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사신 보자기를 뒤집어쓴 푸른 사신은 보안실 콘솔 위에 앉아서 보안실 직원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보안실 직원들은 황금 사신 보자기의 정신 오염 때문인지, 푸른 사신인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조금 이상한 황금 사신이네.’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보자기 속에 얼굴이 숨겨진 푸른 사신은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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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가까이서, 애착 인간을 빤히 바라볼 수 있다니!
보안실까지 몰래 잠입하는 여정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만큼 굉장히 어려웠지만, 애착 인간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이제까지의 고생이 모두 보답받는 기분이었다.
세희 연구소 복도를 즐거운 얼굴로 떠들면서 돌아다니는 연구원들을 피해야 했다.
그리고 인간들이 멀리서 관찰하는 도구, 카메라인가 하는 것의 눈도 피해야 했다.
사실 저 두 가지를 피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카메라는 위치가 고정되어 있었고, 인간은 감정을 뿜어내기 마련이니까 미리미리 눈치채고 그림자 속에 숨으면 되었다.
하지만 엄마의 눈을 피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분명 보통의 황금 사신처럼 보일 텐데, 엄마는 자신이 보이기만 하면 뭔가 이상한 것을 보는 것처럼 빤히 쳐다봐서 몰래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특히 인간에게 들키는 것은 몰라도 엄마에게 들키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황금 사신 보자기를 입고 보안실에 있는 것을 발견하면 분명 장난을 칠 테니까!
푸른 사신은 엄마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불안해져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엄마는 유령화가 가능하니까 벽을 뚫고 튀어나올지도 몰라.’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 다행이야.
푸른 사신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보안실 직원을 빤히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행복해.
푸른 사신은 이렇게 가까이에서 애착 인간에게 시선을 둘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푸른 사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시선’이었으니까.
대다수의 푸른 사신들이 보안실 직원을 애착 인간으로 정한 이유도 시선 때문이었다.
언제나 카메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좋아하는 푸른 사신은 시선을 주는 것도, 시선을 받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슬픈 오브젝트였다.
지금은 황금 사신으로 변장해서 일방적으로 시선을 줄 뿐이었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푸른 사신의 원래 모습으로 서로가 서로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는 행복한 미래를 상상했다.
하지만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푸른 사신이 있는 보안실에 불길한 회색이 슬쩍 비쳤다.
푸른 사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보안실 벽 쪽에서 회색빛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히히, 하고 웃는 회색 사신의 얼굴이었다.
***
괴물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처럼 흔들리는 녹색 횃불 아래, 처참하게 토막 난 제비의 그림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처참하게 4등분 된 제비를 보고 멍하니 있던 소녀는 자기 손에 들린 흑색 검을 높이 들어 올리며 감탄했다.
“대단해!”
미궁의 아이템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이야!
미궁 1층에서 나온 흑색 검의 성능이 이렇게나 좋다니.
소녀는 간식거리를 사 먹는 대신, 진작에 제대로 된 무기를 구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1층 무기가 이 정도면 더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아이템은 얼마나 대단할까?
미궁 안에는 무서운 괴물들과 기기묘묘한 함정들이 가득하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 아이템이라면 충분히 할만할 것 같았다.
“스스로 적을 공격하다니, 이게 그 유명한 ‘에고 소드’라는 걸까?”
검은 사신은 소녀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환희와 기쁨 그리고 기대와 희망 등을 가득 품은 감정만큼은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소리를 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검은 사신은 자신의 감정을 담아 작게 소리를 냈다.
삐-.
“와, 소리 귀여워! 대답해 준 거야?”
마치 작은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작고 청명한 소리.
안 그래도 소녀는 미궁에서 처음 얻은 아이템이라는 생각에 ‘흑색 검’에 꽤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데, 흑색 검의 목소리를 듣고 더욱더 마음에 들어 하기 시작했다.
에고 소드라니!
아직 나이가 어린 소녀에게 정말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그 목소리가 오늘 미궁 밖에서 들었던 소리였던 것도 까먹어 버릴 정도로 잔뜩 들뜬 상태였다.
눈을 반짝이며 세심한 무늬가 새겨진 검신을 구경하던 소녀는 마치 홀린 것처럼 예리하게 갈려있는 칼날을 보면서 무심코 손끝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가자, 칼날이 둥글게 손가락 모양으로 움푹 파이면서 소녀의 손길을 피해버렸다.
그러자 날카로운 칼날에 손끝을 가져다 댈 뻔했던 소녀는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내가 안 다치게 피한 거야? 고마워.”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흑색 검의 검 면을 애완동물 다루듯이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삐-.
그러자 검은 사신도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그렇게 흑색 검과의 스킨쉽을 충분히 즐긴 소녀는 씩씩한 표정으로 미궁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
기분 나쁜 녹색으로 타오르는 횃불.
녹색 빛이 바람에 춤을 출 때마다 미궁 구석의 그림자도 불길한 모양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비좁은 미궁 1층의 밀실에서 거친 숨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금속 갑옷을 입은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짜증을 내뱉었다.
미궁 1층 경험이 풍부한 남자의 파티였지만, 갑자기 미궁의 횃불이 녹색으로 물들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미궁 방의 명패가 처음 보는 문자열로 바뀌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상시를 대비해서 식량은 충분히 챙겨서 왔지만, 지도가 무용지물이 되었으니 얼마나 헤매게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새롭게 나타난 몬스터가 문제였다.
칼날을 매단 제비.
미궁 1층은 손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남자의 파티가 작은 제비 한 마리에게 고전하고 있었다.
생긴 건 약해 보이지만 빠르고 강력한 몬스터였다.
제비에게 시선을 계속 두고 있어도,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제비의 움직임을 놓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
제비가 빠른 속도로 날아들자, 육중한 금속 갑옷을 챙겨입은 남자가 방패를 내팽개치면서 바닥을 굴렀다.
챙강.
금속으로 만든 방패가 순식간에 잘려 나가면서, 반으로 쪼개져 미궁 바닥에 떨어졌다.
“정신 차려! 집중해! 한 대만 맞추면 돼!”
갑옷을 입은 남자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동료들을 향해 희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동료들의 얼굴에선 이미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이미 동료 한 명은 갑옷째로 쪼개져서 죽었다.
저 제비는 속도도 빠르면서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서 칼날을 피할 만큼 민첩했다.
살아날 가망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가망이 없다는 건 파티의 리더인 갑옷 남자도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젠장!’
그런 절망적인 순간에 한쪽 벽이 울렁거리더니, 어린 소녀를 방안으로 토해냈다.
이상 현상이 발생한 미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는 소녀였다.
운이 좋아서 몬스터를 하나도 만나지 않은 것 같은 느긋한 느낌을 풍겼다.
“조심해!”
갑옷 남자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소녀에게 경고했지만, 그 경고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에잇!”
기운 빠지는 기합 소리와 함께 어설프게 휘둘러진 참격.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흑색 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제비를 순식간에 토막 쳐 버린 것이다.
정말 상상치도 못한 광경에 남자는 토막 나서 바닥으로 널브러지는 제비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들 괜찮으세요?”
미궁 도시와 어울리지 않게 해맑은 웃음을 흘리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빠르고 강력한 제비를 원거리에서 제압하다니.
조그만 소녀가 할법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제비를 물리친 것은 검게 물든 검신을 가진 검의 능력이겠지.
그 민첩한 제비를 잘라버린 검이라서 그런지, 검신에 새겨진 특이하고 이국적인 무늬가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해 보였다.
‘정말 놀라운 아이템이군. 저런 아이템은 들어본 적도 없어.’
갑옷 남자의 시선이 흑색 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전투가 끝나자, 소녀가 미궁에서 만난 사람들은 순식간에 정리를 시작했다.
어린애가 볼만한 일은 아니라며 구석으로 소녀를 인도한 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배낭에서 잘 말린 장작들을 꺼내 들더니, 불을 붙여서 모닥불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궁 안에서 불을 피워도 되나요?”
소녀가 궁금증을 가지고 묻자, 피곤하지만 친절한 표정의 남자가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장을 올려다보자, 모닥불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천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와, 신기하네요.”
“저래서 미궁 안에서는 아무리 모닥불을 피워도 문제없어.”
소녀가 모닥불이 점점 커지는 것을 구경하는 동안 남자들은 바닥에 천을 깔고 야영 준비를 마쳤다.
맛있는 수프의 냄새와 따뜻한 온기.
남자들은 소녀에게 친절한 미소로 다가와서 따뜻한 모닥불 옆의 자리와 식사를 권했다.
‘좋은 사람들이야!’
개고기 아저씨가 미궁을 다니는 사람들은 죄다 나쁜 녀석들이니까 조심하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 같았다.
배가 고팠던 소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수프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고 서로 흩어져서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소녀에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검은색 검, 어디서 얻었니?”
“아, 이거요? 미궁에서 주웠어요.”
“흐음, 그래?”
그 말을 들은 남자는 기분 나쁜 웃음을 머금었지만, 여러 일을 겪어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소녀는 보지 못했다.
***
오래된 모닥불의 불길이 점점 사그라드는 시간이 되자, 잠들어 있던 것처럼 보였던 남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안타깝게 됐네. 거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데….”
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은 남자가 소녀를 바라보며 불쌍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 눈빛과 표정은 탐욕에 가득 차 있었다.
“뒷배는 없는 게 확실하지?”
리더로 보이는 남자는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해. 대단한 뒷배는 없어. 가진 옷이나 도구들도 모두 양산품이야. 뭐, 그래도 어린애가 쉽게 마련할 만한 것들이 아니긴 해.”
비열해 보이는 남자는 입술을 혓바닥으로 핥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마을에는 어린 나이에 끌려온 아이들을 도와주는 머저리가 꽤 많으니까, 그런 거겠지 뭐.”
이런 짓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지, 이들의 행동은 민첩하고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날카로운 칼날을 뽑아 들고, 남자가 천천히 소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남자들을 보며, 검은 사신이 나지막한 소리로 울었다.
삐이이이-.
마치 저승사자의 목소리처럼 낮게 깔린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