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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7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연구소 격리실.

진짜 연구실에 비하면 시설이 부족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꽤 실험실다워 보였다.

책상 위에 놓인 각종 실험 기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벽에는 수많은 포스터와 메모들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 사이로 건빵 봉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방은 몹시 지저분해 보였다.

[이번 좀비 사태의 규모와 위험성에 비하면 피해자가 상당히 적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번 사태와 비슷한 오브젝트 사고가 다른 나라에서도 많았지만, 확연히 적은 편입니다.]

방 안에서는 작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씹어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딱딱한 건빵을 작은 입으로 갉아 먹는 소리였다.

마치 TV에서 나오는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건빵을 갉아먹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황금 사신이’입니다.]

[특히 황금 사신이가 많이 보이는 마포구와 송파구의 경우, 거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방 안을 은은하게 밝히는 TV 화면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나운서와 초청된 패널이 앉아 있는 뉴스 스튜디오.

그곳에는 패널로 참가한 ‘오브젝트 전문가’가 앉아 있었다.

데스크 위에는 투명한 케이지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카메라가 케이지 안으로 줌인 되자, 그것이 바로 황금빛으로 빛나는 황금 사신임을 알 수 있었다.

황금 사신은 케이지 안에 들어있는 고무공을 가지고 놀며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저게 바로 그 ‘황금 사신’인 거군요. 오브젝트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네요. 정말 안전한 건가요?]

아나운서가 약간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투로 말을 건네자, 전문가는 당연히 안전하다며 단언하며 케이지의 문을 열어버렸다.

그 순간 황금 사신이 데스크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황금 사신은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처럼 데스크 위를 이리저리 뒹굴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작은 소동물 같기도 하고 무해한 아기 같기도 한 모습에, 다른 패널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 꺼리던 아나운서도 황금 사신이 뚜방뚜방 다가가자, 경계심을 풀고 천천히 쓰다듬어 버렸다.

분명 여러 전문가를 불러서 이번 사태에 대한 분석을 듣는 프로그램이었을 텐데, 어느새 황금 사신의 재롱 잔치로 변해버렸다.

TV를 보던 여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황금 사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TV에 네 친구들이 나왔어!”

하지만 건빵을 갉아먹고 있는 황금 사신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예 TV 쪽으로 시선도 돌리지 않고 여자 쪽으로 돌아앉은 채였다.

딱딱한 건빵 한 입 먹고, 애착 인간을 한 번 올려다보기를 계속 반복할 뿐이었다.

애착 인간과 눈이 마주치자, 황금 사신은 행복한 것처럼 헤실헤실 웃었다.

TV에 누가 나오던지 전혀 관심 없어 보이는 모습에, 여자는 피식 웃고는 황금 사신을 품에 안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불안으로 초췌한 인상이었던 여자는 황금 사신의 영향인지, 혈색을 많이 되찾고 황금 사신처럼 행복한 미소를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마포구랑 송파구 땅값이 많이 오르겠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황금 사신이 방송을 타버렸으니, 더욱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오브젝트 사고에 안전하기까지 하다니?

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게 뻔했다.

***

연금술사의 여동생은 악몽을 꾸고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서 식은땀을 잔뜩 흘리고 있었고, 손은 마치 허공을 붙잡을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어… 언니.”

그녀의 꿈속에서는 끔찍한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온몸을 빵칼로 잔뜩 찔린 채, 피를 철철 흘리는 언니가 여동생을 노려보며 원망을 토해내는 꿈이었다.

“네가 나를 죽였어.”

“뭉툭한 빵칼이 천천히 파고들었어!”

피눈물을 흘리는 언니의 외침에 여동생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미안해.

여동생은 끊임없이 언니에게 사과하며 펑펑 울고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여동생도 꿈속에서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지나가다가 여동생을 발견한 황금 사신이 후다닥 달려왔다.

그러고는 허공을 움켜쥐려고 하는 손을 붙잡고, 손가락 하나를 꼭 껴안았다.

마치 자기 심장의 온기로 하얗게 질린 손가락을 데우려는 것처럼.

그 온기를 느낀 것인지, 여동생의 표정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꿈의 내용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치 저승처럼 깔려있던 푸른 안개가 아침 햇살에 녹는 것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개가 개고 드러난 풍경은 쿠키와 과자, 그리고 초콜릿으로 이루어진 신비로운 숲이었다.

초콜릿으로 가득 찬 나무 모양 막대 과자.

바닥에 바위처럼 장식된 생크림 덩어리.

그리고 그 생크림 위에는 형형색색의 스프링클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마치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동화 속 요정의 숲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원망을 토해내던 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언니? 어디 있어?”

언니가 갑자기 사라져서, 여동생은 막대 과자 나무를 헤치며 찾아 나섰다.

그렇게 막막한 기분으로 찾아다니길 몇 분, 여동생은 마침내 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맑은 얼음처럼 투명하고 딱딱한 굳은 설탕 위에서 하얀 아귀를 타고 즐거운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막대 사탕 두 개를 철퇴처럼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여서, 여동생도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다가갈수록 점점 이상한 점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언니?”

환하게 웃고 있는 언니의 몸에는 여전히 빵칼이 꽂혀있었다.

그리고 빵칼이 꽂힌 자리에서는 피 대신 딸기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니는 여동생이 좋아했던 딸기잼이 들어있는 도넛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악몽이야.’

이건 분명 악몽이었다.

여동생은 너무 말이 안 되는 상황 때문에 꿈을 인지하고 잠에서 깨어버렸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난 여동생이 처음 본 것은 황금 사신이 굉장히 화를 내면서 회색 사신을 마구 때리는 장면이었다.

***

하아암.

절로 하품이 날 정도로 졸린 늦은 밤.

젤리 돼지 병원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대강당에서 졸음을 참아가며 미니 사신들의 수상한 의식을 구경하고 있었다.

명확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진행되는 의식 순서.

종교적이고 화려한 복장을 한 미니 사신들.

나름대로 멋과 문화를 함축하고 있는 의식 도구들.

딱 봐도 황금 사신이 어디서 주워듣거나, 상상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독특한 의식이었다.

상상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복잡했고, 주워들었다고 하기엔 지구상에 없는 양식이었다.

커다란 원형 제단 위에는 연금술사와 금발 소녀 그리고 검은 요원이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미니 사신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제단 안쪽으로 장작을 조금씩 던져넣고 있었다.

의식을 치르는 도중, 장작이 모자라진 미니 사신은 나를 향해 후다닥 달려들었다.

그리고 내가 예린이에게 하듯이 내 품에 꼭 안겨서 장작을 채우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졸린 눈을 간신히 뜨고 의식을 살펴보니, 이 정체불명의 의식을 누가 알려줬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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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의식의 순서를 까먹은 황금 사신이 검은 사신에 쪼르르 달려가서 물어보고 있었으니까.

하긴 황금 사신이 기억하기엔 너무 의식이 길고 복잡했다.

여동생은 불안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음, 내가 황금 나무 능력으로 꿈을 유쾌하게 바꿔버린 여파인 건가?

내가 꿈을 조작한 것을 눈치챈 황금 사신이 엄청나게 화내기는 했지만 좀 억울했다.

여동생은 악몽에서 빨리 깨어나서 행복하고.

나는 재밌는 꿈을 꾸게 만들어서 행복한.

모두가 즐거운 win-win인 꿈이었는데!

갑자기 너무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내 무릎에 앉아 있는 황금 사신들의 머리카락을 서로 묶어버렸다.

히히.

그렇게 내가 황금 사신들을 잔뜩 묶어버리는 동안 의식이 끝나버렸다.

의식이 끝나자, 소녀와 요원은 여전히 잠이 든 채였다.

그 옆에는 우울한 표정의 붉은 사신이 소녀의 뺨을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잠들어 있는 소녀와 요원과는 달리 연금술사는 제단 위에서 눈을 떴다.

“언니!”

연금술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상황을 분석하려고 했지만, 여동생은 그저 언니가 깨어난 것이 기뻐 보였다.

내가 살펴보니 연금술사 몸에 서려 있었던 색채 우주의 흔적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젤리 돼지나 설탕 플라밍고처럼 정원에 묶인 존재로 변한 것이 느껴졌다.

아마 지금 연금술사의 몸을 잘라보면 요원처럼 롤케이크일지도 몰라.

나는 연금술사의 상태만 확인하고 곧장 격리실로 돌아갔다.

여기 더 있기엔 너무 졸려.

***

따뜻한 격리실 침대에서 잠든 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허전한 감각에 눈을 떴다.

그러자 끝없이 펼쳐진 공간이 보였다.

얼마 전에 봤던 기억이 있는 공간이었다.

붉은 괴인이 빨려 들어간 색채가 가득한 우주였다.

별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무질서하게 색채가 흘러 다니는 공간.

유리 표면을 미끄러지는 물감처럼, 공간에 가득한 색채는 이리저리 미끄러지듯이 흐르고 있었다.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불길하지만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신비로운 공간에도 함정이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해로운지, 내 심장의 장작을 마구 태워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공간이었다.

그렇게 계속 바라보다 보니, 색채 속에 도사리는 존재들이 눈에 띄었다.

색채끼리도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않는 공간.

그런 색채 사이에서 거대한 존재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온갖 형상을 가진 거대한 괴물들.

고정된 형상을 가지지 못한 괴물들.

그런 괴물들이 색채의 흐름 속에서 이리저리 흘러 다녔다.

나는 그런 괴물들을 회색으로 물든 대지 위에서 서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꿈인 건가.’

꿈이지만 꿈이 아닌 공간.

내가 느끼기에는 이 신비로운 공간이 그렇게 느껴졌다.

저 위에서 흘러 다니는 괴물들은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도대체 이 꿈은 언제 깨는 걸까? 장작을 모두 쓰면 깨는 걸까?’

신기한 광경 속에서 흘러 다니는 괴물들의 특징을 살피며 구경하던 도중, 어떤 괴물과 시선이 마주쳐 버렸다.

그 순간 무의미하게 흘러가던 괴물은 유영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괴물은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왠지 저 괴물이 다가오게 두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무언가에 붙잡힌 것처럼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개를 억지로 돌려야 했는데, 장작이 모자랐다.

겨우 ‘뀩’ 한번 할 장작이면 되는데!

우주를 구경하느라, 장작을 너무 많이 써버렸어.

‘!’

하지만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포근한 온기와 함께 찬란한 빛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장작으로 가득한 황금색 빛.

고개를 돌려보자, 황금색 빛줄기 속에 거대한 빛의 고리가 빛나고 있었다.

***

잠에서 깨어나자, 나는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포근함은 다름 아닌 예린이의 품이었다.

그 황금빛 장작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빛의 고리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예린이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단순한 꿈의 소산이었을까, 아니면 무언가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걸까?

머릿속이 온통 궁금증으로 가득 차올랐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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