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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6

복잡한 구조물들이 잔뜩 늘어서 있어서 어두운 골목 한 가운데를 회색으로 빛나는 달빛이 꿰뚫었다.

마치 연극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내리쬐는 달빛의 무대 위에 너무나도 작지만, 이상하게 든든한 느낌을 주는 황금색 오브젝트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달밤과는 어울리지 않는 태양의 향기를 품은 채.

회색 달빛의 가호를 받는 것 같은 당당한 모습으로 학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오브젝트는 학생의 기억 속에도 있었다.

회색 사신과 한없이 닮은 ‘황금 사신’이라는 오브젝트였다.

그 황금 사신의 모습을 학생은 홀린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머리를 아프게 하던 두통도, 황금 사신의 등장과 함께 씻은 듯이 나아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분명 심장을 꿰뚫린 것 같았는데?

지금은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데, 착각이었던 걸까?

학생은 상처가 있던 등 뒤로 손을 뻗어서, 상처를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것은 구멍이 뚫린 교복 상의와 그 밑으로 흉측하게 벌어진 상처가 느껴질 뿐이었다.

끈적한 핏물.

상처를 만진 손끝을 눈으로 확인하자, 손끝에는 빨간 핏물과 황금색 불꽃이 달라붙어 있었다.

학생이 상처를 만지는 것을 본 황금 사신은 깜짝 놀라서 달려들었다.

때찌때찌.

상처가 아직 나은 게 아니라며 타박하는 표정을 한 채, 손바닥으로 토닥였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약간 고민하더니, 허공을 진지한 표정으로 노려보면서 허공을 향해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느리지만,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 검과 공간이 닿는 순간.

둥.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공간 위로 파문이 은은하게 번져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공간이 찢어지며, 달콤한 초콜릿 향기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허공을 수놓는 검의 궤적이 멈추자, 허공에 황금 사신만 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버렸다.

대신 주변을 환하게 밝히던 광선검의 광채가 사라져 버렸다.

황금 사신의 심장에서 빛을 뿜어내던 불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져 버렸다.

굉장히 지친 것 같은 표정의 황금 사신은 학생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이제 괜찮아!’

이제 모두 해결되었다는 표정의 황금 사신은 당장이라도 비틀거리면서 쓰러질 것 같아서, 학생은 서둘러서 손을 뻗어 황금 사신을 끌어안았다.

당장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황금 사신을 손아귀에 올려둔 학생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괜찮은 거야?”

황금 사신은 그 말에 반응하지 않고, 학생의 손가락을 잡아당겨서 자기 머리 위에 얹을 뿐이었다.

마치 쓰다듬어달라는 것 같은 행동에 학생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손가락으로 황금 사신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황금 사신은 눈을 감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와 동시에 희미해졌던 황금 사신의 불꽃이 점점 그 기세를 되찾아 가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의 불꽃이 찬란한 빛을 되찾는 순간, 황금 사신은 손바닥 위에서 일어나면서 만세를 했다.

학생은 ‘황금 사신 부활!’이라고 외치는 듯한 천진난만한 제스처가 귀여워서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공간이 잘린 틈으로 서둘러서 달려 들어가더니, 푸른 물처럼 투명한 미니 사신을 하나 데리고 나왔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던 푸른 사신은 학생을 보더니 깜짝 놀라서 허공에 문자열을 수놓기 시작했다.

<아픈 곳, 모두 나아주세요.>

학생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문자열은 완성되기가 무섭게 안개로 변해서 학생의 상처로 스며들었다.

손을 뻗어서 상처를 만지자,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치명상을 단번에 고치다니!

“대단해!”

죽을 뻔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학생은 크게 감탄하며 황금 사신처럼 쓰다듬어 주려고, 푸른 사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학생의 손이 닿기 직전, 푸른 사신은 부끄러운 것처럼 모자를 푹 눌러쓰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황금 사신은 ‘이제 상처도 나아서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학생을 올려다보다가, 뭔가를 느낀 것처럼 고개를 돌려 달빛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학생도 고개를 돌려 회색 달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 한결같이 내리쬐는 회색의 달빛.

그래, 원래 달빛은 저런 색이었지.

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불길한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보름달만이 달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 순간 지끈거리는 두통이 갑자기 시작되더니, 하늘을 노란색 보름달이 잡아먹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보름달.

단순한 골목이 좌우로 마구 늘어지더니, 복잡하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로 돌변했다.

어두운 골목에 드리운 불길한 달빛.

그 골목 끝에서 그 달빛을 등지며 익숙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아무리 강해도 달빛 아래에선 나를 이길 수 없다고 했잖아.”

입가에 기괴한 비웃음을 머금은 여학생이 학생과 황금 사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수리가 시급해 보이는 광선검은 황금 사신에게 넘겨주었다.

당장 광선검으로 놀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부서지면 더 골치 아플 것 같아서 황금 사신에게 넘겨주었다.

내 자제심은 나 자신도 믿기 힘드니까, 빨리 수리하라고 넘겨주는 편이 안전하겠지.

수리가 빨리 되면 좋겠네.

광선검을 쓰면 미니 사신들이랑 싸워서 이길 것 같아.

그도 그럴 것이 미니 사신이랑 나랑 장작의 규모 차이가 엄청나니까!

감정 흡수력부터 장작 용량까지, 사실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나는 황금 사신의 광선검 소유자들을 돌아보며, 갑자기 궁금해진 것을 물었다.

‘넌 몇 등이야?’

다들 등수 표시 같은 것도 없이 ‘용사!’라고만 해서 그런지, 갑자기 등수가 궁금해진 것이다.

‘2등!’ ‘3등!’ ‘4등!’ ‘5등!’

그러자, 황금 사신들이 순서대로 손을 번쩍 들며 자신의 등수를 의지에 담아 외쳤다.

엥, 1등이 없네.

5명의 용사를 뽑는데, 큰 검 하나랑 작은 검이 4자루뿐이니까….

설마 1등은 나인가?

하지만 ‘설마 1등은 나?’라고 물어보자,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표정으로 황금 사신들이 쳐다보았다.

힝.

상처받았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표정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잖아….

광선검이 수리되면 적당히 놀아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최대 출력으로 다 때려줘야지.

속으로 군자의 복수를 다짐하며, 궁금한 것을 마저 물어보았다.

‘그럼 1등은 누구야? 어디 있어?’

그러자 황금 사신들은 대단한 자매를 자랑하는 표정으로 폴짝폴짝 뛰면서 단편적인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황금 사신 제 1검!’

‘공간 절단!’

‘압도적 최강!’

황금 사신들의 자랑 이야기는 끝없이 끝없이 이어졌다.

너무 대단해서 ‘과장이나 허풍이 섞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황금 사신이 이런 걸로 나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으니, 분명 1등을 한 황금 사신은 대단한 녀석이겠지.

나중에 기회가 돼서 한번 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저 정도로 극찬할 정도면 아귀 사신과 좋은 승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

황금색 섬광이 번쩍였다.

“와….”

학생은 그것을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검을 들었어도 저렇게 작은 몸으로, 작은 칼을 든 채로 싸운다면 불리할 것 같았지만, 황금 사신의 전투력은 압도적이었다.

황금 사신은 좁은 골목의 벽을 박차며 공중과 벽을 마치 지면처럼 활용하며 싸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3차원 기동!

짧은 검도 저렇게 자기 몸을 총알처럼 빠르게 쏘아 보내는 이상, 단점이 아니었다.

무작정 달려드는 살인범은 황금 사신과 제대로 검도 맞대지 못하고 먼지가 돼서 사라져 버릴 뿐이었다.

학생을 중심으로 빛이 번쩍일 때마다, 노란 달의 살인범이 하나씩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황금 사신이 그렇게 시종일관 압도적으로 강해도 상황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살인범은 절대로 죽지 않았다.

반으로 잘라버려도, 잘게 토막을 쳐도 그랬다.

먼지가 되어서 사라져 버린 뒤, 멀쩡해진 상태로 다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황은 더욱더 나쁜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싸울 수 있을까?”

이제까지 계속 달려들던 여학생이 골목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잔해 위에 앉아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골목으로 여러 사람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같은 반 학생부터 시작해서, 학교 담임 교사, 그리고 교장 선생님까지.

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어디선가 만났던 온갖 사람들이 살인범의 환영을 뒤집어쓴 채 나타났다.

어느새 숫자를 세기 힘들 정도로 잔뜩 나타난 살인범들은 골목을 가득 메운 채 달려들기 시작했다.

***

황금 사신은 골목을 핀볼처럼 튕겨 다니면서 나쁜 오브젝트를 썰어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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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베어도, 아무리 죽여도 오브젝트는 끝이 없었다.

검으로 죽일 수 없는 오브젝트인 것이다.

황금 사신은 그게 너무 답답했다.

엄마가 했던 것처럼 장작을 눈에 집중시켜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를 부르려고 해도, 뭔가에 막힌 것처럼 의지가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처럼 공간을 잘라서 미니 사신 정원을 향한 통로를 만든다면 엄마를 부를 수 있겠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공간을 자를 만한 찰나의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싸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잘라낼 것 같은 광선검이 망가진 형광등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검 내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검은 동생이 딱딱한 과자를 깨물어 부수는 것 같은 소리.

‘미안해.’

황금 사신은 슬픈 얼굴로 애착 인간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약하게 의지를 뿜어냈다.

검이 망가지면, 애착 인간을 지킬 수 없었다.

저 나쁜 오브젝트들은 ‘물리 면역’이었으니까.

‘미안해.’

거듭해서 사과한 황금 사신은 굳은 얼굴로 최고 출력의 마지막 참격을 휘둘렀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모든 적을 지워버린 광선검은 뭔가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침묵했다.

하지만 나쁜 오브젝트들은 스멀스멀 끝도 없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팔 두 개, 다리 하나, 그리고 마지막 목숨 하나.

기껏해야 나쁜 오브젝트 4마리.

그러면 애착 인간은 죽어버려.

황금 사신은 뚝뚝 흐르는 눈물을 애써 훔쳐내며, 적들을 노려보았다.

엄마는 오지 못하니까, 어떻게든 해야 해.

그런 절망적인 순간, 황금 사신의 뇌리에 아귀 사신의 화려한 불꽃이 떠올랐다.

형태가 없는 불꽃을 예리하면서도 형태를 가진 무언가로 만들었던 검술.

거기서 떠올렸다.

‘검을 만들어야 해!’

하지만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황금 사신은 고개를 거세게 흔들며 부정했다.

해야만 해.

애착 인간이 죽어버려.

애착 인간은 다시 살아나지 못해.

애착 인간이 죽는다면, 차라리 내가 대신 죽겠어!

영혼을 모두 태워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 순간 황금 사신의 전신에서 황금색 불길이 치솟았다.

이제까지 황금 사신이 뿜어냈던 불꽃 중에서 가장 찬란한 불꽃이었다.

동시에 황금 사신의 몸이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자기 몸을 태워서 만드는 생명의 불꽃이었다.

그리고 텅 비어 있는 손아귀 안에 찬란한 별빛을 흩뿌리는 아름다운 검신이 길게 뻗어 나왔다.

그 검신을 바라보며 황금 사신은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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