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02

마포구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져서 한산해진 검문소.

아직도 마포구의 밤은 위험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에, 지나가려는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몇몇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검문소를 통과해서 마포구 내부로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마포구 한복판에 솟아오른 검은 실루엣의 등장과 함께 그런 사람들도 사라져 버렸다.

마치 그림자가 일어서있는 것 같은 실루엣은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불길함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린은 차량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사신이를 반드시 만나고 말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예린은 슬금슬금 검문소로 다가가더니, 어느새 검문소 창문 밑에 바짝 붙어 있는 상태였다.

검은 실루엣의 등장과 함께 검문소의 경계가 약해졌기에, 충분히 기회가 있어 보였다.

살금살금.

모두 마포구 내부를 보고 있는 동안, 열려 있는 창문을 넘어서 살금살금.

협회 소속 직원들이 검문소를 막고 있었지만, 모두 검은 실루엣의 전투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었기에 생각보다 쉽게 잠입할 수 있었다.

검문소를 넘어간 뒤로는 거리낄 게 없었다.

예린은 검은 실루엣이 있는 쪽으로, 그리고 회색 사신이 있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불길한 노란 달이 떠올라 있고,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한산한 밤거리.

마포구를 뚜방뚜방 순찰하던 황금 사신들도 사라져서 쓸쓸한 밤거리였지만, 예린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예린은 회색 사신을 곧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들뜬 상태였다.

‘사신이를 곧 만날 수 있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사신이는 무적이니까.

그런 예린의 눈에 건물 옥상에 손톱만큼 작은 실루엣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어두운 밤인 데다가 너무 멀어서 흐릿하게만 보이는 실루엣이었지만, 예린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신이야!’

회색 사신으로 한정한다면, 독수리보다 시력이 좋은 예린이었다.

표정은커녕 이목구비도 보이지 않는 거리였지만, 예린이 보기에 회색 사신이 조금 곤란한 상황처럼 느껴졌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

그 모습을 보면서 예린이 큰 소리로 외쳤다.

“사신아, 힘내!”

예린의 목소리가 닿기엔 너무나도 먼 거리였지만, 회색 사신은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고개를 휙 돌리더니 예린을 발견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반가운 표정으로 웃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웃고 있던 회색 사신은 어느새 예린의 바로 앞에 나타나더니, 뚜방뚜방 걸어와서 예린의 품에 뛰어들었다.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회색 사신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자, 주변의 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검고 딱딱한 아스팔트가 사라지고, 하얗고 푹신한 마시멜로 대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마치 동화 속 풍경이 현실을 잡아먹는 것처럼 보였다.

마시멜로 대지는 슬금슬금 그 영역을 넓히기 시작해서, 마시멜로 대지 위에 불쑥불쑥 콘크리트 건물이 돋아난 것 같은 이질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

일주일 만에 만나서 그런지, 장작이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린이를 꼭 껴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장작이 몰려들었다.

장작이 충분해지자, 연비 문제로 부르지 않았던 미니 사신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불러낸 것은 거대 검은 사신.

예린이의 장작을 흡수하는 동안, 거대 가짜 사신을 막아주는 담당이었다.

건물보다 거대한 거대 가짜 사신을 상대하기 위해서 검은 사신들도 건물만 한 크기로 뭉쳐서 나타났다.

마치 ‘크앙!’하고 울부짖는 것 같은 자세로 나타난 거대 검은 사신은 가벼운 스텝을 밟으며 검은 실루엣과 전투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구조하는 용도로 나머지 푸른 사신과 주황 사신, 새싹 사신을 불러내었다.

직접적인 치료와 구호를 담당하는 푸른 사신.

건물이 무너지면 시간을 뒤로 돌려줄 새싹 사신.

온갖 사건 사고의 확률을 비틀어서 다치는 사람의 숫자를 억제해 줄 주황 사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체적인 장작이 없어서, 가장 연비가 나쁜 아귀 사신을 불러내었다.

오랜만에 불러줘서 그런지, 아귀 사신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자, 마음껏 날뛰어!’

내 의지를 들은 아귀 사신은 양손에 대검을 만들어 내더니, 적을 처리하기 위해서 가짜 사신들을 향해서 돌진했다.

그리고 나는 커다란 하얀 아귀를 소환해서, 하얀 아귀의 푹신한 등위에 누웠다.

예린이의 품에 안겨, 하얀 아귀의 등을 조금씩 뜯어먹으면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나는 장작만 잔뜩 공급해 주면 되는, 미니 사신들만으로 하는 자동 사냥의 완성이었다.

***

마포구에 있는 한 원룸.

한 여자가 공포에 젖은 채, 모포를 잔뜩 끌어안고 구석에 숨어있었다.

“으으.”

분명히 굉장히 행복한 하루의 마무리였건만.

해맑게 웃는 황금 사신과 꽁냥거리면서,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됐는데!

그저 호의만을 뿜어내며 방긋방긋 웃던 황금 사신은 이제 이를 악물고 여자의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황금 사신은 심장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도 기습을 통해 가짜 사신을 처리했지만, 그림자 속에서 또 다른 가짜 사신이 슬금슬금 몸을 일으켰다.

또다시 나타난 가짜 사신을 보며, 황금 사신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너무 많은 장작을 소모해서 움직이기도 힘들었기에, 더 이상 지켜줄 수가 없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싹둑 잘려버린 왼팔에서 핏물 같은 황금 불꽃을 뚝뚝 흘리면서도, 황금 사신은 그저 미안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장작을 모두 소비한 황금 사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빛의 가루로 변해서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죽어버린 황금 사신은 끝없는 벌판, 미니 사신 발할라에서 눈을 떴다.

‘인간이 위험해!’

황금 사신은 눈을 뜨기가 무섭게 회색 사신의 곁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주변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저 지키던 인간을 향해서 달렸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인간이 있던 원룸 앞에 도착하자, 공포에 질린 인간의 기운이 느껴졌다.

방문을 유령화로 넘어가자, 끔찍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기괴한 미소를 머금은 채, 검을 휘두르는 나쁜 오브젝트.

움직일 생각도 못 하고, 그저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떠는 인간.

인간을 단번에 쪼갤 수 있을 만큼 크기를 키운 빛의 칼날.

‘인간이 위험해!’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왔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WlJKZ0NsamtaQ0sveENFK2VoZUwvV0FFYkQ4eTg3UGUvNkIyQ3V6LzBaWQ

가짜 사신의 칼날은 이미 여자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고, 황금 사신은 이제야 돌아온 상태였으니 말이다.

아무리 시간을 가속해도 닿을 수 없었었다.

‘안 돼!’

황금 사신이 온전해진 손을 여자에게 뻗으며 의지를 뿜어냈다.

황금 사신은 엄마처럼 공간을 움켜쥐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불가능했지만, 황금 사신은 결코 인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 처절한 전장에, 동글동글한 무언가가 둥실둥실 날아오기 시작했다.

처절한 전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하얗게 타오르는 통통한 아귀가 물방울처럼 둥실둥실 방안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얀색 불꽃으로 만든 아귀를 보자, 황금 사신은 울음을 그치고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만세’를 했다.

‘간식 동생!’

황금 사신의 의지가 퍼져나가기 무섭게 아귀 모양 불꽃은 미사일처럼 불꽃을 뿜어내며 가속하더니, 가짜 사신에게 돌진해서 폭발했다.

물리 면역을 가지고 있던 가짜 사신이었지만, 아귀 사신 검술의 정수인 아귀 불꽃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쾅!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가짜 사신과 아귀 모양 불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폭발에 여자는 굉장히 당황했지만, 황금 사신이 풍기는 맛있는 향기 때문인지 점차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토닥토닥.

어느새 어깨 위까지 올라온 황금 사신이 여자의 뺨을 톡톡 건드리자, 여자는 그제야 살았다는 생각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태가 진정되기 무섭게 방 밖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앙!

그 순간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충격파가 건물을 휩쓸자, 마치 건물이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에 깜짝 놀란 여자는 황금 사신을 품에 안고, 건물 밖으로 서둘러서 탈출했다.

그렇게 건물 밖으로 내려선 여자가 발견한 것은 폭신한 마시멜로 대지와 미니 사신들의 분투였다.

커다란 검은 사신이 거대한 그림자와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고, 사방으로 충격파가 뻗어져 나왔다.

수도 없이 뿜어져 나오는 그 충격파에 무너진 건물이 적지 않았지만, 그렇게 무너진 건물들은 비디오를 뒤로 되감는 것처럼 그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푸른 사신들은 마포구의 모든 사람에게 물방울을 씌우겠다는 기세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을 지켜주세요!>

그렇게 마구잡이로 보호막을 씌우던 푸른 사신들은 금방 빛을 잃어버리고 지친 표정을 지었지만, 어디론가 날아가서 다시 회복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에 타고 있는 하얀 아귀가 거리로 나온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뀨힝힝.”

여자의 곁에도 억울한 표정의 하얀 아귀가 다가와서 자기 몸을 태워 추위를 몰아내 주고 있었다.

아귀 모닥불에서는 이상하게 달콤한 냄새가 났다.

***

아귀 사신이 가짜 사신들을 불태우고, 검은 사신이 거대 가짜 사신의 목을 꺾어버렸다.

아, 편안하다.

진작에 예린이를 데리고 다녔어야 했는데, 이렇게 어려운 오브젝트일 줄은 몰랐던 점이 실책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노란 보름달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미니 사신들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활약할수록 노란 달의 존재감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공포가 옅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노란 달의 구조를 생각해 보면, 분명 그럴 것이다.

이제 곧 해가 뜰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해가 뜨면 노란 달의 파괴 조건이 충족되겠지.

노란 달이 파괴되는 것만 확인되면 격리실에 틀어박혀서 한 달은 쉬고 싶었다.

마포구에서 일주일이나 길거리 생활을 했더니, 따뜻하고 안락한 세희 연구소가 너무 그리웠다.

‘노란 사신은 어떻게 괴롭힐까? 고생하게 한 만큼 괴롭혀야 하는데….’

노란 달을 파괴하고 생길 미니 사신을 어떻게 괴롭힐지 상상하고 있던 도중, 예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신아, 이거 봐봐. TV에 사신이 이야기가 잔뜩 나오고 있어.”

예린이는 내 더듬이를 우물거리면서,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황금 사신이 뚜방뚜방 걸어 다니며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는 장면.

검은 사신이 ‘크앙’하는 자세를 잡으며 가짜 거대 사신을 패대기치는 장면.

아귀 사신이 유려한 동작으로 가짜 사신들을 베어버리면서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

주황 사신이 구름 고기들을 몰고 다니면서 황금 사신을 수송하는 장면.

도대체 이런 영상을 어떻게 찍은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검게 칠해진 드론들이 하늘을 잔뜩 날아다니고 있었다.

방송 때문인지 내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이 나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 정도라면 서울 전역에서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감이 안 잡혔다.

저 수많은 호의를 품은 사람들이 세희 연구소까지 쫓아와서 귀찮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평온한 세희 연구소 라이프를 방해할 것만 같은 상황에 나는 미간을 구겼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