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도 없이 그저 멜로디를 흥얼거릴 뿐이었지만, 피곤한 서아는 새싹 사신의 노래를 듣고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잘 자.’
그러자 새싹 사신은 평소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아니라, 행복한 것 같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애착 인간의 숙면을 바라며, 새싹 사신도 서아의 뺨에 찰싹 달라붙어서 눈을 감았다.
“으으, 안 돼.”
하지만 요즘 연구소에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던 걸까.
잠이 든 서아의 미간은 마치 악몽을 꾸는 것처럼 일그러졌고,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
그 모습을 본 새싹 사신은 머리 위의 새싹을 꼿꼿이 세우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애착 인간의 숙면을 위해서, 새싹 사신은 서아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
서아는 세희 연구소의 악몽을 꾸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보고서 누락.
시설물 내 화재 발생.
연구소 자금 횡령.
오브젝트 탈출.
녹화된 CCTV 유실.
협회의 갑작스러운 오브젝트 이동 명령 등등.
서아가 아무리 일을 해도 문제가 계속 터지는 끔찍한 꿈이었다.
보고하러 오는 직원은 모두 오예린 연구원이었다.
아니, 연구소 내의 실무자가 모두 오예린이었다.
그리고 서아가 보고해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세희 연구소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회색 사신 격리실을 확인하면 언제나 수십 명의 예린이 누워서 과자를 먹으며 월급을 도둑질하고 있었고, 보고하러 가면 소장실은 언제나 텅 비어있었다.
그런 엉망진창인 연구소에서 서아가 우울한 눈으로 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거대한 진동과 함께 창문 밖으로 커다란 나무가 솟아올랐다.
황금색과 남색이 이리저리 뒤섞인 거대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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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나무가 솟아오른 순간, 연구소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이 새싹 사신으로 변해버렸다.
그 새싹 사신들은 굉장히 유능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였다.
그렇게 되자 서아는 현실에서 보낸 적 없었던 휴가를 꿈에서나마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싹 사신을 어깨 위에 얹고 구름 위를 산책했다.
새싹 사신은 서아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잡고 행복해했다.
오전에는 바다로 가서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았다.
새싹 사신은 조개껍데기를 모아 성의 장식으로 꾸며주었다.
점심때는 숲속에서 소풍을 즐겼다.
서아가 도시락을 펼치자, 새싹 사신은 신나게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해 질 녘, 서아와 새싹 사신은 들판에 누워 노을을 감상했다.
서아는 품 안에 새싹 사신을 잔뜩 끌어안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밤에는 별빛 아래, 새싹 사신이 서아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마치 이제 작별해야 하는 시간인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아아, 행복해.”
그 누구도 찾아올 수 없는 꿈속의 집에서 수많은 새싹 사신에게 둘러싸인 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아가 꿈속에서 잠들자, 새싹 사신은 고개를 돌려서 허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황금색과 남색으로 점멸하고 있는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엄마가 부르고 있어.’
그 순간 새싹 사신들은 서아의 꿈속에서 사라져, 어딘가로 떠나가기 시작했다.
***
싹둑 잘려 나갔던 머리는 장작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다시 붙일 수 있었다.
“음.”
하지만 나는 내 목을 쓰다듬으며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흉터가 생겨버렸네.
화상도 말끔하게 치유하던 장작이었지만, 격이 높은 오브젝트가 입힌 상처라서 그런지 흉터가 남아버렸다.
귀여운 이세계 예린이의 목에 이런 큰 흉터를 남게 해버리다니, 정말 아쉬웠다.
그래도 뭐, 과거를 표현한 꿈속이니까 별 상관없나?
나는 목을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정면에 선 오브젝트를 유심히 관찰했다.
거울에 비친 끔찍한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오브젝트였다.
거대한 낫을 들고 몸 전체를 망토로 가린, 머리 대신 길쭉한 꼬챙이가 달린 괴물.
그 꼬챙이에는 거울 속에서 비쳤던 끔찍한 머리가 꽂혀있었다.
그 머리는 사람의 시체를 잘라 붙여서 만든 조악하지만 끔찍한 조형물이었다.
꼬챙이에 꽂힌 얼굴을 거울 속에 투영하는 오브젝트인 건가?
내 목을 싹둑 잘라버린 괴물은 내가 목을 순식간에 붙이는 것을 봤으면서 상당히 자신만만한 눈치였다.
뭐, 그럴만하긴 했다.
강력한 공격력에 더해서, 예린이의 몸으로 사용하는 ‘눈’으로도 제대로 보거나 감지할 수 없었으니까.
공기 중에 녹듯이 사라지고, 거울에 시선이 팔린 자를 기습하는 것이 저 오브젝트의 주요 전술로 보였다.
“괘… 괜찮아?”
푸른 소녀는 하얗게 타오르는 검을 들고 뛰어와서, 내 목 언저리를 쓰다듬으면서 걱정했다.
마치 자기 목이 잘린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는데, 내 흉터를 보더니 더욱 안타까운 표정이 되었다.
푸른 소녀의 스승이라는 남자는 양 주먹에 하얀 불꽃을 두르고 푸른 소녀를 지키듯이 서 있었다.
“괜차나.”
나는 괜찮다고 작게 말하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장작을 잔뜩 모아서 손을 펼쳤지만, 미니 사신 정원이 소환되지는 않았다.
‘정원 소환은 안 되네. 공간 절단은 할 수 있는데 말이야.’
황금 사신을 잔뜩 불러내면 엄청 편했겠지만, 없어도 별로 상관없겠지.
내가 앞으로 나서자, 꼬챙이 대가리 괴물에게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많은 유령이 웃는 듯한, 소름 끼치는 끔찍한 소리였다.
가려진 망토 속의 수많은 대가리가 웃고 있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치 ‘너도 우리의 일원이 될 거야’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괴물은 시체처럼 거뭇거뭇하고 길쭉한 손가락을 쭉 뻗어서 내 머리를 가리켰다.
그 행동은 마치 내 머리를 끔찍하게 꾸며서 꼬챙이에 꿰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세계 예린이의 몸을 쓰게 되면서, 이런 점이 불편했다.
꽤 강한 오브젝트들도 나를 무서워하지 않아.
그래도 힘을 보여주면 달라지겠지.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을까.
나는 ‘눈’을 사용해서 경솔하게 모습을 드러낸 오브젝트를 바라보았다.
<진정한 머리를 찾아서 부순다.>
황금색으로 타오르는 내 눈앞에, 파괴 조건이 떠올랐다.
***
‘큰일이군.’
푸른 소녀의 스승은 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며 생각했다.
‘저 마도서는 인간이 건드릴 수 없는 종류의 마도서야.’
머리 대신 꼬챙이가 있는 마도서는 이미 승리한 것처럼, 마치 남자의 일행을 이미 붙잡은 것처럼 느긋해 보였다.
그럴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자의 연금술을 손쉽게 관통해 버렸으니까.
완벽한 연금술을 쓰기 위해서 탄생한 마도서인 제자가 그 정도니, 보통 인간은 상대조차 불가능하리라.
스아아악.
마도서는 핏물이 뚝뚝 흐르는 낫으로 바닥을 천천히 가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절망을 내리러 온 사신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 흑백 옷의 소녀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신비로운 소녀였다.
아니, 꺼림칙한 소녀였다.
예지를 가진 제자의 말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았겠지.
심지어 처음에는 그 소녀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 소녀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도 직접 말을 걸거나 행동할 때만 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렇지 않은 평소에는 자꾸 의식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치 그 소녀가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없어져야 할 것처럼, 인식과 기억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하긴 인간의 몸으로 목이 잘리고도 순식간에 재생하는 것을 보면, 평범한 인간은 아니겠지.
그때 남자의 상념을 깨부수듯이, 흑백 옷 소녀의 눈에서 갑자기 황금색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
마치 이 땅에 거대한 존재가 내려앉은 것 같은 느낌이 퍼져나갔다.
“끼에에에엑!”
그 순간, 꼬챙이 머리의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기 망토 속에 모아둔 머리를 마구잡이로 집어 던지며.
마치 끔찍한 것을 본 것처럼.
하지만 꼬챙이 머리의 마도서는 결국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황금색 불꽃에 휩싸여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흑백 옷의 소녀에게서 뻗어나간 황금색 불꽃이 기괴하게 뒤틀린 머리들을 태우고 있었다.
도대체 저 마도서는 무엇을 봤길래 저렇게 공포에 질린 걸까?
고개를 돌려보니, 제자의 안색도 상당히 창백해져 있었다.
***
보라색 달의 도시 깊숙한 곳에 있는 신전.
그곳에는 불길하게만 느껴지는 석유 냄새가 짙게 풍기고 있었다.
한때 보라색 보석이라고 불렸던, 흑요석을 닮은 커다란 보라색 웅덩이는 검게 변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던 수많은 보라색 소라게는 검게 썩어서 죽어가고 있었다.
“하하, 정말 마스터가 말한 대로잖아.”
“달에게도 통하다니!”
“역시 달이라고 해 봤자, 마도서 나부랭이인 거겠지.”
그 주변에는 화려한 복장의 연금술사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그 썩어가는 웅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쿠르릉.
그리고 지하에 위치한 신전 내부에 고고히 떠올라, 신전을 비추던 보라색 수정에 점점 균열이 생기더니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보라색 달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그 소리는 연금술사들에게 마도서의 감미로운 비명으로 느껴졌다.
그런 그들에게 염파가 들려왔다.
[도대 체왜 이런짓 을한 것이냐?]
한때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던 보라색 달의 염파는 조각조각 끊어지고 알아듣기 힘들게 변해있었다.
그러자 광기에 젖은 연금술사들이 고개를 높이 치켜들고 소리쳤다.
“우리는 오롯이 설 것이다! 너희는 신이 아니라 마도서야!”
“신 따위는 필요 없어!”
[….]
약간의 침묵이 지나고, 약간 한심한 것을 보는 듯한 염파가 들려왔다.
[작고 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아. 너희는 언제나 똑같은 실수를 하는구나.]
이번에는 굉장히 선명한 염파였지만, 마치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는 것처럼 수정의 보라색 빛이 약해지고 있었다.
[너희들이 망각해 버린 신의 이름을 알려주마.]
[인간은 이제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 순간 기괴한 보라색 빛이 도시 전체에 내리쬐기 시작했다.
그 어떤 벽도, 천장도 막지 못하는 기괴한 빛.
그리고 그 빛에 닿은 인간의 몸에는 지울 수 없는 화상자국이 남았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잊힌 신의 이름이었다.
***
도시에 보라색 빛이 내리쬐는 순간.
그렇게 지워진 신의 이름이 드러난 순간.
하늘 위에 짙은 구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보라색 달마저 가려버리는 한없이 어둠에 가까운 불길한 구름이었다.
천둥과 번개가 대지를 울리고, 거센 바람이 건물 사이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정말로 거대한 괴물의 손이 도시의 중심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신을 죽인 마도서.
오브젝트, ‘이름없음’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