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3
“당신! 게오르크 백작 가문의 장남이 그런 꼴을 당했는데 가만있는 게 말이 된다도 생각해요?!”
또 그 이야기인가. 메브는 집무실까지 찾아와 큰 소리를 내는 부인의 모습에 위장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이미 끝난 이야기지 않소. 그만하시오.”
“이미 끝나기는 뭘 끝나요?! 당신이 제멋대로 움직여놓고는! 저는 그런 대처에 동의한 적 없어요!”
이러한 말다툼은 게오르크 백작 가의 장남인 메그 게오르크가 타국의 백작을 상대로 행패를 부리다 돌아온 후로부터 매일 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지긋지긋하군.
말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설득을 할 자신이 없어.
언제까지 이 난리를 피워야하는 것일까.
“당주로서 내리는 명이오. 부인. 그만하시오.”
“대체 그 놈의 알른 가문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러는 건데요! 그래봐야 천한 왕국의 변경을 지키는 백작 가문일 뿐이잖아요! 과거에는 어땠을지언정 지금은 이빨을 잃어버린 늑대에 불과…”
“하아.”
백작 부인이 소리지르는 것을 듣던 메브는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에 따라 자기를 무시하는 거냐며 부인이 목소리를 드높였지만 메브는 마력을 끌어올려 위압감을 주는 방식으로 그녀의 입을 가로 막았다.
“부인. 나는 말이오. 과거에 솔라딘 왕국과 마도 제국의 영토 분쟁에 참여한 적이 있소.”
그 분쟁의 시작을 알렸던 것은 던전이었다.
마도 제국과 솔라딘 왕국의 영토를 가르는 선에 던전이 등장했고, 그에 따라 각 국의 귀족이 던전 공략을 위해 병사들을 파견한 것이다.
당연 던전을 공략하러 온 이들 간에는 왕국이 공략을 해야 하느니, 제국이 공략을 해야 하느니 하는 의견 충돌이 생겨났다.
본래라면 이런 분쟁은 각 영지를 담당하는 귀족 사이의 합의를 통해 완만히 해결되는 게 보통이다.
허나 그 당시에는 경우가 달랐다.
안 그래도 왕국과 제국사이에 불온한 분위기가 형성되던 와중에 생겨난 싸움거리.
대화로 해결될 문제는 어느 순간 두 나라간의 자존심 싸움이 되어 버렸고 그에 따라 왕국과 제국의 전력이 국경으로 결집하게 되었다.
툭하고 건드리는 순간 넘어질 도미노는 자그마한 바람에 붕괴해버렸고 그렇게 전쟁이 펼쳐졌다.
그 전선에는 당시 천재 마법사라며 명성을 높이던 메브가 있었고, 왕국을 수호하는 짐승이라 불리던 베네딕 알른이 있었다.
“나는 보았소. 단신으로 달려들어 전선을 붕괴시키는 괴물을.”
베네딕은 말에 타지도 않은 채 선두에 서 전선의 한 가운데로 달려들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포화 속에서 먼지가 되었을 터이나 베네딕은 달랐다. 그는 그 모든 걸 몸으로 받아내며 전선을 찢어버렸다.
그 뿐일까. 그는 난전 와중에 전선의 지휘관을 비롯한 몇 명의 귀족을 기절시켜 납치해가기까지 했다.
“나는 보았소. 인간이 휘두른 검에 혜성이 찢어지는 것을.”
마도 제국의 수많은 마법사들이 협력해 만들어 낸 메테오 스트라이크.
왕국의 수많은 인재들이 그를 약화시켰다고는 하나 그 끝을 맺은 것은 베네딕 알른이었다.
그는 자신의 덩치만큼 커다란 둔기에 가까운 검을 휘둘러 혜성을 찢어발겨버렸다.
“나는 보았소. 한 가문의, 한 사람의 존재가 전쟁의 승패를 뒤집어버리는 것을.”
그 전쟁의 끝에 승리를 거둔 것은 왕국이었다.
그 승리의 요소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단연 베네딕 알른이리라.
그 날 이후로 메브는 대륙 최강의 가문이 누구냐 물을 때면 알른 가문이라고 답했다.
딸이 태어난 후로 베네딕이 적극적인 활동을 꺼리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짐승의 이빨이 빠졌다는 이야기가 돌 때에도 그랬다.
“다시 한 번 말하겠소. 난 단언컨대 알른 가문을 적대할 생각이 없소. 왕국을 수호하는 짐승의 이빨이 이 곳에 닿기를 바라지 않소.”
그랬다간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분노에 찬 상태로 이 곳에 당도해 모든 것을 찢어발겨 버릴 테니까.
거기까지 말을 끝마친 메브는 의자에 기대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는 자기 부인의 뜻을 존중하려 노력하는 메브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것은 가문의 존망이 달린 문제였다.
타협이란 있을 수 없었다.
“돌아가시오.”
메브가 강하게 이야기를 하자 백작 부인도 그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결국 게오르크 가문의 주인은 당주인 메브이기에.
불만스러운 티를 내며 백작부인이 빠져나간 것과 거의 동시에 가문의 시종 중 하나가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시종은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메브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무슨 일이냐.”
“알른 가문의 영애가 긴히 백작님과 상의할 일이 있다 합니다.”
시종의 말을 들은 메브는 자신의 손으로 눈을 가렸다.
위대하신 주신이시여. 부디 이 가문이 평안케 해주소서.
“백작님?”
“내가 직접 가겠다. 영애께서는 어디에 계시지?”
“응접실로 안내했습니다.”
“잘했다.”
별 일이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
베네딕을 설득하는 일은 간단했다.
<카리아가 살아 있다고? 그게 정말이더냐?>
“꼭 두 번 말해줘야 해? 바보 같은 파파?♡”
카리아가 살아 있으며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베네딕에게 설명하자 그는 급히 결제해야 하는 일만 처리한 후에 바로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하루만 기다려다오. 그 안에 모든 걸 처리하마.>
최소 전성기 카리아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강함을 지녔을 게 분명한 베네딕이 합류를 약속한 것이다.
사실상 카리아를 공략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봐도 무방하다.
허나 내 목적은 단순히 카리아를 쓰러트리는 일이 아니다. 그녀를 악신의 저주에서 구해내는 거지.
소울 아카데미의 세계관 속엔 악신의 저주에 당한 캐릭터가 여럿 등장했다.
자유도가 높은 소울 아카데미답게 그들을 마주한 순간 유저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졌다.
자비 없이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지. 어떻게든 악신의 저주에서 그들을 구해낼지.
현실에서 그런 일이 펼쳐졌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겠지. 그리고 그 선택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거였을 테고.
허나 그건 게임이었고 나는 양 쪽 모두를 선택해 보았다.
소울 아카데미의 모든 업적을 클리어하려면 몰살도 불살도 한 번씩은 해봐야 하거든.
그래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카리아를 어떻게 구해내면 좋을지도 대충 짐작이 가.
필요한 인원은 이래.
카리아라는 인물과 정면에서 맞붙어 줄 수 있는 사람.
그녀가 사용하는 악신의 마법을 상쇄시켜 줄 사람.
그리고 그녀를 조종하고 있는 악신의 저주를 벗겨내 줄 사람.
이 구성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야.
어차피 베네딕이라는 치트키를 쓰기로 한 거잖아? 그러는 김에 한 번 날로 먹어 보려고.
꼭 내가 개허접무능주신의 퀘스트를 클리어 할 때마다 죽어라 구를 필요는 없잖아?
가끔은 뒤에서 박수나 치다가 해결을 해도 괜찮은 거 아니냐 이거지.
“베네딕 경이 이 곳에 방문하신다고요?”
베네딕이 이 곳에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게오르크 백작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일부러 전후사정에 대해서 아무 설명도 안 해줬거든.
아마 자신의 바보 같은 아들이 벌인 일 때문에 베네딕이 분노한거라 추측하는 거 아닐까.
이 사람이 결정장애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름 강단있는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벌벌 떠는 걸 보면 베네딕이 무섭긴 한 가보네.
자. 방금 이 사람을 지옥으로 밀어 떨어트렸으니 이제 줄을 던져 줄 차례다.
‘걱정마세요. 백작님…’
“걱정마세요. 쫄보 백작님. 바보 아버님이 여기에 오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니까요.”
“예? 그럼 어째서.”
백작에게 던전 안에서 있었던 일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저주에 휘말린 카리아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찾아올 베네딕에 대해.
악신의 봉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걸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건 너무 귀찮은 일이거든.
백작은 칼이나 할배처럼 허접 주신이 알려줬다는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야.
“옛 동료분을 구하기 위해 오시는 겁니까.”
전말을 들은 백작은 진심을 담아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죠. 체류는 물론이고 관련한 것에 대해 적극적인 도움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정말이죠? 안 그래도 쫄보 백작님께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무엇입니까?”
‘파티에 참가해주세요.’
“함께 던전에 들어가주세요. 설마 그것도 겁나서 못 하는 건 아니죠?”
카리아를 정면에서 막아내 줄 사람은 베네딕이면 충분하다. 단순히 내 추측이 아니라 할배가 고갤 끄덕인 사실이니 이는 분명해.
그러니 다른 둘을 채우면 되거든?
이 둘 중 하나로 내가 택한 사람이 바로 게오르크 백작이다.
이 사람이 엄청나게 허술해 보이긴 하지만 마법사로써는 격이 다른 인간이거든.
능력 있는 마법사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는 마도 제국에서도 천재라 불리며 그 실력을 존중 받는 괴물.
특정 조건을 달성해 싸우게 되었을 때 수많은 속성의 마법을 사용해가며 유저를 괴롭혔던, 여러 보스 중에서도 까다로운 축에 속했던 능력자.
본래는 결코 파티원으로 영입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잖아?
그 따위 제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제가 말입니까?”
백작은 눈에 띄게 당황한 티를 냈다.
내가 이런 부탁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했다.
“그것은 좀 곤란합니다. 이 곳을 지키는 백작으로써 지켜야 할 여러 규율이 존재하는 지라 전 언제나…”
‘괜찮겠어요?…’
“그럼 바보 아버님한테 다 말해 버릴까요? 쫄보 백작님의 변태 아드님께서 한 일에 대해서?”
괜찮겠어?
메그가 날 유혹하려다 실패하고는 내게 위해를 가하려 했단 사실을 들으면 그 딸바보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 거 같아?
잘은 몰라도 절대 온건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백작의 눈동자가 떨린다.
지옥에 떨어졌다가 동앗줄을 붙잡고 올라오던 중에 동앗줄을 끊겠다 이야기하는 거니까.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협박…하시는 겁니까?”
‘네. 그런데요?…’
“그런데요? 왜요? 화나요? 피도 안 마른 여자애가 기고만장해서 열 받아요? 그래봐야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쿠훗. 겁쟁이 쫄보 백작님은.”
백작의 말이 옳다.
이건 협박이다.
나에게 명분이 존재하기에, 베네딕이라는 재앙이 내 뒤에 머무르고 있기에 할 수 있는 협박.
허나 게오르크 백작은 이 협박을 거스를 수 없다.
눈앞의 건방진 꼬맹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자신의 바보 같은 아들이 먼저 잘못을 저질러버렸으니까.
위에서 날 내려다보던 게오르크 백작이 머리를 쥐어싸맴에 따라 시선이 역전된다.
‘걱정마세요…’
“걱정마세요. 그냥 던전에 들어가서 싸워주시기만 하면 되는 거에요. 백작님이 허접 겁쟁이라도 마법 실력까지 허접한 건 아니잖아요?”
그는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나는 그를 내려다본다.
이 순간 이미 대답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그거면 되는 겁니까?”
‘네. 물론이에요. 그거면 아무런 문제도 안 생길 거에요.’
“물론이에요. 그거면 쫄보 백작님도. 백작님의 변태 같은 쓰레기 아드님도. 멀쩡할 수 있답니다?”
“알겠습니다…”
게오르크 백작은 한숨이 뒤섞인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