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작은 방에서 푸른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 황금 사신이 내 어깨 위로 튀어나와서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미니 사신 정원을 감시해달라고 부탁했던 황금 사신이 나타나서 정원에 ‘아귀 사신’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미니 사신 정원으로 몸을 옮겼다.
언제나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정원에 도착하자, 황금 사신들이 잔뜩 모여있는 가운데에 누워있는 아귀 사신이 보였다.
황금 사신들은 누워있는 아귀 사신을 바라보며, 서로 의견의 차이를 보이며 투닥거리고 있었다.
논쟁의 쟁점은 저 아귀 사신이 ‘동생’이냐 아니냐였다.
생긴 게 닮았고 비슷한 느낌을 풍기니까, 거대 동생 mk·2가 생겼다는 황금 사신들.
그래도 장작이 없으니, 동생이 아니라는 황금 사신들.
상반된 두가지 의견을 말하는 황금 사신들의 귀여운 투닥거림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아귀 사신은 조금 애매하게 느껴졌다.
장작이 없는 것을 보니 분명 미니 사신은 아닌데, 나를 모방한 끝에 그 느낌과 기운까지 모방해 버린 것 같았다.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라서, 길게 이어질 것으로 보이던 황금 사신들의 ‘동생 논쟁’은 생각보다 금방 끝나버렸다.
자신들의 짧은 논리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인 것을 깨달은 황금 사신은 둥글게 모여 앉아, 각자 대표를 뽑아서 서로 마주 보고 대치를 시작했다.
뭘 하려는 걸까? ‘동생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랩 배틀이라도 벌이려는 건가?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서로 마주 본 대표자들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격투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너무 상남자식 논쟁 해결 방법을 꺼내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뚜시뚜시.
언제나 해맑은 황금 사신은 진지한 표정으로 뚜시뚜시를 날렸고, 화려한 풋워크로 뚜시뚜시를 피했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치열한 격투는 한쪽 황금 사신이 양손을 번쩍 들고 ‘만세!’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물리 면역 때문인지, 정타를 3번 먹인 쪽이 승리 선언을 할 수 있는 간단한 규칙이었다.
그런 점수제 규칙에서 ‘심판이 없어도 괜찮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솔직한 황금 사신들에게 심판 따위는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느 한쪽이 이기자, 모든 황금 사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뛰며 즐거워했다.
아니, 논쟁은 어디로 가고 갑자기 축제 분위기야?
아귀 사신에겐 안타깝게도 승자는 ‘동생이 아니다.’ 측의 대표.
아귀 사신의 처우는 동생이 아니라 ‘간식’으로 결정되어 버렸다.
그나저나, 저거 간식이 맞기는 한 건가?
너무 탱글탱글해서 죽기 전이랑 굉장히 비슷해 보여.
헤일로가 사라진 것을 제외하면 나와 싸웠던 아귀 사신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미니 사신 정원에서 부활하게 될 경우, 보통은 재질이 과자로 바뀌면서 생긴 모습이 꽤 달라지는데, 아귀 사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얗고 말랑해 보이는 모습이 그대로였다.
아귀 사신은 마치 잠든 것처럼 누워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아귀 사신이 깨어나는 것을 기다렸다.
아귀 사신이 죽기 전부터 염원하던 소원을 이루고 말 것이다.
‘아귀 사신의 머리통을 마구마구 때려주기!’
공격이 자꾸 빗나가서 짜증을 유발하던 녀석에게 마구 펀치를 날리면 통쾌할 것 같았다.
움찔.
그렇게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던 아귀 사신이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련한 표정으로 흐릿하게 눈을 뜨는 녀석을 보자마자, 나는 주먹을 말아쥐고 주먹을 휘둘렀다.
미니 사신이들을 아프게 한 복수는 한 스푼.
그리고 왠지 때려보고 싶었던 욕망 99스푼.
히히.
나는 저절로 떠오르는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조그마한 점 눈을 뜬 아귀 사신의 머리통을 때렸다.
그리고 아귀 사신의 머리통은 탱글탱글한 느낌으로 부드럽게 내 주먹을 튕겨내었다.
이 감촉은… 코코넛 젤리로군!
그리고 생각보다 젤리를 때리는 감촉은 나쁘지 않았다.
띠용띠용.
아귀 사신은 뭐가 그렇게 행복한지, 계속 맞으면서도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싸울 때는 온 세상의 힘든 일은 모두 짊어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귀 사신 같은 표정이었다.
아무리 때려도 즐거워 보이니까, 왠지 재미가 없었다.
하얀 아귀처럼 ‘뀨힝힝’하고 울어주고, 억울한 표정을 지어야 재밌는데!
결국 때리기를 멈추고, 품 안 가득 끌어안고 볼을 빨아먹었다.
하지만 아귀 사신은 먹혀도 마냥 즐거운 것처럼 웃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지?
탱글탱글한 젤리를 빨아 먹으며 계속 생각했지만, 도저히 답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짜증 나게도 코코넛 젤리는 정말 맛있었다.
***
내 등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아귀 사신을 데리고, 푸른 소녀가 누워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아귀 사신을 데리고 올 생각은 없었지만, 싱글벙글 즐거워 보이는 아귀 사신은 내 뒤를 계속 졸졸 따라다녔다.
아귀 사신은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미니 사신들을 잔뜩 끌어안고 있었다.
자기 손가락을 조금씩 잘라서 미니 사신들에게 먹이고 있었는데, 상냥한 미소를 띤 채 먹여주다 보니 미니 사신들에게 대인기를 끌고 있었다.
<상냥한 간식 엄마 골렘!>이라고 푸른 사신이 부른 것을 시작으로 다들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가끔 내 쪽을 바라보는 걸 보면 나도 상냥하게 먹여달라는 것 같았는데, 애써 시선을 돌리고 무시하는 중이었다.
돌아온 푸른 소녀의 방 안은 전과 달리 미니 사신으로 가득 찼다.
미니 사신들이 모두 이 방으로 몰려든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신기한 것을 보는 것처럼 푸른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왠지 미니 사신들은 나와 푸른 소녀를 비슷하거나 동일한 무언가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도 푸른 소녀를 볼 때면 기묘한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분명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동일인 같은 느낌이 드는 기묘한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미니 사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검은 사신은 다른 미니 사신들이 큰 호기심을 표하는 와중에도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푸른 소녀의 시체를 천천히 구경하다가, 침대째로 정원으로 옮겨버렸다.
사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내버려 둬도 상관은 없었지만, 기분상의 문제로 옮겨버린 것이다.
푸른 소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고 연구소로 옮겨져서 연구 소재가 된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불쾌했다.
뭐, 나랑 기묘할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으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겠지.
푸른 소녀를 정원으로 옮겨두고, 다시 공방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러자 나와 완전 똑같이 생긴 납 인형들을 잔뜩 발견할 수 있었다.
세희 연구소에서 파는 피규어보다 훨씬 정교한 1:1 비율의 인형이었다.
다만 오브젝트가 아니어서 그런지, 미니 사신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몇몇 미니 사신들만 주변에 앉아서 구경하고 있었다.
딱히 가치가 있어 보이는 인형들은 아니었지만, 예린이나 세희에게 선물하면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정원으로 챙겨두었다.
흥미로워 보이는 물건들을 하나둘 정원으로 옮겨둘 생각을 하며 천천히 돌아보는 도중, 황금 사신 하나가 신나는 표정으로 뚜방뚜방 다가왔다.
‘선물!’
황금 사신이 폴짝폴짝 뛰며 어떤 병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병 속에는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액체가 담겨 있었다.
‘맛있어 보여!’
황금 사신이 맛있어 보인다며, 나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병 속의 액체는 형형색색으로 빛나며, 내부에서 수많은 결정이 뭉치고 흩어지길 반복했다.
둥근 수정 같았다가, 별사탕처럼 별 모양이기도 했다.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황금 사신의 말처럼 맛있어 보이기는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화려한 액체가 맛있을 리가 없겠지만, 이상하게 진짜 맛있어 보였다.
‘같이 먹어볼래?’
내가 그렇게 황금 사신에게 물어보자, 관심 있어 보이던 황금 사신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입을 벌렸다.
그 모습이 먹이를 원하는 아기 새들 같아서, 한 번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복잡한 방식으로 밀봉된 병뚜껑을 겹치기로 날려버리고, 한 모금 먼저 마셨다.
이 액체를 입 안에서 음미하며 천천히 목뒤로 넘겼다.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감도는 감미로운 액체였다.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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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에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는 황금 사신들을 바라보며 의지를 전달했다.
‘이거 엄청 맛있어.’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렸지만 ‘와!’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황금 사신들이 양손을 번쩍 들고 행복해했다.
그리고 자기 먼저 달라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아기 새처럼 먹여주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잔뜩 기대하게 만든 뒤.
이걸 먹고 싶으면 나를 잡아보라는 의지만을 남긴 채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도망쳐 버렸다.
히히.
***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는 고급 세단이 천천히 세희 연구소 인근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별로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오랜만인 것 같아.”
뒷좌석에 편하게 앉아 있던 제임스는 저 멀리 보이는 세희 연구소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종이가 들려있었는데, 그 위에는 커다랗게 제목이 쓰여있었다.
<제임스 타워, 한국 건설 계획.>
제임스는 보고서를 적당히 내려 둔 뒤, 비서에게 물어보았다.
“타워 건설 준비는 어때?”
“완벽합니다. 현재 송파구 인근 땅을 매입하고 건설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좋군.”
‘미국의 누군가는 회색 사신의 곁에 있을 필요가 있어.’라고 작게 덧붙이며 제임스는 차량 내부에 비치된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