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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4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서아는 굉장히 피곤한 얼굴이었다.

서아는 샤워기의 물을 맞으면서 요즘 세희 연구소에 대한 상념에 빠져들었다.

“피곤하네….”

회색 사신이 러시아 시베리아에 나타난 일로 해야 할 일이 잔뜩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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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협회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한가득.

회색 사신을 담당하는 오예린 연구원은 매번 보고가 한 타이밍 늦고, 이세희 연구소장은 요즘 일할 생각보다는 부동산 투자에만 몰두 중이었다.

게다가 세희 연구소의 규모도 상당히 커진 상태라서, 서아가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았다.

“역시 사람, 새로 뽑아야겠지?”

얼마 전에 이력서를 보내온 오브젝트 협회 소속 연구원이 있었는데, 면접이라도 봐야겠어.

협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신 오염 대처가 확실하고 일을 잘한다던데, 상당히 기대되었다.

김중뢰처럼 미니 사신에게 홀리지 않는 직원이었으면 좋겠어.

옆을 돌아보니, 새싹 사신이 수도꼭지에서 물을 맞으며 서아가 하는 자세를 똑같이 따라 하고 있었다.

마치 거울처럼 타이밍이 어긋나지도 않고, 똑같이.

“그거, 안 해도 된다니까?”

새싹 사신이 장난을 치다가 화장실의 유일한 거울을 깨 먹은 뒤로는 서아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저러고 있었다.

서아 입장에서는 매번 키득키득 웃으면서 장난만 치던 새싹 사신이 미안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자, 그럼. 새싹이도 비누칠해야지.”

서아는 샤워를 마치고, 손안에 비누 거품을 잔뜩 내서 새싹 사신을 불렀다.

그러자, 새싹 사신은 서아를 따라 하는 것을 멈추고, 눈을 꼭 감고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저번에 한번 눈에 비누 거품이 들어간 뒤로는 매번 저러네.

오브젝트면서 비누 거품을 무서워하다니.

서아는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워서 조금 웃었다.

새싹 사신은 그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통통한 볼을 작게 부풀렸다.

서아는 통통하게 부푼 새싹 사신의 볼을 조물조물해서 바람을 빼주고, 꼼꼼하게 비누칠했다.

말랑말랑한 볼살과 조그마한 몸.

새싹 사신을 씻기다 보면 툭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이 작고 약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약해 보여도 오브젝트.

게다가 회색 사신의 권속이니만큼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겠지.

새싹 사신과 함께 샤워를 마치자, 어느새 새싹 사신은 서아의 베개 위에 앉아서 베개를 팡팡 두들기고 있었다.

그래 이제 자야지.

서아가 침대 위에 눕자, 새싹 사신은 TV에서 나왔던 멜로디를 자장가처럼 흥얼거렸다.

“♩♩♬”

서아는 그 나지막한 소리를 들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잘자.”

***

집안으로 장소를 옮긴 푸른 소녀와 근육질 남자는 여러 가지 자료를 꺼내더니, 점점 알아듣기 힘들어지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단’은 왜 이 옥판을 성물이라고 보관한 걸까요?”

“모르겠군. 하지만 교단의 숭배 대상은 외신보다는 저 지워진 존재에 가까워 보여.”

그들의 대화 내용이 점점 연금술적으로 변해가서, 듣고 있기가 지루해졌다.

뚜방뚜방.

그래서 창문가로 걸어가, 평온한 밖의 풍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그렇게 걸어간 창문가에는 익숙하게 생긴 소라가 놓여있었다.

이미 죽은 오브젝트.

설원에서 봤던 그 소라와 같은 보라색 소라 껍데기였다.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소라를 발견하자, 손을 뻗어 소라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소라 속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울과 유리가 가득한 땅을 향해라.]

그리고 내가 소라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 순간, 허공에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처럼 말이다.

‘아마 올바른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서, 가야 하는 장소에 대한 힌트겠지.’

갑자기 나타난 소라 때문에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며 바깥의 풍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신비로운 보라색 달빛이 내리쬐는 뒷골목은 현대와 달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달빛을 반사하는 반들반들한 자갈.

보라색 빛을 반사하는 유리 공예품과 유리창.

‘판타지치고는 유리창이나 유리 공예품이 아주 많네.’

내 생각이 유리 공예품에 미치기 무섭게, 평온해 보이던 길거리의 분위기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달빛을 받은 사물들이 허공을 떠다니듯 움직이고, 유리창에 비친 사물과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일그러지며 기괴한 형상으로 변해갔다.

오브젝트에 의해 유리에 비친 상이 마구 일그러지는 광경을 보자, 소라가 준 힌트에 생각이 미쳤다.

빨리 힌트의 장소로 가야겠어.

나는 생각이 정리되자, 곧바로 푸른 소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1년 넘게 말하지 못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이 편해져 버렸지만, 이 상황에서는 말해야겠지.

나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어색하지 않게, 현재 상황을 전달했다.

“저기, 밖이 이상해졌어요. 도시 전체가 뭔가 달라 보여요.”

하지만 내 말을 들은 푸른 소녀의 반응은 뭔가 이상했다.

신기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달라붙어 온 것이었다.

***

진지한 표정과 내용,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발음이었다.

“저이, 바이 이상해졌어오. 도시 전테가 뭔아 달라 보여오.”

흑백 옷을 입은 소녀는 혀짧은 목소리로 열심히 말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모습은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아서 걱정됐는데, 이제 보니 그저 말하는 것이 서툴러서 그랬던 거구나.

푸른 소녀는 그런 귀여운 소녀를 내려다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하지만 푸른 소녀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꼬맹이는 잔뜩 토라진 채, 입을 다물어 버렸다.

토라진 소녀의 통통한 볼을 콕콕 찌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되겠지.

흑백 옷의 소녀는 거울과 유리가 가득한 곳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다행히도 스승님이 그런 곳을 하나 알고 있었다.

“유리 공예품을 만들고, 적재해 두는 ‘유리 공예 거리’가 이 도시에 하나 있다.”

유리에 비친 상이 마구 일그러지는 것을 보니, 흑백 옷 소녀의 추리는 타당해 보여서 우선 그 거리를 찾아가기로 했다.

마도서를 찾아서 거리를 나아가자, 도시가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목격하면, 마법이나 마도서의 힘이라고 여겼다.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사술’처럼, 이 세계에서 설명하기 힘든 모든 일들은 ‘마도서’의 소행으로 치부되었다.

지금 도시에 펼쳐진 상황은 이해할 수 없고 신기하면서 위험한, 그야말로 ‘마도서’ 사태였다.

인류를 그런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연금술사의 소명인지라,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꼬맹이는 유난히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겁에 질린 것 같진 않고, 오히려 자신만만해 보였다.

호기심 때문에 두리번거리는 것 같지도 않아서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

뚜방뚜방.

나는 푸른 소녀와 손을 잡고, 근육질 남자의 인도를 따라서 복잡한 도시를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거울과 유리가 가득한 땅, 유리 공예 거리였다.

“하얀 아귀를 데려와야 편한데, 도시 내 진입 금지라니. 성가시네.”

나란히 선 푸른 소녀는 약간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투덜거렸다.

사방이 아름답고 화려한 유리 장식품과 거울로 가득했지만, 불안하고 기괴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평평한 거울에 비치는 상이 어안 렌즈처럼 일그러지고, 비쳐야 할 것이 비치지 않고, 비치지 말아야 할 것이 비치고 있었으니까.

불편해.

왜 인간은 피부로 보질 못하는 거야?

고개를 너무 휙휙 돌리다 보니, 목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징그러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던 중, 유리 표면에 언뜻 보이는 괴물의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머리카락 대신 손가락이 돋아났고, 눈 자리에는 입이, 입 자리에는 코가 달린 그로테스크한 얼굴.

적의 기척은 분명 이 거리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눈’을 활용해 사방을 샅샅이 살폈지만, 오브젝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주변의 일그러진 거울들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는 고요한 순간.

긴장감으로 손에 땀을 쥐며 내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모든 거울 속에서 그 끔찍한 얼굴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너무나 기분 나쁜 광경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공간 절단 능력을 사용했다.

손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거울을 산산조각 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세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 역행?’

무려 9번이나 봤던, 꿈속의 시간이 뒤로 흘러가는 현상이었다.

도대체 왜?

갑작스러운 시간 역행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푸른 소녀를 바라보자, 거울 속의 괴물이 푸른 소녀의 목을 베어버리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10번째 회차의 실패.

그리고 11회차의 시작.

보라색 달은 이제 정말 한계인 것처럼 부스러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어느새 눈을 감았다 뜨니, 다시 유리 공예 거리의 입구로 돌아와 있었다.

‘?’

당혹스러웠다.

당연히 ‘교단’에서 시작할 줄 알았건만.

하지만 공예 거리에 들어서기 전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서, 순식간에 마음을 가다듬고 푸른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참고, 빨리 목말을 태워달라고 소리쳤다.

“목아, 태워줘! 빠리!”

이세계 예린이의 발음이 어설프니까, 다시는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뒤통수에 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

마도서와의 전투를 앞두고 목말을 타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푸른 소녀는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결국 꼬맹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소녀의 말투는 다소 귀여워 보였지만,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푸른 소녀의 하얀 불꽃으로 대부분의 마도서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물론, 꼬맹이를 목말 태워주고 싶다는 푸른 소녀의 작은 욕심도 한몫했다.

‘발바닥이 엄청 말랑말랑하네.’

그렇게 꼬맹이를 목말을 태우고 보니, 조금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말랑말랑?’

흑백 옷 소녀의 발을 들어서 확인하자, 정말 맨발이었다.

푸른 소녀는 꼬맹이의 옷이 길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맨발로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꼬맹이의 발바닥은 티끌 하나 없이 보드라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유리 공예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예 거리로 숨어든 마도서는 거울을 매개로 하는 마도서인지, 거울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폭풍 전 고요처럼, 모든 거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도서의 흔적은 사라지고, 소란스러운 소음도 죽어버린 공예 거리.

그런 고요 속에서 푸른 소녀는 연금술사의 검을 힘껏 붙잡고 주변을 경계했다.

고요 속에서 긴장이 풀어지려는 순간, 거울 속에서 섬뜩한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마치 거울은 시선 끌기용이라는 것처럼 거울과는 전혀 상관없는 허공에서 마도서의 기척이 나타났다.

‘어림도 없지!’

마도서는 괘씸하게도 목말을 타고 있는 소녀를 노리고 있었다.

‘연금술사의 방패!’

푸른 소녀가 손을 휘두르자, 하얀색 불꽃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보호막 같은 구체를 형성했다.

하지만 보라색으로 물든 칼날은 손쉽게 구체를 관통해 버렸다.

‘달의 힘? 어째서?’

짙은 피비린내와 함께 하늘로 핏물이 흩뿌려졌다.

“안 돼!”

푸른 소녀가 놀라 소리치는 사이, 목말을 탄 소녀의 목이 싹둑 잘려 나갔고, 엄청난 양의 피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목이 잘린 소녀는 즐거운 것 같은 미소를 베어 물고 있었다.

***

늦은 밤, 송파구 세희 연구소 인근 아파트.

커다란 회색 사신 인형을 품에 안고 잠든 예린의 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미약한 빛은 예린의 목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 빛은 미약한 만큼이나 금세 사라져 버렸다.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이는 침실이었지만, 조금의 변화는 있었다.

예린의 목 주변에 둥글게 잘린 것 같은 아주 희미한 흉터가 생겨나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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