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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6

시야가 빙글빙글 회전했다.

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칼날은 나를 한 번에 반으로 쪼개버린 것이다.

팔다리가 날아간 적은 꽤 있어도, 몸이 반으로 쪼개져 버리다니.

꽤 드문 경험이었다.

‘엄마!’

어지럽게 회전하는 시야 속에서 노랗게 타오르며 장작으로 변해 천천히 사라지는 내 하반신과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달려오는 미니 사신들이 보였다.

미니 사신들은 반으로 쪼개져 버린 내 상반신에 잔뜩 달라붙어서 계속 ‘괜찮아?’를 연발했다.

푸른 사신들은 울먹이면서도 허공에 끊임없이 문자열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프지 말아 주세요.>

<아픈 곳, 모두 나아주세요.>

미니 사신들도 내가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호들갑이 조금 심했다.

상처를 빨리 재생하려고 했지만, 상처 부위에 달라붙은 하얀 불꽃이 상처의 재생을 막고 있었다.

아귀 사신의 아귀를 닮은 얼굴과 하얀 아귀의 능력을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무슨 능력인지는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해파리랑 싸울 때, 하얀 아귀가 사용했던 ‘오브젝트를 태우는 하얀 불꽃’인 게 분명했다.

실제로 살펴보니, 아귀 사신의 칼날에는 하얀 불꽃을 압축한 것처럼 보이는 빛무리가 서려 있었다.

다만 하얀 아귀의 하얀 불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밀도가 높아서 불꽃이 아니라 거의 빛으로 이루어진 코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Sf에 자주 나오는 광선검 같은 느낌?

아니지, 검 위에 씌우는 거니까,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검기 같은 종류라고 보면 되겠지.

하얀 아귀의 불꽃은 물리 면역을 태우는 능력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귀 사신의 불꽃은 물리 면역을 가볍게 태워버리고 잘라버렸다.

하얀 아귀도 훈련하면 물리 면역을 태우는 불꽃을 쓸 수 있으려나?

이런저런 생각하며 장작을 계속 상처 부위에 밀어 넣자, 노랗게 빛나는 불꽃이 하얀 불꽃을 모두 집어삼키는 데 성공했다.

하얀 불꽃이 사라지기 무섭게, 다시 돋아나는 하반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자, 발바닥에서 단단한 바닥이 느껴졌다.

내가 다시 일어서자, 만세를 하는 것처럼 기뻐하는 미니 사신들을 바라보며 나는 살짝 웃었다.

제2 라운드의 시작이었다.

***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숨도 쉬고 있지 않는 문신투성이 여자를 내려다보며, 여동생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목이 잘리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던 언니는 몸통이 반으로 잘린 채, 마치 죽은 것처럼 쓰러져있었다.

‘언니. 언니. 언니. 언니.’

‘언니는 내 구원이잖아. 어서 일어나.’

‘언니. 언니. 언니. 언니.’

‘지옥 같은 세상에서 유일한 등불.’

‘이세계에서 찾아온 내 이야기의 반려자.’

‘내가 같이 간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언니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억지를 부려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눈물샘이 망가진 것처럼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눈물로 시야가 흐릿해진 와중에, 어디선가 햇살을 닮은 향기가 흘러오기 시작했다.

행복한 향기.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는데도, 강제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향기였다.

언니가 말한 것처럼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정신 오염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곱게 포장된 단약이 보였다.

언니가 준 정신 오염을 막아주는 단약이었다.

그리고 여동생은 그대로 단약을 바닥에 버려버렸다.

‘미안해, 언니.’

정신 오염이라도 없으면 죽을 것 같아.

언니는 상냥하니까, 용서해 줄 거야.

황금 사신들이 여동생의 주변에 몰려들어서, 뺨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마치 ‘슬퍼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동생이 계속 끌어안고 있는 여자의 시체를 보더니, 황금 사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황금 사신은 환하게 웃으면서 양 주먹을 움켜쥐었다.

‘분명 괜찮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허튼 희망이 만들어 낸 착각이겠지만,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정신 오염 때문인지, 황금 사신의 밝은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심장이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여동생은 황금 사신 하나를 손아귀에 움켜쥐고, 콕콕 볼을 찔렀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여동생은 불안한 마음에 황금 사신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끄덕끄덕.

고개를 힘차게 흔들면서 해맑게 웃는 황금 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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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의미도 모르면서 고개를 흔드는 거겠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이제서야 여동생의 눈에 소란스러운 전장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 사신이 허공을 붙잡고 휘두르자, 공간이 찢어졌다.

공간을 움켜쥐면 블랙홀 같은 것들이 생겨나서, 일정 범위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다.

칼날이 날아오는 것 같으면, 갑자기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먼 자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여동생은 회색 사신은 물론 다른 오브젝트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래도 범상치 않은 능력인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지만, 그 대단한 공격이 단 하나도 아귀 사신에게 적중하지 않고 있었다.

크고 강력한 공격을 날리는 회색 사신이었지만, 결코 유리해 보이지 않았다.

“이길 수 있을까?”

여동생의 혼잣말이 치열한 전장 속에서 작게 울려 퍼졌다.

***

거대한 칼날이 내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익.

묵직한 칼날이 내는 소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리한 소리였다.

나는 물리 면역을 뚫는 무시무시한 칼날을 피해서 순간 이동을 사용했다.

적당히 떨어진 곳에 있는 황금 사신 근처에서 나타난 나는 다시 손을 움켜쥐고 공간을 찢어냈다.

뀩.

하지만 찢어지는 공간은 아귀 사신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또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 버렸다.

처음에는 물리 면역을 뚫는 칼날이 가장 귀찮은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모든 공격을 빗나가게 만드는 능력이 문제였다.

아귀 사신에게 유령화-겹치기를 사용하기 위해서 수많은 황금 사신이 사방에서 달려들었지만, 아무도 아귀 사신의 곁에 도달하지 못했다.

분명 똑바로 뛰어들었는데, 어느새 방향이 비틀려서 지나쳐 버리는 것이었다.

공간이 비틀려서 빗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가 볼 때 공간과 관련은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미스터리, 기현상, 정체불명의 오브젝트 같은 현상.

감이 좋은 황금 사신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푸른 사신이 쏘아 보내는 물바늘도, 거대 검은 사신의 펀치도 모두 빗나가버렸다.

다행히 저 기묘한 능력의 원천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아귀 사신의 머리 위에 둥실둥실 떠올라 있는 헤일로.

저 헤일로가 능력의 원천이었다.

교주가 사용하던 ‘눈동자’처럼 심플한 빛의 고리.

생긴 것도 비슷했지만, 느껴지는 기운도 교주의 눈동자와 판박이였다.

역시 ‘눈동자’이니 만큼 교주만큼이나 성가신 능력이었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도 교주와 비슷하면 좋았을 테지만, 불행하게도 아귀 사신의 파괴 조건은 좀 더 직접적이고 간단했다.

파란 도마뱀처럼 <만 명에게 동시에 기립 박수를 받는다.> 같았으면 할만했을 것이다.

적어도 교주의 파괴 조건처럼 <눈동자 속에서 눈동자를 회수한다.> 같았어도 좋았을 텐데….

아귀 사신의 파괴 조건은 <헤일로를 분리한다.> 였다.

보통의 오브젝트였다면 명확하고 간단한 조건이라고 좋아했겠지만, 아귀 사신에게 손조차 댈 수 없는 상황이니 갑자기 너무 어려워져 버렸다.

그때 쉬지 않고 따라오면서 칼날을 휘두르던 아귀 사신이 갑자기 멈춰서서 입을 열었다.

“뀨.”

아귀처럼 귀여운 울음소리였지만, 나는 아귀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칼날을 앞으로 뻗은 아귀 사신은 칼날을 아름다운 궤적으로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제까지와 달리 이론을 초월한 기묘한 검로를 그리며 날아오는 칼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기묘묘한 검술을 순간 이동으로 피해버리는 것으로 대처했다.

아무리 무술이 뛰어나도, 초능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아귀 사신의 칼날에서 무언가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꽃잎처럼 흐드러지며 퍼져나가는 무언가는 하얀 불꽃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아귀였다.

둥근 몸통에 한없이 작은 팔다리가 달린 아귀.

주변을 순식간에 메워버린 아귀 모양 불꽃.

그리고 당장이라도 칼날을 내리칠 것 같은 자세를 취한 아귀 사신.

“뀨.”

그런 상황에서 아귀 사신은 작게 입을 열어, 나지막하게 울음소리를 내며 칼날을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아귀 모양 불꽃이 모두 폭발하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작고 약해 보이는 불꽃이었지만,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

오히려 칼날에 베인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팔다리는 진작에 타서 사라져 버렸다.

온몸이 불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살점 하나 남기지 않을 정도의 폭발 속에서, 고통스러운 의지가 전해져왔다.

‘엄마….’

폭발에 휩쓸린 미니 사신들의 의지였다.

그때 흐릿한 시야 속에서 푸른 사신을 보호하던 물 골렘의 흔적이 보였다.

푸른 사신들을 보호하던 물 골렘은 대부분이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푸른 사신이 물안개처럼 흩어지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프지만, 괜찮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내 남은 마지막 살점 하나까지 불타버리며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섬광탄이 터진 것처럼 사방에서 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황금 사신들도 모두 하얗게 타서 사라져 버렸다.

여동생은 그 파괴의 현장에서 자신도 분명 죽을 거로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낀 여동생이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끝없는 어둠.

아귀 사신의 머리 위에 둥실 떠올라 있는 헤일로의 빛만이 어둠 속에 덩그러니 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자, 완전히 박살이 난 응접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변만 유독 폭발 속에서 멀쩡했다.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이 끌어안고 있던 언니만이 폭발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저 사신들만을 노린 공격이었다.

아귀 사신은 굉장히 지친 것처럼 보였다.

그때 어둠의 한구석에서 작은 불꽃이 허공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붉은 불꽃이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가기 시작하자, 폐허처럼 보이던 공간에 불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색 육체가 순식간에 그 불꽃을 뒤덮는 것처럼 나타났다.

회색 사신과 똑같이 생겼지만, 검은 피부를 가지고 붉은빛을 내는 오브젝트였다.

오브젝트의 검은 색과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이 어우러져 용암 같은 불길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불길하게 맥동하는 검붉은 사신의 머리 위로 하얀빛의 고리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붉은 육체와 대조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깨끗한 하얀 빛의 헤일로였다.

쿠궁.

헤일로가 그 하얀 빛을 뿌리기 시작하자,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검붉은 사신의 몸에 수많은 균열이 달렸다.

그와 동시에 검붉은 사신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며,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회색 사신이 공간을 움켜쥐기 전에 하는 자세와 비슷한 동작이었다.

와그작.

검붉은 사신이 공간을 움켜쥐는 것과 동시에 아귀 사신의 한쪽 팔이 뜯겨나갔다.

마지막 순간에 깜짝 놀란 아귀 사신이 피하지 않았다면 머리가 사라졌으리라.

그리고 검붉은 사신은 온몸에 생긴 균열에서 붉은 불꽃을 줄줄 흘리며 아귀 사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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