웠다.
“자, 이제 슬슬 연금술사의 공방을 찾으러 가보자.”
여자는 환한 빛을 흘리는 포션병을 높이 들어 올리고, 앞장서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 나갔을까, 어두운 동굴을 걸어 나간 끝에 특이한 도시가 그들 앞에 펼쳐졌다.
여동생은 그 신기한 풍경에 감탄만 하고 있을 때, 문신투성이 여자는 인상을 쓰고 천천히 도시를 살피고 있었다.
‘왕국 수도를 모방한 것 같은데, 조금 다른 부분도 있군. 내가 알던 시기와 다른 시기의 수도의 모습인 건가? 아니면 아예 다른 도시인 건가?’
고향과 같은 건축 양식이었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그들은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도시에 내려서서 걷기 시작했다.
위험 요소가 있을 것 같아서 여동생과 손을 잡고 이동 중이었지만, 위험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동생은 이제 완전히 관광하러 온 기분이 되어서 들뜬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을 리가 없는데, 너무 조용해서 되레 불안한 기분이 되었다.
“언니, 이것 좀 봐봐.”
여동생이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놓여있었다.
연금술에 쓰이는 대형 가마솥이었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크다며 호들갑을 떠는 여동생을 웃으며 보던 도중, 시야 구석에 이상한 잔해가 보였다.
하얀색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흔적.
그리고 여기가 안전하게 느껴졌던 이유였다.
여자는 천천히 다가가서 그 잔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입구에 서 있던 수호자랑 같은 모습을 한 수호자였지만, 여기저기 물어뜯겨서 동작을 정지한 상태였다.
잔해의 얼굴은 조금 뜯겨나가긴 했어도 온전했는데, 사람의 귀와 사람의 이빨이 확실하게 드러나 있었다.
“징그러워…. 얘네들은 왜 저렇게 생긴 거야? 만든 사람 취향?”
가마솥을 보며 신나 하던 여동생도 어느새 여자의 곁으로 와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근육이나 귀는 취향일 수도 있는데, 이빨은 아니야. 수호자에게 사람 이빨이 돋는 경우는 한 가지뿐이니까.”
여자는 품에서 색 아귀를 만들 때 썼던 코어를 꺼내며 말했다.
“자신을 만들 때 사용한 코어를 집어삼킨 수호자의 특징이지.”
그 코어를 보면서 여동생은 바닥에 얌전하게 서 있는 색 아귀의 입을 막으면서 말했다.
“절대로 먹이면 안 돼!”
마치 징그러운 이빨이 돋게 놔두지 않겠다는 기세의 여동생을 보며 여자는 작게 웃었다.
“코어를 먹이면 통제할 수가 없게 되니까. 제정신이 박힌 연금술사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아.”
“아, 그래서 연금술사가 죽었다고 한 거구나?”
여동생은 그 말을 듣고 박수를 작게 치면서 감탄했다.
“그나저나, 누군가가 벌써 이곳에 들어온 거로 보여. 수호자를 처리한 걸 보면 생각보다 실력 있는 집단 같네.”
웬만하면 맡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게 퍼진 인간의 피 냄새.
그리고 파괴된 수호자.
아마 뉴스를 보자마자 돌입한 여자보다 빨리 들어올 만한 인간들의 집단은 이 나라의 ‘정부’ 소속이겠지.
겨우 마도서가 나타난 지 30년 정도 만에 이 정도 수준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자, 그럼 서둘러서 가보자.”
여자는 여동생에게 다시 손을 붙잡고 천천히 연금술사의 던전 깊숙한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징그러운 아귀를 찢어발기고 우리는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걸어 나갔다.
뚜방뚜방.
황금 사신들과 검은 사신들은 즐거운 것처럼 서로 손을 붙잡고 즐거운 것처럼 앞장서서 나아가고 있었다.
미니 사신들은 모두 하얀색 찹쌀떡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말랑말랑해 보여서 미니 사신들에게 잘 어울리는 모자였다.
그 모자는 조그마해진 하얀 아귀였다.
극도로 작아진 아귀들은 미니 사신들의 머리 위에서 모자처럼 얹어져 있었다.
‘나쁜 오브젝트’를 처리한 덕분에, 비상식량 겸 탈 것에서 모자로 신분 상승한 건가?
가끔 뜯어먹는 걸 보면, 별로 바뀐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모자가 된 아귀들은 전보단 조금 밝은 표정이었다.
붉은 사신 머리 위에 얹어진 녀석만 빼고.
그 아귀는 붉은 사신이 무심코 뿜은 숨결에 불이 붙어서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불에 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주황 사신들의 인도를 따라 도시를 횡단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사치스러운 건물들을 지나고, 내 추억 속에서 건져낸 것 같은 건물들을 지나자, 기묘하게 생긴 구조물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절벽.
그리고 그 위를 수놓은 수많은 레일.
놀이공원의 레일 같은 것이 수도 없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절벽 근처에는 마치 케이블카 정류장 같은 곳이 만들어져 있었다.
복잡한 기계장치가 달린 탈것들이 잔뜩 배치된 정류장이었다.
보기만 해도 복잡한 기계들이 신기한지, 미니 사신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만지작거렸다.
정체를 모르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신기하다는 듯이 툭툭 건드렸다.
레버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서 레버를 내리기도 하고, 버튼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면서 누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몇몇 탈것은 미니 사신들을 잔뜩 싣고, 로켓처럼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가기도 했다.
‘오.’
미니 사신들이 이러는 거 처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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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도 이런 기계들은 엄청 많았을 텐데, 건드리지 않았으면서 이번에는 왜 이러는 걸까?
아, 설마 인간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연구소 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본 적이 없네.
내가 연구소 문이나 벽 부수는 걸 자주 봤을 텐데 따라서 부수는 걸 본 적이 없어.
유령화를 못 하는 검은 사신도 문을 부수기보단 액체처럼 변해서 틈을 파고들었었지.
콕콕.
뭔가가 내 볼을 찌르길래 바라보니, 황금 사신 한 마리가 나를 바라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나보고 조종해달라고?’
내가 전달한 의지를 받은 황금 사신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손가락으로 계속 같이 가자고 보챘다.
황금 사신이의 인도에 따라서 도착한 곳에는 몇몇 탈것이 일렬로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탈것마다 미니 사신이 종류별로 탑승해 있었다.
황금 사신들이 잔뜩 올라탄 탈 것에는 온갖 레버와 버튼에 황금 사신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푸른 사신들의 탈 것에는 커다란 골렘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검은 사신들의 탈 것에는 푸른 사신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검은 사신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탈것의 운전대는 비어있었고, 뒷좌석에는 붉은 사신과 주황 사신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설마 이거 경주야?
왠지 처참하게 패배할 것 같은 예감에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해맑은 붉은 사신과 주황 사신을 보니 도망갈 수는 없어 보였다.
***
문신투성이 여자와 그 여동생은 손을 잡고 천천히 나아간 끝에, 절벽과 그 위로 이어진 수많은 레일을 볼 수 있었다.
“레일 캡슐이로군.”
여자는 묵묵한 표정으로 레일 위의 탈것을 보며 말했다.
“와.”
여동생은 그 레일 캡슐을 보며 감탄했다.
황동으로 고풍스럽게 꾸며진 레일 캡슐은 예술품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언니! 막다른 길인데, 설마 이거를 타고 가는 거야?”
“그래야겠지.”
호리호리한 예술품 같아서 더욱 불안불안해 보이는 캡슐을 보며, 여동생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절벽 밑으로 떨어질 것처럼 허술하게 얹어진 캡슐이기에 더욱 그랬다.
“이거 떨어질 것 같은데, 괜찮은 거 맞아?”
“쉽게 떨어지도록 만들어진 거지만, 괜찮은 거 맞아.”
여자는 가장 상태가 좋아 보이는 캡슐에 탑승하며, 주변을 살폈다.
단단한 돌로 이루어진 절벽 위에는 아무런 발자국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레일 캡슐 위의 흔적을 보면 최근에 누군가 다녀간 게 분명해 보였다.
“자, 출발할 테니 꽉 붙잡아.”
여동생은 꿀꺽 침을 삼키며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여자가 레버를 내리자, 캡슐은 로켓 같은 속도로 튀어 나갔다.
여동생은 소리를 지를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물었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함부로 소리를 내면 위험하다는 당부를 들었기에 꾹 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캡슐은 레일에서 벗어나 ‘점프’했다.
“꺄아아악.”
마치 절벽 밑으로 처박힐 것 같은 상황에 여동생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캡슐은 다른 레일 위로 안착하며, 다시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점프하며 레일을 갈아타는 탈 것이라니!
여동생은 기절할 것 같은 상황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으으, 토할 것 같아. 언니.”
다행히도 캡슐을 타고 가는 여정은 여동생이 기절하기 직전에 끝이 났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여동생과 달리, 여자의 얼굴은 재밌었다는 것처럼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몇 번 더 타면 익숙해질 거야.”
여자는 어지러운 것처럼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는 여동생의 등을 토닥여 주며 말했다.
“절대로 싫어.”
“어차피 돌아갈 때도 타야 할 텐데?”
혈색이 점점 돌아오던 여동생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렸다.
여동생이 어지러워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이, 문신투성이 여자는 짙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곳을 향해 빛을 비춰 살펴보고 있었다.
마치 빛을 잡아먹는 것 같은 어둠 속에, 끝없이 나열된 커다란 책장 같은 것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잠깐, 하얗고 길쭉한 무언가가 얼핏 보였다가 사라졌다.
인간의 치아가 촘촘하게 돋아난 콩나물 같은 무언가였다.
***
그르릉.
묵직한 기계장치가 동작하는 진동으로 방에 수북이 쌓인 먼지가 살짝 떠올라, 공기를 살짝 뿌옇게 만들었다.
침대 위에도, 그 위에 누워있는 푸른 소녀의 위에도, 그리고 그 침대 옆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고 내려다보는 소녀의 위에도 먼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갑자기 들려온 진동음 때문일까, 미동도 없었던 방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굳은 액체가 갑자기 움직일 때 발생하는 끼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대 옆에 앉아있던 소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폴짝 뛰어서 의자 위에서 내려온 소녀의 신장은 겨우 1m 남짓.
온몸이 흰색 도화지처럼 새하얀 소녀의 실루엣은 ‘회색 사신’과 굉장히 비슷해 보였다.
하얀 소녀는 새하얀 손으로 자기처럼 새하얀 구슬을 꺼내 들더니, 푸른 머리칼의 소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숨도 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소녀의 손은 차가웠지만 여전히 부드러웠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톡. 토독.
그때 묵묵히 서 있던 하얀 소녀의 얼굴에서 먼지투성이의 이불 위로 점점이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아무런 소리도 흘리지 않고.
그리고 하얀 소녀는 푸른 소녀의 곁을 떠나 천천히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소녀의 머리 위에는 축 처진 아귀의 더듬이가 돋아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