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53

송곳처럼 날카롭고 그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솟은 사탕 산맥.

그 사탕 산맥을 천천히 올라가는 황금 사신이 있었다.

같이 산맥을 올라가던 황금 사신들은 모두 사라지고, 단 하나의 황금 사신만이 그 정상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정상을 향하는 황금 사신 눈앞에 쪼개져서 그 속살을 드러낸 커다란 사탕 바위가 보였다.

‘맛있겠다.’

마치 잘 연마된 수석을 보는 것처럼, 각기 다른 색의 사탕이 층층이 쌓여서 만들어진 사탕 바위였다.

그리고 그 바위의 중앙에는 예쁜 수정 모양으로 굳어져 결정화된 레몬색 사탕이 반짝거렸다.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그 모습에 황금 사신은 입을 살짝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마구마구 흔들어서 잡념을 쫓아냈다.

꿀꺽.

황금 사신은 절로 고이는 침을 삼키며 길을 재촉했다.

그 어떤 황금 사신도 정복하지 못한 사탕 산맥.

그 이면에는 맛있어 보이는 사탕 바위들이 있었다.

수많은 황금 사신이 황금 사신 미답의 영역을 돌파하려고 했지만, 모두 사탕의 매력에 휩쓸려 등반을 포기하곤 했다.

그리고 맛있는 사탕 바위를 먹다 보면, 절로 연구소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너무 맛있는 사탕의 맛은 애착 인간이랑, 혹은 엄마랑 같이 먹고 싶은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니까.

황금 사신은 주황 동생이 전해준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며 의지를 다졌다.

‘산맥 너머에는 미니 사신 정원에서 가장 맛있는 푸딩이 있어!’

주황 동생은 엄마처럼 거짓말을 자주 하곤 했지만, 산맥 너머에 분명 멋진 풍경과 과자가 있을 거라고 믿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렇게 산맥의 정상에 오르는 순간, 황금 사신은 절로 만세 자세를 취했다.

하얀색과 검은색, 반으로 나눠진 멋진 풍경이 황금 사신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다.

한쪽에는 산맥 너머로 보이는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하얀 설원.

반대쪽에는 미니 사신 정원을 둘러싼 무한한 핫초코의 바다.

그리고 차갑고 새하얀 설원과 따뜻하고 검은 핫초코 바다가 만나는 신비로운 경계.

설원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이제까지 정원에서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른 향기를 싣고 불어오고 있었다.

차갑고, 달콤하고, 우유 같은 향기.

황금 사신은 굉장히 행복한 표정으로 산맥을 마구마구 뛰어 내려가다가, 데굴데굴 굴러버렸다.

데굴데굴. 콩.

황금 사신은 멈추지 못하고 계속 구른 끝에, 새하얀 설원 속에 폭하고 잠겨버렸다.

옴뇸뇸.

눈 속에 파묻힌 황금 사신은 자신의 입속에 들어온 눈을 냠냠 먹더니, 눈을 크게 떴다.

‘맛있어!’

황금 사신은 이 소식을 다른 황금 사신들에게 전달해 줄 생각에 싱글벙글 웃었다.

***

나는 작은 건물만 한 햄스터 자판기 안에 숨어서 설원을 뚜방뚜방 돌아다니는 미니 사신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텅텅 비어있던 설원에는 이제 미니 사신들이 상당히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미니 사신들이 가득한 설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눈으로 만든 커다란 조각상이었다.

산맥 너머를 가리키는 주황 사신의 모습과 산맥을 힘겹게 오르는 황금 사신의 멋진 모습을 표현한 조각이었다.

‘산맥 너머에는 가장 맛있는 푸딩이 있다.’ 였던가?

내가 러시아에 가기 전, 산맥 너머에는 그저 핫초코의 바다뿐이었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조금 웃긴 말이었다.

척 보기에도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주황 사신이 황금 사신을 놀려먹으려고 거짓말을 한 건데, 대충 비슷하게 진실이 되어버리다니.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몇몇 황금 사신들은 이 설원을 샅샅이 뒤지며 ‘환상의 푸딩’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판기 앞에서 더듬이가 삐쭉 솟아오른 황금 사신이 보였다.

그 황금 사신의 품 안에는 한입 베어먹은 설탕 코팅 과일이 있었다.

황금 사신이 이 자판기에서 과일을 처음 먹으면 언제나 비슷한 반응을 보여주곤 했다.

황금 사신은 정말 맛있다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더듬이가 하늘로 치솟아 올라 있었다.

뭐, 햄스터 표 설탕 과일이 맛있긴 하지.

시선을 돌리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과일을 빼앗기고 있는 햄스터가 보였다.

고통스러워하는 햄스터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더니, 자판기 구석에 자그마한 황금색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한 호기심 많은 황금 사신이 내부를 살펴보려고 유령화를 사용한 것이었다.

설탕 과일로 볼이 빵빵해진 황금 사신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식욕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

그렇게 자판기 내부를 몰래 살펴보던 황금 사신은 꼭꼭 숨겨져 있던 햄스터를 발견해 버렸다.

내부 광경에 깜짝 놀란 황금 사신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것처럼 눈을 꼭 감고 양손으로 비비적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왜 저러지?

하지만 황금 사신의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사지가 없어진 채, 묶여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햄스터.

설탕 과일을 빨리 만들어 내라며 날카로운 부리로 햄스터를 찌르는 설탕 플라밍고.

그리고 악덕 사장처럼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히히 웃고 있는 나.

그야말로 귀여운 햄스터 착취의 현장!

그래서 그런지 잔뜩 화가 난 황금 사신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근처까지 다가온 황금 사신은 몹시 화가 난 것처럼 허리춤에 손을 얹고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WlJKZ0NsamtaQ0sveENFK2VoZUwvVU1HMVJKWEdJOUZTejNKTG9JYWtoZw

왠지 그 모습이 귀여워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황금 사신을 보면서 실실 웃고만 있자, 황금 사신이 내 얼굴에 달라붙어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뚜시뚜시.

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웃으며 황금 사신을 양손으로 부드럽게 모아 쥐었다.

그리고 황금 사신을 내 입가로 가져가 황금 사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작은 의지를 전달했다.

‘예린이 목의 상처. 저 햄스터가 한 거야.’

그러자, 황금 사신은 다시 한번 깜짝 놀라서 나와 햄스터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진짜?’

‘응.’

믿기지 않는지, 다시 한번 묻는 황금 사신.

그러고 보니, 사탕 두 개로 장난친 뒤로 황금 사신들이 다시 한번 물어보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네.

뭔가 규칙이 있는 건가?

설마 신용등급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지?

착한 황금 사신이 그런 무서운 짓을 할 리가 없지.

흠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황금 사신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날카로운 이쑤시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

그러더니 햄스터 옆에 서서, 과일을 안 만들면 햄스터 뱃살을 이쑤시개로 콕콕.

그리고 가끔 배고프면 자판기 밖으로 나가야 할 과일을 하나 빼돌려서 냠냠.

그렇게 자판기 종업원이 하나 늘었다.

***

시베리아 사태가 해결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세희 연구소장이나 오예린 연구원, 그리고 회색 사신마저도 기행을 벌이지 않는 평온한 시간.

서아는 그 평온한 일상 속에서 카메라 여러 개를 배치해 두고 뭔가를 찍고 있었다.

평범한 캠코더 화면에는 황금 사신이 즐거운 표정으로 놀고 있는 것이 찍히고 있었다.

부소장실 탁자 위에 앉아서 마치 아이들이 하는 손뼉치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마치 반대쪽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허공에 손을 마주치면서 놀고 있었다.

시선을 돌려서 다른 카메라로 바라보자, 그 장면은 조금 다르게 비치고 있었다.

황금 사신과 새싹 사신이 마주 보고 앉아서 손뼉을 짝짝 치며 놀고 있는 모습이 제대로 보이고 있었다.

‘역시 새싹이는 영체였어.’

서아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현상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새싹 사신은 카메라를 통해서 서아가 바라보고 있는 걸 느꼈는지, 조그마한 혓바닥을 살짝 내밀어 메롱 했다.

그 모습을 본 서아는 그 귀여운 모습에 작게 쿡쿡 웃었다.

새싹 사신 외에도 포착한 사실들은 대단히 많았다.

황금 사신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은 유령화인 경우도 있고,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라던지.

미니 사신들은 다른 카메라랑 달리, 영체 카메라로 찍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있었다.

미니 사신들에게 몰래 다가가서 찍어도 순식간에 감지하고 돌아보곤 했다.

서아는 미니 사신마다 다들 색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었다.

새싹 사신은 주로 메롱 한다던지, 황금 사신은 찍는 순간 일직선으로 뛰어 들어온다던지.

미니 사신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제임스가 영체 카메라를 빌려줘서 다행이야.’

국내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영체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 서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촬영한 자료는 공식적으로 공표할 수 없었다.

비공식적으로 빌린 것들이니까, 드러내지 않는 편이 현명하겠지.

그런 부소장실에서 TV 소리가 작게 울리고 있었다.

[그럼,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벌써 오브젝트가 20년이나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에 별의 축복이 내린 뒤로 계속 그랬습니다.]

[와, 대단하네요.]

사람들이 출입을 꺼리기 시작한 지, 벌써 20년은 지나버린 이탈리아 남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탈리아 인가….’

오브젝트를 배척하는 오브젝트가 있다는 소문이 나서, 수많은 연구자가 들어간 지역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한 지역이기도 했다.

***

세희 연구소 안뜰, 구름 고기 정류장.

그곳에 수많은 미니 사신이 잔뜩 모여서 까맣게 칠해진 구름 고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멋진 동생!’

‘잘 다녀와!’

검은 구름 고기는 세희 연구소에 온 지 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도 애착 인간을 찾지 못한, 보라 사신들을 위한 전용 구름 고기였다.

그 구름 고기 위에는 보라 사신이 하나씩 올라탄 상태였다.

보라 사신은 그런 미니 사신들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망토를 휙 휘날리며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까만 구름 고기들이 천천히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전 세계!

보라 사신에게 어울리는 애착 인간을 찾기 위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