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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0

스캐빈저들이 모두 쓰러지자, 은발 소녀의 주변으로 끝없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조금 전까지 하늘을 끊임없이 날아다니던 샷건이었지만, 적이 없어지자 마치 할 일을 다했다는 것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하…. 하하.”

청의 마른 웃음이 울려 퍼지는 공터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했다.

분명 귓가에 거슬리던 빗소리였지만, 더없이 조용하게만 느껴졌다.

유탄으로 생긴 화염은 평범한 물은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빗물에 사그라들었다.

그저 단단한 바닥이 조금 파인 것을 제외하면, 생명을 위협했던 유탄의 흔적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으드득. 으드득.

그 순간 빗소리를 뚫고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

피를 잔뜩 토하던 남자의 몸에서 이리저리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안 돼!”

오브젝트로 신체를 강화한 사람에게서 절대로 나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청은 남자의 배낭에서 고급스러운 은으로 장식된 주사기를 꺼내서, 그대로 남자의 몸에다 꽂아 넣었다.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숨겨져 있던 바늘이 남자의 몸을 꿰뚫었다.

마치 게임 속 포션 같은 역할을 하는 ‘다이스’라고 불리는 주사기였다.

다이스는 상당한 가격을 자랑했지만, 효과는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만했다.

가벼운 찰과상은 당연할 정도로 순식간에 낫게 했고, 잘린 팔처럼 소실된 신체도 순식간에 복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죽지만 않으면 살려내는 주사기였다.

하지만 효과가 너무 뛰어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잔혹한 현실에 있기에는 너무 꿈같은 물건이라서 그런 걸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이스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물건이었다.

사용 시 효과가 발생할 확률은 겨우 1/6정도.

나머지 5/6의 경우,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야말로 생명을 가지고 주사위를 굴리는 셈이었다.

게다가 짧은 시간 내에 반복 사용 시 확률은 더더욱 낮아졌다.

“제발. 제발. 제발.”

청의 염원이 통했던 것일까, 아니면 샷건과 같은 기적의 일환일까.

당장이라도 뼈가 살을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치던 남자의 몸은 잠잠해지고, 상처가 말끔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 다행이다.”

바닥에 앉아서 잔뜩 긴장했던 청은 몸을 축 늘어트렸다.

그 순간, 다시 똑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드득. 으드득.

청은 깜짝 놀라서 남자를 향해 고개를 들었지만, 다행히도 남자의 몸은 멀쩡해 보였다.

으드득. 으드득. 으드득. 으드득.

그리고 그 소리는 그 숫자를 늘려,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샷건에 맞았다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깔끔하게 죽은 스캐빈저들의 시체에서 나는 소리였다.

눈구멍을 뚫고 뇌에 한방.

강화된 피부의 틈을 관통해서 심장에 한방.

자유 도시 연합에서 가장 정확한 사격을 자랑하는 저격수, ‘나이트 호크’가 생각날 정도로 깔끔한 시체였다.

그렇게 말끔한 스캐빈저들의 시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만두피 속에 뭔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뼈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마치 찰흙을 마구 주물럭거리는 것처럼.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꿈틀거릴수록 내부의 장기가 뭉그러지는지, 마치 만두에 구멍이 난 것처럼 칠 공에서 피와 내장 조각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청은 듣기 싫은 소리인 것처럼 귀를 막고, 보기 싫은 장면인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한참을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더니, 시체들이 일제히 꿈틀거림을 멈췄다.

촤아아.

다시금 들려오는 세찬 빗소리.

청의 주변은 다시 익숙한 빗소리 속에 잠겼다.

그런 빗속에서 청이 눈을 살짝 뜨는 순간,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청의 얼굴에 튀었다.

마치 펄펄 끓는 것처럼 뜨거운 핏물이었다.

“!!!!”

그리고 마치 유명한 영화 속에서 기생충이 복부를 뚫고 나오는 것처럼, 스캐빈저의 피부를 뚫고 끔찍하게 생긴 괴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거미처럼 발이 여럿이고, 색은 기분 나쁜 옅은 붉은색.

마치 사람 척추에 사람 손가락을 여럿 이어 붙인 것 같은 괴물이었다.

그것은 스캐빈저의 몸에 접합되어 있던 오브젝트들이었다.

그 오브젝트들이 기생충처럼 숙주가 죽자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치 꼽등이 몸속에 있던 연가시처럼.

“#$%$%#$”

청은 다시 눈을 꼭 감고 자신이 아는 온갖 욕설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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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왜. 왜. 왜.

저런 걸 몸에다 처박는 거야?

모두 미쳤어.

모두 제정신이 아니야.

모두 병신이야.

청이 눈을 꼭 감고 잔뜩 욕설을 뱉어내는 동안, 스캐빈저 몸에서 차례로 오브젝트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빗물이 고온의 오브젝트 표면에 닿자, 자욱한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분 나쁜 기름 냄새와 피 냄새가 섞인 증기였다.

그리고 그 기생충 같은 오브젝트들은 도시의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가야 할 곳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

미니 사신 정원, 설원과 사탕 산맥의 경계.

다른 사신들이 자주 다가오지 않는 으슥한 곳.

나는 그곳에 주황 사신들을 불러 모아서, 같이 수행할 장난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이 만든 얼음 궁전으로 같이 가서, 때려 부수자는 간단한 작전이었다.

물론 주황 사신이 부수기 시작하면 나는 몰래 빠져나가서 황금 사신에게 고자질하는 게 본 계획이었다.

히히.

거기다가 다 같이 난리를 치면 황금 사신도 크게 화를 못 낼 거라고 덧붙였다.

‘어때?’

내가 자신만만한 주황 사신들에게 표정으로 묻자.

주황 사신들은 감탄한 표정으로 박수를 짝짝 쳤다.

‘엄마, 대단해!’

‘대단해!’

어쩌면 거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상 이상의 열렬한 환호가 돌아왔다.

역시 주황 사신들은 착하고 똑똑하네.

이렇게나 착한 아이들을 함정에 빠뜨려야 한다니 양심이 살짝 가려웠지만, 주황 사신들의 사회 공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히히.

내가 히히 웃자, 주황 사신들도 히히 웃었다.

이상하게도 착한 주황 사신들의 웃는 모습이 조금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는 주황 사신들이 살짝 웃으니 조금 흑막 같았다.

‘뭐, 괜찮겠지.’

나는 그런 느낌을 그냥 흘려보내고, 같이 장난을 칠 생각에 같이 웃었다.

***

주황 사신과 함께하는 장난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장난칠 타이밍을 정하기 위해서 황금 사신들을 염탐하러 갔을 때, 마침 황금 사신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있는 상태였으니까.

마침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황금 사신 대회의’가 열리다니, 운이 좋았다.

황금 사신 대회의는 ‘가장 맛있는 푸딩이 무엇인가?’ 같은 별 쓸데없는 이유로 열리곤 했는데, 최소 3시간은 소요되는 긴 회의였다.

‘!’

주황 사신은 호들갑을 떨며 좋은 기회라고, 어서 빨리 얼음 궁전을 부수자고 재촉했다.

그리고 주황 사신들은 얼음 궁전을 공격하기 위해 하얀 아귀 배 속에 핫초코를 채워오겠다고 했다.

뀨힝힝.

마치 미리 준비한 것처럼 커다란 하얀 아귀는 이미 주황 사신에게 붙잡힌 채, 뀨힝힝거리고 있었다.

크아앙!

주황 사신이 자리를 비우자, 나는 마치 거대한 공룡이 된 기분으로 얼음 궁전을 부수기 시작했다.

대략 10분 정도 지났을까, 주황 사신들이 너무 늦어서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이상하게도 주황 사신이 나를 배신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들자마자, 황급히 얼음 궁전에서 벗어나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 순간, 저 멀리서 주황 사신들이 하얀 아귀를 들고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주황 사신들의 손에는 핫초코를 얼마나 잔뜩 먹인 건지, 터질 것처럼 빵빵해진 하얀 아귀를 들고 있었다.

‘역시 착한 주황 사신이 나를 속일 리가 없지.’

주황 사신이 나타나서 안심한 나는 주황 사신을 향해 손을 벌리며 의지를 전달했다.

‘빨리 핫초코를 부어버려!’

그러자 주황 사신이 아귀의 커다란 입을 벌렸다.

“뀨히히.”

왠지 기분 나쁜 아귀의 웃음소리와 함께 아귀의 입이 열리고 황금색 물결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아귀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황금색 물결은 마치 천상의 심판이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하늘의 진노를 구현한 것 같은 분노에 가득 찬 황금 사신들의 물결.

나는 머리 위로 정확히 쏟아져 내리는 황금의 물결에 휩쓸려 버렸다.

마치 끝없는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나는 주황 사신의 배신과 황금 사신의 마구 때리기의 심해 속에 잠겨버렸다.

황금빛 물결에 삼켜지기 직전, 순간적으로 물결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주황 사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그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마치 “계획대로.”라고 속삭이는 듯한 사악함만이 서려 있었다.

***

해로운 도시 속에 빛나는 소녀.

주황 사신은 그 소녀를 보다 보니, 이상하게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설마 애착 인간?’

그래서 주황 사신은 몰래 숨어서 소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가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이유 없이 즐거워 보이면 길 가다가 돌에 걸려서 넘어지게 하기도 했고.

소녀가 가끔 심심풀이로 돌리는 룰렛을 무조건 꽝만 나오게 하기도 했었다.

그런 장난을 칠 때면 소녀는 굉장히 우울해졌는데.

그때 주황 사신은 소녀가 우울해하면, 자신도 덩달아 슬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갈 때마다 대박을 터트려 줬는데, 출입 금지가 되어버려서 우울해하기도 했다.

힝.

주황 사신에게 인간은 어려웠다.

그리고 이상하게 편식하는 소녀의 흰죽에 메뚜기를 갈아서 몰래 집어넣기도 했다.

“으에엑.”

물론 그 장난은 소녀가 손톱만 한 메뚜기 가루를 조금 먹었다고 마구 피를 토하는 것을 보고 그만두었다.

겨우 그 정도로 죽을 확률이 마구 치솟아서, 그 확률을 억누르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작게 사과했다.

‘미안.’

그리고 오늘, 소녀가 죽을 위기에 처하는 순간.

주황 사신은 소녀의 앞에 나서기로 했다.

끈적거리는 비가 기분 나쁘기도 했고, 소녀의 품에 안겨있고 싶기도 했고.

그리고 이 도시는 위험해서 딱 붙어서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슬금슬금 소녀를 향해서 다가가다 보니, 장난기가 조금씩 돋아나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을 찢고 나온 해로운 오브젝트를 무서워하는 것처럼, 눈을 꼭 감고 귀를 막은 소녀의 모습.

왠지 주황 사신에게는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주황 사신은 바닥에 뒹굴던 날카로운 철사로 해로운 오브젝트 중 하나를 꿰뚫어서 붙잡은 뒤, 천천히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히히.

그리고 그 오브젝트를 찰싹하고 소녀의 얼굴에 붙였다.

“!!!”

잔뜩 긴장하고 있던 소녀는 펄쩍 뛰며 놀라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조금 놀라기만 할 줄 알았는데, 예상 이상의 반응이었다.

‘일어나.’

주황 사신은 털썩 쓰러진 애착 인간의 뺨을 찰싹이며 깨우려고 했지만,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남자가 깨어나려는 듯이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힝.

오늘이야말로 애착 인간에게 잔뜩 쓰다듬을 받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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