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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7

마치 허공에 은하수를 그려내는 것처럼 아름다운 검의 궤적이 어두운 골목길을 밝혔다.

마치 은하수를 통째로 뜯어온 것처럼 반짝이는 별 무리가 황금색 빛의 폭포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반짝임은 왠지, 황금 사신의 생명력이나 영혼 혹은 본질에 가까운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은은한 불길을 전신에 두른 황금 사신은 시간이 흐를 때마다,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흐릿해진 황금 사신은 처음처럼 골목길의 지형과 벽을 이용해서 화려하게 뛰어다니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몸보다 훨씬 커다란 참격을 거듭 휘두를 뿐이었다.

살인범의 무리는 상대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모습이었지만, 학생이 볼 때는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다.

곧게 선 두 다리는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바닥 위에 단단히 뿌리 내린 황금 사신의 양발은 힘이 풀린 것처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상황이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3차원 기동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여력이 남지 않아서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황금 사신은 최소한의 검격으로 적들을 제거하던 방식을 버리고, 검신을 크게 키워서 움직이지 않은 채 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찬란하고 압도적인 궤적은 살인범들을 주눅 들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찬란한 검격의 대가는 착실히 쌓여가고 있었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천천히 투명해져 가는 존재감.

한번 휘두를 때마다 점점 부스러져 가는 신체.

“그냥 도망쳐. 이렇게 도와줘도 어차피 희망은 없어.”

학생은 황금 사신의 이유 없는 헌신이 조금 슬퍼서, 그리고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거듭 말했다.

하지만 황금 사신은 그런 학생을 향해, 행복한 미소만을 되돌려줄 뿐이었다.

마치 이렇게 학생을 위해 검을 휘두르는 것이 행복인 것처럼.

그 미소를 본 학생은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황금 사신의 마음이 느껴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이어진 사건·사고 때문에 자신이 이상해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지 않고 마음속으로 황금 사신을 위한 짧은 소원을 빌었다.

‘이렇게 착한 황금 사신이 살아남을 수 있기를.’

황금 사신이 무의미한 일에 목숨을 버리지 않기를 빌었다.

이 염원이 어떤 신에게든 닿아서 이루어지기를.

***

아프다.

육신이 점점 타들어 가면서, 장작으로 바뀌고 있었다.

원래 육신을 장작으로 바꾸는 짓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장작은 직접적인 공격 능력이 부족해서, 애착 인간을 지킬 때는 별로 쓸모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황금 사신에게는 장작을 빛의 검으로 바꾸는 능력이 생겼다.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손아귀에서 찬란한 별빛을 흩뿌리는 검신이 길게 뻗어 나왔다.

그리고 ‘나쁜 오브젝트’를 향해 내리쳤다.

검을 휘둘러서 장작이 조금 깎여나가자, 그것을 채우기 위해 육신이 조금 깎여나갔다.

육신을 태울수록, 정신이 몽롱해졌다.

검을 쥐고 있는지, 검을 제대로 휘두르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게 되어버렸다.

그저 수천수만 번 휘둘렀던 검의 습관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냥 도망쳐. 이렇게 도와줘도 어차피 희망은 없어.”

애착 인간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가 들려오자, 황금 사신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애착 인간에게서 들어오는 마음 때문이었다.

애착 인간 본인이 죽더라도 황금 사신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

황금 사신의 염원과 닮은 꼴의 염원이었다.

황금 사신은 자신이 죽더라도, 애착 인간은 살아남기를 원했다.

애착 인간이 언제나 웃고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애착 인간은 언제나 행복한 감정만 가졌으면 좋겠어.’

황금 사신의 염원을 담은 궤적이 또 다른 오브젝트를 반으로 잘랐다.

퍼석.

그 순간, 황금 사신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한쪽 다리가 부스러지면서 제대로 몸을 지지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황금 사신은 한쪽 다리가 망가져도, 남은 다리에 힘을 실어서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황금 사신의 흐릿한 시야 속에서 투명해져가는 자기 몸이 보였다.

장작이 부족해지면서 점점 윤기를 잃고 푸석푸석한 모래처럼 변해가는 자기 몸이 보였다.

“정말 대단했어. 하지만 이제 거의 끝이 보이는 것 같네.”

의기양양한 기색이 잔뜩 실린 ‘나쁜 오브젝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승리가 임박했다는 느낌의 말소리였다.

하지만 황금 사신은 마치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처럼, 묵묵히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퍼석.

이번에는 머릿속에서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중요한 게 망가져 버렸다.

눈앞이 잘 안 보여.

흐릿했던 시야는 끝없는 암흑으로 가득 차올랐지만, 몽롱한 정신은 그저 묵묵히 검을 들고 휘두를 뿐이었다.

하지만 황금 사신에게는 감정과 악의를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황금 사신에게는 따뜻한 애착 인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애착 인간을 향해 다가오는 나쁜 오브젝트의 악의를 느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황금 사신에게는 그저 작은 소원이 남았을 뿐이었다.

자신이 죽기 전까지 이 감각이 사라지지 않기를.

자신이 죽기 전까지 계속 검을 휘두를 수 있기를.

그저 염원을 담아서 검을 휘둘렀다.

나쁜 오브젝트가 황금 사신의 무의미한 죽음을 조롱해도.

애착 인간이 황금 사신을 걱정해도.

몽롱한 정신의 황금 사신은 그저 염원을 담아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무아지경으로 휘두르는 검 끝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장작을 모두 쏟아부어야, 겨우 닿을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그 순간.

황금 사신은 ‘공간’을 깨달았다.

끝없는 어둠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좌우로 끝없이 늘어선 골목길.

끝없이 달려오는 나쁜 오브젝트들.

그리고 슬픈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애착 인간.

빛이 아니라, 공간으로 보는 세계.

그 세계에서 공간의 결이 보였다.

황금 사신은 보이지 않았던 눈을 똑바로 뜨고, 정면의 공간을 보았다.

남은 장작은 겨우 검격 1회분.

그래도 황금 사신은 진지한 표정으로 묵묵히 검을 들어 올리고, 공간의 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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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공간을 억지로 찢을 때처럼 눈에 띄는 흔적이 남지 않는, 공간의 미세한 틈만 남기는 예리한 참격이었지만 황금 사신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황금 사신 최후의 비기가 발동했다.

‘필살 엄마 부르기.’

***

찬란한 검의 궤적이 아무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황금 사신의 마지막 참격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휘둘러진 것이다.

황금 사신이 점점 망가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건전지가 떨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사신아….”

톡 건드리면 부스러질 것 같은 상태의 황금 사신이라서 그런지, 도저히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저 바닥에 쓰러진 황금 사신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하하하하. 드디어!”

그 모습을 보며 여학생은 배를 움켜쥐고 크게 웃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둥.

무의미한 발악을 계속하다니, 우습다는 둥.

온갖 이야기를 떠들면서 즐거워했다.

골목을 가득 채운 살인범을 뒤집어쓴 사람들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공허한 웃음을 토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여학생은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마포구의 연쇄 살인. 저녁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조금 전까지 웃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백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한쪽 입꼬리만 씩 끌어올리며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네? 하루에 한 명.”

그 모습은 왠지 소름 돋게 어색하게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행동을 멈추고 있던 살인범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살인범이 접이식 단검을 높이 들어 올리고 학생을 향해 내리찍으려는 순간, 학생 주변의 공간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황금 사신이 학생을 치료하기 위해 잘라냈던 흔적보다 훨씬 거칠고 억지로 쥐어뜯은 것 같은 흔적이 생겼다.

그리고 그 흔적 너머로 맡은 기억이 있는 초콜릿 향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뚜방뚜방.

가로세로 5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구멍에서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회색빛의 오브젝트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명실상부 한국 최강이라 불리는 특급 오브젝트.

‘회색 사신’이었다.

***

즐거운 하루였다.

사신 전용 휴양지도 마음에 들었고, 황금 사신들이 선물한 광선검도 좋았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불꽃으로 만든 무기를 든 붉은 사신과 광선검을 든 황금 사신의 대결을 보려고 했다.

미니 사신 콜로세움 중앙에 진지한 표정의 황금 사신과 해맑은 표정의 붉은 사신이 마주 보고 있었다.

붉은 사신은 내가 추천해 준 대로 한 손에는 불꽃 망치, 한 손에는 불꽃 낫을 든 훌륭한 전사의 모습이라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누가 이기든 정말, 정말 재밌는 시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즐거운 기분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처박혀 버렸다.

내 귓가에 위치한 공간이 예리하게 잘려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균열에서 아주 미약한 의지가 흘러나왔다.

공간의 균열이 바로 내 귓가에 생긴 게 아니었다면, 듣지 못했을 만큼 미약한 의지였다.

‘엄마….’

죽어가면서 마지막 순간에 내뱉은 단말마 같은 애처로운 의지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져서 예리한 틈에 양손을 박아 넣고 양옆으로 찢어버렸다.

쩌억.

공간이 우그러들고 거칠게 찢어지며 시끄러운 소리가 미니 사신 정원 내부에 크게 울려 퍼졌다.

찢어버린 공간 너머에는 장작이 거의 없어서 바스러져 가는 황금 사신이 쓰러져있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서, 매번 다쳐서 엄마를 부르는 황금 사신이었다.

나는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노랗게 빛나는 달빛 그리고 꽤 강력한 존재감을 가진 사악한 오브젝트들.

나만 괴롭힐 수 있는 내 아이를 괴롭힌 녀석들이었다.

당장이라도 흩어져 버릴 것 같은 황금 사신에게 장작을 쏟아 넣고 있으니, 미니 사신 정원에 뚫린 구멍으로 미니 사신들이 천천히 따라 들어오기 시작했다.

낫과 망치의 붉은 사신.

팔을 검처럼 바꾼 검은 사신.

물로 만든 지팡이의 푸른 사신.

마지막으로 광선검을 든 황금 사신.

그렇게 나를 따라온 미니 사신들은 다친 황금 사신을 보더니, 복수를 하겠다는 것처럼 각자의 무기를 들어 올렸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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