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9
당혹스러운 나머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아서를 비롯한 1왕자 근처에 머무르는 이들.
유력 계승자의 앞이기에 예를 지켜야하는 것조차 잊고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관중들.
악역영애의 가면에 금이 간 채 흔들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 조이.
싸늘한 적막을 구경하던 나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할아버지이이이이!’
할배에몽! 살려줘! 이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야 해?! 나는 방법을 모르겠어!
<일단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거라.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봐야 하니.>
할배에몽이 시킨 대로 입을 꾹 다문 채 주변을 살피고 있으려니 당혹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엄하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로 두터운 적막을 깨부순다.
아서였다.
“여기가 아카데미인 줄 아는가!”
1왕자의 옆에 서 있던 그가 짐짓 화를 내며 앞으로 나선 것이다.
<상황판단이 빠르군.>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지금 저 녀석은 먼저 소리를 치는 것으로 상황의 주도권을 손에 쥐었다.>
아서가 소리를 내지른 것은 지극히 전략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례를 저질러버렸다. 그 때문에 이 일을 없던 것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
지금 난 내가 범한 죄의 책임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허나 아직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질 것인지는 결정되지 않았으니.
“어이가 없군! 베네딕 경의 딸이라 하여 그 오만방자함이 용서받으리라 생각하는가!”
아서는 자신이 먼저 목소리를 냄으로써 처벌의 경중을 정하는 주도권을 쥐려한 것이다.
그에게는 왕자의 동생이라는 명분이 존재하니까.
“되었다. 동생아.”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1왕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때 생기는 명분이었다.
모욕을 당한 1왕자 쪽이 더 높은 지위와 더 확고한 명분을 지닌 만큼 1왕자가 앞으로 나선다면 그는 뒤로 물러서야 했다.
“허나 형님!”
아서는 그를 알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되었다고 했을 터.”
허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1왕자가 눈썹을 내림에 따라 아서가 사과의 말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선다.
모두가 한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생긴 침묵의 가운데에서 1왕자가 발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의 검디검은 눈동자는 정확하게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내 앞에 멈춰선 1왕자는 말없이 위에서 날 내려 보다가 얼굴을 낮췄다.
그리곤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이 목소리를 냈다.
“그대가 보기에도 지금의 난 좆밥이 아닌가 보지?”
그거 아직 기억하고 있었어?!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거야?!
하긴 못 잊겠지!
어떤 미친년이 자기보고 음침한 좆밥 외톨이라고 매도했는데 그걸 잊겠냐!
그 한 마디를 전하고 다시 고개를 든 1왕자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행복에서 나온 웃음은 아니었다.
카리아처럼 특출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알 수 있어.
저건 이 새끼는 반드시 내 손으로 조지겠다고 마음먹을 때의 웃음이야.
<이 정도면 별 문제는 없겠군.>
‘문제없는 거 맞아요?!’
<노발대발하며 너를 벌하겠다 그러는 건 아니잖으냐.>
그건 그렇죠.
근데 저 아무리 봐도 저 인간한테 찍혔잖아요!
이 새끼를 어떻게 조져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게 눈에 보인단 말이에요!
<악신에게도 찍힌 녀석이 왕자 정도로 무얼 난리를 피우느냐.>
할배는 이성을 잃고 난리를 피우는 게 문제지 이성이 남아있다면 괜찮을 거라며 날 안심시켰다.
그건 저도 이해했는데요.
지금 이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저 최종보스 중 하나한테 찍힌 거라고요!
안 그래도 주신이랑 악신이 합심해서 날 괴롭히는데 거기에 하나가 더 늘어났다 이 말입니다!
메스가키를 참교육 시키려는 상대가 하나 더 늘어났다고!
“그럭저럭 쓸만한 인간이 되었단 이야기는 들었지만 성격은 변한 게 없군.”
속으로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지르고 있자니 1왕자가 말을 이었다.
들으라는 듯 명확한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파트란 축제에 참여하고 있다지?”
‘네. 그렇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음침한 외톨이 왕자님. 스토커이신가요?”
제발 좀 멈춰라 메스가키 스킬아!
상황과 때를 보고 튀어나오란 말이야!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거 안 들리냐?! 어!?
“허. 그래. 예전 그대로여야 재미가 있지.”
언성이 높아지리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1왕자는 코웃음소리와 함께 저리 말을 하곤 등을 돌려버렸다.
그에 따라 오히려 당황한 쪽은 1왕자의 옆에 붙어있던 호위였다.
“왕자님. 무례를 이렇게 넘겨버리실 겁니까?”
“원래 저런 인간이다. 목소리를 높여 봐야 이 쪽만 피곤해.”
“허나.”
“잊은 듯 하니 말해주지. 저 자는 베네딕 알른의 딸이다. 그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넘어가야하지 않겠나?”
1왕자는 베네딕의 공을 봐서 넘어간다고 이야기했지만 저 속 뜻은 달랐다.
굳이 베네딕의 이름을 언급한 이유는 분명 내 뒤에 베네딕이 도사리고 있음을 기억하란 소리이리라.
호위는 물론이요 1왕자의 뒤편에 서 있던 이들도 베네딕의 이름 앞에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으니.
그렇게 모두가 침묵한 것을 확인한 1왕자는 자신이 데리고 온 무리를 이끌고 왔던 길로 떠나가 버렸다.
흐아아악.
진짜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대체 과거의 루시는 뭐하는 인간이었던 거야!?
이런 분위기를 몸으로 받아내면서 왕이고 왕자고 타 귀족이고 간에 모욕하고 다녔다니!
아무리 뒤에 베네딕이 있다지만 눈치가 보였을 텐데?!
진짜 메스가키는 남들 눈 따위 신경 안 쓴다는 건가?!
하긴 남들 눈 보는 사람이었으면 공주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다니진 않겠지!
다른 의미로 과거의 루시에게 감탄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내 옷깃을 잡아 당겼다.
조이였다.
“정말. 알른 영애는 한결 같으신 분이네요.”
한숨과 걱정이 뒤섞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절로 죄책감이 솟아올랐다.
미안해. 조이. 친구를 잘못 둬서 고생이 많네.
너한테 주기 위한 선물을 준비해 뒀으니까 그거 받고 마음을 풀어주렴.
입 밖으로는 미안하단 소리를 낼 수 없어서 속으로 사죄를 빌고 있으려니 그녀가 헛웃음을 흘렸다.
“따라와요. 아서가 할 이야기가 있다네요.”
응? 아서가?
*
조이가 날 데려간 곳은 돈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그 곳의 종업원은 조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어느 방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드디어 왔나.”
방 안에는 아서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앉아라. 인사라면 방금 전에 거하게 했으니까.”
그의 말에 따라 탁자에 앉자마자 아서가 한숨과 함께 내 이름을 불렀다.
“루시 알른.”
‘넵!’
“뭐죠?”
“미안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사과에 머리가 멍해졌다.
얘가 왜 미안하다는 소리를 해? 사과해야 하는 쪽은 오히려 나 아닌가?
“그대가 이런 인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댈 보겠단 형님을 말리지 못한 죄가 크다.”
아서에게 듣자하니 수도에 처박힌 히키코모리인 1왕자가 파트란 영지에 방문한 데에는 그의 영향이 큰 모양이다.
본래라면 이런 축제에 참여하지 않아야 할 아서가 이 곳에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내자 거기에 1왕자가 호기심을 가졌고 이야기를 나눈 과정에서 1왕자가 이 곳에 참여하게 됐다고.
아니.
그러니까.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얘가 원흉인거네?!
아서!
너 임마!
날 지키려고 해줘서 고맙다는 생각 다 취소!
루시라는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알았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1왕자의 발을 막아야 했을 거 아냐!
왜 탱커도 아닌 놈이 보스한테 어그로를 끌어서 상황을 개판으로 만드냐고!
“오지 말라는 말도 못 하는 거에요? 진짜 한심해서 불쌍한 왕자님이시네요♡ 대체 잘 하시는 게 뭔가요?♡ 아. 하나 있네요. 지고 나서 두고 보자며 소리치는 거♡”
“나도 노력했다! 허나 형님께서 고집을 부리셔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단 말이다! 그리고 말이다! 애시당초 그대가 괴상한 말만 안 했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 아닌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현재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자를 모욕하는 건 대체 무슨 짓이냐?!”
그치. 잘못의 비중을 따지자면 내 과실이 상당히 클 거야. 숫자로 따지면 9는 되지 않을까?
그래도 원흉을 이 자리에 소환한 너한테도 1 정도의 잘못은 있잖아?
그러니까 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매도 정도는 달게 받도록 해.
이걸로 네 죄를 용서해 줄 테니까.
억울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아서는 이내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금 평정을 되찾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형님께서 그대에게 무언가 제재를 가할 생각은 없어보인단 것이다.”
1왕자는 자리를 떠난 후에도 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단다.
호위나 가신이 말을 꺼내도 지나간 일이라며 넘기는 걸 보면 굳이 이번 일을 따져 물을 생각은 없는 모양.
아마 거기엔 베네딕의 이름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겠지.
불완전하다지만 악신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는 인간이랑 누가 적대하고 싶겠냐.
“다만 언제까지 좋게 좋게 넘어갈지는 알 수 없다. 형님께서 마음을 먹는다면 베네딕 경께서도 곤란해지실 터. 그러니 제발 좀 조심하도록.”
‘네에.’
“제가 왜 그래야 하죠?”
“그대가 걱정되어서 하는 이야기다! 귀 기울여 듣는 체라도 해라!”
아서가 또 다시 목에 힘줄을 세웠지만 나로썬 방법이 없었다.
메스가키 스킬이 내 어투와 행동을 교정하는 한 난 1왕자를 음침 외톨이 왕자라고 불러야 할 테니까.
“저어. 3왕자님.”
우리가 투닥거리는 걸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조이가 슬며시 목소리를 내자 아서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지?”
“1왕자님께서도 축제에 참여하시는 건가요?”
“그래. 기왕 온김에 축제의 학살자가 되겠다 하시더군.”
그 인간이 영지에서 나온 것도 신기한 데 축제에 참여하기까지 한다고?!
대체 왜?!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그런 짓을.
상상도 못한 일에 경악하고 있던 나는 왕자가 떠나는 길에 내뱉었던 대사가 떠올랐다.
이것도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인 거야?!
베네딕 때문에 직접적인 재제를 가할 순 없으니 이런 식으로 이겨 먹겠단 거냐고!
최종보스가 할 행동 치고 너무 치졸한 거 아냐?!
아니. 아니. 잠시만. 그건 문제가 아니지.
1왕자가 축제에 참여한다는 소린 길가다가 1왕자를 마주칠 수도 있다는 거잖아.
“형님께서 진심을 내신다면 그 칭호는 형님의 것이겠지. 안타까운 일이야. 본인도 꽤나 진지하게 노리고 있었거늘.”
“3왕자님도요?”
“그래. 뭐든 할 땐 최선을 다해야지.”
오. 신이시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할배한테 1왕자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냐고 물어봐야 하겠는데.
얼굴을 마주쳤다가는 또 다시 일이 벌어질 테니까.
– 띠링.
뭡니까. 허접주신님. 당신 안 불렀어요.
저 지금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있거든요?
사도의 마음고생을 해소해 줄만한 무언가를 들고 오신거라면 환영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말이 좀 험해질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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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학살자]
[14개 이상의 가판에서 대결을 하고 승리하라!]
어라?
어라아?
왜 숫자가 달라진 거지?
왜 10이라고 적혀 있던 부분이 14가 된 거야?
허접 주신! 야 이 쓰레기 새끼야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