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8
이른 새벽. 해가 막 떠오를 시점부터 시작된 오전 기도의 풍경은 엄숙했다.
잠에 취해 고개를 꾸벅거리는 이는 어디에도 없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도 없으며.
심지어는 숨소리를 크게 내는 것조차 죄스럽다는 듯 침묵을 지키는 자리에서.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한 가운데에 자리를 하고 있는 이. 현 교황 파울로 리베리오뿐이었다.
“이렇듯 주신께서는…”
노인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교황이지만 기도를 진행하는 그에게선 자그마한 실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젊었던 시절에 그랬고. 중년에 시절에 그랬으며. 교황이 되기 전에 그러했듯. 그는 어느 실력 있는 연금술사가 만든 골렘마냥 흔들림 없이 예배를 진행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아침 기도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지요.”
리베리오가 단상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교회의 성직자들이 몸을 일으킨다.
모두들 성지에서의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황의 수행원인 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상 뒤에 있는 문으로 나온 교황을 보자마자 깊게 고개를 숙이곤 그가 들고 있는 여러 짐들을 대신해서 들었다.
“오늘도 좋은 기도 주제를 골랐더군요. 덕분에 좋은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케들 사제.”
“감사합니다. 교황님.”
겉으로 듣기에 그 말은 인자한 칭찬처럼 들렸지만 케들은 저를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황을 수행한 지 몇 년이 지난 그는 교황이 내뱉는 말 이면에 많은 것이 섞여 있음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굳이 주제를 언급하신 걸 보면 뭔가 탐탁치 않으셨던 거겠지. 다시 한 번 검토를 해봐야겠네.
케들이 교황의 뒤를 따르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중에 여느 때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한 교황이 목소리를 냈다.
“오늘의 예정은 요트나 왕국에 방문하는 것이었죠?”
갑작스러운 물음이었지만 케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집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일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교황의 일상 중 하나였으니까.
“예. 그렇습니다. 점심 무렵 방문해 행진. 기도. 식사. 회담의 순서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재해를 겪은 곳에 대한 지원 준비는?”
“이미 선발대는 활동 중이고. 이후 인력의 보충이 계획되어있습니다.”
“좋아요. 인선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지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예. 교황님.”
“이외에 따로 보고할 것은 있나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길을 가는 와중에 케들이 보고하는 것은 대개 밝은 내용들이었다.
어느 교단에서 뛰어난 인재가 나왔다. 어느 성직자가 축복을 받았다. 어느 귀족이 큰 지원을 약속했다.처럼 웃으며 전할 수 있는 이야기들 말이다.
허나 집무실의 방문이 닫히고 교황과 케들만이 남은 그 순간부터는 그의 입에서 다른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코르그 주교가 또 다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번엔 누굴 죽였죠?”
“아틀람 남작가의 삼녀입니다.”
“사람을 보내 코르그 주교에게 엄중히 경고를 한 후 알아서 처리하게 하세요.”
그건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고.
“바드로그에서의 실험이 성과를 이루어 냈습니다. 실험체들의 신성을 다른 이에게 넘기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호오. 흥미롭군요. 제 눈으로 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러실 거라 생각해 보고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이들의 피 위에 쌓아올려진 성과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폴리우 자작가 측에 불온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욕심을 내고자 하는 듯 합니다만.”
“지닌 것 이상을 바라는 이에겐 처벌이 따라야겠죠.”
“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야기였다.
섬뜩한 것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교황의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축하할 때에도. 좋은 일이라 말할 때에도. 짜증이 날 법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타인을 죽여야겠단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는 항상 무표정했다.
날 때부터 표정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오늘 들어온 보고는 여기까지입니다.”
모든 이야기를 끝마친 케들은 집무실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보고가 끝났을 때 교황이 무언가를 더 묻는 경우는 없다시피 했으니까.
“케들 사제. 잠시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만.”
허나 오늘은 그 몇 안 되는 예외 중 하나인 듯 했다.
“루엘의 메이스를 습득한 아이는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알른 가의 영애 말씀이지요. 아카데미에서 여러 활약을 벌이고 있습니다.”
“성녀와의 관계는?”
“좋습니다. 가까운 친구라 생각한다더군요.”
“잘 된 일이군요. 역시 저희들의 걸작입니다. 계속 그 관계가 유지되어서…”
말을 하던 교황이 갑작스럽게 입을 다물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바깥을 바라본다.
언제나 평온하던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몇 년이나 교황을 모신 케들로써도 처음 보는 일.
케들은 왜 그러시냐는 질문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누르며 교황이 목소리를 내길 기다렸다.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창 밖에서 비추던 햇살이 위치를 상당히 바꾸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교황이 입을 열었다.
“케들 사제.”
“예. 교황님.”
“오늘 일정을… 아닙니다. 현재 성지에 니안 심문관이 머무르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솔라딘 왕국의 버로우 공작가로 향해 그 곳의 이상을 조사하게 하십시오. 다급한 일입니다.”
전조도 없고. 근거도 없고. 이유도 알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케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 곳이 성지인 이상 교황의 말은 그 자체로 법도나 마찬가지였으니까.
*
약점파악이라는 스킬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약점을 알려주는 스킬이지만 여기엔 부가적인 기능이 존재한다.
바로 상대가 껄끄러워하거나 기겁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
프레이를 상대로 시험해봤을 때는 도발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기술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여기에는 다른 활용법도 있더라.
내가 나크라드를 괴롭히기로 결심했을 때 원랜 내가 당한 만큼 패 줄 생각이었거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때리는 걸로는 울분이 안 풀릴 것 같더라고.
처음엔 즐거울지 몰라도 중간부터는 노동에 가까워질 게 분명했지.
그래서 고민을 하던 중에 약점 파악이 재미난 걸 찾아줬어.
어떻게 하면 나크라드가 수치심을 느낄지에 대해서 말이야.
“흫♡ 흐흐흫♡”
그 순간 생각했지.
일순간에 스치고 사라질 고통이 아니라 평생에 남을 흑역사를 만들어주는 게 제대로 된 복수가 아닐까 하고.
나크라드한테 죽을 뻔 했던 걸 떠올릴 때보다 조이랑 프레이한테 바니걸을 들킨 순간을 떠올리는 게 더 괴로운 걸 보아 이게 맞단 확신을 지닌 나는 나크라드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어주기로 했어.
“자♡ 이번엔 이거♡ 어때?♡ 완전 귀엽지?♡ 너랑♡ 프흐흫♡ 딱 맞을 거야~♡”
“…차라리 죽여라! 내 목숨을 뺏어가란 말이다!”
“이상하다~♡ 옷 갈아입히기 인형이 왜 이리 말이 많지?♡ 이번에는 어디를 두드려줘야 고쳐지려나?♡”
“안 돼. 알겠다. 협력을. 끄아아아악!”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메협상가님께서 노력을 해주신 덕분에 난 나크라드의 협력을 구할 수 있었다.
나크라드를 커마하는 과정은 상당히 즐거웠다.
일단 베이스는 루시가 예전에 입던 드레스!
혹시 몰라서 인벤토리에 처박아 뒀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좀 작아서 찌지직거리는 소리가 나지만 뭐 어때. 이제 입을 일도 없는 옷인데.
그리고 머리스타일은. 대머리 아님 양갈래인데.
음. 그래. 가운데만 밀어버리면 되겠네!
그리고 또… 열정을 다해 커마를 하고 있자니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
어떻게 하면 더 썩은물 같은 커마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야.
비슷한 짓을 하던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가 인간의 심연을 보고서는 포기해 버렸었지만.
그렇게 완성된 나크라드의 모습은 귀여운 여자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 멀대였다.
밤 늦게 보면 총을 든 강도도 도망쳐버릴 듯한 끔찍한 모습을 가만 보던 난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하하핳♡ 너~무 귀엽다!♡ 뒷골목 인형가게에 팔아 넘기면 이상한 사연이 붙을 것 같아!♡”
그러자 나크라드의 어깨가 부들거렸지만 그에겐 이 지옥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페이비가 몇 번에 걸쳐 축성을 해 준 밧줄에 의해 손목이 묶인 녀석은 사도의 권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상당히 약화되기까지 한 상황이었으니까.
‘할아버지. 제 미적감각이 어떤 것 같나요?’
<…끔찍하구나.>
‘푸하하핳. 에이. 할아버지. 뭘 잘 모르시네. 너무 구시대적이세요.’
<이런 게 신시대라면 난 평생 꼰대로 살고 말테다.>
질린다는 듯한 할배의 반응에 만족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크라드의 앞으로 다가갔다.
“뭐지?”
“교육이 아직 덜 됐나?♡ 왜 역겨운 변태 인형이 당당하게 말을 하는 걸까?♡”
“…ㅁ… 무엇인지요. 알른 영애.”
“푸흡♡ 푸하하핳♡ 아~♡ 너무 역겨워서 토할 것 같아♡”
눈빛으로 날 죽일 수 있다면 골백번도 넘게 죽였을 것처럼 나크라드의 눈빛은 사나웠지만 그 눈빛은 날 더 기쁘하게 만들 뿐이었다.
어쩐지 점점 메스가키에 가까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에라이! 몰라! 아무튼 즐거우면 그만이지!
오늘은 그냥 마음껏 즐길래!
“엎드려♡ 변태 인형♡ 특별히 귀엽디 귀여운 내 의자가 될 기회를 줄 테니까♡ 어때?♡ 기쁘지?♡ 응?♡”
“네에. 기…쁩니다. 영애.”
“우에엑♡ 이런 게 기쁜 변태 새끼라니♡ 이딴 게 나랑 같은 인간?♡ 혹시 피에 이상한 게 섞여 있는 거 아냐?♡”
얼굴이 시뻘개진 채 바닥에 엎드리는 나크라드를 보며 웃음을 터트리던 나는 그 위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면서 퀘스트 창을 열었다.
왜 악신의 사도를 완벽히 제압했음에도 보상지급이 안 되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퀘스트 지#@!…]
[아그라가…]
[아르마디가…]
[아그라가…]
[타리키가…]
[퀘스#$%…]
[아르마디가!#…]
가벼운 마음으로 창을 연 순간 거기에 펼쳐진 것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펼쳐졌던 신들 간의 힘대결이었다.
날 어떤 식으로든 도우려던 아르마디와 그 도움을 막고 어떻게든 날 죽이고자 하는 두 악신간의 싸움.
그를 본 순간 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르마디가 이 정도로 다급했던 걸 보면 이번에 내가 진짜 위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날 죽이고자 하는 두 악신의 집요함에 어이가 없어서.
허접 주신이라면서 깔 생각이었는데 이젠 그러지 못하게 됐다 싶어서.
창을 하나씩 내리며 치열했던 저들의 싸움을 지켜봤다.
– 띠링.
뭐죠?
드디어 보상이 지급되는 건가요?
아르마디님. 저 진짜 기대 많이 하고 있답니다.
이번에 엄청 고생했으니까 그만큼 보상을 주리라고 믿어요!
이 썩은물을 만족시킬 만큼 대단한 보상을…
[퀘스트 발생!]
음?
[정체를 숨겨라!]
으으음?
[교회의 심문관들이 이 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당신의 정체를 드러날 때가 아닙니다! 당신의 정체를 들키지 마십시오!]
…네?
네에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