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마주보기 힘들 정도로 밝게 빛나는 노란 보름달.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광기에 젖어버릴 것처럼 불길한 노란 색.
그 노란 보름달을 배경으로 서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조금 흐릿해졌다.
“왜 빨리 돌아가지 않은 거야?”
“왜 빨리 돌아가지 않은 거야?”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말소리가 도서 당번 중, 자주 듣던 여학생의 목소리와 생소한 성인 남성의 목소리가 겹치듯이 들려왔다.
마치 망가진 스피커의 노이즈처럼, 흰색과 검은색이 마구 뒤얽힌 TV 노이즈 화면처럼, 소리와 모습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리고 점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졌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이명과 어지럼증이 계속 강해져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학생 입장에서는 마치 두통을 일으키는 전파를 여학생이 자신에게 쏘아 보내는 것 같았다.
“정말, 좋은 밤이야.”
그때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학생의 눈앞에서 여학생이 사라졌다.
“!”
학생은 그 순간 깜짝 놀랐지만, 이상하게도 여학생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뇌를 쥐어짜는 것 같은 두통의 원인이 뒤쪽으로 옮겨갔으니까 말이다.
‘단검을 들고, 그대로 내 심장을 노리며 찌르려고 하고 있어.’
학생은 그것을 느끼는 순간 몸을 앞으로 말고 굴렀다.
휘이익.
바람을 가르는 흉흉한 소리와 함께, 학생의 교복이 세로로 쫙 찢어졌다.
아마 조금만 늦었어도 뼈가 드러나는 상처를 입었겠지.
“대단해, 어떻게 피한 거야?”
감탄하는 목소리와 함께, 단검을 쥔 손으로 반대쪽 손을 두들기며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느껴졌다.
학생은 긴장으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구르던 자세 그대로 땅을 박차서 골목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
눈이 아프지 않게 빛나는 은은한 조명, 후끈한 온기가 도는 공기.
목욕탕에서 촉촉해진 상태로 나와서 찜질방에 누워서 쉬고 있었더니, 황금 사신 하나가 다가와서 내 새끼손가락을 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엄마! 빨리 와!’
황금 사신이 뭔가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들뜬 표정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다급해 보이지는 않고, 굉장히 신나 보였다.
뭔가 재밌는 걸 발견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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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황금 사신들은 칼싸움만 하고 있어서, 그런 발견을 할 가능성은 적을 텐데….
뚜방뚜방 걷는 황금 사신의 뒤를 따라서 나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황금 사신이 언제나 모여서 노는 뒤뜰이었다.
매번 소란스럽게 뛰어놀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사신이 둥글게 모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얌전히 있다니!
세상 만물이 즐거운 황금 사신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그 황금 사신들의 중앙에는 4명의 황금 사신이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손에는 조금 짤막한 막대기를 검처럼 들고 있었는데, 검이라기엔 너무 짧아 보였다.
내가 도착하기 무섭게 황금 사신 중 5명의 용사를 뽑는 시합이 끝났다며, 황금 사신들이 짝짝 박수를 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칼싸움 놀이를 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였어?
나는 별로 관심 없는 시상식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황금 사신들의 시상식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황금 사신의 시상식은 생각보다 짧고 강렬했다.
짧은 막대기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황금 사신들이 동시에 의지를 뿜어내었다.
‘빛이여!’
그러자 태양 빛을 받고 황금 사신이 빔을 뿜어내던 때처럼 장작이 막대기 속으로 흘러 들어가더니, 찬란한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와!’
나는 입을 작게 벌리며 감탄했다.
광선검이라니!
같은 광선검이었지만, 검을 가진 황금 사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처럼 각자 다른 모양의 검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모두 다른 모양의 검을 들고 있었지만, 그 검신 안에 가득 담긴 감정은 모두 똑같았다.
황금 사신의 행복한 기분과 인간을 향한 무한한 애정.
아마 저 인간 애호의 검을 인간에게 휘둘러도 인간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겠지.
그나저나 너무 부럽다.
나도 갖고 싶어.
황금 사신이 저런 것까지 만들 줄 알았던 건가?
어떤 음모를 꾸며야, 광선검 하나를 강탈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도중, 황금 사신이 천으로 돌돌 감긴 무언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마치 처음부터 지금 이것을 건네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듯이, 다른 황금 사신들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만져보니 천 속에 숨겨진 것은 내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짧은 막대기로 보였다.
‘설마설마!’
천을 들치자, 황금 사신이 들고 있던 검을 크게 뻥튀기해 둔 것 같은 검 손잡이가 있었다.
‘와, 선물이야?’
나는 황금 사신의 깜짝 선물에 감격해서 뒤뜰에 모인 황금 사신들을 마구 끌어안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사실, 검을 강탈하려고 했다는 것이 살짝 마음에 걸려서 그랬기도 했다.
뭐, 아직 안 뺏었으니까 세이프겠지.
히히.
뒤뜰에서 황금 사신과 마구 뒹굴뒹굴하던 도중, 갑자기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빔을 쏠 줄 모르는데, 설마 검도 만들 수 없는 건 아닐까?’
갑자기 너무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광선검을 꺼냈다.
그리고 황금 사신이 했던 것처럼 의지를 뿜어내었다.
‘빛이여!’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빛이여!’라고 의지를 뿜어내는 거랑 장작을 움직이는 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쩌면 저 ‘빛이여!’라고 하는 대사는 그냥 황금 사신의 취향 아닐까?
나는 미니 사신을 치료해 줄 때처럼, 장작을 손잡이로 마구 밀어 넣기 시작했다.
‘오!’
그러자 노랗게 타오르는 검신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것도 하늘에 닿을 만큼 높게.
‘엄마 대단해!’
‘엄마 강해!’
황금 사신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눈을 크게 뜨고 ‘대단해!’를 연발했다.
히히, 광선검이 생겼어.
사실 공간 절단 같은 것과 비교하면 딱히 특별하지 않았지만, ‘광선검’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멋있어!
하지만 멋진 광선검을 휘두를 생각에 들뜨던 그 순간, 안타깝게도 손잡이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쩌저적.
마치 나무로 된 무언가가 비틀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장작을 회수했다.
그리고 확인해 보니, 매끈한 손잡이 형태였던 손잡이에 작은 균열이 잔뜩 생겨있었다.
조심조심 쓰면 쓸 수야 있겠지만, 수리가 필요해 보이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이거 고칠 수 있을까?’
내가 황금 사신들을 향해 물어보자, 황금 사신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몰라! 물어봐야 해.’라고 할 뿐이었다.
황금 사신들이 만든 검이 아니었나 보네?
***
달리고, 달리고, 계속 달렸다.
휘이익.
세로로 내리꽂히는 날카로운 단검을 피해 학생은 사정없이 바닥을 굴렀다.
단검은 쇠로 돌을 긁는 기분 나쁜 소리를 뿜어내며, 콘크리트 바닥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학생은 계속 도망치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대체 뭐지? 같이 도서실 정리를 하던 여학생이 연쇄 살인범이었던 걸까?
하지만 학생은 왠지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일 것 같지 않았다.
분명 오브젝트와 관련된 일이겠지.
어쩌면 학생이 계속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두통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하아. 하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었지만, 쫓아오는 살인범의 호흡은 여전히 고르기만 했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뛰어나가는 학생을 향해 날카로운 단검이 다시 날아들었다.
학생은 골목에 놓인 쓰레기통을 휘둘러서 단검을 막아냈다.
빠악!
얇은 철판이 단번에 꿰뚫리는 소리가 나면서 단검이 쇠로 된 쓰레기통에 구멍을 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살인범은 신기함을 숨기지 못했다.
“또 막았네? 어떻게 계속 막는 거지?”
확실히 인간은 볼 수도, 막을 수도 없는 힘과 속도를 가진 공격이긴 했다.
아마 두통이 방향과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막지 못했겠지.
“그래도 그렇게 계속 도망갈 수는 없어.”
학생은 최대한 구불구불 꺾어진 골목을 지나가며,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살인범은 직선거리를 기이할 정도로 빨리 움직이니까, 최대한 복잡한 길을 따라서 도망가야 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에 봤던 황금색 기척.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우호적으로 보였던 그 기척만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게 사람을 유혹하는 오브젝트여서 더욱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었지만, 남은 희망은 그것뿐이었다.
“설마, 황금 사신을 찾는 거야?”
정말 웃긴다는 것처럼 깔깔 웃던 살인범은 갑자기 웃음을 싹 지우더니,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대단해도, 아무리 강해도, 광기의 달빛 아래에서 빠져나올 순 없어!”
마치 살인범은 달빛이 손에 만져지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달빛을 쓰다듬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허억. 허억.
폐가 타는 것만 같았다.
어찌나 오래 도망친 것인지, 오금이 저절로 접혔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억지로 앞으로 뛰어가려고 했지만, 다리에서 힘이 풀려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골목에 놓인 쓰레기와 유리병이 마구 흐트러지며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빨리, 빨리 일어나야 해.’
그 순간 발버둥 치는 학생의 귓가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 그만 죽어.”
푸욱.
바닥에 쓰러진 학생의 등 뒤로 차가운, 하지만 너무나도 뜨거운 칼날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등 뒤에서 뜨거운 액체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살인범은 학생의 몸을 뒤집고, 목을 자르기 위해서 칼을 치켜들었다.
이렇게나 피가 튀겼는데, 여학생의 몸에는 핏방울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흐릿한 시선에 칼날 궤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궤적과 겹치는 것처럼, 하늘에서 황금색 햇빛이 내리꽂혔다.
***
아름다운 황금빛 궤적이 둥글게 시야를 뒤덮었다.
도저히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밝은 빛이 번쩍였다가, 사라진 순간.
미로처럼 길고 긴 골목은 30m도 안 되는 짧은 골목으로 변했다.
노랗고 불길한 달빛은 종적을 감췄고, 은은한 회색빛이 골목을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맛있는 것 같으면서도 포근한 태양 같은 향기가 났다.
쓰러진 상태로 상체를 일으키자, 보였다.
황금색으로 찬란히 빛나는 검을 한 자루 쥐고, 학생을 올려다보는 황금색 오브젝트의 모습이 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는 것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던 황금색 오브젝트.
그 황금색 오브젝트는 학생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환한 표정으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