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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2

자유 도시 연합, 무법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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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청의 두꺼운 마스크 위로 드러난 피부로 녹아내린 콘크리트의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스캐빈저를 잔뜩 이끌고 온 남자는 아무리 봐도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인체 접합용 오브젝트를 잔뜩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인간일 텐데.

인간의 피부는 물론 오브젝트로 만든 인조 피부조차 거의 없어서, 로봇이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전차에나 쓰일 법한 두꺼운 장갑.

인간이 들고 다니기 힘들어 보이는 대구경 중화기.

콘크리트째로 녹여버리는 광선포.

그야말로 온몸을 무기로 개조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눈으로 쓰이는 인조 안구에서는 옅은 붉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불길함이 뒤섞인 붉은색.

광증의 증거.

그야말로 오브젝트를 과용한 용병의 말로를 잘 보여주는 남자였다.

그 괴물 같은 남자는 청의 일행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스캐빈저의 대장, ‘전차’는 마치 이미 이긴 것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사실 숫자로 보나, 장비의 수준으로 보나, 청 일행에게 승산은 없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청 일행은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고, 스캐빈저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청은 남자 뒤에 숨어 조그마한 단말로 저 괴물의 오브젝트 데이터를 스캔하고 있었다.

(어때, 노릴만한 약점이 있을 것 같아?)

순수한 인간인 ‘청’과 운송하던 화물을 내놓으라는 괴물의 말소리를 배경음으로 저격총을 든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청에게 물었다.

(딱 하나 노릴만한 곳이 하나 있어.)

청이 ‘전차’의 심장 어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쿵. 쿵.

지면을 떨리게 할 정도로 묵직한 진동.

‘전차’의 가슴에는 심장 대신 용광로처럼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 기계장치가 박동하고 있었다.

(저 장치는 2년 전에 나타난 오브젝트 ‘불을 토하는 뱀’으로 만든 건데, 굉장히 불안정하다고 해.)

청은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2년이나 살아남은 걸 보면, 모종의 방법으로 안정화했다고 봐야겠지. 저 장치를 자극해서 폭파하는 게 최선이야.)

하지만 심장 어림에 붙은 장치는 굉장히 두꺼운 장갑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자의 샷건이나 기관총은 물론이고, 여자의 저격총으로도 불가능해 보였다.

“자, 이제 선택해라!”

‘전차’는 굵직한 광선포의 총구를 들이며 외쳤다.

그야말로 결정의 순간.

청의 일행은 마지막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높은 확률로 죽겠지만, 그들은 시선을 교환하며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도 상황이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괴물의 심장 어림에 부착된 장치가 점점 강렬한 붉은 빛을 뿜어내더니, 곧 고온의 불길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광선포가 콘크리트를 녹여버린 것처럼, 심장에서 시작된 불길은 ‘전차’의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오브젝트로 만들어진 복합 장갑도, 열을 식히기 위한 열교환기도 소용없었다.

“어…. 어째서!”

괴물은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거대한 기계 집게 같은 손으로 심장에 붙은 기계장치를 뜯어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자꾸 미끄러져서 뜯어낼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마치 불이 살아있는 것처럼,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전차’의 손과 얼굴부터 녹이고 있었다.

“아… 안 돼!”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던 괴물은 순식간에 빨갛게 빛나는 쇳물만 남기고 녹아내렸다.

이번에도 또?

청은 이 광경을 보며 지난번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샷건이 춤을 추던 그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광경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두 번째로 겪는 일이라 그런지 청은 빠르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소녀는 재빨리 일행의 손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어서 도망치자!”

아직 스캐빈저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상황에 정신을 놓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청은 굉장히 당황한 일행을 이끌며,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그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렸다.

***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설원.

나는 여전히 그곳에서 얼음 궁전 복원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같이 푸딩도 먹고, 뒹굴뒹굴하기도 하다가, 심심하면 궁전도 살짝 만들어 보는 느긋한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굉장히 열심히 만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천천히 복원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중, 한 무리의 황금 사신들이 다가와서 의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생 도움!’

‘도움이 필요해!’

‘약한 동생!’

그러자 황금 사신들은 작업을 멈추고, 우르르 어디론가 몰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강제 노역 중인 불쌍한 나도 같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마시멜로 평원에는 푸른 사신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대충 눈어림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최소 1,000마리.

내가 기억하기로는 푸른 사신은 10마리였으니까, 최소 990마리가 인형 옷이겠지.

사실 숫자를 세지 않아도, 가짜 푸른 사신을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가짜 푸른 사신은 척 봐도 황금 사신 같았으니까.

가짜 푸른 사신들은 모자를 부메랑처럼 던지고 놀거나, 윈드밀 같은 과격한 동작을 하며 놀고 있었다.

게다가 몇몇 황금 사신은 물로 만든 원피스가 불편해서 벗어버리기도 했다.

물론 그때마다 몹시 화가 난 진짜 푸른 사신이 나타나서 지팡이로 황금 사신의 머리를 마구 때리곤 했다.

그때마다 황금 사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주섬주섬 옷을 입는 모습은 조금 웃겼다.

그렇게 불편함에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나에게도 시련이 들이닥쳤다.

내가 입을 만큼 커다란 푸른 사신 인형 옷이 내 앞에 나타나 버렸다.

‘윽.’

제발 입어달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푸른 사신들.

황금 사신들의 얼음 궁전을 부수다가 걸렸다는 상황.

‘이번만이야.’

그 두 가지의 조합으로 인해,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푸른 사신 인형 옷을 입어주었다.

나까지 인형 옷을 입자, 천 마리의 푸른 사신들이 둥글게 원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푸른 사신이 커다란 문자열을 하늘에 수놓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거대한 엄마 골렘!>

<골렘!>

그러자 3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물 골렘이 푸른 사신들의 중앙에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서 수많은 푸른 사신들의 문자열이 이어졌다.

<거대한 엄마!>

<정말 거대한 엄마!>

<거대해!>

하나같이 물 골렘이 커다랗게 변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문자열이었다.

‘아, 설마?’

푸른 거인을 얻은 뒤, 푸른 사신들이 매번 모여서 거대한 골렘을 만들려고 하던데.

아무래도 황금 사신들의 힘을 빌려서 푸른 거인만큼 커다란 골렘을 만들려는 것 같았다.

그럼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장작을 듬뿍 담아, 문자열을 수놓았다.

<커져라!>

내 문자열이 터져나가기 무섭게, 물 골렘은 순식간에 푸른 거인의 크기만큼 커다랗게 변해버렸다.

‘와!’

‘엄마 강해!’

그러자 수많은 푸른 사신이 짝짝, 박수를 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언제나 거리를 두는 푸른 사신 모습으로 이렇게 달라붙는 것은 조금 색다른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붙는 푸른 사신 중에는 진짜 푸른 사신들도 은근슬쩍 숨어서 나를 껴안고 있었다.

굉장히 수줍은 표정이면서도, 마치 가짜 푸른 사신인 척 달라붙는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

미니 사신 정원, 마시멜로 평원.

그 마시멜로 평원에서 가장 중요한 오브젝트는 아마 하얀 아귀일 것이다.

하얀 아귀들은 언제나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하는 일이 많았다.

배고픈 미니 사신의 간식이기도 했다.

놀다가 지친 미니 사신들의 침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흉포한 회색 사신의 공격성을 낮추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만약 하얀 아귀가 없었다면, 미니 사신들은 좀 더 장난을 많이 당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이제는 한 가지 역할이 추가되고 있었다.

점점 흉포해지더니, 회색 사신만큼 흉포해진 주황 사신의 공격성을 낮추는 역할이었다.

그때, 마치 장난칠 대상을 물색하는 것처럼 미니 사신 정원을 둥실둥실 날아다니는 주황 사신이 하얀 아귀를 발견해 버렸다.

따스한 마시멜로 평원의 은은한 빛을 만끽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하얀 아귀였다.

그 엄마에 그 딸이랄까.

주황 사신도 하얀 아귀의 웃는 얼굴을 보면, 괴롭히고 싶어지는 병을 앓고 있었다.

하얀 아귀의 표정을 보면서 주황 사신은 히히 웃더니, 급강하를 시작했다.

마치 하늘을 나는 매처럼, 하얀 아귀의 뱃살을 향해 내리꽂혔다.

“뀨힝힝!”

그와 함께 울려 퍼지는 구슬픈 울음소리.

주황 사신은 마치 하얀 아귀를 전부 뜯어먹을 기세로 하얀 아귀의 통통한 뱃살을 파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식을 마친 주황 사신이 떠난 자리에는 뱃살의 반이나 뜯어먹힌 처참한 하얀 아귀만이 억울한 표정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

자유 도시 연합, 골목길.

청은 폐가 터져버릴 것 같아도 계속 골목길을 뛰어나가고 있었다.

청은 당장이라도 숨쉬기를 힘들게 만드는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싶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순수한 인간인 청이 마스크를 벗고 달리면, 기도는 물론이고 폐까지 상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게다가 스캐빈저에게 잡히면 산채로 뜯어먹힌다는 사실도 계속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청! 잠깐 멈춰!”

그때 스캐빈저들의 사선을 막으며, 뒤따라오던 여자가 청의 어깨를 붙잡고 말을 이어 나갔다.

“뭔가 이상해.”

입술의 손을 대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청도 최대한 숨을 작게 고르며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멈춘 비 때문인지, 청의 숨소리가 골목에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무 조용하네.’

확실히 이상했다.

아무리 대장이 갑작스럽게 죽었어도, 아직도 스캐빈저들이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건 너무 이상했다.

꿀꺽.

청은 침을 삼키며,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청의 일행은 서로 등을 맞대고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치 뭔가에 치인 것처럼 한 스캐빈저가 그들이 지나왔던 골목에서 튕겨 나왔다.

바닥에 널브러진, 온몸이 피투성이인 남자는 그들을 발견하더니, 절박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사… 살려줘….”

하지만 일행이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근처 건물에서 H빔이 떨어져 내리더니 정확하게 그 남자의 심장을 관통해 버렸다.

쾅!

심장에서 번져 나오는 핏물.

그리고 우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갈기갈기 찢어져 버리는 스캐빈저.

‘도대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너무 놀라서 굳어버린 일행의 앞으로 무언가가 둥실둥실 모습을 드러냈다.

‘!’

그것은 군데군데 핏물이 튄, 불길한 털 뭉치였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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