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도시 연합 깊숙한 곳.
평범한 도시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이질적인 자유 도시 연합이었지만, 한층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있었다.
건물은 무너지고 뼈대만 남은 앙상한 기둥들.
그런 기둥들에 폐자재를 이용해 얼기설기 이어 붙인 가건물들.
여러 가지 시체와 폐기물들을 채워 넣고 태우는 드럼통.
그리고 인간의 형상을 완전히 벗어던진 괴물 같은 인간들이 가득한 곳.
스캐빈저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피 냄새와 플라스틱이 타는 냄새 그리고 녹슨 금속의 냄새가 이리저리 뒤섞인 곳에서 유난히 피 냄새가 짙게 풍기는 곳이 있었다.
마치 도축장의 고기처럼 사람들이 고리에 잔뜩 걸려있는 곳이었다.
피 냄새를 유난히 풍기는 그곳에서 한때 자유 도시 연합의 용병이었던 한 남자가, 스캐빈저 소굴의 도축장에서 사람의 팔을 잘라내고 있었다.
‘젠장젠장젠장.’
남자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을 참고 천천히 톱질을 해나가고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어.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실제로 남자에게는 선택지가 얼마 없었다.
그에게 광증이 발생했으니까.
오브젝트를 잔뜩 박아 넣은 대부분의 용병은 광증으로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대부분에 속하지 않은 특별한 존재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특별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시야가 붉게 물들고, 하늘에서 목소리가 내려왔다.
[인간을 죽여라] 라는 터무니없는 목소리.
광증 ‘붉은 눈’의 대표적인 증상이었다.
오브젝트 남용으로 광증이 걸린 용병의 말로는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결국 미쳐서 사람들을 마구 학살하는 끝에 사살되거나.
붉은 목소리에 미치기 전에 자살하거나.
인육에 손을 대고 스캐빈저로 전락하거나.
세 가지 정도의 길만이 남아있었다.
신기하게도 인육을 먹자, 광증은 잠시나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마치 인간을 죽이기만 하면 괜찮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남자는 살아남는 것을 선택했다.
인육을 먹기 위해 스캐빈저에 합류한 것이다.
멍하니 잡생각을 하며 팔을 썰던 그에게 그의 선배가 소리쳤다.
“야야야, 죽이지 마! 의수 팔아야 하니까, 죽이면 안 돼.”
시선을 돌려보니, 도축되던 사람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게거품을 물고 경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경련을 멈추고 남자의 몸이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으드득. 으드득.
오브젝트가 난동을 피우며,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
“아, 젠장!”
선배는 들고 있던 톱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퍽!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을 찢고 나온 오브젝트 의수는 이미 의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흉측한 거미 괴물처럼 변한 의수는 빠르게 어디론가 기어서 도망쳐 버렸다.
“하아, 망했네.”
근처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스캐빈저 선배는 담배를 빼어 물었다.
남자도 근처에 따라 앉으려는 순간,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쿵. 쿵.
몇백 킬로는 나갈 것 같은 걸음 소리.
인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봇이나 탱크에 더 가까워 보이는 실루엣.
그의 이명인 ‘전차’에 걸맞은 무게와 생김새였다.
이 스캐빈저 무리의 수장인 남자는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들어라!”
그리고 이어진 말들은 간단했다.
‘용병들을 죽이고 화물을 탈취하러 간 동료들이 죽었다.’
‘그러니 복수하고 싶은 자는 나를 따라나서라.’
대장의 말은 장황했지만, 축약하자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위험한 데다,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 스캐빈저들의 모습을 보며, 대장은 씨익 웃었다.
“그런데, 그 용병 중에 ‘순수한 인간’이 있다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남자를 포함한 모든 스캐빈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수한 인간!’
순수한 인간은 자유 도시 연합에서는 상당히 보기 힘든 존재였다.
게다가 그 고기는 점점 심해지기만 하는 광증을 억눌러주는 것뿐만 아니라, 수용량을 늘려줘서 오브젝트를 더 접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캐빈저들의 환호성과 열기, 광기.
모든 스캐빈저들이 무기를 챙기고 복수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황금 사신 대회의장.
회색 사신의 상냥한 엄마 주간의 영향인지, 그곳에서는 ‘엄마 상냥해’라는 주제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엄마가 푸딩을 나눠줬어!’
‘엄마가 내 머리를 빗겨줬어!’
‘엄마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쓰다듬어 줬어!’
그것은 회의라기보다는 엄마에게 상냥하게 대해졌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특별 게스트로 참가한 검은 안대의 보라 사신이 의지를 내뿜었다.
‘위기의 순간, 엄마가 정원 모두를 이끌고 와줬어!’
‘대단해!’
‘사랑받는 동생!’
그러자 황금 사신들이 깜짝 놀라서, 짝짝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을 구해줬던 수많은 순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대단해.’
미니 사신들을 제대로 구분도 못 하고, 미니 사신들에게 관심도 없어 보였지만.
신기하게도 회색 사신은 미니 사신의 위기 순간이면 언제나 나타나곤 했었다.
‘엄마 상냥해!’
그리고 시작된 ‘엄마 상냥해!’ 표결.
원형으로 둥글게 앉은 황금 사신들이 시계방향으로 차례대로 일어서며 환하게 웃었다.
‘상냥해!’
‘상냥해!’
‘상냥해!’
그리고 횡단보도 앞의 아이들처럼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의지를 뿜어내었다.
“뀨힝힝.”
몰래 회의장에 숨어있던 하얀 아귀는 힘겹게 양다리로 서서 반대의 의지를 뿜어냈지만, 회의장 경비를 서는 황금 사신들에게 끌려가 버렸다.
게스트 자격을 얻지 못한 간식의 회의 참여는 붉은 사신 구이형이었다.
황금 사신들과 특별 게스트 보라 사신이 참여한 표결은 전원 찬성이었다.
“뀨힝힝힝.”
표결이 끝난 조용한 회의장에는 구슬픈 아귀의 울음소리만 남았다.
‘!’
그렇게 회의가 끝난 회의장으로 주황 사신들이 커다란 아귀를 들고 잔뜩 날아오기 시작했다.
장난꾸러기 동생의 등장에 황금 사신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주황 사신이 전해준 소식은 황금 사신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얼음 궁전이 엄마에게 공격받고 있다!
깜짝 놀란 황금 사신들은 주황 사신의 인도에 따라, 하얀 아귀의 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뀨히히히히.”
그리고 배가 찢어질 것처럼 부푼 하얀 아귀는 즐거운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
미니 사신 정원에 위치한 드넓은 설원.
나는 아직도 격리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황금 사신들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힝힝.
나는 벌칙으로 황금 사신들과 함께 얼음 궁전 만들기에 동원되는 중이었다.
‘엄마!’
황금 사신이 부르면 나는 얼음 벽돌을 가지고 황금 사신을 향해 뚜방뚜방.
그리고 벽돌을 받은 황금 사신은 환하게 웃으며, ‘엄마 고마워!’.
한번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궁전을 다시 짓는 건데도, 황금 사신들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오히려 처음 만들 때보다 즐거워 보여서 참 신기했다.
보통은 했던 걸 또 하라고 하면 짜증 나고 재미없지 않나?
황금 사신은 이해하기가 힘들단 말이지.
‘엄마!’
‘엄마!’
‘엄마!’
사방에서 황금 사신들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벽돌 놓아줘, 장식품 깎아줘, 눈 뭉쳐줘.
황금 사신들은 나보다 훨씬 손재주가 좋으면서, 굳이 내 손을 빌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나를 괴롭히고 싶은 건가?
‘차례대로 갈 테니까, 기다려.’
내가 황금 사신과 같이 기둥을 조각하자, 황금 사신은 행복한 것처럼 헤실헤실 웃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며 웃는 황금 사신을 대충 쓰다듬어 주며, 나는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얼음 궁전의 건설이 끝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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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황 사신들을 모조리 잡아 묶어서 쥐불놀이하고 말리라.
그리고 아귀는 꼬챙이를 만들어서 영원히 타는 횃불로 만들어서 팔아먹을 것이다.
나는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
좁고 사방이 막힌 콘크리트 방안.
“헉!”
청은 깜짝 놀라서 자기 얼굴을 마구 더듬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청에게 담담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구나. 청이 ‘다이스’ 써준 거지? 고마워.”
죽을 뻔했었지만 결국 정신을 차린 남자의 얼굴을 보자, 청은 다행이라는 듯이 살짝 웃었다.
“그런데 그 털 뭉치는 뭐지? 무해해 보여서 놔두고 있었는데, 뭔가 아는 거라도 있나?”
그리고 남자는 청의 배 위에 달라붙어 있는 몽실몽실한 털 뭉치를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털 뭉치?
청은 의아한 표정으로 자기 배를 내려다보자, 주황색 얼굴을 가진 털 뭉치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털 뭉치와 시선이 부딪치자, 청의 뇌리에 마치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청은 홀린 것처럼 천천히 털 뭉치를 들어 올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오브젝트였다.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운명적인 상대라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따뜻하고 폭신폭신해서 감촉도 좋았다.
그리고 청은 마치 자기 애착 인형인 것처럼, 아무 말 없이 주황 사신을 자기 품 안에 안았다.
그때, 창문가에 붙어 서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여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이 주변에 스캐빈저가 잔뜩 깔렸어. 보안 벽 쪽으로 도망가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이네.”
그리고 여자는 ‘도대체 이 화물이 뭐라고 이렇게 스캐빈저들이 따라붙은 거지?’라고 덧붙였다.
“좋아. 빨리 가자. 늦을수록 힘들어지잖아?”
하지만 청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쿵. 쿵.
그리고 그 순간, 창문 틈으로 구름 고기들이 마구 날아들어 와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
자유 도시 연합에서는 보기 힘든 구름 고기라서 더욱 의아했다.
묵직한 소리와 갑자기 나타난 구름 고기.
잔뜩 긴장한 남자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뭔가 심상치 않아.”
그 순간, 구름 고기들이 날아들어 청과 그 동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남자가 방패를 들어서 막았지만, 묵직한 충격에 모두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버렸다.
가벼운 구름으로 만들어진 물고기에게 치인 것으로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묵직한 충격이었다.
바닥에서 일어난 남자가 샷건으로 구름 고기에게 반격을 가하려는 순간.
붉은색 광선이 원래 일행이 있던 장소를 지워버렸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섬광.
그리고 뒤이어 몰아치는 피부가 익을 것 같은 후끈한 열 폭풍.
붉게 빛을 뿜어내며, 녹아내리는 기둥.
마치 콘크리트가 용암처럼 녹아내리며 구멍이 뚫려버렸다.
‘!!!’
만약 구름 고기가 자신들을 밀쳐내지 않았다면, 저 콘크리트처럼 녹아내렸겠지.
남자가 가진 방패는 저격총도 막을 정도로 튼튼한 녀석이었지만, 저런 광선에는 잠시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후우. 후우.
갑작스러운 사태에 깜짝 놀란 청은 숨을 몰아쉬며, 광선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벽에 뚫린 구명 너머로 흉악하게 생긴 스캐빈저가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거기 있었나. 하마터면 맛도 못 보고 날려버릴 뻔했군.”
인간의 흔적은 거의 남지 않았고, 그 자리를 대신한 뒤틀린 금속과 오브젝트를 얼기설기 엮은 괴물이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암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유명한 ‘전차’가 손수 마중 나오다니.”
청은 절로 숨이 막힐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품 안의 털 뭉치를 들어 올려 꾹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