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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9

나는 예린이의 품에서 나와, 나를 절박하게 바라보는 아귀 사신과 마주 섰다.

해로운 오브젝트를 품 안에 안고, 치료해달라며 간절한 시선을 보내는 아귀 사신.

그리고 그 품에 안긴 작고 해로운 오브젝트.

나는 아귀 사신이 안고 있는 해로운 오브젝트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황금색의 오브젝트는 당장 찢어 죽여도 괜찮을 정도로 상당히 해로워진 상태였다.

특이한 점은 딱 하나.

이미 무차별적으로 주변 인간을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보였지만, 그저 아귀 사신의 품에 안겨 가만히 있는 점이 조금 특이했다.

하지만 나에게 치료를 바라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장작을 집어넣어서 치료해 달라는 건가?

내가 가진 장작은 내 권속이나 인간에게는 이롭지만, 다른 오브젝트에게는 굉장히 해로울 텐데?

저런 절박한 표정으로 고통스럽게 태워서 죽여 달라는 뜻은 아닐 것 같았다.

아!

생각보다 어려운 수수께끼였지만, 나의 뛰어난 두뇌는 아귀 사신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냈다.

이 오브젝트는 망가졌으니, 새로운 오브젝트를 만들어 달라는 뜻이구나!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나는 한쪽 손에 미궁의 헤일로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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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특별 서비스였다.

헤일로를 쓰면 아프기도 엄청 아팠지만, 미궁의 헤일로로 ‘오브젝트’를 만드는 것은 장작이 엄청 많이 필요했으니까.

‘야광 티라노’ 정도로 중요한 일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사용법이었다.

‘이건 이미 늦었으니, 새로 만들어 줄게!’

통 크게 헤일로까지 써주겠다고 말했으니, 감동했겠지?

하지만 기뻐할 것으로 생각했던 아귀 사신의 표정은 내가 기대한 표정과는 전혀 달랐다.

힝.

***

쇠공으로 완전히 난장판이 된 뒷골목에서 남자는 쓰러진 ‘레킹 볼’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잠깐 담배를 태우던 남자는 담배를 밟아서 꺼버린 뒤, 뒤편의 가게를 향해 돌아섰다.

‘….’

그리고 남자는 자신의 편의를 봐주던 노인에게 짧은 애도를 표한 뒤, 바쁘게 뒷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자신이 비상시를 대비해서 개인적으로 만들어 둔 안가.

조직에서 마련해준 안가는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노인의 죽음과 ‘레킹 볼’의 습격.

‘조직’이 자신을 노리기 시작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한곳에서 오래 머무는 것도 금물.

조직의 ‘선택자’ 중에는 분명 추적의 능력을 가진 녀석도 있을 테니까.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해 둔 돈은 충분했지만, 가혹한 생활이 이어지겠지.

‘조직’의 암수를 피해 가며, 조직이 자신을 노리는 이유와 여동생이 죽은 이유를 찾아야 하니까 말이다.

‘….’

하지만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남자는 편안한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 고소한 냄새가 안가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부엌을 보자, 남자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 보라색 오브젝트.

어느 순간부터 계속 따라오기 시작한 보라색 오브젝트는 그림자를 마치 자기 손발처럼 다루며 토스트를 굽고 있었다.

그 녀석의 옆에는 요리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보라색 녀석은 주변 경계와 식사 준비 등 여러 가지 필요한 일들을 대신 해주었다.

덕분에 도주 생활 중인데도, 해결사 노릇을 하던 시절보다 훨씬 좋은 컨디션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겨우 손바닥만 한 오브젝트면서 웬만한 ‘선택자’보다 강해 보이고, 인간에게 우호적인 오브젝트라니?

설마 요즘 별의 축복을 받은 땅 바깥에는 저런 오브젝트가 돌아다니고 있었던 건가?

그래서 그 정체가 궁금해져서 찾아보기 시작하자, 저 오브젝트의 정체는 생각보다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한국’이라는 곳에서 꽤 유명한 오브젝트였으니까.

‘회색 사신’이라는 특급 오브젝트의 파생 오브젝트, 보라 사신.

저 보라색 오브젝트는 ‘특급’이라고 분류될 정도로 흉흉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는 시선을 줄 때마다, 헤실헤실 웃는 귀여운 녀석으로 보일 뿐이었다.

***

점심시간이 지난 늦은 오후.

조금 전까지 화창했던 날씨가 무색하게 어두운 구름으로 하늘이 가려지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세희 연구소.

아귀 사신은 그 빗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저, 품 안에서 고통스럽게 떨고 있는 작은 오브젝트를 위해서 달리고 있었다.

회색 사신은 아귀 사신의 요청을 이뤄주지 못했다.

물질 창조가 가능한 헤일로로도 정신 오염 치료는 불가능했다.

그저 새로운 오브젝트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뿐.

게다가 이 작은 오브젝트는 너무나도 존재감이 약해서, 회색 사신이 직접 파괴하더라도 미니 사신 정원에서 부활할 확률이 굉장히 낮다고 했다.

‘괜찮아. 아직 방법이 있을 거야.’

아귀 사신은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품 안의 오브젝트를 내려다보면서 의지를 되뇌었다.

그런 아귀 사신의 머리 위에는 회색 사신에게 빌린 능력 무효화의 헤일로가 얹어져 있었다.

황금색 오브젝트의 정신 오염이 너무 심해져서, 더는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회색 사신에서 유래하지 않은 모든 능력을 차단하는 헤일로는 다행히 정신 오염의 진행도 상당히 늦춰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귀 사신은 품 안의 오브젝트를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계속 안심시켰다.

‘괜찮을 거야.’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하지만 아귀 사신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희망도 무너져 내렸다.

커다란 젤리 돼지의 병원 위에서 검은 사신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검은 사신은 병원에서 부활 의식을 치르기에는 황금 아귀 사신이 너무 약하다고 했다.

황금 아귀 사신보다 훨씬 강한 금발 소녀도 위태로운 상태인데, 황금 아귀 사신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오염 정도도 너무 심해서, 의식을 치르는 순간 죽어버릴 거라고 했다.

그렇게 아귀 사신의 모든 수단은 실패해 버렸다.

‘….’

아귀 사신은 오브젝트를 품에 안은 채, 세희 연구소 안뜰에 앉아 있었다.

굉장히 얇은 빗줄기가 바람에 날리며 추적추적, 고요한 안뜰.

아무도 없어서 텅 비어버린 데다가, 빗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 적막한 안뜰이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태양을 좋아하는 황금 사신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비를 좋아하는 푸른 사신만이 정원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서 아귀 사신 쪽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마워.’

조그마한 의지가 아귀 사신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헤일로의 하얀 불길에 휩싸인 황금색 오브젝트가 빨갛게 깜빡이는 눈으로 아귀 사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꿈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인간이랑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황금 아귀 사신은 약간 아쉬워하며 미소 지었다.

아귀 사신은 황금 아귀 사신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직 시간이 있을 거야. 애착 인간을 데리고 미니 사신 정원으로 놀러 가자.’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많잖아? 미니 사신 정원에는 괜찮은 풍경이 가득해.’

아귀 사신은 품 안을 내려다보며, 아직 인간들이 가보지 못한 미니 사신 정원의 풍경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마시멜로의 평원.

달콤한 향기가 풍기는 핫초코의 바다.

즐거운 미궁이 존재하는 흑설탕의 사막.

여러 가지 색의 사탕이 지층을 이룬 산맥.

그리고 그 너머, 빙수의 설원까지.

아귀 사신은 황금 아귀 사신에게 미니 사신 정원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해 주었다.

황금 아귀 사신의 눈에 작은 빛이 스쳐 지나갔다.

‘빙수의 설원에는 한번 가보고 싶어.’

황금 아귀 사신은 인간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덧붙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작게 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마치 건전지가 다 떨어진 인형처럼, 웃는 표정 그대로.

황금 아귀 사신의 정신 오염을 끊임없이 태우던 하얀 불길도 사그라들었다.

마치 그 생명의 불길이 다한 것처럼.

비가 쏟아지는 안뜰에서 아귀 사신은 아무런 의지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황금 아귀 사신의 차가워진 몸을 꼭 끌어안은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빗방울이 아귀 사신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아귀 사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빙수의 설원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안뜰에, 아귀 사신의 발자국만이 외로이 찍혀있었다.

***

미니 사신 정원에 위치한 설원 구석에 조그마한 무덤이 새로 생겨났다.

어떤 오브젝트의 시체 없는 무덤.

파괴 조건을 채워서 분해되어 버린, 작고 약했던 오브젝트의 무덤이었다.

언제나 밝은 빛이 내리쬐는 설원이었지만, 이 무덤 근처만큼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무덤 앞에는 우울한 표정으로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은 아귀 사신이 있었다.

‘정원 밖으로 나가게 만든 게, 잘못이었어.’

‘미안해.’

그런 아귀 사신 주변으로 황금 사신들이 힘내라며, 설탕 코팅 과일들을 하나씩 두고 떠났지만, 아귀 사신은 하나도 먹지 않았다.

***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조그마한 방 한 칸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보라 사신은 그런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얕게 잠이든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히히.

보라 사신은 행복한 것처럼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요즘 겪은 수많은 일들은 보라 사신을 정말 즐겁게 만들었다.

‘레킹 볼’과의 전투도 멋졌지만, 소모된 총알을 사들이는 과정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어떤 공원 벤치에 오래된 신문을 펼치고 앉아 있으면, 반대편 벤치에 수상한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남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보이는 암호를 읊으면, 수상한 사람은 들고 온 신문지를 두고 벤치를 떠났다.

그리고 그 돌돌 말린 신문지 속에는 총알이 들어있는 식이었다.

‘멋있어!’

그렇게 즐거워하던 보라 사신의 얼굴에는 어느새 약간의 근심이 깃들었다.

보라 사신이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보자, 거대한 푸른 별빛의 거인이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들은 물론, 평범한 오브젝트도 보지 못하는 거대한 존재.

나날이 그 크기가 커져만 가는 푸른 별빛의 거인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밤마다 나타나고 있었다.

보라 사신은 조그마한 자기 주먹을 내려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괴물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그 순간 거대한 거인의 얼굴이 보라 사신이 있는 곳으로 쭉 내려오기 시작했다.

‘!’

불길한 푸른 별빛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뭔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지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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