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찌를 것처럼 거대한 거인들이 사라지고 고요함을 되찾은 이탈리아 남부에 아침이 찾아왔다.
그리고 있을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대거 북부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 난민들은 명확한 증거가 되어, 수많은 뉴스와 신문이 같은 소식으로 난리를 피웠다.
<별의 축복이 끝났다!>
그리고 그 소식이 공공연하게 알려지기 전부터 수많은 기자가 남부와 북부의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
특급 오브젝트가 서로 싸워서 굉음과 빛이 터져 나왔던 곳.
공간이 마구 뒤틀려서 제대로 관측은 할 수 없었지만, 현시대에 가장 위험한 현장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브젝트 전문 취재 기자에게는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감수하고 있었던 위험에 불과했다.
그렇게 북부에서 남부로 넘어간 기자들이 보게 된 것은 그야말로 녹슬어 부스러진 폐허였다.
마치 폭격에 파괴된 도시처럼, 전부 붕괴해 버린 건물과 도로.
마치 화산 폭발의 잿가루가 쌓인 것처럼, 소복이 쌓인 녹가루.
열정과 카메라만 달랑 가지고, 가장 먼저 남부로 뛰어 들어간 기자의 입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 정도로 폐허가 되어버렸다면, 복구가 가능하기는 할까?’
폭격을 당한 도시보다도 몇 배는 심각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찰칵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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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수저로 아이스크림을 퍼먹은 것처럼, 이리저리 패인 지면.
마치 소고기의 마블링처럼 붉은색의 녹슨 금속과 시멘트가 어지럽게 뒤섞인 벽.
지금도 바람이 불 때마다 서서히 가루로 변해 흩어지는 건물들.
이탈리아 남부의 절망적인 상황이 카메라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정말 이런 풍경뿐인 걸까.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고개를 돌려봐도 폐허.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건물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봐도 폐허.
그저 폐허뿐이었다.
이것을 복구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아무래도 별의 축복을 받았던 20년보다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다행인 점은 이 넓은 땅에 오브젝트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 정도겠지.
‘!’
그렇게 폐허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기자의 눈앞에, 신기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뚜방뚜방.
조그마한 녹슨 금속 덩어리를 품에 안고 천천히 어딘가로 걸어가는 황금색 오브젝트였다.
기자는 홀린 것처럼 카메라를 들고 그 황금색 오브젝트를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뺨에 붉은 먼지를 잔뜩 묻히고, 자기 몸만 한 잔해를 들고 옮기는 황금 사신의 모습이었다.
폐허 속에서 작은 오브젝트가 이탈리아를 위해 노력하는 그 사진은 기사가 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사진의 제목은 <폐허 속의 희망.>이었다.
***
이탈리아 분단 약 20년.
별이 떨어진 날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마치 폭격을 당한 것처럼 많은 땅과 도시가 녹슬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많은 사람은 분단이 사라진 것을 축하하고 축복하고 있었다.
거인들의 전투에서 죽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연락하면서 생사를 확인 할 수는 있었지만, 20년간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만남으로 인해 이탈리아는 약간 들뜬 것 같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다시금 다가오는 오브젝트의 공포에 떠는 몇몇 남부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남부 임시 정부가 숨기고 있었던 자료가 공개되며, 그것마저 뒤집혔다.
별의 축복 이후로 현격히 늘어난 사망자와 실종자.
단절로 인한 물가 상승과 줄어든 일자리.
나빠진 치안과 번성하는 범죄 조직.
오브젝트 이상으로 사람을 죽이는 ‘선택자’들.
‘별의 축복’은 이제 ‘별의 저주’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택자’들보단 ‘오브젝트’가 낫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런 우호적인 인식에는 이탈리아 남부를 뚜방뚜방 돌아다니는 존재들이 한몫하고 있었다.
거대한 하얀 아귀를 부려서 폐허를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와서 방긋방긋 웃는 오브젝트.
황금 사신 덕분이었다.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황금 사신을 사랑해서 그런 걸까.
폐허가 된 남부 중앙에는 거대한 사탕 바람개비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밑에는 수많은 미니 사신이 자신만의 애착 인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라 사신처럼 롱코트를 입고 막대 사탕을 물고 있는 느와르 황금 사신들.
녹슨 보라 사신처럼 운명적인 만남을 꿈꾸는 보라 사신들.
그리고 애착 인간을 찾고 싶어 하는 미니 사신들.
그렇게 미니 사신이 모여들자, 거대한 사탕 바람개비 근처는 점차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도 마포구 같은 미니 사신 특구가 하나 생겨나 버렸다.
***
미니 사신 정원에 위치한 설원.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나는 펑펑 눈이 내리는 설원에 누워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입에 들어온 눈이 녹아내리면, 달콤한 우유 빙수의 맛이 입안에서 퍼져나갔다.
‘맛있네.’
그리고 내 옆에는 상당히 화가 난 아귀 사신이 내 팔 한쪽을 ‘앙’하고 물고 있었다.
내가 애착 오브젝트를 부활시켜 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물리 면역이라 아프진 않지만, 조금 귀찮았다.
‘이상하네.’
분명 내 예리한 육감이 ‘푸른 거인을 죽이면 부활시킬 수 있을 거다.’라고, 속삭였는데 말이야.
하지만 푸른 거인을 죽였지만, 아무런 능력이 생기지 않았다.
대신 생겨난 것은 설원의 하늘 위에 뜬, 푸른색으로 빛나는 구체였다.
게다가 그 푸른 구체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푸른 거인이 시체가 돼서 누워있을 줄 알았는데, 그저 찰랑이는 물이 가득한 공간일 뿐이었다.
특이한 점은 딱 하나.
푸른 구체 속의 물은 마치 푸른 별빛의 거인처럼 푸른 빛을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물을 보니, 왠지 방사성 물질에서 보인다는 체렌코프 현상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계속 누워있었더니, 다른 미니 사신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가오는 미니 사신들은 ‘왜 엄마는 물리고 있는 걸까?’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미니 사신들은 아귀 사신이 하는 깨물기가 재밌어 보였는지, 따라서 나를 ‘앙’하고 물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미니 사신들이 하나둘 달라붙기 시작하자, 마치 빨판상어에게 물린 고래처럼 내 몸에 미니 사신들이 잔뜩 달라붙어 버렸다.
귀찮아.
당장 떼어내서 집어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상냥한 엄마 주간’이라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힝힝.
그렇게 미니 사신들에게 깨물리던 중, 갑자기 푸른 구체에 생각이 닿았다.
저 안에 시체가 없어도 의식을 옮길 수 있는 거 아닐까?
불변구랑 크기부터 시작해서 모양까지 닮았으니 될지도 몰라.
그렇게 푸른 구체로 가볍게 의식을 연결하자,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푸른 구체는 푸른 거인의 능력 중 일부를 품고 있었다.
그 능력은 녹슬게 만드는 빛도 아니고, 공간을 침식하는 안개도 아니고, 공간을 다루는 힘도 아니었다.
부활 능력!
죽은 오브젝트의 영혼을 불러내는 능력이었다.
육체는 헤일로로 만들 수 있으니, 영혼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부활이라고 할 만했다.
‘부활이다!’
내가 갑자기 일어나서 의지를 뿜어내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던 미니 사신들이 깜짝 놀랐다.
***
어느새 설원을 가득 채운 미니 사신들이 의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부활!’
‘부활!’
아귀 사신이 너무 슬퍼해서 그런지, 아귀 사신의 애착 오브젝트 이야기는 미니 사신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래서 엄마가 황금 아귀 사신을 부활시킨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미니 사신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드넓은 설원이 부활을 구경하러 온 조그마한 미니 사신들로 가득 차올랐다.
나는 푸른 구체 아래에 서서, 잔뜩 모여든 미니 사신들을 향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기대로 가득한 미니 사신들.
기대하면서도 약간 불안해 보이는 아귀 사신.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나는 의식을 푸른 구체 속으로 불어넣었다.
‘?!’
그러자 갑자기 푸른 구체 속에서 거대한 육체가 느껴졌다.
의지를 조금 많이 불어넣기 무섭게, 검은 시체처럼 또 다른 육체가 푸른 구체 속에서 눈을 뜬 것이었다.
천천히 푸른 구체를 찢고 나오는 푸른색 육체.
쿠웅!
그리고 푸른 구체를 완전히 찢고 내려선 새로운 육체는 검은 시체만큼이나 커다란 거인이었다.
‘무지 커!’
‘거대 엄마!’
하지만 그 모습은 검은 시체와 완전히 달랐다.
푸른 별빛의 거인처럼 푸른색으로 빛나는 점을 제외하면, ‘내 회색 몸’이랑 똑같았다.
‘빛나는 거대 엄마!’
‘푸른 엄마!’
크아앙!
초거대 푸른빛 회색 사신이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
거대한 푸른 육체와 조그마한 회색 육체를 동시에 조종하려니, 굉장히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으, 어지러워.’
양쪽 눈으로 다른 게임 화면을 보면서 조종하는 것 같았다.
푸른 육체는 영혼을 부를 준비를 시작했고, 회색 육체는 미궁의 헤일로를 손에 들고 육체를 만들 준비를 했다.
푸른 육체로 영혼을 부르는 능력을 사용하자, 온갖 오브젝트들의 흐릿한 형상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흐름은 너무나 빨라서, 내 인지능력으로는 도무지 붙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보면서 찾는 것은 포기하고, 당장 부활이 필요한 존재에 염원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흐릿하게 떠오르는 형상.
짧은 팔.
커다란 머리.
날카로운 이빨.
길쭉한 꼬리를 가진 멋진 이족보행.
아아, 티라노다!
물론 황금 아귀 사신을 부활시켜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흐릿한 티라노의 영체가 설원 위에 나타나더니, 그 위로 형광 공룡의 몸이 씌워지기 시작했다.
‘야광 티라노사우루스. 영원히 함께야!’
나는 미니 사신들에게 딴짓한다고 마구 뚜시 당하면서도, 야광 티라노사우루스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
아귀 사신은 설원 한가운데서 서서, 서서히 선명해지는 흐릿한 오브젝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고 약하지만, 황금 사신을 닮은 오브젝트.
주인이 말하기를 죽은 지 꽤 시간이 흘러서, 염원에 의해 형태가 조금 변질되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게다가 황금 사신처럼 미니 사신 정원 소속으로 부활하기를 원해서, 더욱 변질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귀 사신이 보기에는 그렇게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짧은 팔다리.
작은 몸짓.
작은 눈과 둥근 웃음.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마치 옷처럼 푸딩을 두르고 있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아귀 사신은 황금 아귀 사신을 꼭 끌어안고 의지를 보냈다.
‘정말, 보고 싶었어.’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황금 아귀 사신도 아귀 사신의 품 안에서 얼굴을 비비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전부, 전부 다 보여줄게.’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마시멜로의 평원.
달콤한 향기가 풍기는 핫초코의 바다.
즐거운 미궁이 존재하는 흑설탕의 사막.
여러 가지 색의 사탕이 지층을 이룬 산맥.
그리고 그 너머, 빙수의 설원까지.
황금 아귀 사신을 꼭 껴안은 아귀 사신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