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이 해로운 오브젝트의 등 뒤에 나타나자, 세계가 조금씩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황금 사신은 그 일그러짐을 느끼고, 장작의 빛을 크게 키워 대항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위험해!’
그것은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 해로운 뒤틀림이었다.
자기 생각만을 진리라고 믿게 만들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뒤틀려, 목적을 망가트리고.
그 끝에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멸망하게 만드는 뒤틀림!
단 1초도 이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되는 뒤틀림의 근원이었다.
인간이 언제나 행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득 안고 살기를 바라는 황금 사신으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오염이었다.
황금 사신이 해롭다고 판단한 모든 오브젝트가 모두 가지고 있던 뒤틀림이었다.
그리고 저 옥 벽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뒤틀림은 그대로 지구로 스며들어 세계 자체를 천천히 바꾸고 있었다.
세계를 바꾸는 정신 오염이라니, 장작의 빛으로 대항하기엔 너무나 강력한 힘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애착 인간이 미니 사신을 때리고, 푸딩을 훔쳐 가는 것이 당연한 세계가 되어버려!
옥색 벽을 바라보는 모든 미니 사신의 뇌리로 끔찍한 광경이 흘러들었다.
미니 사신이 먹으려는 푸딩을 엎고 발로 짓밟는 세계!
애착 인간이 미니 사신을 무시하고 마구 폭행하는 세계!
인간이 너무 사악해져서, 엄마가 가장 상냥하게 느껴지는 세계!
그 광경은 너무나 슬퍼서, 황금 사신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안 돼!’
미니 사신들이 일제히 튀어 나갔다.
목표는 해로운 오브젝트인 녹색 옥인과 거대한 녹색 옥으로 만들어진 벽!
미니 사신들은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황금 사신이나 검은 사신은 물론 온갖 종류의 미니 사신들이 함께였으니까.
하지만 미니 사신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돌진은 순식간에 막혀버렸다.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가짜 연금술로 만들어진 납 인형.”
황금 사신에게 녹색 옥인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미니 사신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자리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발을 멈춘 것은 회색 사신과 가장 비슷한 황금 사신들부터였다.
장작의 힘으로 힘차게 움직이던 팔다리가 점점 딱딱하게 굳는 것만 같았다.
사람을 돌로 만드는 저주처럼, 황금 사신의 육체가 전혀 다른 재질로 바뀌고 있었다.
‘?’
바닥에 쓰러진 황금 사신이 자기 손을 내려다보자, 피부가 태양 같은 황금색에서 점점 엄마와 같은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 엄마랑 똑같은 색이다.’
왠지 엄마처럼 변한 것 같아서 절로 웃음이 나왔지만, 그 웃음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분명 엄마에게도 영향이 있을 텐데!
‘엄마는 괜찮을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힘겹게 돌린 황금 사신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돌처럼 굳어버렸다.
***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가짜 연금술로 만들어진 납 인형.”
녹색 옥인의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장작의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활짝 펼쳐서 살펴보자, 장작이 잘 닿지 못하게 된 손끝에서부터 피부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말랑말랑했던 피부가 마치 납 인형의 피부처럼 딱딱한 금속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마법.
그야말로 연금술.
피부처럼 말랑한 물질이 금속으로 변질되다니, 그야말로 연금술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별로 문제는 없었다.
내가 가진 막대한 장작은 바짝 말라버린 나무토막도 생기있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많았으니까.
움직이는 데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전방을 바라보자, 수많은 미니 사신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미니 사신들은 마치 칠이 벗겨진 피규어처럼, 다들 회색의 납 인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하얀 아귀와 아귀 사신은 납이 아니라 백설기처럼 하얗고, 보슬보슬하게 물러 보이는 돌멩이가 되어버렸다.
메두사가 나오는 창작물에서 자주 나오는 도망가는 형상으로 굳어버린 석상들 같았다.
다른 점은 공포로 물들어서, 도망가는 자세로 굳지 않았다는 점뿐이었다.
온 힘을 다해 목을 돌려서, 나를 바라보려고 노력한 수많은 미니 사신.
미니 사신이 가진 장작으로 납을 움직이려면 가진 장작을 거의 다 써야 했을 텐데, 고개를 돌리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했던 걸까?
삐-!
유일하게 납으로 변하지 않은 검은 사신들만이 깜짝 놀라서 납으로 변한 미니 사신들을 내 근처로 옮기고 있었다.
어느새 내 주변에 잔뜩 쌓인 미니 사신들을 돌아보자, 이상하게 열이 올랐다.
하나 같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미니 사신들.
아 아이들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은 나뿐인데!
네 녀석은 절대로 쉽게 죽여주지 않겠어.
내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가자, 녹색 옥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호오. 그 몸으로 움직이는 건가? 그렇다면….”
녹색 옥인이 뭐라고 신나게 떠들려고 했지만, 왠지 짜증 나서 한쪽 손을 앞으로 쭉 내뻗고 ‘뀩’ 움켜쥐었다.
와그작.
그와 동시에 공간이 우그러들면서 녹색 옥인 몸의 일부가 뜯겨 사라져 버렸다.
“커헉.”
다행히도 녹색 옥인은 생각보다 파괴 조건이 복잡한 건지, 순식간에 재생해 버렸다.
화가 나서 실수로 공격해 버렸어.
아이들을 괴롭힌 녀석이 쉽게 죽어버리면 안 되지.
‘눈’을 써서 확인한 녹색 옥인의 파괴 조건은 <연결 차단.>이었다.
다행이야.
공간 장악 같은 걸로 격리하지만 않으면 계속 재생할 것 같네.
***
녹색 옥인은 공간에 간섭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몸을 틀어서 피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런 기교도 없이, 힘으로 우악스럽게 공간을 잡아 뜯는데도 불구하고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커헉.”
녹색 옥인은 자신의 영혼 일부가 뜯겨나가는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냈다.
감히.
감히 감히!
자기 몸을 이룬 녹옥은 수많은 제물과 영혼을 바쳐서 만든 연금술의 정수이건만, 그것을 이렇게나 많이 부숴버리다니.
방금 공간 공격 한 번에, 그의 시간이 백 년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었다.
“흐, 흐흐흐. 그래, 신이라 불렸던 존재가 그렇게나 쉬울 리는 없겠지.”
물론 그가 알던 ‘신이라 불렸던 현상’은 지극히 수동적이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머저리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그것은 좀 더 스스로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일종의 자연현상이 의지를 갖다니?
그러자 한 가지 가능성이 스멀스멀 녹색 옥인의 뇌리에 기어들어 오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처럼 생각하며 움직이는 가짜 신의 모습.
설마 인간이 가짜 신을 통째로 집어삼킨 건가?
신과 같은 힘을 가진 인간.
그런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옥인은 애써 그 생각을 치워버렸다.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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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혹은 완전히 미쳐버리겠지.
그렇다면 무언가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가짜 신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납 인형에 생각이 미쳤다.
그 순간, 녹색 옥인은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나름대로 논리적인 설명을 부여할 수 있었다.
“흐흐, 속을뻔했어. 반쪽짜리 연금술로 현상에 방향성을 부여한 거로군.”
녹색 옥인은 속을 뻔했다며 실실 웃으며, 안심했다.
가짜 연금술이라면 오히려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납 인형.”
녹색 옥인은 좀 더 힘을 줘서, 명령을 내렸다.
진짜 연금술의 찌꺼기에 불과한 가짜 연금술을 모두 무효로 만드는 힘이 주변을 휩쓸었다.
뚜방뚜방.
하지만 납 인형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녹색 옥인은 처음에는 나지막하게 선고하듯이 말했지만 통하지 않자 점점 목소리를 키웠다.
뚜방뚜방.
하지만 무표정한 납 인형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녹색 옥인은 신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또 다른 방법을 꺼내 들었다.
녹색 옥인의 등 뒤에 병풍처럼 늘어서 있던 녹색 옥 벽이 뭉치더니 거대한 구슬로 변했다.
그리고 그 구슬에 점점 에너지가 모여들더니, 위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가짜 신의 힘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그렇다면 주변의 인간을 일소해버리면, 무력화될 것이라는 심플한 방법이었다.
납 인형도 구슬의 위력을 느낀 것인지, 무표정한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녹색 옥인 기준, 왕국 하나는 우습게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이었다.
지구 식으로 표현하면,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 상당 부분을 아우르는 거대한 폭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 이제 끝이다!”
번쩍.
녹색 옥인의 외침과 동시에 섬광탄과 같은 폭발이 터져 나오고, 하늘에서 하얀색 불꽃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울을 넘어 한국 전역의 하늘에서도 물리적 실체를 가지지 않은 하얀색 불꽃이 눈처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얀 불꽃이 내리기만 할 뿐 기대했던 폭발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 어째서?”
그리고 굉장히 당황한 녹색 옥인의 눈앞에 까맣게 물든 납 인형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