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사신은 근처 건물 난간에 앉아서 어떤 집의 창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 괜찮을까….’
얼마 전에 자신을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진 인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황금 사신은 꾹 참고 창문 너머 인간이 위험하지 않도록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황금 사신은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한 노란 달을 올려다보았다.
노란 달은 얼마 전부터 인간에게 해로운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는데, 황금 사신에게는 그 점이 마음에 무척 들지 않았다.
‘인간 약해.’
‘인간 지켜야 하는데….’
하지만 황금 사신은 하늘 위에 떠오른 달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었다.
‘!’
그때 갑자기 엄청나게 불길한 기운이 인간 주변에 나타난 것이 황금 사신에게 느껴졌다.
유령화와 시간 가속을 사용해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던 창문으로 다가갔지만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불길한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분명 인간에게 해로운 오브젝트가 나타났었던 것 같았지만, 고개를 돌려가며 사방을 살펴봐도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인간, 괜찮겠지?’
황금 사신은 연약한 인간이 걱정되어서, 창문 뒤로 몸을 숨기고 빼꼼 고개를 내밀어서 몰래 관찰했다.
마치 뭔가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남자는 전에 봤을 때보다 더 아파 보였다.
물리적으로 다친 곳은 없었지만, 마음이 아파 보였다.
슬퍼 보이는 인간에게 빨리 달려가서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인간은 이상하게 자신을 싫어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즐겁게 같이 지냈었는데….
황금 사신은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다가, 인간이 눈치채기 전에 자리를 떠났다.
‘언젠가는 인간과 같이 웃으면서 놀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황금 사신은 애써 활기찬 표정을 지으며, 즐거운 미래를 상상했다.
***
마포구에 위치한 호텔 방.
그 안에서 커다란 헬멧을 쓴 연구원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정신 오염 탐지기를 쳐다보자, 정신 오염 수치가 ‘위험’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저히 헬멧을 벗을 수가 없네.’
연구원은 조만간 마포구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회색 사신은 언제나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타난 경우가 많았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정신 오염 수치도 심상치 않았다.
주변에 황금 사신이 없어도, 노란색 보름달이 뜨기만 하면 측정기의 바늘이 위험 등급을 향해 솟아올랐다.
노란 달이 마포구 전역에 ‘위험’ 등급 정신 오염을 뿌리고 있는 것이었다.
현재 연구원이 작성 중인 보고서도 그것과 관련된 조사 보고서였다.
물론 협회에선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길 테지만, 연구원은 두 가지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황금 사신, 정신 오염 관찰.>
<노란 달, 정신 오염 관찰.>
이라는 이름의 보고서였다.
특히 황금 사신 관련 보고서는 작성하기가 쉬웠다.
마포구에 황금 사신이 대량으로 뿌려졌으니, 사람들의 행동 패턴 변화를 통해서 어떤 종류의 정신 오염인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연구원은 조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귀여운 외모와 기특한 행동을 하는 오브젝트이니, 당연히 정신 오염도 그쪽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는 계열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연구원의 생각과 꽤 달랐다.
연구원은 자신이 정리한 보고서를 천천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으로 인한 정신 오염의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사람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우울한 사람에게는 즐거운 생각을 주었고,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용기를 주었다.>
<편견이나 규칙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호의를 유도하는 효과도 상당히 강력한 것으로 보였지만, 오히려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보였다.>
<호의를 유도하는 효과가 실제로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효과에 비해 평범한 수준일 것이다.>
“후.”
연구원은 보고서를 읽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황금 사신의 정신 오염은 사람에게 해로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브젝트를 신뢰할 수는 없었다.
오브젝트의 함정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게다가 순수하게 호의로 이루어진 선물이라고 할 지라도 위험했다.
오브젝트는 인간과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호의의 방향이 인간에게 이롭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토록 이로운 점이 많은 정신 오염을 ‘오염’이라고 불러야 할까?’
생각할 거리를 잔뜩 안겨주는 ‘황금 사신’의 정신 오염과 다르게, 노란 달 쪽은 꽤 효과가 명확했다.
‘황금 사신을 수상하고 공포스럽게 보이게 만들고, 사람에게 피해망상과 편집증을 부여한다.’
5일째 밤이 지난 뒤부터 나타난 사람들의 의심암귀와 공포 양상을 보면 너무 명확했다.
그때부터 연구원은 당장 마포구를 비워야 한다고 미친 듯이 협회에 연락했지만, 언제나처럼 검토 중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슬슬 연구원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협회의 무능은 무능을 넘어선 영역에 도달해 있어서, 뭔가 목적을 가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 협회에서 계속 일하는 게 맞는 걸까? 차라리 행복해 보이는 세희 연구소에 가야 하나….’
연구원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연구원을 향해 뚫려있는 창문에 걱정스러운 표정의 황금 사신의 얼굴이 빼꼼 튀어나와 있었다.
***
마포구로 넘어가기 위해서 지나가야 하는 수많은 도로 중 한 곳에 거대한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세희 연구소 소속, 연구원 오예린. 출입이 허가가 없으시네요. 현재 마포구로 들어가시려면 협회에서 허가를 받아오셔야 합니다.”
기나긴 줄을 기다린 끝에 들어선 검문소였지만, 출입이 거부되었다.
‘회색 사신’을 격리 중인 연구소라고 어필을 해봐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나는 검문소 근처에 서서, 세희 연구소로 전화를 걸었다.
“네, 마포구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중뢰 선배.”
“마포구 주민이거나, 협회 쪽에 출입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들어갈 수 없으면 빨리 돌아오라는 중뢰 선배의 전화를 대충 넘기고, 휴대 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쉬운 표정으로 검문소 쪽을 바라보았다.
뚜방뚜방 걸어 다니는 황금 사신이들이 마포구 쪽에 잔뜩 보였다.
예전에 물로 만든 창을 들고 다니던 때처럼, 황금 사신이들은 씩씩한 표정으로 마포구를 순찰하고 있었다.
‘부럽다.’
오랜만에 뚜방한 황금 사신이들을 보니, 연구소로 돌아가기가 싫어졌다.
그야 연구소에는 사신이도 없고, 황금 사신이도 거의 없어진 상태라서 사신이 성분이 극도로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검문소 근처로 몰래몰래 다가가서, 순찰 중인 황금 사신이를 불렀다.
회색 사신 푸딩을 흔들면서 부르자, 황금 사신이는 순식간에 눈치채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황금 사신이는 약 3m를 남기고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는 것 같은 반응이었다.
“빨리 와. 푸딩 먹자!”
내가 푸딩을 조금 떠서 유혹했지만, 황금 사신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할 뿐이었다.
“설마, 더 이상 못 오는 건가….”
휴대 전화로 확인해 보니, 황금 사신이는 마포구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신이가 마포구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몰래 검문소 근처까지 다가가서 푸딩을 먹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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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사신이도 푸딩은 오랜만인지, 굉장히 행복한 표정으로 푸딩을 먹기 시작했다.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푸딩을 잔뜩 입에 넣고 오물오물.
그런 행복한 모습의 황금 사신이를 보면서, 나는 천천히 푸딩을 뒤로 옮기고 있었다.
넘지 말라는 경계를 넘은 황금 사신이는 어떻게 될까? 하는 가벼운 의문 때문이었다.
냠냠.
맛있게 푸딩을 먹는 황금 사신은 푸딩이 천천히 뒤로 움직이면서 점점 경계선을 넘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 한입, 나 한 입.
그렇게 먹다 보니 많아 보이던 푸딩 한 통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행복한 표정으로 마지막 푸딩을 오물거리는 황금 사신을 바라보며, 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마포구 밖으로 나온 거 아니야?”
황금 사신은 내 말을 들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래서 황금 사신이 서 있는 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갸웃거리던 표정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마치 ‘안 돼!’하는 표정으로 변한 황금 사신은 바닥에 털썩 쓰러져 버렸다.
나는 예상보다 격렬한 반응에 미안해져서 바닥에 축 늘어진 황금 사신을 손바닥 위에 들어 올려서 마포구 너머에 슬쩍 옮겨두었다.
‘미안해!’
나는 마음속으로 축 늘어진 황금 사신에게 작게 사과했다.
***
마포구에서 내 아지트가 되어버린 한적한 옥상.
그 옥상에는 인간들에게 거부당해서 우울해진 황금 사신들이 내 근처에 모여서 누워있었다.
‘그래, 그래. 조금만 더 힘내.’
나는 슬픈 황금 사신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며 위로해 주고 있었다.
마포구의 마지막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요즘 인간들에게 거부당한 황금 사신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었는데, 아마 노란 달이 황금 사신들을 거부하게 만드는 정신 오염 같은 것을 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첫날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공격을 해 오지 않고 있었는데,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황금 사신은 씩씩한 아이들이니까, 겨우 거부당한 정도로는 멈출 수 없지.
하늘 위로 보름달이 떠오르자, 나는 박수를 짝짝 치고 황금 사신들에게 의지를 전했다.
‘자, 이제 인간들을 지키러 가자!’
내 의지를 듣자, 황금 사신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담당 인간을 지키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슬프지만 약한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발로 뛰는 헌신적인 아이들이었다.
황금 사신들이 모두 사라지자, 나는 푸른 사신과 붉은 사신을 소환한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격리실에 비해 쌀쌀하니까, 무릎 위에 붉은 사신을 올려두었다.
가구가 없으니까, 푸른 사신에게 커다란 소파를 만들게 해서 편하게 앉았다.
그리고 TV를 켜서 뉴스를 틀면 간이 격리실 완성!
아 편하다.
황금 사신이 고생하는 동안 꿀 빤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두 배로 편안했다.
히히.
그렇게 쉬고 있었더니, 하늘에는 어느새 불길한 노란 달이 떠올라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그마한 발걸음 소리가 옥상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뚜방뚜방.
황금색 광선검을 든 황금 사신이 비틀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순찰하는 용사 사신이들은 가끔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쉬긴 했지만, 조금 이른 시간 같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이질적인 소리가 내 심장에서 울려 퍼졌다.
파직.
황금색 광선검이 크기를 키운 채, 내 몸통과 소파를 관통해 버렸다.
<엄마!>
‘혁명?!’
푸른 사신과 붉은 사신은 깜짝 놀라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를 찌른 황금 사신은 한쪽 입꼬리만 들어 올린 채,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