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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7

Chapter: 237

   세실이 긴 잠에서 깨어났을 무렵 바깥은 이미 환하게 물들어 있었다.

   

   창에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난 그는 몸이 만신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마를 부여잡은 채 기억을 돌이키던 그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갔던 일.

   

   바깥으로 나와 루시 알른의 도발에 넘어갔던 일.

   

   분노에 잡아먹힌 나머지 명예고 해야할 일이고 나발이고 루시 알른을 쓰러트리겠단 일념으로 달려들었던 일.

   

   그리고서 처참하게 농락을 당하다가. 무아의 지경에 이르러서.

   

   “세실 왕자님.”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는 나이가 지긋한 신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세실에게 무의 기본을 때려 박아 준 사람임과 동시에, 베드퍼 공작 가문에서 여러 더러운 일을 맡고 있는 자.

   

   “나빌.”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세실에게는 나빌이라 불리는 신사는 중절모를 가슴팍에 가져다 대며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여긴 어쩐 일이지.”

   “왕비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전해드려야 할 말씀이 있는지라.”

   

   나빌의 느긋한 웃음을 본 순간 세실은 이제부터 그가 전할 말의 내용이 대충 예상이 됐다.

   

   “바로 들으시겠습니까?”

   “그래.”

   

   세실이 고개를 끄덕임에 따라 나빌의 입이 열린다.

   

   그의 입에서 새나오는 것은 방금 전까지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정중한 노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날카롭고 찢어질 것만 같은 저 여성의 목소리는 세실이 어릴 적부터 매일 같이 듣던, 그의 어머니인 2왕비의 목소리였다.

   

   “멍청하고 우둔한 왕자시여. 또 다시 일을 망치셨군요.”

   

   멍청과 우둔이라. 나빌이 말을 순화했군. 실제 어휘는 좀 더 과격했을 터인데 말이야.

   

   “알른 가문의 영애에게 호감을 주진 못할망정 시비를 걸고, 추잡한 수를 쓰고, 그러고도 참패한 끝에 기습을 가하다니. 어쩜 이리 무능할 수가 있는지. 차라리 인형이 그 자리에 있는 게 더 낫겠네요.”

   

   나빌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세실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세실이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여느 때처럼 가만 그를 듣고 있던 세실은 기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비난을 듣고 있는 그가 너무도 무덤덤했던 것이다.

   

   세실이 저러한 독설에 익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비난은 세실의 마음에 슬픔과 분노를 새겼다.

   

   허나 오늘은 달랐다. 그의 마음은 독설 속에서도 평온했다.

   

   “무슨 헛짓거리를 하시나 싶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결과라니. 남은 것은 병신 왕자라는 당신께 알맞은 호칭뿐이군요. 됐습니다.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우둔한 왕자님께서도. 왕자님보다도 멍청한 당신의 패거리들도. 손을 떼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내 감정이 사라진 것인가?

   

   아니다. 어젯저녁 루시 알른의 도발을 들을 때를 보라. 그 때의 불같은 분노는 분명 진실 되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기 무섭게 열이 오르는 것을 보면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런데 왜.

   

   …설마.

   

   그녀의 비아냥에 비하면 어머님의 비꼼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인가? 내 머리가. 마음이. 그리 판단을 내린 것인가?

   

   그런 생각은 하던 세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란 생각에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시겠습니까. 검을 휘두르는 것 이외에 그 어떤 재능도 지니지 못한 왕자님. 조용히 당신의 검이나 갈고 닦으십시오. 당신의 쓸모는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이 말로 이야기를 끝마친 나빌은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본래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이렇게 됐습니다. 당분간은 수련에 전념하시지요.”

   “그래. 알겠다.”

   “지금부터는 제 사견입니다만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마력에 특색을 담는데 성공하시다뇨.”

   

   나빌이 하는 말에 거짓은 없었다.

   

   분명 세실이 뛰어난 무재를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마력에 특색을 담는 것은 재능의 수준을 뛰어넘은 일이다.

   

   오죽하면 온갖 독설만을 전하던 2왕비가 세실의 무재만큼은 인정해 주었을까.

   

   “그럼 무얼하는가. 패배했는데.”

   

   세실이라 하여 자신이 무아 속에서 이루어낸 성과를 모르지 아니했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평생을 무인으로 살아왔거늘 어찌 이 일의 대단함을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실의 반응이 미지근한 것은 기적을 일으킨 끝에 찾아온 것이 패배였기 때문이었다.

   

   루시 알른은. 베네딕 알른이란 영웅의 피를 이은 자는. 요 반 년 사이 대륙의 신성 반열에 올라선 괴물은. 자신의 방패로 세실의 기적을 손쉽게 가로 막아 버렸다.

   

   “그건 상대가 좋지 못했을 뿐이죠.”

   “그렇겠지.”

   

   세실도 안다. 상대가 루시 알른이 아니었더라면 그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을 거란 사실을.

   

   허나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결국 세실의 기적은 루시 알른이라는 보석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을 따름인데.

   

   “나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예. 왕자님.”

   “본인이 만전의 상태였다면 루시 알른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나빌은 그 물음에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이렇게 답변했다.

   

   “죄송합니다. 전 대결을 두 눈으로 보지 못했던지라.”

   “그래. 그랬지.”

   

   세실은 죄스러움을 표하는 나빌을 보고는 가벼이 대꾸하고는 말았다. 그는 이미 속으로 결론을 내 놓고 있었으니까.

   

   만전의 상태였더라도 나는 루시 알른에게 패했을 것이다. 기적을 일으키고도 그 꼴이었는데 컨디션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니. 오히려 컨디션이 좋았더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끝까지 농락을 당했겠군. 키득거리는 웃음 속에서 짓밟혔을 것이야.

   

   …하아. 결국 루시 알른의 나쁜 성격 덕분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셈이다만 도저히 감사한 마음이 들질 않아.

   

   무인으로써의 은혜라 생각하고는 있으나 그 건방진 웃음을 떠올리면 머리에 열만 피어오르니 원.

   

   “나쁘지 않았다인가. 빌어먹을 년 같으니라고.”

   

   훗날. 반드시. 그 입에서 우는 소리를 내게 만들어 줄 테다.

   

   투정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난 세실은 나빌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루시 알른을 뛰어넘기 위해서라도 어젯저녁 사용했던 오러에 대한 감을 잡을 필요가 있었기에.

   

   무거운 몸을 이끄는 세실의 머릿속엔 이미 1왕자의 존재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

   

   2왕자와의 대결이 있었던 다음 날. 루카에게 적당한 시련을 받아 아카데미 바깥으로 나온 나는 어제 퀘스트를 클리어함과 동시에 얻었던 스킬. 충격전환의 성능 시험을 하고 있었다.

   

   충격전환이라는 패시브 스킬은 전위의 탱키한 직업에게 주요한 여겨지는 스킬이다. 특히 나 같은 성기사에게는 필수나 마찬가지지.

   

   맨 앞에서 싸우다 피해를 입는다. > 신성이 회복된다. > 그 신성으로 체력을 회복한다. > 또 다시 피해를 입는다. > 신성이 회복된다…

   

   라는 루틴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

   

   물론 이 루틴이 무한하지는 않다. 충격전환의 효율이 그리 좋지는 않은지라 한계치가 존재하지.

   

   허나 전위의 유지력을 눈에 띌 정도로 늘려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 지금의 나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만.

   

   현실은 잔혹했다.

   

   아카데미 바깥의 던전에 들어오고서 꽤 오랜 시간 스킬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지만 체감이 영 좋지 못했다.

   

   신성이 차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만 그 양이 너무도 미미했던 것이다.

   

   아무리 스킬을 막 배워서 숙련도가 떨어진다지만 이건 과해. 내가 알던 것에 비해서 너무 효율이 안 나와.

   

   뭐가 잘못된 걸까 머리를 굴리던 그 때에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설마 싶기는 한데. 그래도 확인을 해봐야 하니까.

   

   “여자애한테 쫄아버린 거야?♡ 아예 바닥을 기면서 가축으로 받아달라고 부탁하지 그래?♡ 아. 역겨운 개쫄보 오크 새끼를 받아주는 곳은 없으려나?♡”

   

   도발을 이용해 실험을 도와 줄 오크를 초대한 나는 방패를 내리고서 녀석이 내지르는 주먹을 얼굴로 받아냈다.

   

   퍼억! 하는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신성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오크와 나의 스펙 차이가 차이인지라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아.

   

   젠장.

   

   그러니까 현실의 충격전환은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에만 해당이 되는 거야?

   

   방패로 막는 건 피해로 안 쳐주는 거네?

   

   이게 게임일 때는 달랐다. 게임에서의 방패는 어디까지나 방어구의 일종. 저스트 패링을 하는 게 아니라면 데미지를 일정량 감소시켜 줄 뿐이었지.

   

   그러니 확연하게 HP가 깎이고 그에 따라 충격전환이 발동됐다.

   

   허나 현실은 다르다.

   

   검을 방패로 막는다면 신체의 피해는 미미하다. 약간의 충격은 있겠지만 그 뿐인 것이다.

   

   다른 공격도 마찬가지다. 그 공격이 몸에 닿지 않는 한 내 몸에 전해지는 피해는 미미하다. 그러니 회복량 또한 미미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방어가 뚫릴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충격전환은 의미를 지니지 못한단 거구나?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내 방어가 뚫린다는 건 내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이야기잖아! 한 방에 뒤질 수도 있는 상황에 충격전환이 무슨 의미가 있는데!

   

   …하아. 그래. 어쩐지 2왕자 따위를 쓰러트리는 일에 허접 주신이 좋은 스킬을 내어준다 싶었어.

   

   일의 난도에 따라 보상을 잘 조절하던 녀석이 실수를 한 걸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줄 만 해서 준 거였어.

   

   빌어먹을. 개쩌는 스킬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 똥이었단 현실에 충격을 받은 나는 재차 주먹을 휘두르려는 오크의 머리통을 메이스로 으깨 버렸다.

   

   허나 그것만으로 내 울분은 풀리지 않았다. 나의 분노는 오크 한 마리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던전의 오크들아. 원망하려면 허접 치졸 주신을 원망해라. 그 녀석이 내게 기대감을 심어주지만 않았어도 학살극이 일어날 일은 없었을 테니까!

   

   *

   

   손쉽게 던전을 클리어한 탓일까. 이번 시련을 돌파하고서 허접 주신이 지급한 보상은 별 대단치 않았다.

   

   체력과 힘. 그리고 지혜가 약간 상승했을 뿐이었지.

   

   체력이나 힘은 그렇다 치는데.

   

   지혜가 상승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가 불순하지 않아?

   

   이거 놀리는 거잖아. 통수 맞은 거 잘 눈치 챘네. 라면서 장난치는 거잖아!

   

   개같은 허접 주신 새꺄! 자기 사도한테 이런 장난치지 말라고! 위엄을 지키란 말이다 위엄을!

   

   속으로 허접 주신에 대한 욕을 퍼부으며 아카데미 거리로 돌아온 나는 즉시 기숙사 쪽으로 발을 움직였다.

   

   연습모드에서 할배와 충격전환의 검증을 더 진행해 볼 생각이었으니까.

   

   허나 이런 나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거리를 걷던 중 광장 한 가운데에서 대기하고 있던 알새틴의 부하 중 하나가 내게 다가왔기에.

   

   녀석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체 하며 내 손에다 종이를 하나 쥐어주었다.

   

   그는 카리아가 보낸 쪽지였다.

   

   ‘고용주님! 안 그래도 고용주님의 인기가 참 좋았는데 이번 일 때문에 더 평가가 올라갔어!’

   

   평가가 올라갔다고?

   

   그거 맞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카데미 애들이 날 보면 쫄아서 도망치던데?

   

   뒤집어서 보면 주가가 올라간 것처럼 보인다는 농담은 아니지?

   

   ‘그래서인지 2왕비 쪽 사람이 영애님을 만나고 싶어 해. 나중에 시간 되면 가게로 와.’

   

   …어.

   

   벌써?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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