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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

평온한 오후의 한 때, 세희 연구소의 안뜰에서 햇빛을 받으며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나무 그늘에서 편안하게 누워서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며 휴식을 즐겼다.

옴뇸뇸

예린이 집어주는 과자를 받아먹으며 지내는 편안한 일상은 예상외의 사태로 갑자기 중지되었다.

지쳐 쓰러져있던 ‘귀여운 강아지’가 미친 듯이 짖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른 행동이었다면 ‘왜 저래? 미쳤나?’ 라고 생각할만한 돌발 행동이었지만, 저런 행동은 인간이었을 시절에도 본 기억이 있는 ‘귀여운 강아지’의 발작이었다.

같이 누워있던 예린도 표정을 싹 바꾸더니, 조그마한 노트를 꺼내서 뭔가를 마구 적기 시작했다.

저 발작적인 행동이 ‘귀여운 강아지’의 무리한 요구를 모두 수용하면서까지 기르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귀여운 강아지의 ‘돈 되는 이유’인 것이다.

귀여운 강아지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오브젝트와 연관된 일들을 느낄 수 있었다.

강아지가 그것을 느끼면 저런 식으로 마구 짖어서 그 변화가 일어나는 곳의 방향과 각도 등의 정보를 알려주곤 했다.

그게 왜 돈이 되냐고?

우선 오브젝트를 발견해서 격리하면 돈이 나온다.

혹은 오브젝트를 발견해서 신고만 해도 돈이 나온다.

인간과 섞이기 힘든 오브젝트가 대부분이므로 빨리 발견하거나 빨리 격리할수록 도시에 피해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했다.

연구소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오브젝트 발견 등의 행위에는 후한 현상금이 붙어있었다.

도시와 인명의 보호를 위해 현상금을 책정해두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연구소에서는 조사팀들을 다수 운용해서 오브젝트를 선제적으로 발견/포획하려 하고 있었다.

비록 100% 확률로 언제나 알려주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런 많은 인력이 드는 조사 활동을 ‘귀여운 강아지’는 연구소 바닥에 앉아서 손쉽게 할 수 있으니 몸값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람이 직접 돌아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정확성, 이것은 서울을 좀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오브젝트인 것이다.

서울 연구소에서도 강아지가 갑자기 짖기 시작하면 관리 인원은 그대로 작업을 멈추고 연구원의 해석을 기다렸었다.

귀여운 강아지의 짖기는 몇 가지 패턴이 있어서, 공부를 하면 금방 익힐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내가 인간 시절에 연봉 상승을 노리고 공부를 해본 결과, 결코 쉽지 않았다.

공부와 담을 쌓은 평범한 인간이 시도할만한 난이도는 아니었다.

예린이 하는 것을 뒤에서 보니 뭔가를 하고 있는데, 다시 봐도 여전히 모르겠다!

예린은 계산을 마치더니 약간 다급한 표정으로 ‘어디 좀 갔다 올게!’ 라고 말하고는 후다닥 연구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바쁘다 바빠.

해석해낸 종이를 들고 사무실로 바삐 발을 놀렸다.

해석해낸 결과는 꽤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도봉구 근처에서 오브젝트와 관련된 현상이 대량으로 발생한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도봉구는 현재 서울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손꼽힌다는 점이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그 해석지를 김중뢰 선배에게 넘겼다.

그 해석지를 읽은 선배는 표정을 굳히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우리가 임시로 ‘귀여운 강아지’를 맡았다고 그런 업무까지 수행하라는 겁니까?”

처음에는 조용히 진행되던 이야기도 전화가 이어질수록 고함과 고성이 섞이기 시작했다.

“사전에 그런 사항은 전혀 알려주지 않고 지금 당장 일을 처리하라고만 하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대충 들어보니, 중앙 연구소가 개박살나서 ‘귀여운 강아지’ 관련 일을 수행할 부서가 없다는 이야기 같았다.

더 나아가서 현 정부는 국립 연구소를 모두 해체해서 모든 권한을 사설 연구소로 넘기는 계획을 실행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세희 연구소가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임시로 ‘귀여운 강아지’를 보관하기로만 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본격적인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계약을 넘어서는 부당 요구였지만, 정부가 하라면 해야 하는 게 연구소였다.

연구소 중에서 정부의 보조금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으니까 말이다.

저 멀리 미국에서 오브젝트에 대처 가능한 장비를 만들어 팔아먹는 연구소들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절대로 하기 싫은 추가 업무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쾅 소리가 나게 전화를 내려놓은 선배는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은근슬쩍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역시나 코앞에서 도망가는 것은 무리였는지 붙잡혀버렸다.

“오예린, 너는 이쪽 방면으로 가서 조사해라. 도봉구 인근이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가.”

선배가 넘겨준 지도에는 내가 들러야하는 루트와 해야 할 일이 잔뜩 적혀있었다.

히잉, 가기 싫어.

도봉구 출장 준비를 위해 비품실에 들러서,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하나둘 챙겼다.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현실에 한숨을 푹 쉬고 준비하고 있으니, 어느 샌가 옆에서 노란색 광선이 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신이가 나에게 안광을 쏘고 있었다.

“같이 갈래?”

라고 물어보며 손을 내밀자, 사신이가 꾹 마주 잡아줬다.

왠지 이번 출장은 즐거울 것 같았다.

***

예린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목표 포인트에 도착했다.

목표했던 도봉구의 경계선에 도착하자, 콘크리트로 된 높은 장벽이 도봉구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도봉구와 강북구를 가르는 거대 장벽.

직접 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오브젝트랑 싸우려고 만든 장벽이라서 그런지, 장벽에서는 실용미와 장엄함이 같이 느껴졌다.

저 너머는 영하 100도의 빙한 지옥이라는 소문을 들어서 그런지 벽 너머인 여기까지 냉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예린은 차를 세워두고 카메라를 꺼내서 벽을 향해서 대충 설치를 하고 돌아왔다.

“자, 피크닉 2탄!”

예린은 적당한 잔디에다가 돗자리를 펴고는 자신의 옆을 팡팡 두들겼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린은 이러다가 언젠가 잘리지 않을까 싶었다.

***

옴뇸뇸

과자를 먹는 중, 예린의 전화가 울렸다.

예린이 전화를 확인하더니, 인상을 찡그린 채 전화를 받았다.

“네, 오예린입니다.”

예린이 대답하자, 전화기에서는 잔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너 설마 지금 회색 사신이랑 같이 있는 거냐? 제대로 보고를 해야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지만 그 잔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예린이 전화를 받는 도중,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쿵!

거대한 충격이 지면을 달렸다.

돗자리에 앉아 있던 몸이 붕 떠오를 정도의 충격이었다.

전화를 받고 있던 예린도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방금 충격파 때문인지 예린의 전화기는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쾅!

두 번째 충격음이 울리자, 저 멀리서 장벽이 콘크리트 잔해로 박살나며 사방으로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부서진 장벽의 틈으로 거대한 주먹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주먹은 재차 휘둘러지며 장벽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마구잡이로 그 주먹을 휘두르며 벽을 꼼꼼히 부수는 것은 얼음 왕좌의 병사들로 불리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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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처럼 투명한 얼음을 온몸에 두르고, 내부는 톱니바퀴와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기계장치의 병사들.

얼음 왕좌의 병사들은 시퍼런 한기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무너진 벽 너머로 보이는 것은 그 숫자를 가늠하기도 힘든 무한한 얼음 군단.

얼음으로 된 갑옷을 두른 병사들이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근처에 살던 주민들은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얼음 병사들은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휘두르며 건물과 장벽을 박살 내고 있기만 했다.

마치 10년 전 도봉구 침공 당시처럼 말이다.

예린은 내 손을 꾹 잡고는 차 안에 태우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로봇들은 굉장히 느릿느릿하게 움직였지만, 서두를 필요가 있어보였다.

“하아. 하아.”

예린의 입에서는 입김이 하얗게 새어 나왔다.

여름인데, 벌써 온도가 영하 10도는 된 것 같았다.

도봉구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던 괴물들이 진군을 시작했다.

다행히 길에는 차량이 거의 없었는데, 도봉구 장벽 근처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워낙 적어서 그랬다.

예린이 국도를 레이싱카처럼 달리는 사이, 예린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찍힌 문자 내용은 간략했다.

다른 조사반들도 도주를 시작했다. 너희도 빨리 탈출해라.

이미 도망치고 있는 예린에게는 별 소용없는 문자였지만 말이다.

***

예린의 얼굴은 창백했다.

척 보기에도 정상이 아니었다.

차창 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여름인데도 말이다.

도봉구의 중심부는 약 영하 100도라고 하던데 여기도 그렇게 온도가 내려가 버린 걸까?

얇은 옷만 입고 있는 예린 입장에서는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차량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멈춰버렸다.

예린은 온몸을 웅크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오들오들 떠는 예린은 내 쪽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오물오물 거렸지만 말이 되어서 나오지 않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예린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

뭉근하게 따뜻한 기운에 정신이 들었다.

추위 속에서 정신을 잃은 거라 무조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남은 건가?

아니면 여기가 사후 세계인가?

오브젝트 같은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뛰노는걸 보면 사후 세계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끈한 열기가 이곳이 현실임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눈을 천천히 깜박이고는 눈을 떴다.

그러자 코앞에 보이는 것은 잠든 사신이의 얼굴.

회색의 피부가 노랗게 비춰 보일 정도로 강렬하게 타는 불꽃은 외부의 추위를 몰아내고 있었다.

사신이는 내 옷 속으로 파고들어서 목만 밖으로 내놓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손을 들어 사신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사신이를 꼭 껴안으며 온기를 만끽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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