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희 연구소 깊숙한 곳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문신투성이 연금술사와 제임스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해석한 오브젝트와 연금술사 입장에서 해석한 마도서의 정보 교류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런가, 모든 ‘오브젝트’는 아무리 인간에게 호의적이라도 인식이 뒤틀려서 결과적으로 해롭게 변해버린다는 건가.”
제임스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연금술사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 말을 들은 연금술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정신력이 강하면 반항 정도는 할 수는 있겠지만, 의미 있는 저항은 불가능해.”
아무리 저항해 봐야, 인식 자체가 뒤틀려 버리니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연금술사 입장에서는 그저 정신 오염 억제제를 먹고, 정신 오염이 심해지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도구형 오브젝트들도 결국 해롭게 변해버리는 건가?”
제임스는 영체를 비추는 수정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거야. 탄생한 순간부터 사악한 도구는 꽤 많지만, 변질되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어.”
연금술사는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리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연금술’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 들여다보면, 탄생 순간을 극도로 제어한 순수한 도구형 마도서에 가깝지.”
제임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들으니까 확실해지는군. 확실히 오브젝트에게만 정신 오염을 뻗는 무언가가 있어 보여.”
제임스는 대부분의 오브젝트는 ‘정신 오염’에 침식된 상태라는 보고서를 흔들며 말했다.
연금술사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별 의미를 갖기 힘든 보고서였다.
“하지만 자아를 가진 오브젝트의 정신 오염의 정도를 도식화하기 힘들던데, 그쪽 세계에서는 어떻게 판단했지?”
제임스는 특급 오브젝트가 정신 오염에 강력하게 침식된 경우와 굉장히 약한 오브젝트가 정신 오염에 거의 침식되지 않은 경우를 비교하며 물었다.
그에 대한 연금술사의 답은 간단했다.
아무리 억제제를 먹어도 어느 순간 인식이 뒤틀렸던 것처럼.
마치 악마의 눈에 드는 순간, 무력한 인간은 끝장이 나는 것처럼.
그저, ‘운’이라고.
***
정말 행복했다.
황금 아귀 사신은 정말로 행복했다.
연구원의 집에 도착해서는 맛있는 음식을 같이 나눠 먹었고.
그 뒤에는 품에 안겨 깜박 잠들어 버릴 정도로, 연구원은 끊임없이 황금 아귀 사신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같이 앉아서 TV를 보고, 같이 웃고.
마지막에는 연구원이 읽어주는 동화책을 들으며 잠이 드는 완벽한 하루였다.
하지만 황금 아귀 사신은 깊은 밤, 잠에서 깨어버렸다.
은은한 달빛이 내리쬐는 조그마한 원룸.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든 연구원.
다시 연구원의 품 안에 파고들고 잠이 들어야 했지만, 하늘에서 붉은 별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자, 그 천장 너머에는 붉게 빛나는 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별빛은 점점 퍼져나가, 세계를 붉게 물들여 버렸다.
그렇게 붉게 물든 세계에서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
[….]
[….]
마치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 소리처럼, 흐릿한 속삭임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이상하게 머릿속에 남아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소리는 분명한 언어가 되었다.
[인간을 죽여.]
하지만 황금 아귀 사신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건 자신이 태어난 염원과는 반대되는 것이라고 거부했다.
태어난 순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은 황금 사신처럼 인간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주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그러자, 붉은 목소리는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
황금 아귀 사신에게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러자, 붉은 목소리는 단언했다.
인간을 죽이는 게, 사랑을 주는 것이라고.
아니야!
황금 아귀 사신은 마음속으로 크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침대맡에 놓인 거울 속에, 황금 아귀 사신의 모습이 비쳤다.
하지만 그곳에는 더 이상 황금 아귀 사신의 모습이 비쳐있지 않았다.
***
보라 사신은 모습을 드러낸 근육질 남자, ‘레킹 볼’을 바라보며 분노를 표출했다.
해로운 오브젝트!
순수한 인간인 노인을 죽인 오브젝트!
그리고 애착 인간에게 적의를 표현하는 오브젝트!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저 ‘레킹 볼’은 그야말로 인간에 대한 악의로 가득 찬 최악의 오브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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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그림자로 썰어버리려고 했지만,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려 보라 사신의 질주를 막아섰다.
아무 말도 없이 묵묵하게.
마치 내 싸움이니, 나에게 맡겨달라는 표정으로 보라 사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남자는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고는 천천히 ‘레킹 볼’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보라 사신은 왠지 멋있는 남자의 모습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 갔다.
하지만 숨어들어 가면서도 시선은 해로운 오브젝트에서 떼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해로운 오브젝트 너머, 푸르게 빛나는 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
남자는 ‘선택자’가 아니었다.
그저 여동생이 남기고 간 별의 조각으로 의안을 만들어 낀 일반인.
여동생을 기리고자 만들었던 의안이었지만, 그 의안은 마치 오브젝트처럼 ‘선택자’들이 다루는 힘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청부업을 시작한 그에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리 멀고, 맞추기 힘든 목표라도 총으로 신속하게 저격할 수 있는 능력.
그 하늘이 내려준 재능과 의안을 통해 보이는 광경이 합쳐지자, 마술 같은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탕탕.
남자는 허공을 향해 총을 쏘았다.
목표는 하늘을 드론처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쇠공도 아니었고, 바닥을 밭처럼 갈아엎으며 날아오는 쇠공도 아니었다.
그 쇠공을 붙잡은 힘의 흐름, 그리고 그 흐름에서 가장 취약해 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흉흉한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다니던 쇠공은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고, 바닥을 파헤치던 쇠공은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멈춰버렸다.
“마… 말도 안 돼!”
벌써 6개째의 쇠공이 ‘레킹 볼’의 제어를 벗어나 버리자, 당당해 보였던 ‘레킹 볼’의 표정에서 점점 공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레킹 볼’의 주변을 공전하며 그의 몸을 지키는 쇠공 2개뿐.
남자는 새로운 담배를 빼어 물고는 권총을 들고 정밀 조준을 시작했다.
“겨우 그런 쇠공으로 총알을 막을 수 있겠어?”
마치 선풍기처럼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쇠공의 흐름.
그리고 ‘레킹 볼’의 전신을 보호하는 역장의 흐름.
그 두 개의 틈이 일치하는 순간, 남자는 방아쇠를 당겼다.
***
점심시간이 되어서 사람들로 굉장히 북적이는 세희 연구소 안뜰.
나는 곤히 잠든 예린이의 품에 안겨,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린이가 요즘 꽤 피곤해 보이네.
황금 사신들의 호출로 예린이의 집에 갔을 때, 나랑 똑같이 생긴 인형을 선물해 준 뒤로 계속 그랬다.
인형에 입힐 옷을 구한다고 동분서주하던 걸 생각하면, 인형에게 옷을 입히고 노느라 그런 것으로 보였다.
저번에 확인했을 때는 정말 산더미처럼 많은 옷을 리스트에 추가하고 있었다.
모자, 신발, 상의, 하의, 바지, 치마, 속옷.
리스트만 봐도 무지 끔찍했다.
그래도 그걸 내가 입지 않고 인형이 대신 입게 되었다니, 정말 좋은 일이었다.
인형에게 옷을 입히며 놀아서 그런지, 예린이가 생산하는 장작의 양도 꽤 많이 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선물해 줄 걸 그랬네.
히히.
나는 눈을 감고 따뜻하게 퍼져오는 장작의 온기를 느꼈다.
그리고 예린이가 내 더듬이를 냠냠 먹고 있는 것도 같이 느껴졌다.
‘주인!’
그렇게 휴식을 만끽하고 있는 나에게, 아귀 사신이 다가왔다.
아귀 사신의 품에는 황금색의 오브젝트가 안겨있었다.
황금 사신처럼 따뜻해 보이는 황금색.
빨갛게 빛나는 안광.
그리고 지금도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있는 황금 사신의 몇 배나 되는 크기.
자신을 황금 사신이라고 속이는 미약한 정신 오염을 뿜어내는, 이리저리 일그러진 오브젝트.
그리고 그 존재감은 미니 사신들에게도 명백하게 느껴지는지, 모두 고개를 돌려서 아귀 사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오브젝트를 보자마자, 의지를 뿜어내었다.
‘으악, 해로운 오브젝트다!’
아마 아귀 사신이 안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황금 사신이 당장 달려들어서 찢어버릴 정도로 해로운 오브젝트였다.
도대체 왜 저 오브젝트를 나에게 데려온 걸까?
아, 설마 그 오브젝트가 애착 인간을 다치게 했으니, 괴롭혀달라고 데려온 건가?
흠흠.
내가 고문과 장난에는 일가견이 있지.
아귀 사신이 할 부탁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하는 순간, 아귀 사신에게서 들려오는 의지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주인, 이 오브젝트를 치료해 줘.’
아귀 사신이 뿜어낸 의지는 정말 절박해 보이는 염원을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