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구름과 구분하기 힘든 ‘구름 고래’를 이용해서 다녀오면 들키지 않을 거라는 회색 사신의 생각과 달리, 구름 고래가 오브젝트를 싣고 날아오르자, 전 세계가 난리가 났다.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구름 고래가 탄생한 순간부터, 수많은 인공위성과 카메라가 추적하고 있었다.
전 세계 각국의 뉴스는 구름 고래의 현재 위치와 속도 그리고 예상 목적지를 뉴스 속보로 보내줄 정도였다.
그중에서 가장 난리가 난 곳은 한국, 그중에서도 세희 연구소였다.
“오예린 어딨어!”
<사신이랑 소풍 갑니다. 찾지 마세요.>라고 적힌 쪽지 하나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 예린을 찾는 김중뢰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언제나 사람이 북적였던 세희 연구소 휴게실에는 아무도 없이 TV 소리만이 쓸쓸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방금 들어온 속보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현재 서울에 위치한 세희 연구소에서 나타난 거대한 구름 고래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구름 고래의 목적지는 거대한 거인이 나타난 ‘이탈리아 남부’로 예상됩니다.]
[이에 이탈리아 정부는 이 전례 없는 상황에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한국 협회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 이례적인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와 과학자들은 구름 고래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국제 사회의 협력을 통해 대응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 보도를 통해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TV의 모든 채널에서는 거대한 구름 고래에 대한 속보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라면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세희 연구소 직원들은 사무실에 모두 착석해 있었다.
세희 연구소는 온갖 곳에서 몰려드는 전화로,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와 통화 소리로 가득했다.
전화를 받고, 전화를 걸고, 굉장히 바쁘고 허둥지둥하는 연구원들.
그런 연구원들에게 달콤한 간식을 가져다주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황금 사신들.
구름 고래 사태로 어수선한 세희 연구소의 모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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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 연구소처럼 이탈리아 또한 난리가 나고 있었다.
수많은 전투기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인공위성과 드론들을 활용해서 구름 고래의 움직임에 예의 주시를 하고 있었다.
어느새 이탈리아 근처에 도달한 구름 고래 근처로,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전투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론 이탈리아 협회와 정부는 전투기들로 뭔가를 할 수도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비상사태를 대비하고,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다.
황금 사신들은 그런 전후 사정은 몰랐지만, 마냥 즐겁기만 했다.
‘인간!’
이런 높은 곳에서 인간을 본 것이 신기한지, 황금 사신들은 고래 등위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심지어 어떤 황금 사신은 검은 사신에게 자신을 던져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검은 사신 발리스타로 발사된 황금 사신은 전투기 유리창에 착 달라붙어서, 히히 웃었다.
말랑말랑한 뺨을 유리창에 꼭 붙이고, 안을 자세히 살펴보려는 것처럼 눈을 들이대는 황금 사신.
황금 사신이 달라붙은 전투기 조종사는 굉장히 놀랐을 텐데, 다행히도 침착하게 비행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전투기들도 이탈리아 남부로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았다.
남부 근처에 들어서기 무섭게, 흩어지는 전투기들.
황금 사신들은 그런 전투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아쉬운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렇게 초대형 구름 고래는 이탈리아 남부에 도착했다.
***
애착 인간을 1초라도 눈에 더 담으려고 노력하던 보라 사신의 감각에 거인의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약해진 보라 사신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동쪽의 먼 하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거인.
대신 보라 사신과 애착 인간의 주변에는 굉장히 해로운 기운을 풍기는 오브젝트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애착 인간의 여동생처럼 녹이 슨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이었다.
‘레킹 볼’이라고 불렸던 남자를 포함해서 정말 많은 수의 오브젝트가 둘러싸기 시작했다.
“지금 저승에 와 있는 건가? 전부 내가 죽인 녀석들이로군.”
애착 인간은 주변을 둘러싼 오브젝트들을 보더니, 허탈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보라 사신은 남은 그림자를 그러모아, 애착 인간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치덕치덕 덧붙이기 시작했다.
‘공간 이동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1분이라도 더 살아남을 수 있기를.
1초라도 더 살아남을 수 있기를.
그리고 애착 인간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해 줄 수 있기를.
힘을 쓰면 쓸수록 녹슨 금속처럼 부스러지는 자기 몸을 내려다보면서, 보라 사신은 작은 염원을 품었다.
그 순간, 남자가 보라 사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만해라.”
짧고 간결한 말이었지만, 이제까지와 달리 따뜻한 걱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 상냥한 목소리를 듣자, 보라 사신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웃음을 흘렸다.
히히.
보라 사신은 애착 인간의 손바닥 위에 앉아서 그의 감정과 손길을 만끽하며, 해로운 오브젝트들이 공격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멋있고, 꽤 괜찮은 최후야.
거인에게 당한 상처는 낫지 않으니까.
아마 지금 죽으면 부활하지 못하고 영원히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애착 인간이 죽고, 혼자만 살아남는 것보단 훨씬 괜찮은 마지막이야.
그리고 보라 사신은 거대한 쇠공이 날아오는 마지막 순간, 애착 인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의연한 표정의 남자를 보면서, ‘역시 멋있어.’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마지막 순간이 와서야, 보라 사신에 대한 꺼림칙함을 떨쳐낼 수 있었다.
언제나 한결같이 자신을 위하던 녀석이었는데, 그저 오브젝트라는 이유만으로 밀어내다니.
‘나답지 않았군.’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서라도, 그것을 깨달았으니 괜찮았다.
그리고 그토록 알고자 했던, 여동생의 죽음도 명확해졌다.
이제, 괜찮겠지.
나름대로 인생에 결말을 내리는 순간, 하늘에서 쇠공을 자르는 보라색 섬광이 떨어져 내렸다.
‘!’
그 순간 보라 사신은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뜨더니, 굉장히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남자의 손 위에 있는 보라 사신과 똑같이 생긴 보라 사신들이 그림자 망토를 휘날리며, 남자를 지키듯이 서 있었다.
정말 똑같이 생겼지만, 이상하게도 남자는 자신의 보라 사신과 다른 보라 사신들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남자의 손바닥 위에 있던 보라 사신은 안심한 표정으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이제 살았어!’라고 외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순간, 안개를 모두 찢어발기는 황금색 빛줄기가 하늘에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안개가 걷히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구름 고래가 보였다.
그 거대한 고래 위에서 무수히 많은 황금색 광선이 뻗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오브젝트가 고래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먼지처럼 쏟아져 내리는 미니 사신들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공룡과 멧돼지 그리고 하얀색 정체불명의 덩어리까지.
그 오브젝트들은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선택자’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오브젝트가 없는 이탈리아 남부에는 이런 말이 종종 나오곤 했었다.
<‘선택자’의 위력적인 초능력은 특급 오브젝트에 비견할 만하다.>
‘터무니없는 망상이었군.’
남자는 손쉽게 선택자들을 찢어발기는 오브젝트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
나는 고래 몸통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서, 지상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옴뇸뇸.
그 모습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아서, 예린이가 먹여주는 팝콘이 두 배로 맛있게 느껴졌다.
황금 사신 제1 검이 손에 쥔 검을 휘두르자, 공간이 쪼개지며 거인의 한쪽 팔을 날려버렸다.
물론 떨어져 나간 팔은 순식간에 다시 달라붙어서 재생해 버렸지만, 의미가 없진 않았다.
색채 우주에서 온 녀석이라 파괴 조건이 엉망진창으로 깨져있었는데, 상처 입을 때마다 조금씩 그 깨짐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제1 검은 이제 나보다 공간 절단을 잘 쓰는 것 같네.
점점 엄마의 위엄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힝.
그 순간 거인 근처로 하얀색 불꽃 거품들이 날아들었다.
쾅!
그리고 폭발해 버렸다.
헤일로를 쓴 아귀 사신의 특기, 모든 오브젝트를 태우는 불꽃이었다.
물리 면역도 가볍게 찢어발겼던 폭발이라서 그런지, 거인의 온몸도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버렸다.
‘저 거인 녀석, 생각보다 약하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존재감은 진짜 엄청난데, 마치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처럼 힘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원인은 생각보다 찾기 쉬웠다.
태양 빛이 원인이었다.
태양 빛에 닿는 것만으로도 천천히 부스러지고 있었고, 황금 사신의 공격에도 취약했다.
만세 자세로 태양 빛을 모아서 쏘아 보내는 ‘황금 사신 빔’.
그 빔에 닿을 때마다, 거인의 몸은 뭉텅이로 녹슬더니 흩어져 버렸다.
제1 검이 자르고, 아귀 사신이 터트리고, 황금 사신 빔이 깎아내니, 거인은 속수무책이었다.
꽤 오래 걸릴 것 같은 거인에게서 눈을 떼자, 다른 곳은 더욱 화려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빌딩만 한 돼지가 사방팔방으로 순간 이동하며 인간 모양의 해로운 오브젝트들을 핀포인트로 밟아 죽이고 있었다.
위력적인 공격은 순간이동으로 피해버리고, 약한 공격은 탄력적인 젤리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래, 저 돼지 허접해 보여도 너무 빨라서 짜증 났었지.’
종횡무진으로 날뛰는 돼지의 모습을 보니, 돼지랑 싸웠던 예전의 기억이 떠오를 정도였다.
뀨히히!
돼지의 근처에는 온몸에 하얀 불꽃을 두른 하얀 아귀가 행복한 표정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오브젝트를 태우는 불꽃에 닿은 해로운 오브젝트들은 물에 닿은 솜사탕처럼 녹아버렸다.
게다가 순식간에 콩알만 한 미니 아귀로 분해되었다 합체되기를 반복하니, 제대로 공격을 가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분명 잘 싸우고 있는 건데….
뀨히히히!
하지만 아귀가 행복해 보여서 그런지, 조금 마음에 안들었다.
나중에 괴롭혀야지.
<모두 아프지 말아 주세요!>
푸른 사신처럼 싸우지 않고 있는 다른 미니 사신들은 도시로 퍼져나가,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설탕 플라밍고 같은 약한 과자 오브젝트들도 미니 사신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색채 우주의 외신치고는 굉장히 수월하게 진행되는 기분이라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 정도면 예린이도 필요 없던 거 아냐?’
히히.
***
그렇게 순조롭게 끝날 것 같은 전투는 해가 지는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뒤집혀 버렸다.
태양이 저물어서, 거인의 몸에 그 빛을 내리쬐지 못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세계가 침식되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구멍이 뚫려, 색채 우주가 보였다.
높은 고도에서도 태양 빛을 받지 못하게 된 황금 사신들은 더 이상 빔을 쏘지 못했다.
녹이 슨 것처럼 너덜너덜한 거인의 몸이 물질적 형상에서 벗어나, 순수한 빛의 덩어리로 변했다.
제대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찬란히 빛나는 푸른 빛이었다.
마치 별이 지면에 떨어진 것 같은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에 닿은 모든 물질들을 녹슨 금속으로 뒤바꿔 버리고 있었다.
오브젝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가장 약한 야광 티라노부터 녹슬어서 부서지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내 야광 티라노가!’
그리고 내 분노에 반응하는 것처럼, 검은 시체가 불변구를 가르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푸른 별빛의 거인만큼 거대한 검은 육체.
하얗게 타오르는 장작.
그리고 머리 위에 얹어진 2개의 헤일로.
감히!
나는 눈높이가 비슷해진 티라노의 원수, 푸른 별빛의 거인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