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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2

마치 공포 영화에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귀신처럼 팔다리가 제멋대로 비틀리며 돌아다니는 붉은 괴인.

내가 있던 자리를 무의미하게 배회하는 적색 괴인은 미니 사신 정원 속에 있는 나를 인식조차 못 하고 있었다.

‘와, 깜짝 놀랐네.’

이런 식으로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서 붙잡힌 것은 처음이라서 너무 놀랐었다.

전후좌우 어디든 시선을 줄 수 있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하다니, 대단해.

나는 밖에서 무의미하게 돌아다니는 적색 괴인을 계속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니 사신 정원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적색 괴인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적색 괴인은 인간의 실루엣을 하고 있었지만, 그 행동은 전혀 인간 같지 않았다.

이목구비가 없이 공허한 얼굴은 마치 허공을 바라보는 것처럼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똑바로 걷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걷는 동작은 마치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미 움직여서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결과를 놓고, 원인을 재배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괴인이 걸어갈 때면 시간은 역류하고, 공간은 접히고 펼쳐지기를 반복했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지만, 적색 괴인은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괴인이 나무가 있던 자리를 지나가면, 나무는 산산이 부서진 ‘무언가’로 변해버렸다.

나무였던 흔적은 전혀 없이, 붉은 살점과 붉은 돌이 뭉쳐서 뭉그러진 것 같은 ‘무언가’였다.

세희 연구소 앞 공터에 가득했던 잔디는 괴인의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버렸다.

사실 기괴하고 징그러운 외양은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더욱 큰 문제는 저 ‘무언가’들의 본질이었다.

나무와 잔디가 존재하는 ‘위치’가 변했다.

아니, 공간과 다른 개념의 무언가가 변한 것이다.

괴인과 접촉한 생물들은 이곳에 있었지만,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본질은 공간과 차원을 넘어서 나도 모르는 먼 곳으로 옮겨졌고, 지구 위에는 거울 위에 비친 허상처럼 투영체만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괴인이 돌아다닌 지 얼마나 지났을까.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괴인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괴인의 몸통이 있던 공간이 마치 유리가 깨진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조각나버렸다.

그렇게 날카로운 단면으로 산산이 쪼개진 신체 단면들은 다시 인간의 형상을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더는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어깨에서부터 잘려 나간 팔 한쪽은 그 위에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가 새롭게 돋아나서 인간 형상을 이루려고 한 것 같았다.

손등 위에는 조그마한 얼굴이 돋아났고, 팔의 밑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수많은 팔다리가 빼곡하게 돋아나, 지네 다리처럼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지네 같이 징그러운 것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그렇게 조각조각 난 신체 부위는 마치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여러 곳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다른 몸통은 전부 사라지고 팔 4개만 돌아다닐 때도 있었다.

반대로 모두 사라지고, 머리 10개만 돌아다니기도 했다.

다시 신체를 이루려는 것처럼 다시 뭉치려고도 했지만, 팔이 있던 자리에 머리가 붙고, 다리가 있던 자리에 가슴이 돋아나는 등, 더욱 기괴하게 보일 뿐이었다.

[■ ■ ■ ■]

[■ ■ ■ ■ ■ ■ ■]

괴인이 내뿜는 염파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괴인이 부서지고 엉망진창이 되어갈수록, 주변 환경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시야를 점점 채워가는 안개.

기괴한 살점과 붉은 옥석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지면에서 불쑥불쑥 튀어 오르고 있었다.

세희 연구소 근처 공터는 더욱 기괴하고 위험해 보이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었지만, 괴인의 존재감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니, 흐릿해진다기보다는 멀어져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멸해 가는 건가?

아니면 지구에 오래 있을 수가 없는 건가?

왠지 이대로 내버려 둬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았지만, 점점 퍼져나가는 붉은 안개가 문제였다.

더 이상 퍼지게 내버려 두면 예린이가 있는 곳까지 닿을 것 같아.

예린이 걱정을 하다 보니, 왠지 저 괴인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파괴 조건을 보기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괴인을 더욱 빨리 퇴치하기 위해서 파괴 조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죽 ■ ■ ■ ■ >

한 글자가 보였다!

쾅!

그렇게 기뻐하기가 무섭게, 어느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해진 안개 속에서 거대한 손이 미니 사신 정원 위를 내리찍었다.

[■ ■ ■ ■ ■ ■ ■]

그리고 2m는 될 정도로 거대한 괴인의 머리가 안개를 뚫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머리는 마치 나를 발견한 것처럼, 텅 빈 눈구멍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

마치 작은 소동물이 바쁘게 뛰어가는 것 같은 소리를 남기며, 검은 사신들이 연구소 내부를 부산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찌나 바쁜지, 타다닥 하는 귀여운 발걸음 소리를 내며 마구 뛰어다니다가, 서로 부딪쳐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 난리였다.

타다닥!

검은 사신들은 꾸물꾸물 세희 연구소 메디컬 센터로 들어가서는, 자기 몸통보다 커다란 붕대를 머리 위로 번쩍 들고 옮기고 있었다.

‘붕대? 누가 다친 건가?’

예린은 그 모습을 보고는, 약간 궁금해져서 대피소를 살금살금 빠져나와서 바쁘게 뛰어가는 검은 사신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사실 예린은 80% 정도는 검은 사신이 궁금해져서 따라가는 중이었지만, 회색 사신에게 자신이 필요한 것 같다는 기묘한 느낌을 느껴서 따라가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익숙한 길을 따라서 도착한 곳은 세희 연구소 안뜰이었다.

미니 사신들이 잔뜩 뛰어놀고, 직원들이 구경하던 안뜰은 텅텅 비어있었다.

쓰러진 종이컵과 잔뜩 흩어져서 바람에 흩날리는 서류들.

바닥에 흩어진 종이가 날아다니고 미니 사신들이 사라진 것뿐인데, 안뜰의 분위기는 굉장히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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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은 그런 음산한 분위기에 취했는지, 갑자기 추워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추운 것처럼 팔을 천천히 문지르며 안뜰에 있는 미니 사신 정원 입구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공기가 예린을 반겨주었다.

달콤한 향기와 따스한 빛.

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소였다.

그렇게 미니 사신 정원에 들어가 보니, 정체불명의 붕대 구체들이 마시멜로 위에 잔뜩 올려져 있었다.

얼마나 세심하고 꼼꼼히 붕대를 감았는지, 톡 건드리면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완벽한 구형으로 돌돌 말려있었다.

예린이 붕대 덩어리를 하나 들어서 살펴보자, 금속처럼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안에 뭔가 있네?’

붕대를 풀어서 내용물을 확인하려고 하자, 어느새 다가온 검은 사신이 단호한 표정으로 도리도리하고 있었다.

보기 드물게 단호한 표정이라서, 예린이는 손바닥 위에 올라온 검은 사신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며 붕대 덩어리를 바닥 위에 돌려놓았다.

예린이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하며 미니 사신 정원을 걷고 있었더니, 붕대 공이 되기 전의 모습을 관측해 버리고 말았다.

회색 사신처럼 회색이 되어버린 미니 사신들이었다.

다만 회색 사신처럼 보드라워 보이는 게 아니라, 단단하지만 금이 가고 부스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검은 사신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굳어버린 미니 사신들 곁에서 붕대를 미니 사신용으로 잘게 쪼개고 있었다.

‘미니 사신이가 뭔가에 당해서 굳어버렸고, 충격에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붕대를 두르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나름대로 합당해 보이는 조치로 보였다.

‘그나저나 사신이가 안 보이네?’

물론 평소의 회색 사신은 미니 사신들의 푸딩을 훔쳐먹고, 미니 사신을 속이고, 넘어트리고, 집어던지고 놀았다.

하지만 이런 비상사태에는 그 누구보다 먼저 미니 사신을 챙기는 게 회색 사신이었는데….

회색 사신이 아이들을 돌로 만들어 버린 건가?

자기가 한 장난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다친 미니 사신을 돌봐 주지 않고 도망갈 법도 했으니까.

하지만 검은 사신들이 얌전히 붕대를 만드는 상황을 보면 아닐 것 같았다.

회색 사신의 장난이라면, 검은 사신이 회색 사신을 마구 때리고 있었겠지.

그런 의문을 가지고 미니 사신 정원을 돌아다니다 보니, 마침내 예린은 회색 사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얗게 타오르는 빛의 고리를 머리 위에 띄우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회색 사신이었다.

피부가 전부 까맣게 타버린 회색 사신이었다.

“사신아!”

예린이 그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외침을 내뱉자, 회색 사신의 더듬이가 하늘을 향해 쫑긋 솟아올랐다.

***

실수했다.

엄청난 실수를 해버렸어.

내가 파괴 조건을 확인한 순간, 저 괴인은 나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간만 했던 붉은 괴인은 어느새 붉은 안개 속에서 그 크기가 거인처럼 커진 상태였다.

나를 인식한 붉은 괴인은 마치 정원 내부를 들여다볼 것처럼 텅 빈 눈구멍을 정원에 들이밀었다.

그 눈구멍은 사람이 쏙 들어갈 정도로 커다랬고, 그 눈구멍 속에는 만져질 것처럼 짙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윽.’

그리고 그 눈구멍에서 수많은 손이 튀어나왔다.

그 모습은 꿈에서 볼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한 모양새였다.

탁탁탁탁.

그리고 그 수없이 많은 손은 미니 사신 정원의 경계를 손바닥으로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가벼운 두들김이었지만, 손바닥이 한번 경계를 두들길 때마다 붉은 안개와 미니 사신 정원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 ■ ■ ■ ■ ■ ■]

이대로 두면 순식간에 경계를 뚫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헤일로를 바꿔 쓰고 경계를 보강하기 시작했다.

사용하는 헤일로는 미궁의 헤일로.

내가 상상하는 최대한 튼튼한 경계의 이미지를 미니 사신 정원에 마구 덮어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가진 장작도 뭉텅이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버틸 수는 없었다.

장작이 무한히 있다고 해도 그랬다.

미궁의 헤일로는 현실을 뒤바꿀 수 있었지만, 근본은 가짜 환영이었으니까.

저 붉은 괴인도 무언가 시간제한이 있는 것처럼 온몸이 부스러지고 있었지만, 그전에 미니 사신 정원의 경계가 무너져 버리겠지.

저 괴인을 물리치려면 높은 ‘격’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정도 격을 갖추려면 헤일로 3개를 전부 뒤집어써도 불가능해.

그 순간, 예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신아!”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떠올라버렸다.

나는 헤일로를 벗어던져 버리고, 예린이를 향해서 뛰어들었다.

예린이의 보드라운 품 안에 몸을 던져넣자, 거의 고갈되고 있던 장작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히히.

내 심장에서 잔뜩 타오르는 장작을 느끼며, 나는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내 머리 위로 검은색 구체가 떠올랐다.

<불변하는 검은 공>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격이 높은 것이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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