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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0

아귀 사신은 아련한 눈빛으로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미니 사신으로 북적북적하던 주인의 공방은 납 인형이 정원으로 도망가 버리는 것과 동시에 한산해져 버렸다.

남은 것은 연금술에 사용하는 도구들을 놀이 기구처럼 타고 놀며 즐거워하는 소수의 황금 사신뿐이었다.

귀엽고 착하고 호기심 많은 황금 사신을 보면, 주인의 아이들이 있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방에 있는 수많은 도구는 아귀 사신에게 크게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귀중한 것이라도, 그것에는 추억이 없었으니까.

의미가 있는 것은 주인과 주인이 언제나 누워있었던 침대 그리고 거울 정도였다.

침대는 납 인형이 챙겨갔으니, 남은 것은 거울 하나.

뚜방뚜방.

천천히 걸어 나가서 거울 앞에 서자, 그리운 장면이 다시 흘러나왔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면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너무나도 찬란해서 슬프고 서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과거의 추억을 곱씹으며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든 영상을 재생한 거울이 동작을 멈추고 평범한 거울로 돌아오자, 생소한 표정의 자기 얼굴이 보였다.

즐거운 것처럼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

죽지 않고 살아나서 주인의 계획을 끝까지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납 인형에게서 익숙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납 인형에게 주인이 깃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작은 희망만으로도 아귀 사신은 정말 즐거웠다.

아귀 사신은 자신의 입가를 천천히 문지르며 더욱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거울을 뜯어내고 뚜방뚜방 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주인이 있는 곳을 향해서.

***

문신투성이 여자는 여동생이 덮어준 바지를 챙겨입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옷을 챙겨 입고 일어서보니, 상의의 배부분이 잘려 나가 크롭티처럼 변해있었다.

배가 드러나서 조금 어색한 기분에 배를 매만졌지만, 여기서 옷을 구할 수는 없으니 돌아갈 때까지 이렇게 다닐 수밖에 없겠어.

여전히 조금 어지러웠지만 여기 계속 누워서 있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한국 정부 소속 군인들이 이빨 달린 수호자들에게 계속 붙들릴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자, 이제 마지막 방을 살펴보도록 하자.”

여자가 천천히 응접실에서 이어지는 공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여동생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괜찮겠어? 조금 더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해.”

문신투성이 여자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동생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못했다.

아마, 이 뒤에도 위험한 함정 같은 것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 정답이었다.

입구를 지키는 두 명의 이빨 달린 수호자가 남아있었으니까, 뒤로 돌아가서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약도 없고, 칼을 휘두르기에는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처럼 어지러울 때, 레일 캡슐을 운전하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어차피,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

이런 점들을 이야기하자, 여동생은 다행히도 이해해 주는 눈치였다.

그렇게 여동생과 함께 연금술사의 공방에 도착하자, 꽤 본격적인 시설을 가진 공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개중에는 ‘어떻게 지구에서 이런 시설을 만들 수 있었지?’ 같은 의문이 드는 시설들도 다수 배치되어 있었다.

“와, 만화 속에 나오는 연금술사 공방 같아.”

여동생은 공방을 바라보며 감탄하더니, 고개를 돌려서 히히 웃었다.

“언니 공방은 쑥 말리는 할머니 약방 같은 분위기인데.”

“뭐, 나는 대장장이 지식 같은 건 없으니까. 직접 도구를 만들기 힘드니까 어쩔 수 없지.”

공방 안에는 정교하게 제련된 금속 도구들과 유려하게 뽑아낸 유리 도구들이 잔뜩 있었다.

아마 이 공방의 주인은 직접 도구를 만들 줄 알았었던 것으로 보였다.

제작 방식이 지구의 것이 아니라, 왕국의 것과 쏙 빼닮았으니 말이다.

대충 훑어보았지만, 역시 공방의 주인은 이미 죽은 것으로 보였다.

문신투성이 여자는 천천히 공방의 내부를 살펴보면서 쓸만한 도구들을 하나둘 가방 속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 이거 엄청 맛있어 보여.”

진지한 얼굴로 공방에서 필요한 도구들을 수집하고 있던 여자에게 여동생이 엄청 호들갑을 떨면서 뛰어왔다.

여동생의 손에는 다양한 색으로 빛을 뿜어내는 반짝이는 액체가 들어있었다.

액체의 내부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은하수가 펼쳐지며, 여러 가지 도형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진짜 그게 맛있어 보인다고?”

문신투성이 여자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면서 되물었다.

“응. 무슨 문제라도 있어?”

여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면서도 언니의 이상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 해봐. 아!”

“아?”

여동생이 입을 벌리는 순간 문신투성이 여자가 입 속에 단약을 기습적으로 던져넣었다.

“캑캑. 언니, 갑자기 왜 그래?”

여동생은 굉장히 쓴 단약을 먹어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언니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아직도 맛있어 보여?”

“어? 갑자기 맛없어 보여.”

여동생은 액체를 전후좌우로 이리저리 살펴보며 ‘와, 신기해!’라고, 감탄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오히려 먹으면 안 될 것처럼 생겼어. 어렸을 때 봤던 반짝거리는 풀 같아 보여!”

여동생이 더 이상 맛이 없어 보인다고 하자, 그 말을 들은 언니는 충격적인 말을 툭 내뱉었다.

“그거, 독약이야. 오브젝트에게 극도로 치명적인 독약. 문제는 정신 오염된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거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문신투성이 여자는 콩하고 가볍게 여동생의 머리 위로 꿀밤을 때렸다.

“그리고 이게 맛있어 보였다는 건, 단약을 먹지 않았다는 거지.”

“미… 미안해, 언니.”

우울하게 고개를 푹 숙이는 여동생을 보며, 문신투성이 여자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응.”

문신투성이 여자의 분위기가 풀어지자, 여동생은 금세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동생이 가져온 독약을 가방 속에 챙겨 넣으면서, 다시 공방 내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여동생도 그런 언니를 보고는 다시 공방 내부로 발걸음을 옮겨서 신기해 보이는 것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동생은 구석에서 빙글빙글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는 도구를 발견했다.

전기가 연결된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끊임없이 회전하는 도구.

‘도대체 뭘까? 원심분리기?’

여동생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관찰하다 보니, 회전하는 도구 밑에 버튼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꾹 눌렀다.

그러자 빠른 속도로 회전하던 도구는 천천히 그 속도를 줄이더니, 완전히 멈춰버렸다.

멈춰버린 도구에는 어지러워 보이는 황금 사신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괘… 괜찮아?”

마치 교수형을 위한 밧줄처럼 황금 사신의 목에 걸린 줄을 풀어주자, 바닥 위로 털썩 떨어져 내리는 황금 사신.

여동생은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황금 사신들을 모두 풀어준 뒤, 손바닥 위에 올렸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고속 회전하는 기계에다가 귀여운 아이들의 목에 줄을 연결해서 돌려버리다니!

그야말로 악마가 할법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황금 사신들은 어지러워 보이는데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자, 이제 슬슬 돌아가자.”

그러던 중, 공방 깊숙한 곳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동생은 황금 사신을 품에 안고 소리가 난 곳으로 가자, 아무것도 없는 방의 중앙에 서서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여동생을 보며, 여자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로도 밖으로 나갈 수 있어. 우리가 들어온 입구를 다시 쓰기는 힘들었는데, 탈출로가 마련되어 있어서 다행이야.”

여동생은 언니의 말을 들어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여자가 인도하는 대로 언니 옆에 붙어서 섰다.

그리고 푸른색 섬광과 함께, 언니와 여동생은 깊은 석실 속에서 모습을 감췄다.

***

뚜시뚜시.

황금 사신들이 잔뜩 달라붙어서 내 얼굴을 마구 때리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맛있어 보이는 음료수를 나 혼자 다 먹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조금 나눠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먹다 보니 어느새 다 먹어버린 것이었다.

다 마셔버린 지 오래였지만, 그 부드러운 목 넘김을 가진 액체가 여전히 입안에 감도는 것 같았다.

‘맛있었지….’

무심코 새어 나온 의지를 들은 황금 사신들은 티배깅을 당한 표정을 지으며, 더욱 강하게 뚜시뚜시를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

화난 황금 사신들의 뚜시는 새로운 아귀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얼마 전까지 계속 뚜시를 맞은 볼을 살살 문지르며, 새로운 아귀를 내려다보았다.

넥타이를 매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새로운 하얀 아귀.

조금 귀여워 보였다.

넥타이를 보니 내가 이빨을 뽑아버렸던 집사 아귀들을 죽여서 생긴 녀석들 같아 보였다.

‘손!’

2족 보행으로 걸어 다니는 모습이 조금 웃겨서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자, 툭 하고 내 손바닥 위에 자기 손을 올려두는 새로운 아귀.

그리고 나는 그대로 그 손을 뜯어서 입에 넣고 냠냠 먹었다.

아쉽게도 맛은 마시멜로 그대로였다.

“뀨힝힝.”

새로운 아귀는 배신당한 표정으로 힝힝 울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역시 아귀는 억울한 표정을 잘 지어줘서 재밌다니까.

히히.

내가 히히 웃으며 선배 하얀 아귀를 뜯어먹으러 가려는 순간, 새로운 아귀가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이상한 자세를 잡더니, 힘을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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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몽실한 마시멜로 속에서 뭔가 형태가 잡히더니 징그러운 형상을 이뤄내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뀩’ 해버렸다.

새로운 아귀는 ‘어째서?’라고 외치는 것만 같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한 채, 공간 압착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깜짝 놀랐네.

새로운 아귀는 징그러운 근육 석상 아귀랑 집사 아귀의 혼종이었구나….

징그러워.

***

회색 사신과 문신투성이 여자가 떠난 공원으로 협회 차량이 잔뜩 들어오기 시작했다.

끝없이 들어오는 중무장한 차량.

그리고 거기서 내린 경호원들이 주변을 정리하며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경호원들은 일선의 협회 요원들에게는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 미제 최신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헬멧을 쓴 협회 소속 연구원은 그 모습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협회에서 가장 쓸모없는 간부가 오고 있었다.

한국 오브젝트 협회장의 보좌관 중 한 명.

별명은 황금충.

뇌물과 황금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자였다.

황금충은 능력적으로 뛰어난 점은 전혀 없었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에만 관심 있었다.

오히려 간신히 돌아가고 있는 협회를 더욱더 망치고 훼방을 놓는 자였다.

지금 보니 협회의 병력을 유용해서 사병처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커다란 황금으로 장식된 지팡이를 짚은 중년의 남자가 고급 세단에서 내리더니, 반짝거리는 지팡이를 과시하듯 흔들며 명령했다.

“치워라.”

그의 명령과 함께 쏟아진 화약과 총탄의 세례에 하얀 근육 석상들은 잿가루가 되어버렸다.

총탄과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피어오르는 하얀색 불길.

미국에서만 생산된다는 오브젝트 탄환으로 보였다.

자국 오브젝트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수입을 막은 걸로 아는데, 협회 간부의 사병들이 쓰고 있었다니.

밀수입해서 암암리에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협회 간부가 대놓고 사용하는 것은 처음 봤다.

황금충은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간부의 얼굴은 마치 황금을 찾으러 떠나는 졸부처럼 탐욕에 가득 절여져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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