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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6

지팡이로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한 노인이 천천히 연구소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노인의 뒤로는 협회 소속 배지와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오브젝트 협회, 협회장 오무룡이 세희 연구소에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예린은 우르르 사람을 몰고 나타난 협회장을 보며, 세희에게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세희 언니,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요?”

“글쎄, 잘 모르겠네. 아무래도 마포구에 황금 사신이가 잔뜩 나타난 일과 관련된 것 아닐까?”

언제나 낙관적인 세희도 오늘만큼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마포구에 생긴 과자 바람개비부터 시작해서, 정신 오염을 뿌리는 황금 사신까지 돌아다니게 되었으니, 걱정될 법도 했다.

세희를 포함한 세희 연구소 일동이 눈앞까지 다가온 오무룡에게 인사했지만, 오무룡은 쳐다보는 기색도 없이 무시하고 지나가 버렸다.

오무룡의 무시에 세희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순간, 협회장의 비서라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이세희 연구소장님.”

정중한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네는 남자는 세희가 명함을 받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포구와 관련된 이야기나 황금 사신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당연히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조금 이상했다.

보통은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니, 협회에 언제까지 출석해서 소명하라는 공문이 내려오는 것이 정상이었다.

조금 중대한 사안이라면 압수 수색 같은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저 협회장의 비서라는 사람은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혀 없이, 오히려 덕담을 건네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들을 나열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협회장은 이런 사무적인 이야기는 자신과 관련이 없다는 것처럼, 비서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약간 떨어져서 무심하게 안뜰을 감상하고만 있었다.

저럴 거면 왜 직접 찾아온 거지?

세희 생각에는 귀여운 미니 사신들을 구경하러 온 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에 민감한 미니 사신들이 보기 드물게 사나운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미니 사신을 구경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온 협회장과 영양가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끄는 비서라….

왠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안뜰을 한참 바라보던 오무룡은 큰 소리가 나도록 지팡이를 대리석 바닥에 내려치더니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세희 연구소장님. 갑작스러운 방문인데도 협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세금이나 협회 지원금 이야기까지 꺼내던 비서는 오무룡이 천천히 돌아서자, 서둘러서 이야기를 끝마치더니 오무룡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던 걸까?

세희가 궁금증에 오무룡이 바라보던 안뜰 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안뜰은 뚜방뚜방 걸어 다니는 미니 사신들만 가득할 뿐이었다.

***

세희 연구소에서 돌아가는 차 안.

오무룡은 의자에 앉아서, 지팡이를 짚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음….”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침음성을 냈다.

그런 오무룡을 보고, 비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찾으시던 것은 찾으셨습니까?”

그 말을 들은 오무룡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더니, 품속에서 로켓 펜던트를 꺼내서 보며 말했다.

“모르겠군. 그래도 준비는 해두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오무룡의 지시에 비서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오무룡이 보고 있는 펜던트 속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금발 소녀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

뚜방뚜방.

나는 장난을 치기 위해서 미니 사신 정원을 천천히 걸어 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목표는 노란 사신.

하지만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웠다.

처음 발견했을 때, 연극을 즐겁게 구경하기보다는 당장 잡았어야 했는데….

지금은 인형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미니 사신들이 너무 많아서 찾기가 힘들어졌다.

일일이 붙잡아서 벗겨볼 수도 없고 말이다.

그렇게 마땅한 방법이 없이 그저 미니 사신 정원을 돌아다니던 중, 신기한 황금 사신 무리를 발견했다.

단추 눈 황금 사신과 진짜 황금 사신이 섞여서 놀고 있는 무리였다.

뚜방뚜방.

단추 눈 황금 사신을 포함한 황금 사신들이 마시멜로 대지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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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손을 꼭 붙잡고 뚜방뚜방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면서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단추 눈 황금 사신과 황금 사신들은 정말 신나는 표정으로 뛰면서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단추 눈 황금 사신은 진짜 황금 사신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무런 위화감 없이 섞여 들어간 상태였다.

황금 사신이 황금 사신 인형 옷을 입을 리가 없을 텐데, 황금 사신이 인형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황금 사신 연기에 심취한 저 단추 눈 황금 사신의 안에 ‘노란 사신’이 있겠구나!’

천천히 다가가서 단추 눈 황금 사신을 움켜쥐자, ‘와, 엄마다!’ 하는 느낌으로 양손을 번쩍 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진짜 행동이 황금 사신 같네.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등 뒤의 지퍼를 열어버렸다.

본 모습을 드러내질 않는 녀석이라서 생각해 낸 장난이었다.

변검 같은 능력을 쓰는 녀석이라서 꽤 여러 번 벗겨야 하겠지만, 능력이 무한은 아닐 것이다.

벗기다 보면 언젠가는 본 모습을 드러나겠지.

히히.

그렇게 웃으면서 인형 옷 속에 있는 미니 사신을 꺼내 들었지만,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른 일이 벌어져 버렸다.

인형 옷에서 나오기 싫어서 버둥거리는 노란 사신을 기대했는데.

벗겨도 벗겨도 계속 인형 옷을 입으려고 하는 노란 사신을 기대했는데.

푸른 사신의 모자를 가져간 것 같은 반응을 기대했는데!

하지만 노란 사신은 별다른 저항 없이 내 손에 붙잡혀 나와서, 나를 보며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를 보고 호의를 뿜어내고는 있었지만, 웃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엄마…!’

다른 미니 사신과 다르게 짙은 다크 서클과 한껏 웅크린 몸.

빛이 나지 않는 까만 눈동자.

왠지 모르게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니 사신이 튀어나왔다.

장작이 있는데도 빛을 뿜지 않는 눈동자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장난을 치려다가 실패한 것을 숨기며, 노란 사신을 향해 의지를 뿜어냈다.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했어. 이제 인형 옷을 입어도 돼.’

그러자 노란 사신은 입 앞에 양손을 모아서 쿡쿡 웃는 동작을 취하더니, ‘펑’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인형 옷을 입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노란색 단추 눈.

회색 천으로 이루어진 피부.

어딘가 심술이 난 것 같은 표정.

노란 사신이 이번에 입은 옷은 회색 사신 인형 옷이었다.

그리고 손톱만 한 미니 사신 인형 옷들을 잔뜩 만들더니, 뚜방뚜방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오리 떼를 이끄는 엄마 오리 같은 모습이 정말 내 모습을 찍은 것만 같아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다른 장난을 쳐야겠어.

나는 그렇게 멀어져가는 노란 사신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새로운 장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안뜰에 나와보니, 검은 사신과 황금 사신들이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미니 사신들에게 다가가서 물어보자, 미니 사신들은 여전히 하늘을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기다려!’

‘구름 고기!’

‘새로운 모험!’

느껴지는 두근거리는 감정과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새로운 모험을 떠나기 위해서 구름 고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제1 검의 연극이 영향을 준 것 같은데?

제1 검과 애착 인간의 이야기 같은 만남을 가지고 싶어서, 애착 인간이 없는 미니 사신들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전국으로 퍼져나갈 준비하는 미니 사신들을 보며,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전생의 기억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로 이래도 괜찮은 게 맞나?’

오브젝트를 흩뿌리는 것을 방조하는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이상했지만, 나쁠 건 없어 보였다.

제1 검처럼 사람들을 구할 테니까.

오히려 전국적으로 수호천사가 퍼져나간다고 생각해야겠지.

그리고 구름 고기에 올라탄 미니 사신들이 손을 힘차게 흔들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엄마!’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향해, 나도 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

구름 고기에 올라탄 검은 사신은 환하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지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같이 여행을 떠난 미니 사신들은 어느새 사방으로 흩어져서,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검은 사신은 구름 고기에게 계속해서 의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더 멀리!’

그렇게 멀리 가자고 재촉하던 검은 사신은 어느새 핫초코처럼 찰랑거리는 바다를 지나, 전혀 다른 육지 근처까지 도착해 버린 상태였다.

찰랑거리는 바다 한가운데, 외로운 것처럼 홀로 떠 있는 육지.

검은 사신이 그토록 바라던 곳이었다.

하늘 위에서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나쁜 오브젝트의 존재감.

그리고 그 육지 안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인간의 감정.

그야말로 모험의 땅으로 보였다.

새로운 모험을 기대하며 검은 사신이 구름 고기를 타고 점점 육지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 붉은 섬광이 번쩍였다.

섬으로 들어오려는 모든 것을 먼지로 만들어 버리는 붉은 번개였다.

구름 고기는 붉은 번개에 닿는 순간 먼지가 되어버렸지만, 튼튼한 검은 사신은 구름 고기와 달리 멀쩡했다.

삐-.

날개가 없는 검은 사신은 깜짝 놀라서 삐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쾅!

검은 사신은 강렬한 충돌음과 함께, 무언가를 박살 내며 화분에 박혀버렸다.

상반신이 모두 흙 속에 박혀버린 검은 사신은 덜컥 걱정부터 들었다.

‘인간, 싫어하지 않을까?’

인간이 만든 물건을 상하게 하면 싫어할 텐데.

아니나 다를까, 인간의 절규가 들려왔다.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감정만은 절실히 느껴졌다.

정말 소중한 것이 부서져 버린 인간의 절망.

다가온 인간이 흙 속에서 자신을 뽑아 올리자, 검은 사신은 인간이 용서해 주길 바라며 배시시 웃었다.

“이… 이게 뭐지?”

어리둥절한 표정의 여자와 시선을 마주한 검은 사신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인간이 내 ‘애착 인간’이구나!

하지만 인간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으악, 오브젝트다!”

인간은 검은 사신을 보고 깜짝 놀라서, 밖으로 집어 던져 버렸다.

삐-.

검은 사신은 슬픈 얼굴로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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