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을 쓴 연구원이 오브젝트 협회에 보고하겠다고 해서 그런지, 경찰은 조금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협회가 대처 속도가 느리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화제가 된 사건에서 늑장을 부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들은 여기 계속 있을 테니, 협회 양반은 현장 조사를 하고 싶은 만큼 하쇼.”
경찰은 증거가 전혀 없는 현장을 뒤로하며 휘적휘적 팔을 휘두르면서, 구석에 놓인 의자를 향해 걸어가 버렸다.
연구원은 고맙다는 것처럼 꾸벅 인사를 하고는 현장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시체와 혈흔을 제외하면 발자국 같은 단서 하나 없는 현장.
연구원이 그 현장 위에서 정신 오염 측정기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정신 오염 수치가 마구 요동쳤다.
시체가 놓여있던 방향에 다가설수록 천천히 높은 수치를 가리키는 측정기의 바늘이 보였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는 사람의 인식을 왜곡하는 정신 오염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마포구에 정신 오염을 일으키는 ‘오브젝트’가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였다.
물론 측정기가 위험 상태라고 보여주는 것처럼 강력한 정신 오염 상태인 것은 아니었다.
측정기의 바늘은 ‘위험’이라고 표시된 붉은 영역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 수치는 연구원을 졸졸 쫓아다니는 오브젝트 때문에 측정 결과가 오염된 수치였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골목 구석에 숨어서 얼굴만 빼꼼 내민 황금 사신이 보였다.
마치 숨어서 장난을 치는 것 같은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황금 사신과 연구원이 눈을 마주치자, 황금 사신은 화들짝 놀라더니 골목의 뒤로 숨어버렸다.
심각한 정신 오염을 뿌리는 오브젝트라고 보기에는 너무 착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실제로도 착한 아이겠지.
저 아이는 인간에게 악의를 가지기 마련이라는 오브젝트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상냥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황금 사신과 연구원의 미묘한 거리였다.
가깝지만, 헬멧이 망가지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최초로 황금 사신과 만나, 연구원이 건물에서 뛰어내렸던 순간을 제외하면 언제나 그랬다.
마치 연구원이 싫어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황금 사신은 ‘이제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겠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골목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연구원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서,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골목 속으로 다시 숨어버렸다.
“하하.”
정말 호감으로 가득한 아이 같은 모습에, 연구원은 헬멧 속에서 작게 웃었다.
헬멧은 정상 작동하고 있는데도, 무심코 ‘황금 사신은 무해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그래도 연구원은 황금 사신을 가까이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많지는 않지만, 인간에게 우호적이지만 오히려 주변을 불행하게 만드는 비극적인 오브젝트는 이 세계에 꽤 있는 편이니까 말이다.
인간에게 우호적이면서, 인간에게 이롭기까지 한 오브젝트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대로 계속 무시하다 보면, 황금 사신도 포기하고 돌아가겠지.
연구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현장 조사를 계속 이어 나갔다.
***
교문 앞은 지나가려는 학생들로 북적였고, 소란스러웠다.
친구를 만나서 인사를 하는 소리, 아무 이유 없이 웃고 떠드는 소리.
평화롭고 평범해 보이는 학교의 일상.
피곤해 보이는 학생은 그 일상적이면서 소란스러운 한복판을 터덜터덜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걸어서, 교문을 넘어가는 순간 머리가 더욱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아, 머리 아파.’
학생은 요즘 두통이 무척이나 심해진 상태였다.
악몽을 꾸기 시작한 때부터 점점 심해지기 시작한 두통은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학교 교문을 넘는 순간,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은 도무지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굉장히 이상한 현상이었지만, 학생은 ‘얼마나 수업을 듣기 싫으면 머리까지 아픈 걸까?’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길 뿐이었다.
학생은 두통을 달래려고 정수리를 꾹꾹 눌렀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아직도 머리가 아픈가 보네?”
그런 학생을 향해, 여학생이 툭툭 어깨를 두들기며 말을 걸어왔다.
한 달 동안 같이 학교 도서실 당번을 맡은 옆 반 여학생이었다.
별로 접점이 없었지만, 같이 당번을 하는 동안 조금은 친숙해졌는지, 그렇게 아프면 두통약이라도 먹으라는 둥,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마구 떠들다가 먼저 자기 교실로 뛰어 올라가 버렸다.
피곤한 학생은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자리 위에 엎어졌다.
이렇게 두통이 심할 때는 생각을 하지 않고 누워있으면 조금은 나아지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살인 사건이 벌어졌대.”
“아, 그거. 학교 앞에 차단선 쳐뒀더라.”
교실은 역시나 살인 사건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매일 같이 떠드는 마포구의 연쇄 살인이 코앞에서 일어난 것이니, 소란스러울 만한 일이기는 했다.
피곤해 보이는 학생은 그런 소란스러운 교실을 무시하며 애써 잠에 들었다.
***
기분 좋게 따뜻한 온수.
달콤하고 시원한 화채.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목욕탕 속에 몸을 담그고 물 위를 동동 떠다니는 화채를 먹으니, 마치 격리실 침대에 누워있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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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음에 드는 배경음도 귀를 즐겁게 했다.
“뀨힝힝.”
억울하고 애처로운 목소리.
화채 그릇이 되어버린 하얀 아귀의 목소리였다.
돛단배처럼 속을 파내고 팔다리를 냠냠 먹어서 만든 그릇이었다.
형형색색의 화채와 억울해 보이는 아귀의 얼굴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다.
아귀 사신은 나를 따라서 목욕탕 속에 들어온 뒤 내 곁에 착 달라붙어 있었는데,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화채 그릇으로 변한 하얀 아귀를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얀 아귀를 관찰하더니, 자기 손을 검으로 바꿔서 자기 배를 둥글게 도려내 버렸다.
그리고 화채를 자기 배 속에 집어넣더니 욕탕에 둥실둥실 떠오른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제발 먹어주세요!’라고 소리치는 듯한 눈초리에 마지못해서 화채를 조금 집어서 먹었더니, 아귀 사신은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그 아귀 사신을 하얀 아귀가 이상한 놈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착하고 기특한 아귀 사신을 폄하하는 눈초리길래, 남아있는 꼬리를 물어뜯었다.
“뀨힝힝.”
하얀 아귀는 다시 억울한 표정으로 울었다.
역시 하얀 아귀가 제일 반응이 재밌어.
히히.
아귀를 괴롭히면서 놀다 보니, 어느새 목욕탕 안에 미니 사신들이 우글거리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욕탕을 만끽하는 주황 사신.
주황 사신의 위에 누워서 즐거운 것처럼 히히 웃고 있는 새싹 사신.
내가 있는 온탕에 잠수해서, 목욕탕을 펄펄 끓는 가마솥으로 만들어 버린 붉은 사신.
이런 물에 잠기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미니 사신들 말고도 많은 미니 사신이 욕탕을 각자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었다.
세희 연구소보다 면적이 넓어 보이는 곳이었지만,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수많은 직원과 그들 사이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미니 사신들이 잔뜩 있으니 면적이 조금 부족해 보였다.
몇몇 목욕탕은 우유를 조금만 넣은 시리얼처럼 욕탕 위로 미니 사신 머리가 빼곡하게 돋아나 있어서 조금 재밌어 보였다.
제일 인기가 많은 곳은 비누칠하는 곳이었는데, 그곳에는 황금 사신들이 잔뜩 몰려들어 있었다.
마치 애완견을 목욕시켜 주는 것처럼 직원들이 황금 사신들을 작고 부드러운 솔로 비누칠을 해주는 곳이었다.
사실 황금 사신들은 물리 면역에다가 유령화까지 가능해서 비누칠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황금 사신들은 인간들이 세심하게 자신에게 집중해 주면서 감정을 쏟는 것 자체를 행복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황금 사신이가 비누 거품 속에 파묻혀 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예린이가 다가와서 팔을 잡아당겼다.
“사신아. 사신이도 하자!”
예린이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데려간 곳은 미니 사신 비누칠을 하는 곳을 크게 만들어 둔 것 같은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자, 여기 누워봐!”
자리에 누워있었더니, 예린이가 여기저기 비누질을 하며 팔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각에 졸음이 점점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서, 졸음과 예린이에게 몸을 맡겼다.
ZZZ.
***
도서실 정리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보니, 하늘이 황혼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아, 늦었다.”
같이 교문을 나서던 여학생이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깜짝 놀란 것처럼 말했다.
“벌써 5시야.”
그렇게 짧게 말하더니, 여학생은 살짝 발걸음을 빨리해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무슨 약속이라도 있는 건가?
“요즘 연쇄 살인 사건 때문에 위험하잖아. 살인 사건은 6시 이후에 일어난다고 하더라.”
“아, 그 이야기였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여학생은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이는 학생의 대답을 듣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조심해. 위험하니까, 꼭 6시 전까지 들어가야 해!”
그리고 한산한 길거리를 빠른 속도로 뛰어가 버렸다.
‘꼭 들어가야만 해!’라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빨리 들어갈 생각이었던 학생은 서둘러서 아침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익숙한 통학로를 지나, 사람들로 가득했던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전망 좋은 높은 계단.
그리고 차단선이 쳐진 사건 현장.
하지만 저녁 6시가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하기만 했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던 학생은 이상한 시선을 느꼈다.
어둠 속에 숨어서 자신을 바라보는 황금색 눈빛.
아침에 봤던 것과 닮은 눈초리였다.
이상하게도 무시하려고 하면 두통이 더욱 심해졌다.
<오후 5시 45분.>
시간을 살펴보니,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두통이 나을지도 모르니까, 골목만 잠깐 확인하고 오는 거야.’
두통이 지긋지긋했던 학생은 차단선을 넘어서 깊고 어두운 골목을 파고들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맛있는 향기를 쫓으며 골목을 돌아다녔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후 5시 55분.>
시계는 어느새 6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서둘러서 돌아가려고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아무리 걷고 걸어도 골목의 끝이 나오지 않았다.
평범한 골목 같지 않았다.
‘오브젝트인가?’ 하는 생각에 학생은 책가방까지 내던져 버리고 탈출하기 위해서 일직선으로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오브젝트에게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연쇄 살인범이 근처에서 돌아다닌다는 공포.
그 두 가지 이유로 학생은 숨이 찬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뛰고, 계속 뛰었다.
‘하, 살았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익숙한 차단선과 계단이 보였다.
뒤를 돌아보자, 반대편 길목이 보이는 평범한 골목이 보일 뿐이었다.
‘죽는 줄 알았네. 가방은 내일 아침에 찾으러 와야겠어.’
도저히 가방을 다시 찾으러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후 6시 01분.>
시계를 확인하자, 이미 6시가 지나버린 상태였다.
어느새 6시가 지나버린 것을 확인하고 서두르려고 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돌아가라고 했는데….”
조금 전까지 듣고 있었던 목소리였지만, 왠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 목소리는 학생의 시선을 위로 향하게 했고, 바라본 계단의 꼭대기에는 태양처럼 빛나는 노란 보름달을 배경으로 익숙한 실루엣이 있었다.
헤어졌을 때와 똑같은 교복을 입은 모습이었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밝은 달빛만큼 여학생의 모습은 어둡게 물들어 있었고, 계단 위로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빨리 돌아갔어야지.”
계단을 타고 흘러내리는 불길한 그림자는 마치, 꿈속에서 본 핏물이 흐르는 모습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