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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8

뇌를 파먹힌 좀비들의 습격으로 아비규환이 된 송파구 인근.

그 한복판에 위치한 제임스 타워 건설 현장.

제임스는 임시 사무실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최근 정신 오염 탐지기를 개선하면서 발견한 사실들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임스는 단순히 정신 오염 탐지기를 좀 더 예민하게 개량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개선된 탐지기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제 탐지기는 정신 오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류의 오브젝트를 추적하고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개선은 정신 오염이 감지된 좀비들에게 전기 충격이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었지만, 그 결과는 제임스를 더욱 깊은 고민 속으로 밀어 넣었다.

‘대부분의 오브젝트에게 정신 오염이 걸려있다는 건가?’

제임스는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까끌까끌해진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번 탐지기 개선과 여러 실험을 통해, 정신 오염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 부류는 원인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정신 오염이었다.

개선된 탐지기로 이 오염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효과적으로 추적할 수 있었다.

주로 최면이나 인식 개변을 일으키는 오브젝트에 노출된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이 오염은 학계에 알려진 ‘평범한 정신 오염’이었다.

반면 두 번째 부류는 대부분의 오브젝트에게서 감지되는 오염이었다.

이 오염은 개선된 탐지기로도 오염원을 추적할 수 없었다.

마치 오염이 우주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방향성이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를 단순한 ‘측정기의 오류’로 치부했겠지만, 제임스는 오히려 이 의미 없어 보이는 두 번째 오염이 중요한 단서를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세운 가설은 파격적이었다.

‘대부분의 오브젝트는 인간에게 해로운 정신 오염에 걸려있고,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가설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정신 오염에 걸리지 않은 오브젝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없지는 않았다.

현재 확보한 상태라 연구가 가능한 오브젝트 중에서는 딱 한 개체, ‘황금 사신’만이 정신 오염에 걸리지 않은 상태였다.

정신 오염에 걸리지 않은 황금 사신은 인간에게 우호적이었으니, 이는 제임스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설득력을 가지기에는 표본이 너무 적었다.

게다가 황금 사신에게서만 정신 오염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제임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황금 사신이 지닌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이 모든 오브젝트 사건의 원인을 풀어낼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송파구의 폐허가 보였고, 잿빛 구름이 그 위를 뒤덮고 있었다.

제임스는 사신들에 대한 연구를 위해 세희 연구소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미국 오브젝트 협회에서 심각한 정신 오염 위험을 이유로 출입을 금지했지만, 지금이야말로 꼭 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

세희 연구소 깊숙한 곳에 위치한 격리실 안에는 평온함이 감도는 듯했다.

따스한 온기가 공기 중에 맴돌고, 포근한 이불이 예린의 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고요한 가운데, 미니 사신들이 부드러운 푸딩을 맛있게 먹는 소리와 TV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소리가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예린은 무언가 달라진 점을 느꼈다.

TV를 무척 좋아하던 회색 사신이 오늘따라 TV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예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부터 갑자기 회색 사신의 시선이 자꾸만 자기 가슴으로 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예린의 뒤통수를 간지럽혔다.

설령 회색 사신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조차도 그랬다.

정신을 돌리기 위해서 말랑말랑한 볼을 쿡쿡 찔러도, 끌어안아 그 폭신한 뱃살을 만지작거려도 회색 사신의 관심은 온통 예린의 가슴에 쏠려 있는 듯했다.

그 증거는 다름 아닌 회색 사신의 정수리에 돋은 더듬이였다.

원래 살랑거리면서 흔들리고 있어야 할 더듬이가 항상 예린을 향해 기울어진 채, 때때로 미약하게 빛을 뿜어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분명 예린 자신과 관련된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러던 중 예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지금이 사신이가 싫어하는 옷을 입힐 절호의 기회 아닐까?’

하지만 그 순간, TV에서 흘러나오는 러시아에 관한 뉴스가 예린의 귀에 들려왔다.

[현재 러시아에서 발생한 오브젝트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시베리아 봉쇄 조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계와 공유하지 않아, 추측만 무성한 상황입니다.]

이어서 예린의 눈앞에 펼쳐진 TV 화면에는 시베리아의 설경이 가득했다.

끝없이 펼쳐진 눈의 향연, 숨을 멎게 하는 하얀 세상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광경이 예린에게는 반가울 리 없었다.

회색 사신에게 몰래 옷을 갈아입히려던 계획에 차가운 물을 끼얹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TV에 비친 눈 덮인 풍경을 본 순간, 회색 사신의 눈동자가 호기심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입은 열지 않았지만, 반짝이는 눈빛만으로 연신 감탄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마치 눈빛으로 ‘와아, 눈이다! 정말 가지고 싶은 설경이야!’라고 외치는 듯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예린이 공을 들여 짜낸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주변의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회색 사신의 집중력이 눈 녹듯이 풀려버렸다.

더듬이도 한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고정되어 있던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살랑이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몰래 옷을 갈아입히려고 하면 회색 사신이 싫어할 게 뻔했다.

‘아… 이런 타이밍에 옷을 갈아입히려고 하다간 백 퍼센트 들키겠네.’

예린의 머릿속이 아쉬움으로 가득 차올랐다.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스스로가 야속할 따름이었다.

***

나는 커다란 마시멜로 덩어리 위에 누워, 조용히 장난을 준비하고 있었다.

멋진 빙수 설원을 얻기 위해 시베리아로 떠나기 전, 생각해 둔 장난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동안 시도해 왔던 ‘예린이의 몸속에서 빛의 고리 찾기’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예린이의 몸을 들여다봐도 빛의 고리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예린이의 헤일로를 발견하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한 거겠지.

내 몸속에 있는 헤일로를 발견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을 보면, 예린이의 몸속 헤일로를 찾아내기엔 아직 부족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발견하지는 못했어도, 예린이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특별한 것이 전혀 없는 평범한 인간의 장작력이 그 정도일 리가 없으니까.

주변을 살피며 마시멜로 언덕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장난 준비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주변에 미니 사신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머리 위로 미궁의 헤일로를 쓰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탕 두 개를 만들어 냈다.

사탕 안에는 장작이 잔뜩 들어있어, 미니 사신에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탕으로 느껴질 터였다.

히히.

나는 장난을 기대하며 웃음을 머금었다.

***

내 손바닥 위에 서 있는 황금 사신은 내가 건네준 사탕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내가 그 사탕이 엄청 맛있다고 강조해도, 황금 사신의 표정은 마치 ‘이건 또 어떤 함정일까?’라고 묻는 듯했다.

내가 그동안 좀 장난을 많이 치기는 했어도, 이 정도 일 줄이야.

엄마를 조금 더 믿어줬으면 좋겠네.

‘이거 세상에 두 개밖에 없는 엄청 맛있는 사탕이야.’

내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애착 인간이 있는 황금 사신이라면 맛있는 사탕을 인간과 나눠 먹었겠지만, 내 장난의 타깃이 된 이 황금 사신은 아직 애착 인간이 없었다.

의심 가득한 눈빛을 하던 황금 사신은 눈을 질끈 감고 사탕을 입에 넣었다.

마치 엄마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독을 삼키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몇 초 후, 황금 사신의 눈이 크게 떠지며 더듬이를 쫑긋 세웠다.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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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사신의 엄청나게 깜짝 놀란 표정과 함께 생각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놀란 표정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행복한 미소로 변했다.

사탕으로 볼록해진 볼을 소중히 문지르며 황금 사신은 사탕을 음미했다.

사탕을 모두 먹은 황금 사신은 행복한 얼굴로 내게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

‘엄마, 고마워!’

나는 남은 사탕 하나를 황금 사신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황금 사신은 더듬이를 물음표 모양으로 구부리며 물었다.

‘그거 엄마 거잖아.?’

‘엄마는 별로 안 좋아해. 안 먹어도 괜찮아.’

굉장히 고민하던 황금 사신은 내가 싫어한다고 거듭 말하고 나서야, 건네받은 사탕을 먹었다.

두 개째의 사탕을 먹은 황금 사신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 어려 있었다.

황금 사신이 사탕을 다 먹은 것을 확인한 나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으며 의지를 전달했다.

‘사탕 맛있었지?’

내 의지에는 진한 아쉬움과 슬픔이 묻어났다.

그러자 황금 사신은 충격받은 듯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싫어한다고….’

‘설마.’

황금 사신은 혼란스러운 것처럼 지리멸렬한 의지를 흘리더니, 결국 눈물을 마구 흘리며 나에게 달라붙었다.

‘엄마, 미안해!’

황금 사신은 엄마도 좋아하는 걸 눈치 못 채고 먹어버린 것을 끊임없이 사과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황금 사신을 내려다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히히.

***

현재는 출입이 통제된 시베리아 벌판은 정체불명의 오브젝트에게 점령된 상태였다.

조사를 위해 파견된 수많은 드론과 인간들은 그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사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곳에는 인간도, 차량도, 지형지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끝없이 펼쳐진 설원만이 있을 뿐이었다.

길도 보이지 않고, 땅도 보이지 않는 설원은 마치 잘 연마된 금속처럼 매끈하고 흠집 하나 없었다.

현대 기술로는 절대 관측할 수 없는 그 설원의 한가운데, 두 존재가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었다.

따뜻해 보이는 두꺼운 망토를 두른 푸른 머리칼의 소녀.

그리고 그 뒤를 천천히 따라오는 하얀색 아귀.

그 두 존재는 마치 망망대해와 같은 설원 위에 점점이 발자국을 남기며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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