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축복받았다.
아니,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저주받았다.
20여 년 전, 이탈리아 남부에 별의 축복이 내려왔다.
밤하늘을 뒤덮어 버릴 정도로 푸르게 빛나는 별빛이 땅으로 내려왔고, 그 빛에 닿은 오브젝트는 모두 황급히 도망쳐 버렸다고 한다.
전 세계가 오브젝트로 박살 나고 있었지만, 이탈리아 남부에는 그 축복의 순간부터 오브젝트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별의 축복.
하지만 그 뒤로 별의 축복이 내린 땅에 한순간이라도 들어온 사람은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영역 밖으로 나가는 순간, 잿가루가 되어버렸다.
마치 태양 빛에 닿은 뱀파이어처럼.
그래서 별의 저주.
하지만 이 땅에 내려온 진정한 저주는 따로 있었다.
별의 선택을 받은 인간, 그들이었다.
***
깊은 밤, 아름다운 별빛이 보이는 부둣가.
마치 밤하늘에 동화될 것 같은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부둣가 건물 옥상에 올라서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유리에 특별한 처리를 해서 빛을 반사하지 않는 망원경으로 한산해 보이는 창고를 살펴보고 있었다.
‘지키는 사람은 외부에 두 명. 내부에 한 명. 사전에 받은 정보대로로군.’
중요한 물건을 지키는 것 치고는 너무 적다고 할 수도 있는 인원이겠지만, 그 인원에 별의 선택을 받은 자가 포함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다.
오히려 너무 과한 인원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
선택받은 자는 최소 일반인 열 명 정도의 전투력을 가졌으니까.
기습이 아닌 다음에야, 총기로는 선택받은 자의 주변을 지키는 ‘역장’을 뚫기 어려웠으니 그런 교환비가 성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부에 있는 선택받은 자를 저격으로 노릴 수 있는 상황이 온 이상, 의미가 없는 가정이었다.
남자는 소음기가 달린 총으로 세심하게 노려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게 연속적으로 울려 퍼진 뭉툭한 소리는 총 3번.
남자의 손에서 발사된 세 발의 탄환은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목표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사격 실력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숨어있던 옥상에서 내려와, 목표로 한 창고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제 목표로 한 물건을 회수해서 전달하면 이번 의뢰도 끝이로군.’
그렇게 조심스럽게 창고로 다가가던 도중, 근처에 있는 벽에서부터 자신을 향해 길쭉하게 뻗어오는 반투명한 궤적이 보였다.
‘!’
마치 물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보는 것처럼 회전하는 흔적을 보는 순간, 남자는 그 궤적으로부터 몸을 틀었다.
그렇게 몸을 피하기 무섭게, 궤적이 지나간 모든 것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강철로 만들어진 벽을 나선형으로 억지로 비틀고, 그 너머에 있는 콘크리트 벽도 바스러트리면서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궤적이 지나가기 무섭게, 수많은 궤적이 사방을 점거하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궤적을 피해 데굴데굴 구르며, 반대쪽 컨테이너 너머로 숨어들어 갔다.
“그걸 다 피한 거야? 운이 좋네. 총잡이.”
남자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시선을 기준으로 뭔가를 쏘아 보내는 능력.
연사도 가능. 보이지 않는 곳도 대상으로 할 수 있음.
남자가 소문조차 들어본 적 없는 능력인 것을 볼 때, 선택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가능성 높음.
그나저나, 선택받은 자를 두 명이나 투입한 건가?
“솔직히 조금 이해가 안 됐어.”
저벅저벅.
조심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당당한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남자는 상대방의 위치를 가늠했다.
그리고 천천히 건물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습에서나 쓸모 있는 총을 다루는 나약한 놈이 왜 그렇게 고평가되는지.”
남자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높이 쌓인 컨테이너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총구로 적을 노렸다.
상대편도 이런 기습을 예상한 것인지, 순식간에 고개를 돌려왔다.
하지만 남자에겐 고작 고개를 돌리는 데 필요한 잠깐의 시간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역장’이 지켜주고 있어서 그런지, 자신만만한 표정을 한 애송이의 얼굴.
그 애송이의 눈에서 시작된 수많은 궤적이 남자의 온몸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궤적이 실체를 가지기 전에 남자가 쏘아 보낸 총알, 단 한발이 ‘역장’의 빈틈을 뚫고 애송이의 미간을 꿰뚫어버렸다.
***
세희 연구소, 수면실 근처 복도.
“알았어. 갈 테니까. 그렇게 재촉하지 마.”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버린 늦은 시간, 서아는 새싹 사신의 재촉에 이끌려 수면실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새싹 사신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서아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어서 빨리 가자고 재촉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수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수면실 깊숙한 곳에 있는 새싹 사신의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조그마한 화분 위로 은은한 달빛이 내리쬐는 모습은 굉장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그 신비로운 분위기에 취한 것처럼 천천히 화분을 향해 다가가자, 화분 위에 서서 서아를 올려다보는 새싹 사신의 모습이 보였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들어 있는 새싹 사신이 깨어있다니,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화분 새싹 사신이가 깨어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부른 거야?”
서아는 어깨 위에 앉은 새싹이를 향해서 소근소근 말했지만, 새싹이는 고개를 세차게 도리도리 저으며 부정했다.
음?
서아가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화분 새싹 사신이의 새싹에 조그마한 열매가 맺혀있는 것이 보였다.
서아를 제외하고도 몇 명에게 열매를 나눠줬다는 말은 들었었는데, 이렇게 조그마한 열매가 점점 자라나는 장면은 서아도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그럼, 이 열매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이번에도 새싹이는 도리도리.
그리고 새싹이는 서아의 어깨 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영체 카메라를 통통 두들겼다.
‘?’
서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영체 카메라를 통해 화분 새싹 사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
그러자, 서아의 입에서는 당혹스러운 감정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체 카메라를 통해서 바라본 새싹 사신의 품에는 조그마한 무언가가 안겨있었다.
그것은 새싹 사신보다 현격히 작아 보이는 미니 새싹 사신이었다.
안 그래도 작고 앙증맞은 미니 사신들이었는데, 그보다 더 작고 귀여운 아이라니!
갓 태어난 새끼 동물처럼 지켜주고 싶은 감정을 자극하는 미니 새싹 사신이었다.
“이걸 보여주고 싶었구나?”
서아가 그렇게 묻자, 계속 도리도리했던 새싹이는 싱긋 웃으면서 끄덕였다.
서아가 영체 카메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화분 새싹 사신도 카메라를 향해 미니 새싹 사신을 들어 올렸다.
마치 ‘우리 동생 이쁘죠?’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서아는 수첩을 열고 미니 새싹 사신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열매를 먹으면 보이는 새싹 사신 분체는 열매가 생기는 시점부터 이미 생겨나는 것으로 보인다.>
<열매를 먹는 순간 생성될 것으로 생각했던 기존 예측과는 다른 결과였다.>
<지금은 관찰한 바로는 보통의 새싹 사신 분체보다 굉장히 조그마한데, 아마 열매의 성장에 따라서 그 크기가 변화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추후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수첩을 탁하고 닫자, 화분 새싹 사신이 아기 새싹 사신을 안아보라는 것처럼 내밀고 있었다.
조그마한 새싹 사신을 받아서 손바닥 위에 올리자, 미니 새싹 사신은 작은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그런 미니 새싹 사신에게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가자, 마치 인형을 껴안듯이 꼭 껴안았다.
“따뜻해.”
그리고 그 미니 사신을 바라보며, 서아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보라 사신이 애착 인간을 찾아 떠난 때로부터 며칠 뒤.
나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오는 세희 연구소 안뜰에서 어느새 수리된 빛의 검을 휘두르며 놀고 있었다.
저번처럼 망가트리지 않기 위해서, 아동용 플라스틱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가지고 놀고 있었다.
하긴 장난감 칼 같은 것을 성인이 있는 힘껏 휘두르면 당연히 망가져 버리겠지.
나랑 같이 놀고 있는 것은 황금 사신 제5 검.
리치와 체급 차이가 엄청난데도 나름대로 괜찮은 전투가 성립하고 있었다.
내가 크게 한번 휘두르면 제5 검은 몸을 허공에서 마구 회전시키며 내 검격을 받아내었다.
마치 회전하는 야구공처럼 빙글빙글.
그럴 때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검신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따라 해 보려고 했지만, 육체 활동에 재능이 없는 이 몸으로는 무리였다.
고속으로 회전하기는커녕, 한 바퀴도 돌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인간이었을 때는 나름대로 운동할 줄 알았으니까, 분명 이 ‘회색 사신’의 몸이 문제인 거겠지.
이 검을 고쳐준 연금술사는 안뜰 구석에 앉아서 제임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임스는 연금술사를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미심쩍어하는 것 같았는데, 돌로 만들어진 색 아귀를 본 순간 굉장히 친근한 태도로 바뀌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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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0호 서적이라는 책을 펼쳐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 연금술사가 0호 서적에 적힌 언어를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격앙된 것으로 보였다.
나도 두 명의 의기투합에 조금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돈이 많고 규모가 큰 것들을 잔뜩 만들 수 있는 제임스.
돈이 없어서 조그마한 것밖에 못 만들지만, 오브젝트에 가까운 물건을 만드는 연금술사.
저 두 명의 조합이면 메카-티라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미 황금 사신들을 이용해서 작전을 진행 중이었다.
히히.
***
세계 여러 곳으로 흩어진 보라 사신 중 하나는 굉장히 꺼림칙한 기운을 풍기는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통의 오브젝트였다면 다가가지도 않았겠지만, 격이 높은 보라 사신은 그저 조금 참는 것만으로도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쫓아내려는 기운에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보라 사신 에너지가 채워지니, 일석이조였다.
보라 사신은 거기서 한 남자를 발견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처럼, 표정이 굳어버린 남자였다.
그 딱딱한 표정에는 보라 사신의 취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보라 사신은 자신의 조그마한 손바닥을 펼치며, 황금 사신이 알려준 애착 인간 합격 기준을 대입하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의 조건은 두 가지뿐이었다.
50% 이상 인간일 것.
사악한 인간이 아닐 것.
저 남자는 순수한 인간이니, 합격.
게다가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려는 사악한 느낌도 없으니까, 합격.
합격?
하지만 너무 간단한 것 같아서, 보라 사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해.
그래서 보라 사신은 자기 눈으로 판단하려는 생각에 남자의 뒤를 몰래 쫓아가며, 관찰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