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8
이사벨 아르테아.
아르테아 백작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신이란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상재를 타고 났던 그녀는 신앙이라는 것을 평판과 장사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을 뿐.
보답을 바라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과거 믿음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녀의 인생에 신앙을 심어 놓은 것은 한 던전이었다.
아직 이사벨이 가문을 이어받지 못했을 적 해상에 한 던전이 출현했다.
그 던전은 상당한 규모를 지니고 있었던지라 어지간한 이들은 공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아르테아의 주인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여러 유명한 모험가와 용병을 불러 그 던전을 공략하라 지시했으나 실패했다.
가문의 기사들이라 하여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무수한 실패의 끝에 던전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위세를 키웠지.
위기에 빠진 아르테아 백작은 주변의 다른 귀족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들은 도움을 거절했다.
결국 모든 수단을 잃어버린 아르테아 백작은 귀족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직접 던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르테아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노라는 말만을 남기고서.
허나 그녀의 아버지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일주일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아르테아 백작이 던전을 공략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그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르테아 백작의 사망이 반쯤 확정된 순간부터 주변 귀족들이 지원을 보내겠다는 말을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자신들이 너무도 급해 도와줄 수 없단 사람들이 최고 결정자가 사라지자마자 손을 내민 것이다. 저들의 의도는 아직 어리숙했던 이사벨조차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했다.
주변의 이들은 아르테아 백작가가 지닌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를 눈치 채고 어머니와 함께 가문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그녀였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던전 공략에 여러 번 실패함에 따라 아르테아 가문이 기울어 가던 중이었으니까.
주변의 귀족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르테아 백작가를 압박했으니 저들의 목적은 머잖아 달성될 게 분명해 보였다.
그 날.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단 협박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었던 그 날에.
이사벨은 처음으로 신상의 앞에 진심을 담아 기도를 올렸다.
제발 아버님께서 무사히 던전을 공략하고 돌아오시기를. 그래서 가문이 다시금 평화를 되찾을 수 있기를.
그녀의 간절한 목소리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다음 날 기적이 일어났다.
던전이 사라지고 아르테아 백작이 돌아온 것이다.
무수한 상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밝게 웃던 아버지를 마주한 순간 이사벨은 신의 기적을 믿게 되었다.
그녀가 주신과 관련된 물건들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였다. 주신의 물건을 품에 안고 있으면 어째선지 일이 잘 풀리는 것만 같았으니까.
이사벨의 신앙이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그녀가 모은 여러 물건들이 그녀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끝에 아르테아 백작 가문을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융성시키는 데에 이르렀지.
가문을 계승받고도 성공가도를 멈추지 않은 지금의 이사벨 아르테아는 대륙에서 손에 꼽는 거대 상단의 주인이자, 교회의 커다란 후원자 중 하나이며,
어느 귀족 가문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상단의 주인이었으며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거대 귀족 중 하나였다.
이만한 힘과 권력을 손에 넣는 것에 성공한 이사벨이었지만 정작 그녀는 복수 같은 것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실로 단순했다. 주신께서는 증오보다는 사랑으로 주변을 포옹하라 하셨으니 그녀도 그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가끔은. 아주 가끔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하기도 싫은 이가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이사벨에게는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이 그런 존재였다.
아무리 어려서 철이 없다고는 하지만 교회에 나가 여러 신도와 사제들을 모욕하고,
주교의 지위에 이른 분께 이것도 물을 쏟으며 이것도 성수냐는 폭언을 내뱉고.
신상을 부순 것이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이었다.
베네딕 알른의 위광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신성모독으로 체포되어 응당한 처벌을 받았을 꼬맹이.
귀로 들은 소식만 하더라도 루시라는 사람을 싫어할 이유가 충분했거늘 이사벨이 루시를 고깝게 보게 된 이유는 이 뿐이 아니었다.
과거 경매장에서 이사벨이 신성이 담긴 목걸이를 구매했을 때에 루시 알른이 그녀를 찾아와 행패를 부린 것이다.
‘그거 내놔. 그 목걸이도 너처럼 방구석에 처박혀서 펜이랑 십자가만 붙잡고 있을 것 같은 광신도보다는 나처럼 귀엽고 예쁜 여자애한테 사용되는 걸 더 좋아할 걸?’
이사벨은 저 어이없는 명령을 거절했다. 따를 이유가 없었으니까.
허나 루시 알른은 경매장의 여러 경비들이 찾아올 때까지 행패를 멈추지 않았다.
이것으로 끝났다면 작은 해프닝으로 지나갈 일이었지만 루시 알른은 이후에도 이사벨을 여러 모로 귀찮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가문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다 베네딕 알른이 찾아와 상황을 수습한 일도 존재했지.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사벨은 도저히 루시라는 사람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루시 알른이 저택 앞에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만남을 거부했다.
자신과 아무런 연도 없는 그녀가 갑작스레 여기에 찾아올 이유는 행패를 부리기 위함밖에 없다 여겼으니까.
소문이 틀린 게 없네. 알른 가문의 사람답게 능력을 개화했지만 인성은 그대로.
성녀님께서 어째선지 친하게 지내주고 계시지만 그건 성녀님의 은덕 덕분.
프레테 그 녀석이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가는 바람에 괜히 혹시나하는 생각을 했네.
하여간 미와 예술의 신을 모시는 인간답다니까. 얼굴만 예쁘면 나머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단 거냐.
일 때문에 버로우 가문 쪽으로 가다 그랬지. 가는 길에 사고로 머리 좀 다쳤으면 좋겠다. 원래부터 미친 변태라면 머리를 다쳐야 정상이 될 테니까.
“가주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벌컥 문을 연 비서의 모습에 이사벨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지금 바깥에 소란이.”
“알른 가문의 영애신가?”
“예. 그렇습니다!”
하아. 진짜.
루시 알른 그 꼬맹이는 알까? 구국의 영웅이자 어중간한 군대라면 단신으로 박살낼 수 있는 사람이 죄송하다면서 고개 숙이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한숨을 내쉬는 이사벨의 모습에 무언가를 깨달은 걸까. 비서가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영애가 먼저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뭐?”
“저택을 지키는 경비들이 알른 영애를 공격해서.”
“…뭐?!”
미친. 미친. 미친. 미친?!
이사벨은 자신이 붙잡고 있던 펜을 집어 던지고는 다급하게 저택 바깥으로 향했다.
귀족의 품위니 뭐니 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비서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무척이나 중대한 사태였으니까.
혹여 루시 알른이 상처를 입기라도 해봐라. 베네딕 알른이 분노하여 그 검으로 이 쪽을 가리키기라도 한다면… 그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재앙이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제발!
“…이게 뭔.”
필사적으로 내달린 끝에 겨우 저택의 앞에 도달한 이사벨은 저택을 지키던 경비들이 널부러저 있는 것을 보곤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들이 제대로 된 기사에 비하여 약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약함일 뿐.
꾸준히 훈련을 해오며 무리로 싸우는 법을 익힌 저들은 분명 상당한 무력을 지닌 집단이다. 최소한의 실력도 없는데 이사벨이 저들에게 경비를 맡길 리가 없잖은가.
그런 이들이 박살나 있었다.
그냥 박살난 것도 아니었다. 이 많은 이들을 상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이도 큰 상처를 입은 이도 없는 걸 보면 배려해 줄 여유마저 있었던 게 분명했으니까.
“저기. 장사치 광신도 아줌마. 너무 느려 터진 거 아냐?”
귓가에 파고드는 얄밉고 선명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 순간.
이사벨은 방금 전과 다른 의미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평소에 운동 좀 해. 앉아서 일 만 하니까 옷이 살려달라면서 비명을 지르잖아.”
그 곳에 있는 것은 루시 알른이었지만 그녀가 아는 루시 알른이 아니었다.
과거 그녀가 알던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은 건방지고 오만한 빌어먹을 꼬맹이에 불과했다. 외모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었지.
허나 지금은 어떤가.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신성을 보라.
진귀하고도 고강한 저 신성을 보란 말이다!
주신과 관계된 수많은 물건을 구입하며 그 신성의 가치를 파악하는 방법 또한 손에 넣은 이사벨이다.
그런 그녀이기에 루시 알른의 눈을 마주하자마자 루시가 지닌 가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신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저기. 광신도 아줌마? 지금 얼굴 겁나 변태 같아서 기분 나쁜 거 알아? 좀 소름끼치거든?”
아아. 이래서 프레테가 그런 소리를 한 건가.
이제야 이해했어.
그 녀석이 하루 종일 찬양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거야!
“저기?”
대체 요 몇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내 알바가 아니다.
중요한 건 하나. 지금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이 그 어떤 물건보다도 신성으로 반짝이고 있다는 것 뿐.
“내 말 안 들려?”
침을 꿀꺽 삼킴과 동시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상인답게 자신의 얼굴 위에 가면을 썼다.
“죄송합니다. 알른 영애. 방금 상황을…”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반짝반짝 빛나는 걸 가지고 싶다고.
*
이사벨이 등장함에 따라 상황이 수습된 후.
수월하게 저택의 응접실에 들어온 나는 도저히 꺼림칙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생각한 것보다 일이 잘 풀린 것이니 본래라면 기뻐해야 마땅할 터이지만 이사벨의 그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눈빛을 보고 나니 오싹한 느낌이 들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눈빛은 꼭 내가 바니걸을 입은 모습을 노려보던 얼빠여우의 눈빛이랑 비슷했으니까.
이상하다? 쟤 신성과 관계된 물건에 집착하는 걸 빼면 정상적이고 지성적인 사람이었을 텐데?
역겨운 페도 변태라는 뒷설정은 없었을 텐데?!
<여아야. 저 자가 신과 관계된 물건에 집착한다 그랬지?>
‘…그런데요?’
<신의 사도인 그대는 그 어떤 물건보다도 저 자가 집착하기 좋은 물건인 것 아니더냐?>
…어?
어?!
<푸하하. 너무 그리 놀라지 마라. 네가 신의 사도란 걸 알아챌 수단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으냐.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거겠지.>
할배는 장난삼아 이야기한 것이라며 웃어 넘겼지만 난 도저히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내가 신의 사도라는 걸 알아챌 수단은 없어.
근데 쟤 사람이나 물건에 담긴 신성의 가치를 판별하는 아티팩트를 들고 있단 말이야.
그렇다는 건 지금 내 안에 머물고 있는 주신의 신성 또한 느낄 수 있다는 거잖아.
과거의 물건에 담겨 있다 열화된 것이 아닌. 반 년 전 허접 주신이 내려 준 신성을 말이야.
…괜찮겠지?
아무리 이사벨이 신성과 관계된 물건에 집착한다 쳐도 납치감금 같은 걸 할 리는 없으니까.
그래. 분명 괜한 걱정일 거야.
어차피 석판을 받고 나면 만날 일이 없는 사람.
벌컥.
“히익?!”
여러 불길한 생각을 하던 탓일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영애. 미리 노크를 했어야 했는데.”
문 너머에는 부드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이사벨이 서 있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웃음은 실로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