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0
루카가 이 숲을 시험의 장소로 선택한 데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던전을 제하고 남은 몇 안 되는 장소 중에서 이 숲이 가장 적절했기에 이 곳을 택했을 뿐.
어느 곳은 루시라는 사람에게 너무도 쉬워보였고 또 어느 곳은 과할 정도로 어려워 보였으며 어떤 곳은 사람이 많아 들키기 좋아 보였고 또 어떤 곳은 너무도 멀어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그런 여러 요소를 고려하다 보니 남은 것이 이 죽어버린 숲이었다.
오늘 아침에 고민을 시작해 점심에 결정을 내려 저녁에 데리고 온 장소. 그러니 이를 미리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숲이 잘 알려진 장소였다면 본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설명이 가능할 테지만 그것도 무리였다.
죽어버린 숲은 여러 안 좋은 소문이 나도는 장소. 귀족들은 이 곳에 접근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미신을 좋아하는 모험가들은 감히 이 곳에 발을 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그나마 성직자들이 꾸준히 방문하긴 한다만 그들도 여러 악령이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단적으로 말해서 죽어버린 숲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 없는 장소였다.
그렇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이 숲을 미리 공부해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알려진 것이 없는데 어찌 공부를 한단 말인가.
허나 기이하게도 루시 알른은 이 숲에 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한치 앞을 알아보기 어려운 검은 색의 숲을 걷는 그녀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 끝에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생각했겠지만 아니었다.
루시 알른의 걸음 끝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그것은 하나 같이 이 숲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숲에 관해 아는 이들이 입을 모아 만나서는 안 된다 이야기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처음 악령을 쓰러트렸을 때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 상대를 만났을 때는 의문을 느꼈다.
세 번째 상대를 만났을 즈음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네 번째 녀석을 쓰러트리고 나서는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으며, 마지막으로 이 숲의 진정한 주인을 마주하게 된 지금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루시 알른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녀는 이 숲을 정화하고자 하고 있었다.
먼 과거 사령이 들어서고 나서 그 누구도 해결하겠다 생각하지 않았던 이 숲을.
그만한 수고를 들일 가치가 없다 여겼기에 현상 유지로 족하다 여기던 이 숲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것은 아마 루시 알른의 뜻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더 위 쪽에 존재하는, 지금의 루시 알른이 만들어진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존재의 뜻이겠지.
이 숲을 죽음으로 물들였을 것이 분명한 부정한 것은 무척이나 거대했다.
검은 마력으로 달 과 별의 빛을 가려버린. 숲을 이끌던 존재들이 사라지며 생겨난 공백을 자신의 기운으로 가득 채워버린 저것은 결코 가벼운 존재가 아니었다.
아카데미의 교수인 루카조차도 위압감을 느낄 수준이니 말이다.
평범한 시민이 저를 마주했다면 무릎을 꿇고 자신이 믿는 신을 부르짖었을 것이다.
숙련된 모험가가 저를 만났다면 호기 어리게 무기를 뽑아드는 대신 빠르게 도망을 쳐 저에 관한 정보를 전했으리라.
이 숲 근방의 영주가 저를 보았다면 직접 상대하기보다는 교회에 구원을 요청했으리라.
하늘을 가린 채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저것은 아카데미 1학년이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교회의 기사단이 찾아와 토벌을 천명해야 하는 녀석이었다.
만약 지금 저 앞에 서 있는 것이 단순한 아카데미의 1학년이었다면 루카는 저기에 끼어들어 대신 저 사령을 퇴치했을 것이다.
그는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 학생을 내던지는 사람이었지 학생을 죽음에 내던지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이번에 한해서 루카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루카가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라도 숲의 한 가운데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루시 알른의 모습을 본다면 그리 생각하게 될 테니 말이다.
루카는 보았다.
누구라도 기겁을 할 게 분명한 부정한 기운을 향해 걸어가는 루시의 모습을.
그 한 가운데의 풍경을 보고서도 겁을 먹는 대신 싸울 준비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어둠 속 등불이 되어 모든 사령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아내는 당당한 모습을.
숲의 주인을 향하여 목소리를 드높이는 모습을.
그리고 저 부정한 존재를 상대로 한 치 물러섬 없이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을.
주변의 사령들이 내뱉는 저주는 루시에게 닿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숲의 주인이 지닌 부정한 마력도 마찬가지다. 본래라면 맞닿은 곳을 썩어문드러지게 만들었을 마력은 루시의 앞에선 연기마냥 흩어질 뿐.
땅에서 되살아난 사령들은 그녀의 신성에 맞닿은 순간에 정화될 따름이었으며, 숲의 주인이 사용하는 마법이라하여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에 반해 루시의 공격은 언제나 위협적이었다.
그녀가 한 번 메이스를 휘두를 때마다 이 숲의 주인이 지닌 거대한 신형이 흔들리며 고통에 찬 신음이 숲 전체에 퍼진다.
그녀가 신성을 피워 올릴 때마다 주변의 사령이 흩어져 간다.
상성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 저 나이에 지닐 수 없는 압도적인 강함.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보았기에.
아카데미에서 수많은 이들을 가르쳐 보았기에.
수많은 별들을 눈에 새겼기에.
그 무엇보다 빛나는 별이 어떤 것인지 알았기에.
루카는 감탄어린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저게 아카데미의 1학년이라고요?”
저기에 서 있는 사람이 주신 교회의 성녀라면 루카는 이해했을 것이다.
신의 간택을 받아 어렸을 적부터 신성을 갈아 닦아온 그녀는 이미 여러 곳에서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었으니까.
허나 저기에 서 있는 것은 성녀가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을 향한 모욕을 서슴치 않고 내뱉던 치기 어린 아이였다.
알른 가문이 지닌 위광이 아니었더라면 진즉에 불경죄로 지워졌을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저만한 신성을 품고 있다니.
“신의 편애를 받는 자인가요.”
아카데미 내 소문에 해박한 루카는 최근 루시에게 붙은 별명을 알고 있다.
신의 편애를 받는 자.
페이비와 친하다는 이유에서 붙여진 바보 같은 별명이었지만 루카는 어째서인지 그 별명이 루시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저 분이 달라진 이유도 신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었죠.
루카는 널리 이름을 떨친 이들에게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표현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전후관계가 반대된 말이었으니까.
루카는 신의 베품을 받았기에 재능을 얻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재능이 있는 자를 신께서 눈 여겨 보고 선택하는 것이라 봤다.
애초에 대성할만한 재능이 있었기에 신의 눈에 들어섰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은 분명 신의 사랑을 받는 자였다.
위대한 신께서 편애할 만한 재능을 지녔다 판단한 사람이었다.
“이야. 제가 아무리 세공을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지만 신께는 한 수 접어야겠죠.”
위대한 신은 이 길에 있어 루카의 선배나 마찬가지다.
길고도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태양을 만들어낸 그 분께서 먼저 눈독을 들였는데 어찌 루카가 장난을 치겠는가.
자신의 메이스로 숲의 주인을 위협하는 루시의 모습에 감탄하던 루카는 이내 키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인정해야 했다.
루시에게 더 위대한 세공사의 손길이 닿아있다는 사실을.
자신은 그녀라는 별을 가공하는 데에 방해가 될 것이란 사실을.
흐음. 옆에서 보고 배움이나 얻을까요.
선배님께서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지녔는지 보자구요.
그리고 중간 중간에 제 취향을 살짝 집어 넣어보기도 하고요.
허락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미물주제에에에!
“엑♡ 아줌마 떡대에 자부심이 있는 거야?♡ 취향이 독특하네. 혹시 인간과 오크의 혼혈인거야?♡ 진짜 잘 어울린다~♡”
으음. 일단 그 전에 알른 영애께 제 마법이 통할지부터 걱정을 해봐야겠네요.
저 분 이미 아카데미 수준은 아득히 뛰어 넘었으니까.
당장 현역에서 활동하시더라도 훌륭한 인재 취급 받을 분인지라. 솔직히 좀 불안하네요.
마법에 실패하면 어떻게 설득을 드려야 할까요. 제 목숨 줄을 붙잡게 해드리면 만족하시려나? 그러면 좋겠네요. 아직은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요.
죽더라도 저 분께서 제가 보았던 빛을 퇴색시키는 모습은 꼭 보고 싶거든요.
*
<사령이 몰려온다!>
‘알겠어요!’
파트란 영지의 축제가 끝난 후부터는 영지에 틀어박혀 있었던 나지만 그 기간은 수련이라는 단어로 점철되어 있었다.
낮에 깨어 있는 동안에는 알른 가문의 기사단에서 함께 훈련을 거듭했고, 밤에는 연습 모드에서 할배랑 같이 신성을 다루는 연습을 했으니까.
그 뿐만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요한 주교가 우리 저택으로 찾아와 내게 이것저것을 알려 주었으니 방학이 시작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신성을 다룬다는 분야에 있어 아예 다른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 성과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정화의 빛.
메네스테일에서 불의 악신을 상대할 때 할배가 보여주었던 기적의 원전이 되는 신성 마법으로 지닌 효과는 주변의 부정한 것을 신성의 빛으로 정화하는 것.
이런 마법이 다 그렇지만 사용자가 지닌 신성에 커다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내가 지닌 신성은 허접 주신이 직접 하사한 자신의 신성.
악신조차도 위협을 느끼는 이 신성의 앞에 어찌 잡귀들이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는가.
사령술사의 부름에 따라 대지에 올라선 사령들은 빛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향하고 말았다.
– 또 다시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냐. 성기사여!
전투가 격화된 지금 사령술사는 이지를 잃어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딸의 이름을 찾지 아니했다.
나를 과거에 보았던 성기사와 동일시한 채 날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뿐.
음. 일단 좀 더 후려 패서 약화를 시킨 후에…
<설득할 수 없다.>
‘…그런 거 생각한 적 없거든요.’
<다 안다. 내가 그대 같은 사람을 한 둘 본 줄 아느냐.>
사실은 생각했다. 게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라고.
어쩌면 카리아를 구원했던 것처럼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고.
그치만 난 평범한 결말이라면 지겹도록 봤다고. 기왕이면 이젠 다른 결말을 보고 싶었단 말이야.
그렇지만 할배는 그런 나에게 단언했다.
저는 이미 돌아올 수 있는 길을 건넜다고. 지금 네가 하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미련을 품지 마라. 잘라낼 것은 잘라내야 한다.>
‘…그렇겠죠?’
나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카리아를 구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기 때문. 이미 사령에게 잡아먹혀 버린 사령술사는 구원할 방법은 없겠지.
<끝내라. 그것이 저 자를 구원하는 길이다.>
미련을 버리고 메이스의 머리에 신성을 담았다.
신성박투술이 신성투술로 진화함에 따라 생겨난 변화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은 무기에 신성을 담기가 쉬워졌다는 것.
이전보다 적은 신성으로도 큰 위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하나 더. 필살이라 이야기 할 만한 기술이 생겨났다는 것.
심호흡을 하고서 메이스를 위로 치켜들었다.
내 몸 안에 돌아다니던 모든 신성이 집약됨에 따라 메이스의 위에는 자그마한 태양이 생겨났다.
온화하고 따스한 빛이 숲을 밝힘에 따라 사령술사가 기겁을 하며 자신의 마력을 끌어 모은다.
허나 연이은 전투 끝에 소모되어 버린 사령술사의 힘은 주신의 신성을 견딜 수준이 아니니.
메이스가 휘둘러짐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태양이 떨어지고. 그 일대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을 세상에서 지워버린다.
– 띠링!
[죽어버린 숲을 정화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루카의 시련 중 하나를 통과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