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세희 연구소 안뜰은 점심시간을 맞아 연구원들로 북적였다.
그 사이를 슬픈 표정을 한 연구원이 사람들에게 황금 아귀 사신의 행방을 물어보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연구원의 손에는 이제는 연구원들 모두가 알고 있어서 쓸모가 없어진 사진이 들려 있었다.
“아직도 보신적 없으신가요?”
연구원의 목소리에는 절망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사라진 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연구원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황금 아귀 사신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황금 아귀 사신’이라 불렸던 ‘푸딩 사신’의 눈동자에는 망설임이 어렸다.
미니 사신 정원에서 부활한 푸딩 사신의 모습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황금 사신처럼 태양을 닮은 황금색은 여전했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은 커다란 푸딩 속에 푹 빠진 것처럼 변해버렸다.
게다가 달콤한 향기와 만질 때의 감촉마저도 바뀌어버려서,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지금 모습은 푸딩 사신 자신도 조금은 낯선데, 애착 인간은 더한 괴리감을 느낄 게 뻔했다.
아귀 사신은 그 모습을 보면서, 푸딩 사신의 통통한 푸딩을 살짝 밀어주었다.
‘괜찮아.’
그런 의지를 담아서 푸딩 사신을 살짝 밀어주자, 푸딩 사신은 작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격려를 받은 푸딩 사신은 조심스레 몸을 통통 튕기며 연구원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힘내.’
아귀 사신은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처음 발견해서 애착 인간까지 찾아주었고.
정신 오염에 당해서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부활해서 다시 애착 인간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니, 아귀 사신의 마음도 절로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애착 인간과 오브젝트는 무언가 연결된 걸까?
못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수많은 황금 사신 중에서 자신의 애착 황금 사신만은 정확히 구분하는 사람들처럼.
‘황금 아귀 사신’을 찾아다니던 연구원도 보는 순간, 그 정체를 깨닫고는 푸딩 사신을 꼭 껴안았다.
“정말, 걱정했었어.”
마치 울 것처럼 울먹이며 푸딩 사신을 강하게 끌어안은 연구원.
그 모습을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자신의 푸딩을 조금 떠서 내미는 푸딩 사신.
그리고 그 푸딩을 받아먹으며, 연구원은 환하게 웃었다.
애착 인간과 애착 오브젝트의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아귀 사신이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주인과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이 잔뜩 떠올랐다.
아귀 사신이 정말 좋아하는 주인과 함께했던 나날.
정말 즐거웠었는데.
추억에 젖은 아귀 사신은 갑자기 주인이 보고 싶어졌다.
주인이 들어간 납 인형, 회색 사신을 찾아보자, 안뜰 구석에서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황금 사신이 자신과 닮은 황금색 젤리만 잔뜩 모아서, 거대한 젤리 언덕을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그 근처를 서성이던 회색 사신은 젤리 언덕을 만든 황금 사신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뭔가를 하고 있었다.
마치 티라노를 만들어 내는 순간처럼 엄청난 집중을 하면서 조그마한 주먹을 잼잼.
그렇게 손바닥을 쥐었다 펴면 손바닥 위에 놓여있던 붉은 젤리가 황금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공간 교체를 이용해서 젤리 언덕 중심에 있는 황금 젤리를 붉은 젤리로 바꿔치기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하지도 못할 정도로 정말 은밀하고, 뛰어난 공간 교체였다.
거의 ‘제1 검’급 공간 컨트롤!
황금 사신들 사이에서는 요즘 상냥해졌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었지만, 보는 사람이 없을 때는 여전히 장난기가 심했다.
“뀨….”
아귀 사신은 애써 고개를 돌리고,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침대에 누워있는 푸른 주인 쪽을 보러 가야겠네.’
아귀 사신은 언제나 주인을 좋아했다.
아마도.
***
공깃밥 속에 숨겨진 단 하나의 콩처럼 붉은 젤리를 다섯 개 숨긴 뒤, 나는 안뜰을 나왔다.
평소였다면 맨 위의 한 겹만 빼고 전부 바꿨을 테지만, ‘상냥한 엄마 주간’이라서 조금만 바꾸고 그만두었다.
사실 ‘상냥한 엄마 주간’에는 저런 장난도 치면 안 됐지만, 마음속에 장난이 가득 차올라서 조금 장난이 흘러나와 버렸다.
히히.
저 정도면 황금 사신도 용서해 주겠지.
뚜방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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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세희 연구소 복도를 걸어 다니며, 격리실에 갇힌 오브젝트들을 오랜만에 구경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정신 오염에 걸려있는 해로운 오브젝트들이 잔뜩 보였다.
푸른 별을 죽여도 정신 오염은 여전하네.
그렇게 오염된 오브젝트들을 구경하다 보니, 유령 고양이랑 푸른 도마뱀에게 무언가 처리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도마뱀은 그냥 들고 가면 될 테고.
유령 고양이는 돈가스 먹으러 간다고 속이고, 젤리 돼지 병원으로 데려가면 되겠지.
이런저런 생각하며 한산한 복도를 걷다 보니,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점심시간이라도 이렇게 아무도 없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CCTV도 모두 꺼진 상태였다.
말세다. 말세.
내가 연구소를 다니던 시절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
그렇게 계속 복도를 돌아다니다 보니, 한산한 이유를 만날 수 있었다.
<전부 깨끗해져 주세요!>
<깨끗해져 주세요!>
푸른 사신들이 마법으로 세희 연구소를 청소하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 설마. 푸른 사신들 청소하는데 방해되지 말라고 CCTV까지 다 꺼버린 건가.’
그러고 보니 요즘 청소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네.
이유를 알았어도, 여전히 말세였다.
오브젝트에게 경비와 청소를 맡긴 연구소?
편하고 널널한 세희 연구소답긴 했지만 ‘연구소’라고 하긴 힘들었다.
***
헬멧 연구원은 휴게실에 앉아서, 자기 황금 사신을 자랑하는 연구원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 황금 사신은 어제 ‘ㅂ’까지 기억하더라고.”
“정말?”
다행히도 황금 사신에게 간택 받은 사람들은 대리 보고서 작성은 포기했지만, 자기 황금 사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물론 황금 사신들은 그런 비교질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애착 인간이 준 푸딩을 ‘옴뇸뇸’하고 먹을 뿐이었다.
후후.
그들의 대화를 들은 헬멧 연구원은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황금 사신에게 과자를 먹이고 있었다.
‘내 황금 사신은 어제 처음 해보라고 시켜봤는데, 무려 ‘ㅇ’까지의 순서를 기억했었지.’
아무짝에도 의미 없는 비교였지만, 이상하게 해보고 싶어지는 마력이 있었다.
심리 테스트나 요즘 유명한 성격 테스트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휴게실에서 주워들은 결과들 보다 좋게 나오니,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황금 사신 이야기로 가득한 휴게실에 마찬가지로, 황금 사신과 관련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탈리아 사태조차 순식간에 잠재워 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뉴스였다.
[오늘 저희가 전해드릴 뉴스는 다소 특이한 소식인데요, 일본의 한 연구소에서 연구소장 자리에 황금 사신을 임명했다는 소식입니다.]
[오브젝트 연구로 미국 다음이라고 평가를 받는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TV 화면에는 정말로 커다란 단상 위에 올라간 황금 사신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전’ 연구소장이 진지한 얼굴로 마이크를 들고, 질문에 답변하고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하나로 귀결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미친 짓을 한 겁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단순했다.
‘귀여우니까요.’
[이 소식을 접한 일본 오브젝트 협회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많은 연구소와 단체들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가운데, 의외로 미국 오브젝트 협회에서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윽.”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봐서 그런지, 두통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망치로 정수리를 때리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본 황금 사신은 굉장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헬멧 연구원의 뺨을 토닥였다.
정말로 슬퍼 보이는 황금 사신의 표정과 따뜻한 햇살 향기.
그 순간, 사소한 고민은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두통도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안 아파. 괜찮아.”
뭐, 이렇게나 귀여운데, 연구소장 정도는 해도 괜찮겠지.
헬멧 연구원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황금 사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착 인간이 아프지 않게 되자, 황금 사신도 정말 행복해 보였다.
***
미니 사신 정원, 마시멜로 평원.
나는 마치 요리사가 된 기분으로 빵칼을 이용해서 간단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부드러운 빵을 반으로 쪼개서 딸기잼을 발라 먹는 것처럼.
하얀 아귀의 등을 스르륵 갈라서, 잼을 발라서 바닥에 내려두었다.
뀨힝힝.
고개를 들고 마시멜로 평원을 둘러보자, 이미 내가 만든 아귀잼빵으로 가득했다.
마치 햇볕에 붉은 고추를 말리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좀 더 맛있어 보이도록, 스프링클도 착착 뿌려주었다.
‘뀨히히’하고 웃었던 하얀 아귀의 표정을 다시 억울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요리였다.
안타까운 점은 하나였다.
미니 사신들에게도 먹으라고 나눠줬는데, 너무하다면서 먹지 않는 점이었다.
그냥 뜯어먹기는 잘하면서, 요리해서 더 맛있어진 하얀 아귀는 먹지 않는다니.
이상한 녀석들이네.
주황 사신들에게는 호평이었다.
오히려 미니 하얀 아귀 몇 마리를 빌려 가더니, 나도 감탄할 요리를 만들어 냈다.
속을 파낸 뒤, 고기를 채워 넣고 오븐에 집어넣어 버린 것이다.
‘대단해!’
나는 주황 사신의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아귀 요리를 하다 보니, 잡아 온 미니 하얀 아귀가 어느새 다 떨어져 버렸다.
‘벌써 다 썼네?’
주변을 둘러봐도, 하얀 아귀는 보이지 않았다.
요즘 하얀 아귀의 숫자가 줄어든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뚜방뚜방 걸어 다니다 보니, 황금 사신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다.
요즘 짐승 놀이가 유행인 건지, 4발로 뛰어다니는 황금 사신들이 많아졌다.
으음, 뭔가 이상한데?
이상하게도 ‘뀨힝힝’하고 울 것 같은 황금 사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