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치 콘서트장처럼 꾸며진 격리실 의자에 앉아,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를 감상하며 어떤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의 대상은 아귀 사신과 황금색 해로운 오브젝트.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 오염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었다.
일명 ‘해로운’ 오브젝트로 변해가는 현상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미니 사신들이나 장작들은 그 오염에 면역이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오브젝트가 걸리는 정신 오염은 조금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첫째, ‘해로워지는’ 정신 오염은 절대 되돌릴 수 없었다.
시간을 아무리 뒤로 돌려도, 과거가 뒤바뀐 것처럼 정신 오염은 ‘이미 걸린 상태’였다.
정신 오염에 걸리기 전의 모습을 신경 써서 기억해 두지 않았다면, 실제로 내 인식도 뒤틀려서 ‘원래부터 그랬던 것’으로 느껴졌다.
둘째, 인과 관계도 불명확했다.
원인이 없이 생겨난 결과물처럼, 어느새 발생해 있었다.
주황 사신의 능력으로 확인했을 때, 발생할 확률이 전혀 없었어도 발생한 경우가 있었고, 100% 발생할 것으로 보여도 발생하지 않을 경우가 있었다.
뒤죽박죽 섞여버린 인과 관계와 시간의 흐름.
나는 그런 현상을 하나 알고 있었다.
색채 우주와 그곳에서 찾아온 붉은 괴인이 일으킨 현실 침식이었다.
외부에서 온 신과 같은 존재들, 외신이 일으킨 현실 침식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으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격리실 중앙에 놓인 피아노 위에서 날뛰고 있는 파란 도마뱀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굉장히 희미하게 느껴지는 ‘해로운’ 기운.
황금 사신도 그냥 무해한 오브젝트로 취급하는 정도의 작은 오염이 느껴졌다.
도마뱀은 강해서 오염이 잘되지 않는 걸까?
사실 도마뱀은 공격 능력이 없을 뿐, 무한히 부활하고 분신술까지 사용하는 상당히 강한 오브젝트였다.
뭐, 사실 파괴 조건이 복잡한 시점에서 꽤 강력하다는 뜻이니까.
나는 그대로 시선을 내려서, 품 안에 안긴 유령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의 파괴 조건은 확인하지 않았지만, 대충 느끼기에도 고양이는 상당히 약한 오브젝트였다.
아마 유령화만 돌파할 수 있으면 새끼 고양이처럼 쉽게 파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유령 고양이도 파란 도마뱀처럼 오염이 심하지 않았다.
‘넌 왜 멀쩡하니.’
고양이는 내가 괜히 시비를 건다고 생각했는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뺨으로 고양이 펀치를 날렸다.
확실히 정신 오염을 살펴볼수록 색채 우주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긴 했다.
그렇다면 색채 우주에 아귀 사신의 애착 오브젝트를 되살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아니, 분명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내 흐릿한 기억 속에 조그마한 단서가 하나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미니 사신 중에서 ‘색채 우주’와 관련된 기운을 관측했던 녀석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녀석이 누군지 기억해 내기 위해서,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
그야말로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빛의 거인이 건물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라 사신은 그 거인이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최대한 존재감을 억누르고 몸을 작게 말았다.
‘흡.’
그리고 작은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리고, 숨을 참는 것처럼 볼을 부풀렸다.
보라 사신 생각에 저 푸른 별빛의 거인은 자신을 찾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거인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은 모든 오브젝트를 쫓아내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분명 그렇겠지.
그 내쫓는 기운 덕분에 보라 사신의 힘도 계속 차오르고 있었지만, 그 때문인지 저 거인도 보라 사신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WlJKZ0NsamtaQ0sveENFK2VoZUwvVm5naENlTWZOU284OW4zYzRaYmlYUg
엄마, 불러야 하나?
보라 사신은 두 눈을 가린 상태로 고민을 시작했다.
애착 인간이랑 계속 단둘이서 오붓하게 여행을 다니고 싶은 마음.
애착 인간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빨리 엄마를 부르고 싶은 마음.
매번 부족했던 에너지가 계속 차오르고 있으니, 왠지 싸워볼 만한 것 같은 기분.
그 세 가지가 마구 뒤섞여 결론을 내리기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보라 사신을 찾고 있었던 거인은 아침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점점 거인의 추적이 가까워지고 있어.
어떡하지?
보라 사신은 잠에서 깨어날 것 같은 애착 인간을 위한 아침밥을 준비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
남자는 아침으로 간단한 빵과 햄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즐기며, 노인이 남겨준 41번 보관 장소에 있던 파일을 해석하고 있었다.
암호화된 USB라서 해독에 시간이 꽤 걸렸다.
하지만 남자에게 남겨줄 목적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해독할 수 없거나 엄청나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삐.
컴퓨터에서 해독이 끝나자,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내용물이 화면에 표시되기 시작했다.
<이 파일이 자네에게 넘어갔다면, 나는 이미 죽어버린 거겠지.>
이러한 문장으로 시작한 문서는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노인은 ‘조직’의 일원으로서, 지금 남자에게 했던 것처럼 그의 여동생을 담당했었다는 것.
그의 여동생이 무엇을 조사하고 있었는지.
거기에 지도와 함께, 여동생이 마지막으로 향했던 위치가 적혀있었다.
<마지막으로 미안하네.>
<진작에 알려줬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어.>
그리고 글의 마지막에는 젊은이의 목숨이 의미 없이 스러지는 것이 안타까워 차마 알려주지 못했다는 사과와 그 장소에 대한 경고가 담겨있었다.
“드디어…!”
남자는 지도에 표시된 위치를 톡톡 두들기며, 여동생의 최후 목적지를 알아냈다는 생각에 들뜬 목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남자는 지도에 너무 집중해서 그런지, 그의 어깨 위에서 지도를 구경하고 있는 보라 사신의 경악한 표정을 보지 못했다.
‘푸른 별빛의 거인이 나타나는 곳!’
지도에 표시된 위치는 푸른 별빛의 거인이 밤마다 솟아오르는, 불길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
세희 연구소의 점심시간.
작은 사진을 들고 뭔가를 찾아다니는 연구원이 있었다.
“이 오브젝트를 보신적 있으신가요?”
사진 속에 담긴 것은 조그마한 방석 위에 누워서 잠이 든 황금 아귀 사신의 모습이었다.
연구원은 마치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으려는 것처럼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황금 아귀 사신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오브젝트를 걱정하다니.
전혀 필요 없는 걱정 같았지만, 어째서인지 연구원은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기억이 애매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존재를 잊지는 않았지만, 귀엽고 상냥했던 모습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렇게나 귀여웠는데.
그렇게나 즐거웠는데.
앞으로도 같이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자연스럽지 않아.’
연구원은 결국 세희 연구소 안뜰에 누워있는 미니 사신들에게까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도리도리.
하지만 안뜰에 잔뜩 있는 검은 사신들도, 황금 사신들도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할 뿐이었다.
“이 아이를 본 적 있어?”
연구원의 질문에 한 검은 사신이 살짝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그 검은 사신은 다른 미니 사신을 향해 가는 연구원의 등을 약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마시멜로 오두막.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귀 사신은 푸른 소녀가 누워있는 오두막에 찾아와서 푸른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콕콕.
황금 아귀 사신이 죽어버려서 슬픈 아귀 사신은 푸른 소녀의 뺨을 찌르며,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떤 소년과 진화액에 닿아서 죽어버린 강아지와 관련된 기억이었다.
그때 주인은 시체를 갈아서 수호자를 만들어버렸었지.
소년이 더 이상 슬퍼하지 않도록, 아귀의 얼굴 대신 썩어 문드러진 강아지의 얼굴이 달린 기괴한 수호자였다.
그런 걸 보면, 지금 납 인형 속에 있는 것은 예전 주인이 맞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못하는 일은 그냥 못한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푸른 소녀의 곁에서 기억을 되새김질하던 중, 갑자기 오두막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여기 있었네!’
히히, 웃고 있는 주인이었다.
‘해결 방법을 찾았으니까, 빨리 가자!’
굉장히 들뜬 표정으로 아귀 사신의 손을 잡아끄는 회색 사신을 보며, 아귀 사신은 좀 커다란 불안과 조그마한 희망을 품으며 따라나섰다.
***
지도에 표시된 곳을 찾아가자, 남자를 반겨준 것은 너무나도 짙고 푸른 안개였다.
건물들 사이를 지나치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안개는 자신의 발밑도 겨우 보일 정도로 짙었다.
도시 한복판에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안개 때문인지, 보라 사신은 굉장히 긴장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안개 속을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여동생이 남긴 메모가 떠올랐다.
<‘별이 떨어진 곳’에 가야 해.>라고 적힌 간단한 메모.
물론 남자는 그 메모를 보자마자, ‘별이 떨어진 곳’이라고 알려진 곳에 갔었다.
당연히 별의 축복이 시작된 것으로 유명한 공원 광장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여동생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분명해. 여기가 진짜 ‘별이 떨어진 곳’이겠군.’
안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이곳이 진짜 ‘별이 떨어진 곳’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오브젝트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선택자’라는 오브젝트에 가까운 존재들을 만들어 낸 별.
그 별이 떨어진 곳이 그 공원처럼 평범할 리가 없었다.
푸른 빛을 띤 안개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푸르게 빛나는 나비가 갑자기 나타나, 삭아버린 번데기 속으로 돌아가더니 죽어버린다던지.
남자가 남기는 발자국이 뒤에는 없고 앞에만 남아있다던지.
‘….’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어질 만큼 꺼림직한 일들이 잔뜩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던 남자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빠.]
마치 귓가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생한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안개 깊숙한 곳에서 여동생처럼 보이는 실루엣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