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굽힌 돼지와 지면을 향해서 내려온 계단.
정말 예상하지 못한 건들의 연속이었다.
젤리 돼지가 너무 커서, 무릎을 굽혔는데도 지면까지 내려온 계단이 마치 하늘로 향하는 계단처럼 느껴졌다.
그 계단을 향해서 집사 아귀들이 연금술사를 들것에 실어서 옮기기 시작했다.
나도 기대를 가득 품고, 신기한 젤리 돼지 이동 요새로 발을 디뎠다.
집사 아귀들의 뒤를 따라서, 뚜방뚜방.
맛있어 보이는 과자 계단을 향해서 뚜방뚜방.
내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연금술사의 여동생과 황금 사신들도 신기한 것을 보는 것처럼 따라오기 시작했다.
음, 황금 사신도 이 돼지 요새를 처음 보나 보네.
미니 사신들이 나에게만 숨긴 비밀 같아서 조금 섭섭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포잉포잉.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말랑말랑하면서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
폭신폭신한 젤리와 마시멜로로 만들어진 계단은 조금 신기한 감각으로 몸을 밀어 올려 주고 있었다.
보통의 젤리와 마시멜로로는 이런 것이 불가능할 테니, 푸른 사신의 마법이 조금 들어갔겠지.
톡 치면 부서질 것처럼 생긴 쿠키로 만든 난간.
그런 난간에 장식으로 달린 설탕으로 코팅된 딸기.
정말 허약해 보이는 구조물이었지만, 생각보다 단단했다.
정말 맛있어 보이는 난간이라서 살짝 뜯어서 먹으려고 했지만, 내가 아무리 힘을 줘도 부스러지지 않았다.
힝.
나를 닮아 착한 황금 사신들도 난간에 잔뜩 달라붙어 깨물었지만, 황금 사신의 치악력으로는 전혀 손상이 가지 않았다.
뀩.
나는 집사 아귀가 보지 않는 틈을 타서 공간 절단으로 난간을 조금 뜯어서 냠냠 먹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들에게도 조금씩 나눠줘서 공범으로 만들었다.
황금 사신들은 처음에는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표정이었지만, 내가 바삭바삭 소리를 내면서 먹기 시작하자, 황금 사신들도 두 눈을 질끈 감고 냠냠 먹기 시작했다.
쿠키처럼 생겼는데, 식감이 특이하네.
다행히도 난간에서 떨어져나온 과자는 강철과 같은 단단함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
황금 사신들도 굉장히 맛있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더듬이가 하늘로 치솟았다.
제임스 푸딩을 처음 먹은 황금 사신 같은 반응이었다.
나중에 돌아갈 때, 난간을 큼지막하게 잘라서 애착 인간에게 가져갈 것 같았다.
그렇게 난간을 심심할 때마다 뜯어먹으며, 기다란 계단을 전부 올랐다.
마치 등산을 하는 것처럼 상당히 긴 거리를 움직였지만, 다 오르고 나서 보이는 풍경은 그럴만한 보람이 있는 광경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마시멜로의 대지.
대지를 둘러싼 핫초코의 바다.
그 끝에 보이는 흑설탕 사막.
사탕 산맥과 막대 쿠키 숲.
나름대로 넓고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다.
그래도 조금 더워 보이니까, 눈처럼 우유 빙수가 쌓인 설원이 있으면 좋겠네.
설원에 관계된 오브젝트를 잔뜩 죽이면 생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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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개를 돌리면, 그런 정원 풍경을 배경으로 커다란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세희 연구소랑 닮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근처에 있는 종합 병원을 닮은 거대한 건물이었다.
백설기로 만들어진 하얀 건물 입구에서 간호사 모자를 쓴 황금 사신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환자!’
‘이송!’
진짜 병원이었네.
***
여동생은 들것에 실린 언니를 쫓아, 숨이 차도록 높은 계단에 올라서 미니 사신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달콤한 향기와 함께 과자로 만들어진 계단과 건물.
처음 봤을 때는 ‘정말 회색 사신을 찾아가는 게 정답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믿음직스럽지 않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역시 언니의 말이 맞았던 걸까.
뭔가 본격적으로 보이는 병원 시설을 보니, 왠지 언니가 나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세희 연구소처럼 세련돼 보이는 디자인의 건물.
그리고 병원에서 주로 쓰이는 이동식 침대 대신 커다란 알파카 모양 아귀가 언니를 싣고 나르기 시작했다.
걸어 다닐 때의 진동을 신경 쓰는 건지, 알파카들은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있었다.
물론 알파카들은 바퀴 달린 침대처럼 걷거나 움직이지 않고,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간호모 황금 사신이 목줄을 잡고 당겨서 움직이고 있었다.
커다란 병원은 조금 독특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마치 고양이 전용 건물을 보는 것 같았다.
알파카와 인간이 돌아다니는 커다란 길옆에는 수없이 많은 미니 사신 전용 길이 늘어서 있었다.
난간 정도 높이에 만들어진 조그마한 길 위에는 미니 사신들이 잔뜩 뚜방뚜방 돌아다니고 있었다.
인간 환자를 위한 요정들의 병원 같은 느낌이었다.
푸른 마녀 모자와 하얀 가운을 위에 걸친 푸른 사신, 그리고 간호사 모자를 쓴 황금 사신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렇게 병원을 구경하면서 가다 보니, 언니를 태운 알파카 침대는 목적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금발 소녀와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누워있는 병실이었다.
저 사람들도 언니랑 같은 증상인 걸까?
그렇게 언니가 병실로 들어가는 순간, 병원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황금 사신이 몽둥이 모양 쿠키를 들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삐-! 삐-!
검은 사신의 소리인 걸까?
경보음으로 어울리지 않는 청량한 소리가 경보음처럼 주기적으로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러고 보니 언제나 여동생 근처에 있었던 회색 사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미니 사신 병원을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커다란 시설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일부러 숨기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모를 수가 없는 규모였다.
수상해.
게다가 이 건물은 밀폐가 쉬운 구조로 되어있었다.
이대로 핫초코의 바닷속으로 잠수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설마 평소에는 핫초코의 바닷속에 숨어있었던 건가?
그래서 나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유령화를 써서 몰래 일행에게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병원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니, 굉장히 수상한 방을 하나 발견했다.
검은 사신으로 만들었는지, 노랗게 빛나는 눈이 점점이 박혀있는 방이었다.
쿠키로 만들어진 다른 병실 문과 달리, 검은 사신으로 만들어진 문은 굉장히 튼튼해 보였다.
게다가 문 앞에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도로표지판처럼 단순한 디자인이었는데, 회색 사신 모양의 그림 위에 빨간 X 표시가 그려진 것이었다.
이거 회색 사신 출입 금지 맞지?
미니 사신들이 이런 방을 만들다니!
출입 금지에 벽까지 검은 사신으로 만들어진 보안시설이라니, 설마 혁명?
혁명에 생각이 미치자, 왠지 저 안에 콧수염을 단 붉은 사신이 있을 것만 같았다.
요즘같이 TV를 보면서 조금씩 똑똑해지는 붉은 사신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엄마들은 왔다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미니 사신들은 남습니다. 오직 미니 사신만이 영원합니다.’
왠지 저런 말을 하는 붉은 사신이 저기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에게 숨겨야 하는 중대한 비밀이 저곳에 있겠지.
빨리 들어가서 현장을 잡아야 해!
하지만 들어갈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다.
공간 찢기?
자기 아이를 찢어버리는 엄마는 좀….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튼튼한 검은 사신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잠입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미궁의 헤일로였다.
엄청 아프긴 하지만, 제일 확실한 방법이었다.
헤일로로 현실을 비틀어서, 또 다른 문을 만들어 내었다.
병원 풍경과 위화감이 생기지 않는 쿠키 문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소리를 내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뜻밖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회색 사신 모양 마시멜로를 마구 물어뜯는 솜사탕 강아지가 그곳에 있었다.
사냥감의 목을 물고 흔드는 늑대처럼 사정없이 물어뜯는 솜사탕 강아지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강아지가 방안에 들어온 나를 발견했다.
“….”
‘….’
강아지는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더니, 후다닥 발을 구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저 강아지를 다시 한번 물속에 집어넣기 위해서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사신이 나를 발견하고 ‘삐!’하고 울기 시작했고, 황금 사신이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배경으로 강아지를 향해 시간 가속으로 뛰어가면서, 한 가지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다.
아귀는 자기들도 뜯어먹으면서 왜 저 강아지만 특별대우지?
***
한바탕 난리를 피우던 병원은 회색 사신이 돌아오면서,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달라진 것은 하나.
빈손이었던 회색 사신이 커다란 물통과 솜사탕으로 만든 강아지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는 점뿐이었다.
회색 사신은 가끔 그 강아지를 물속에 집어넣었다, 꺼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여동생이 보기에 너무 불쌍해 보였는데, 황금 사신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말리려는 것처럼 회색 사신에게 잔뜩 달라붙어 투닥거리고 있었다.
여동생은 애써 눈을 돌려서 마치 시체처럼 누워있는 언니와 두 명의 환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숨도 쉬지 않고 시체처럼 누워있는 검은 정장의 남자.
하지만 이상하게 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의사 가운을 입은 푸른 사신과 황금 사신이 병실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푸른 사신은 차트처럼 생긴 종이를 품에 꼭 안고 있었고, 황금 사신은 병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이상한 것을 들고 있었다.
플라스틱은 아니겠지만, 마치 플라스틱처럼 생긴 하얗고 뭉툭한 빵칼이었다.
푸른 사신은 검은 정장의 남자에게 다가가더니, 세심한 눈초리로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찌나 진지한 표정인지, 여동생도 절로 숨을 삼킬 정도였다.
그리고 푸른 사신은 검은 정장 남자의 팔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금 사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빵칼로 검은 정장 남자의 팔을 푹 찔러버렸다.
“!”
여동생은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엄청난 출혈이 발생할 거란 생각과 달리, 빵칼이 관통한 곳에서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고 있었다.
“!!!”
그리고 빵칼이 치워진 곳의 단면은 마치 롤케이크 같았다.
그 장면은 너무 현실성이 부족해 보여서, 마치 악몽 속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사건으로 상당히 지쳤던 여동생은 마치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에 점점 어지러워지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