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0
[버로우 공작 가문의 이상]
[버로우 공작 가문에서 무언가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그 실체를 확인하십시오.]
[보상 : ???]
[실패시 : GAME OVER]
[제한시간 : 아카데미 2학기가 끝나기 전까지]
허접 주신이 내어준 퀘스트를 읽은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과거 파트란 공작 가문에서 공작과 따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 들었던 이야기였다.
버로우 공작 가문에서 구원 요청이 들어와 다급히 찾아갔지만 정작 그곳에 갔을때에는 그 어떤 문제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
공작에게서 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왕국 제일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대마법사이자 왕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그 아닌가.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면 그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음을 믿었기에 난 무언가 오류가 있었을 뿐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그는 분명한 변수였으니까.
1학기 방학 기간 동안 버로우 가문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던가?
뒷배경으로라도 무언가 설명이 있었던 적이 존재했나?
아니었다.
그런 적 따위 없었다.
버로우 공작 가에서 관리하는 영지 중 한 곳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있긴 하다만 그는 게임 시작 후로 2년 뒤.
최소한 내가 3학년이 되고서야 무언가 문제가 일어난다는 소리다.
그러니 현재의 버로우 가문은 여러 잡음이 있긴 할지라도 평온해야 정상일 터이거늘 문제가 생겼다.
변수가 생겼다.
그 때의 나는 이 변수가 지니는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멍청한 년.
공작 가문에서의 사건이 지나간 후라 피곤했을 수는 있어. 그렇지만 쉬고 난 후에는 한 번 확인을 해보려고 했어야지. 그랬다면 지금쯤.
“하아.”
이빨을 아득 갈던 나는 한탄한다한들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음을 깨닫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진정하자. 일단은 카리아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듣는 것이 우선이야.
‘무슨 일이 있는 건데요?’
“저기 노처녀 아줌마. 수다 떨지 말고 얌전히 설명이나 해줘. 무슨 일이 있는 건데.”
“듣자하니 버로우 공작이 큰 병에 걸렸다는 모양이야. 2왕비님께서 그 곳에 찾아간 이유도 그 때문이고.”
버로우 공작의 중환.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른 이들의 접견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모양.
현재 저택에서 가문의 의사가 치료를 하고 있다지만 차도가 좋지는 못한 듯 하다.
“버로우 공자께서도 아버지의 간호를 위해 그곳에 머무르고 있어.”
카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턱을 두드린다.
버로우 공작의 건강 상태가 안 좋을 이유가 있나?
그 사람은 몇 년 전 사고로 급사해버린 아들의 일 때문에 생겨난 마음의 병을 제한다면 그 어떤 문제도 지니고 있지 않다.
당연하게도 게임 내 스토리에서 버로우 공작의 건강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도 없지.
스스로 공작 가의 기사단을 이끌며 훈련시키는 무인의 건강에 이상이 있을 리가 있나.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내 지식에서 크게 벗어난 상황이라는 건데.
생각해보자. 버로우 공작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만큼 심각한 병환을 얻을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야.
우선은 무언가 변수가 생겨나서 버로우 공작이 진짜로 병을 얻었을 가능성.
이 경우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만병통치약이라도 하나 구해서 던져주거나, 신의라 불리는 사람을 데려가면 되니까.
허나 이게 아니라면, 만일 그가 타인의 음모에 의하여 병을 얻게 되었거나 혹은 공작 본인 병세를 꾸미고 있는 것이라면.
어느 쪽이건 확인을 해 볼 필요성이 있는 건 똑같네.
그리 결론을 내리고서 고개를 들자 카리아가 웃음을 지었다.
“확인 해달라는 이야기지?”
‘네.’
“주름 숫자랑 눈치는 비례하는 걸까? 눈치가 빠르네.”
“내 얼굴 어디에 주름이 있다는!… 하아. 진짜. 일단 알아보기는 할 건데 시간이 걸릴 거야.”
‘오래 걸려요?’
“뭐야. 늙어서 다리 힘이 없어? 왜 오래 걸리는데?”
“이거 엄청 까다로운 업무야. 고용주님.”
카리아가 설명하길 현재 버로우 공작 가 내부 사정에 대해 알아내고 싶어하는 이가 많지만 유의미한 정보는 얼마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듯 했다.
버로우 공작가에서 입단속을 단단히 하고 있는 만큼 정보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을 터이고,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이야기에 난 곤란함을 느꼈다.
카리아의 능력이 능력이니만큼 저 오래라는 시간이 몇 개월에 달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한시간이 아직 널널한 만큼 그 정도 시간은 기다릴 수 있기도 하고.
다만 감이 좋지 않았다.
메네스테일의 사례를 보라. 허접 주신이 내어 준 제한시간이라는 것은 재앙이 일어날 때까지의 카운트다운이었다.
버로우 공작가에 생겨난 문제도 그런 것이라면 최대한 빠르게 해결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재앙에 가까워지는 것이라면, 최악의 경우 시간을 끌다 지금의 나로썬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많이 급한 일인가 보네.”
카리아는 여느 때처럼 나의 표정을 읽었고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기대는 하지 마. 인맥도 많이 끊어진데다 힘 대부분을 잃어버린 나한테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가요.’
“하. 걱정 마. 무능한 노처녀 아줌마한테 뭘 기대하겠어?”
“그러니 상황이 다급하다면 고용주님의 인맥을 활용해 봐. 지금 고용주님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한다면 대부분의 일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
*
인맥이라는 단어는 나와 연이 먼 존재였다.
전생의 나야 부모조차 지니지 못한 인간이었고, 이 세상에 오고 나서도 과거의 업보로 인해 주변인들과 싸우기만 했지 인맥으로 무언가를 얻은 적은 없었다.
그나마 파트란 공작가문의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 주변의 도움을 받은 일이 있기는 했다만 그것도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한 건 아니었잖아?
상황이 이랬던지라 인맥을 활용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어떤 식으로 활용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혔으니까.
<무슨 소릴 하느냐. 메네스테일 던전을 공략할 적에는 주변인들을 잘만 끌어들이더니.>
‘그건 던전이잖아요.’
메네스테일의 문제는 던전과 관계된 일이었다.
소울 아카데미의 썩은물인 나는 던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도가 터 있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 일을 이끌어가야 할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버로우 공작가문의 일은 던전과 아무런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 일을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할배가 코웃음을 쳤다.
<하.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럼 반대로 생각해봐라. 버로우 가문이라는 던전이 있고, 네가 그 던전의 안으로 들어간다고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생각해봐라.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버로우 가문의 이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죠?’
<그를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정보를 구하는 것이다만. 카리아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다른 이에게서 정보를 구하기는 어려운 듯 하고 설령 정보를 구한다쳐도 그 정보를 신용할 수 있을지 애매하지.>
할배의 말이 옳다. 만일 어떤 식으로라도 정보를 구할 수 있었다면 카리아가 시간이 오래 걸린단 이야기를 하지 않았겠지.
그러니 지금 시중에 돌아다니는 정보는 믿음직스럽지 못하단 이야기가 된다.
<그럼 어찌해야 하느냐. 네 눈으로 버로우 공작 가문을 확인해 봐야지.>
‘…제 눈으로요?’
<그래. 다른 이의 눈을 믿을 수 없다면 네 눈으로 보는 수밖에 없잖은가.>
내 눈으로. 그러니까 내가 직접 버로우 가문으로 향한다. 그 곳에 가서 이상을 확인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자는 거다. 버로우 가문이라는 던전이 있고, 그대는 던전의 문을 열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것이라고.>
버로우 가문을 던전이라고 규정하고 그 던전에 입장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낸다.
그렇게 목표를 바꾼 순간부터 과부화되었다 생각했던 머리가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내가 버로우 가문으로 향한다면 그곳에 산적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가다.
이상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던전에 진입해봐야 제대로 된 기믹을 볼 수 없을 테니까.
이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난 소울아카데미의 썩은물이다. 무언가 이상이 존재한다면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 할 일은 없다.
특히 그것이 던전과 관계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럼 다음 문제다. 내가 직접 버로우 가문에 방문하는 것이 가능한가.
던전의 입장조건을 달성하는 것이 가능한가.
카리아는 말했다. 버로우 공작가는 공작의 병환 때문에 모든 방문을 거절하고 있다고.
내가 방문 의사를 비추더라도 별 다를 것은 없겠지. 인연도 뭣도 없는 망나니 영애가 안부를 물어봐야 신경이나 쓸까.
그렇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방문을 청하고 거기에 끼는 형식이라면 어떨까.
버로우 공작 가문의 입장에서 방문하는 것을 거절하기 어려운 직위에 속한 인물의 옆에 내가 끼어든다면?
아서? 아냐. 너무 약해. 왕위계승권과 거리도 멀고 뒷배도 없는 왕자는 버로우 공작 가문에 압박을 줄 수 없어.
페이비? 페이비라면 가능성은 있지만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면 교회가 연관될 거야. 그래서야 일이 귀찮아져.
베네딕? 이건 확인을 해봐야겠네. 베네딕이 버로우 공작 가문과 연관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그리고 또.
아.
그래.
곰곰이 생각을 하던 중 떠오른 것은 지난 번 파트란 공작이 내게 주겠다고 했던 보상이었다.
당시의 나는 받을 것이 없다 생각했기에 훗날 파트란 공작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권리를 받았다.
그를 이용한다면.
파트란 공작의 옆에 따라붙어 버로우 공작 가에 방문할 수 있다면, 그리고 공작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면.
아니 사실 공작과 만날 필요도 없다.
버로우 공작 가문 안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이상을 확인하는 건 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무언가 생각이 났느냐?>
‘네.’
<그럼 행동으로 옮기거라. 보고 조언할 게 있으면 이야기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