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초코가 바다처럼 찰랑거리는 미니 사신 정원 한복판에서 황금 사신은 새로운 동생을 마주하고 있었다.
갸웃.
황금 사신은 동생을 보면서 뭔가가 이상해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심장에서 타오르는 장작의 느낌과 친근한 분위기.
분명 동생이 맞았는데, 황금 사신이 보기에 뭔가가 이상했다.
눈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단추가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해맑은 미소 대신 둥글둥글한 재봉선이 단정하게 웃는 모양을 그렸다.
매끈매끈한 피부 대신 부드러운 천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생각하기가 귀찮아진 황금 사신은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인형 옷 동생!’
황금 사신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반가운 감정을 담아서 의지를 내뿜자, 새로운 동생 사신은 몸을 둥글게 말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 뒤에서 회색빛으로 물든 손이 등을 찢고 불쑥 튀어나왔다.
‘?!’
황금 사신은 동생이 크게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라, 등 뒤로 돌아가서 확인했다.
등이 찢어지며 ‘회색 손’이 튀어나오다니!
엄마의 짓궂은 장난이 분명해.
하지만 황금 사신이 등 뒤로 돌아가서 보게 된 것은 엄마의 장난이 아니라, 숨겨진 지퍼가 서서히 열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나비가 허물을 벗듯이 새로운 모습의 동생 사신이 인형 옷 속에서 빠져나왔다.
황금 사신 인형 옷에서 나온 것은 회색 사신 인형 옷을 입은 동생 사신이었다.
그리고 동생 사신은 끊임없이 옷을 벗었다.
벗을 때마다 새로운 미니 사신 옷을 입은 동생 사신이 튀어나왔다.
만약 회색 사신이 이 장면을 봤다면 ‘마트료시카 같네.’라고 할법한 장면이었다.
‘와!’
마치 마법처럼 신기한 장면을 보면서 황금 사신은 짝짝 박수를 쳤다.
‘신기해!’
굉장히 좋아하는 황금 사신을 보면서 동생 사신도 같이 즐거운 것처럼 웃더니, 허물처럼 남겨진 미니 사신 인형 옷 하나를 황금 사신에게 넘겨주었다.
황금 사신은 그 인형 옷을 받아서 순식간에 뒤집어쓰고, 만세를 하면서 의지를 크게 뿜어내었다.
‘혁명!’
황금 사신이 입은 인형 옷은 붉은색이었다.
***
나는 따뜻하고 친숙한 분위기의 격리실에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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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포옹으로 꿈을 품어주는 고치 같은 침대.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전달해 주는 TV.
투명한 보석처럼 세공된 사탕.
고급스러운 비단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초콜릿.
격리실의 포근한 온기가 구석구석 스며들어 공기가 포근한 이불처럼 느껴지는 격리실.
격리실은 여전히 따뜻하고 안락했고 맛있는 과자들로 가득했지만, 딱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격리실 밖에서 내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장작이 알아서 찾아와 주는 셈이라서 딱히 싫지는 않았지만, 저대로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귀찮을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심할 때 먹는 감정 별미 같은 느낌으로 딱 저 정도의 사람만 찾아왔으면 좋겠다.
황금 사신들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호의를 보내주는 것만으로 즐거운지, 격리실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서 건너편을 보려고 했다.
사실 황금 사신들은 감정의 방향이나 움직임을 읽고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쉽게 감지할 수 있었지만, 저런 식으로 잔뜩 유리에 달라붙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창문 너머가 잘 안 보여서 유리에 달라붙는 것에 불과했다.
‘분명 저기에 인간이 있는데, 잘 안 보여!’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사람이 반응을 보이면서 선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말랑말랑한 볼을 유리에 들이미는 황금 사신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면, 황금 사신들도 더욱 즐거워하고, 그러면 황금 사신들이 더욱 유리에 달라붙는 선순환.
그렇게 사람들과 황금 사신들은 행복의 무한 나선을 그리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황금 사신들에게서 눈을 떼고 TV를 바라보자, 격리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꽤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던 러시아의 위기에 대한 소식이었다.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된 시베리아가 검게 붕괴하고 있다!]
오브젝트 문제로 시베리아를 비우고 봉쇄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였다.
TV에서는 영토 상실 위기까지 초래하는 국가 규모의 재난.
시선을 돌려서 격리실을 바라보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환하게 웃으며 폴짝폴짝 뛰는 황금 사신.
이런 대비가 조금 재미있게 느껴졌다.
TV와 황금 사신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겠지만, 나는 미니 사신 정원으로 가는 입구를 열었다.
이때쯤이면 노란 사신이 태어났을 테니, 사람들의 관심이 황금 사신들에게 팔린 틈을 타서 미니 사신 정원으로 뚜방뚜방 걸어 들어갔다.
***
격리실에서 빠져나와, 미니 사신 정원의 푹신한 마시멜로에 발을 디뎠다.
미니 사신 정원은 여전히 달콤한 냄새로 가득했지만,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해있었다.
마시멜로 벌판 위를 빨간 사신들이 잔뜩 모여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붉은 사신은 하나뿐이었을 텐데, 도대체 언제 증식한 거지?
미니 사신 정원이 불로 만든 망치와 낫을 들고, 해맑은 표정으로 ‘혁명’을 외치는 붉은 광장이 되어버렸다.
이런 터무니없는 사태에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니,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정신 오염으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이질적인 부분이 보였다.
저거 눈이 단추잖아.
깨닫고 보니 붉은 사신들이 잘 만든 인형 옷으로 보였다.
도대체 이 많은 인형 옷이 어디서 났는지 살펴보니, 정원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인형 옷의 산 앞에는 황금 사신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하나씩 인형 옷을 주워 입고 있었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인형 옷을 입기가 무섭게 붉은 낫과 망치를 만들어 내더니 떼 지어 달리고 있는 붉은 사신 인형 옷 무리에 합류하고 있었다.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는 붉은 사신 인형 옷 군단.
그 군단을 자세히 살펴보니, 선두에서 뛰고 있는 것은 진짜 붉은 사신이었다.
진짜 붉은 사신은 붉은 동무가 늘어나서 정말 즐거운 표정으로 마시멜로 벌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노란 사신은 인형 옷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노란 달의 능력이 모방과 공포의 구현화 비슷한 것이었으니, 예상대로라면 예상대로인 능력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노란 사신이 어디에도 보이질 않네.
노란 사신을 찾아서 붉은 광장을 떠나자, 또 다른 인형 옷의 무리가 보였다.
이번에는 나를 본떠서 만든 것 같은 회색 사신 인형 옷을 입은 녀석들이었다.
이리저리 날뛰는 붉은 인형 옷들과 다르게, 회색 사신 인형 옷을 입은 아이들은 둥글게 얌전히 앉아서 뭔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역시 교양과 양심을 두루 겸비한 ‘나’의 인형 옷을 입은 만큼 얌전하네.
후후.
나는 뿌듯한 기분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마음속으로 흘렸다.
그리고 도대체 뭘 구경하고 있길래 얌전한 건지 궁금해져서, 회색 사신 인형 옷들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치 공연장처럼 꾸며진 곳에서 황금 사신 인형 옷이 화려하게 공중을 날아다니며, 황금색 몽둥이를 마구 휘둘렀다.
가짜 사신 인형 옷들은 그 검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모습을 관람 중인 아이들은 황금 사신 인형 옷의 활약을 보고 제자리에 앉아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 뒤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가짜 사신 인형 옷들의 습격과 황금 사신 인형 옷의 분투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위기에 빠진 인간을 황금 사신 인형 옷이 구출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모든 인형 옷이 움직임을 멈추고, 공기가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들었다.
그걸 구경하던 미니 사신들은 감동적이라는 의지를 마구 뿜어내며, 일어서서 짝짝 박수를 쳤다.
회색 사신 인형 옷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자, 그제야 푹 빠져서 구경하고 있었던 나도 정신이 들었다.
이거 연극이네?
단순하면서도 시원시원한 전개를 가진 연극이라서, 나도 노란 사신 찾는 것을 잊어버리고 계속 구경할 정도였다.
흐음, 인형 옷 사신이라….
나는 제1 검 인형 속에 들어가서 연극을 조종한 노란 사신을 바라보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다른 미니 사신들에게 붙잡혀 헹가래를 당하는 노란 사신을 보다 보니, 재미있는 장난이 떠올랐다.
히히.
***
인형 옷들이 잔뜩 돌아다니는 미니 사신 정원에서 한 붉은 사신 인형 옷을 입은 미니 사신이 자기 몸을 불꽃으로 띄워서,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목표 지점은 미니 사신 정원 하늘 위에 둥실둥실 떠올라 있는 검은 구체.
망설임 없이 구체안으로 몸을 던진 미니 사신은 도착하기 무섭게, 인형 옷을 벗어 던지고 뚜방뚜방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미니 사신은 날카로운 이빨과 검은 피부를 가진 검은 사신이었다.
한때 검은 사신의 시체로 가득했던 검은 구체의 내부였지만 지금은 텅 비어있었고, 중앙에 눕혀져 있는 거대한 시체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사실 검은 사신들도 별로 들어오지 않는 검은 구체의 내부였지만, 붉은 사신 인형 옷으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검은 사신은 이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의 멋진 예전 몸을 보고 싶어!’
물론 검은 사신도 ‘너무 약한 엄마’가 언젠가 ‘강한 엄마’가 되면 이 거대한 몸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으니, 검은 사신은 날아다닐 수 있게 된 김에 구경하러 온 것이었다.
검은 사신은 거대한 엄마의 몸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날카로운 이빨, 길고 강력해 보이는 팔.
그리고 이번에 만난 거대 가짜 사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몸.
지금 엄마의 몸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해 보였다.
‘엄마 강해!’
‘강한 엄마!’
‘엄마 강해!’
이상한 구호를 의지로 만들어 내뱉으며,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몸을 구석구석 구경하던 검은 사신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
텅 비어있었던 눈에 두 개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을 내며 박혀있었다.
깜짝 놀란 검은 사신은 엄마를 부르기 위해서, 불변구 밖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