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2
튜토리얼? 그 단어를 본 순간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내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상황에서 튜토리얼이라니?
뭔가 이상하단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튜토리얼 기능을 확인해보았다. 기뻐하든 짜증을 내든 일단 이게 무슨 기능인지 확인한 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튜토리얼을 통해 당신이 지닌 스킬을 확인해보세요!]
뭔가 했더니 스킬 튜토리얼이었구나.
우리 위대하신 주신님께서 내가 방금 전에 하던 불평을 듣고 사도의 불만을 해소해주신 모양이야.
이 얼마나 자비롭고도 관대하신 분이란 말인가.
수많은 신의 한 가운데에 존재하는 위대하신 아르마디시여.
이 사도 루시 알른. 당신께서 저를 외면하지 않으시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진짜로요!
투정을 부린 것도 그냥 이러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의견 제시일 뿐이었답니다!
아시죠?
당신의 사도가 설마 당신을 무능한 주제에 자기 욕망에만 솔직한 로리콘 변태라고 생각했을리가요!
개소리 하지 말라고요?
제가 생각해도 좀 개소리 같긴 해요!
속으로 헛소리를 내뱉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상황은 분명 기뻐해야 할 상황이다.
내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진 거니까 말이야.
근데 튜토리얼의 문구를 지켜보는 내 마음 속에는 불안함밖에 깃들어있지 않다.
내가 아는 허접 주신은 투정을 부리면 불경하다면서 괴상한 장난을 치는 녀석이야.
메스가키 스킬의 강화라던가 토ㅋㅋ끼ㅋㅋ 라던가. 이외에도 몇 가지 전적이 존재하지.
이런 허접 주신이 내 투정을 듣고서 아무런 장난도 치지 않고 순순히 부탁을 들어주다니.
대체 이 뒤에 뭐가 도사리고 있는 거지?
도대체 뭐가 있기에 나한테 이렇게 잘 해주는 걸까.
…
아냐. 찾아오지도 않은 위기 같은 건 신경 쓰지 말자.
그냥 아르마디님께서 이번에 수고했다고 신경 써서 챙겨준 걸 수도 있잖아.
그래. 분명 그럴 거야. 그러니까 그냥 기뻐하기만 하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게 되면 약소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저기 아르마디님!?
대체 어떤 식으로 절 조지려고 이렇게 잘해주시는 겁니까!
그냥 평소처럼 해주시면 안 돼요?!
적당히 장난 좀 치고 이상한 퀘스트 주고 그러면 안 되나고요!
차라리 그 편이 마음 편할 것 같아서 그래요!
필사적으로 말을 건네 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언젠가 찾아올 미래가 너무 두렵다.
타리키의 억까를 겪을 때보다 허접 주신이 준비하고 있을 무언가가 더 무서워.
…나중에 바니걸 차림으로 기도를 올리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풀어 주시려나.
불경한 생각이긴 한데 한 번 시도는 해보자.
혹시 모르잖아. 그 변태 주신이라면 허어엌ㅋㅋ 같은 소리를 하면서 마음을 풀어줄 수도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곤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일단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이 튜토리얼 기능이라는 게 어떤 건지 체험이나 해보자.
보상까지 주어진다는 걸 보면 단순히 스킬의 설명을 해주고서 끝나는 건 아닐 거 아냐.
으음. 근데 튜토리얼은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거지?
머리로 이 스킬의 튜토리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
‘방패의 달인 스킬의 튜토리얼을 하고 싶어요.’
머릿 속으로 중얼거리기 무섭게 내 앞에 푸른 색 창이 떠올랐다.
[‘방패의 달인’ 튜토리얼]
[전제조건 : 1. 방패 숙련도 ???이상(달성!) 2. 일정 등급 이상의 방패 소지(달성!)]
[지금 바로 튜토리얼을 수행하시겠습니까?]
뭔 놈의 튜토리얼에 전제조건이 달려 있어?
튜토리얼이라는 건 기초적인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는 거잖아.
거기에 전제조건이 달려있으면 스킬의 기능을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울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일반적인 튜토리얼은 아냐.
일단 전제조건을 달성했다니 일단 해보기나 할까.
[‘방패의 달인’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그 문구가 떠오르기 무섭게 주변의 풍경이 뒤바뀐다.
연습모드의 평범한 훈련장에서 어느 투기장의 모습으로.
<허어?! 여아야! 무어냐! 왜 갑자기 풍경이 뒤바뀌는 게야!>
‘주신님께서 선물해주신 새로운 축복이에요. 제가 지닌 축복을 시험해볼 수 있게 해주신다더라고요.’
<그런 거라면 미리 말 좀 해다오. 깜짝 놀라지 않았느냐.>
당혹스러워 하는 할배에게 대답을 해주면서 몸을 점검한다.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피로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신체의 스펙 자체가 현저히 떨어진 듯한 느낌에 가까워.
거기에다 몸 안에 신성이 텅 비어 있어서 신체를 강화하는 것도 불가능.
[‘방패의 달인’은 방패 숙련도를 올려 방패를 이용하는 여러 움직임에 긍정적인 보정을 줍니다!]
[눈앞의 적을 상대하며 ‘방패의 달인’의 효과에 익숙해지세요!]
적? 그 단어를 읽기 무섭게 방금 전까지 적막하던 투기장에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텅 비어있던 투기장의 관객석에 사람이 생겨난 것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소리를 내지르는 이들을 구경하던 그 때에 갑자기 투기장의 대지가 진동했다.
약한 지진이 일어난 듯한 진동에 고개를 돌린 난 그 진동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크하하하하!”
자신의 커다란 목청으로 투기장의 모든 목소리를 찍어 누른 그것은 인간이라기에는 너무도 거대했다.
어림잡아도 3M는 될 것 같은데. 저 정도면 덩치 하나만큼은 베네딕보다 더 큰 거 아냐?
발을 움직일 때마다 대지를 진동시키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 앞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목표 : 주어진 시간 동안 버텨라!]
[5:00]
그으러니까 지금 저 거인의 피가 섞인 게 분명한 놈을 상대로 5분을 버티란 거지?
신체가 약화되었고 신성을 이용한 강화도 사용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이게 무슨 튜토리얼이냐! 아무리 봐도 이건 튜토리얼보다는 챌린지 쪽에 가깝잖아!
앞에 적당히 설명 넣고 튜토리얼인 척 하지 말라고!
<여아야! 온다!>
할배의 외침을 듣고서 이를 꽉 깨물었다.
저 멀리에서 덩치가 이 쪽을 향해 내달려오는 게 보인다.
걸음이 투박한 걸 보면 따로 무술을 배운 것 같지는 않네.
하긴 저만한 덩치에 저만한 근육이 있는데 뭘 하러 그런 걸 배우겠냐. 이미 몸 자체가 흉기인데 말이야.
돌진의 속도를 그대로 담아 내질러지는 주먹을 보면서 생각한다. 일단 공격 자체가 정직해서 패링하기는 어렵지 않아.
그래도 충격을 그대로 받아내진 말자. 그랬다간 방패 채로 날려져서 관객석에 처박힐 것 같으니까.
콰아앙! 방패에 주먹이 닿은 순간 자연스레 몸이 밀려나면서 바닥의 흙을 긁었다.
아직. 아직이야. 상대가 조금 더 힘을 줄 때까지 버텨야 해.
한 순간에 균형을 무너트릴 수 있을 때까지.
“#@#@!”
지금이다.
덩치가 무어라고 소리를 내지름과 동시에 방패를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방패채로 날 찍어 누르려던 덩치의 힘이 방패의 면을 타고서 흘러내려 땅바닥에 처박혔고. 중심을 잃어버린 덩치가 추하게 고꾸라져 흙바닥과 입맞춤을 나눴다.
‘…어라?’
이 상황 자체는 내가 의도한 것이 맞다.
그렇지만 뭐랄까.
이상할 정도로 과정이 매끄러웠다.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도. 힘을 흘려내는 것도.
“#%(#@!”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다급히 몸을 일으킨 덩치가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그걸 방금 전처럼 흘려낸 나는 여기에 왜 튜토리얼이란 단어가 붙었는지 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덩치는 여러 기술을 시험하기에 제격인 상대였다.
체격에서 나오는 힘 자체는 위협적이지만 그 뿐.
기술도 없고 생각도 없는 녀석은 내가 의도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난 마음 편하게 방패의 달인 스킬로 인해 생겨난 보정을 시험할 수 있었지.
덕분에 여러 가지를 알게 됐어.
이전보다 패링 판정이 널널해졌다는 거나.
최선의 판단까지 닿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거나.
이전과 비슷하게 움직이더라도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던가 하는 것들을 말야.
이래서 튜토리얼이라고 그랬던 거구나.
겉으로 보기에 위압적으로 보이는 덩치는 늘어난 방패 숙련도를 가지고서 무얼 할 수 있는지 느끼기에 최적의 상대였던 거야!
죄송합니다! 아르마디님! 당신의 세심한 배려를 잠시나마 의심했습니다!
근데 여기엔 당신의 업보도 있으니 정삼참작 해주십시오!
평소에 장난을 적당히 쳤으면 저도 이런 의심 안 했을 거 아니에요!
[튜토리얼 클리어!]
그렇게 덩치를 가지고 놀다 보니 어느새 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연습 모드로 돌아갑니다!]
주변의 풍경이 흩어짐과 동시에 다시금 연습모드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 한 가운데에 서 있던 할배는 나를 보자마자 흐뭇한 웃음과 함께 다가왔다.
“타리키를 상대하며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게냐? 방패를 다루는 실력이 눈에 띄게 올랐구나.”
‘…어. 네. 비슷한 거죠.’
할배의 칭찬이 얼떨떨했다.
숙련도가 급격하게 오른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여태까지 차근차근 숙련도를 올리다가 처음으로 숙련도의 급증을 맛보니까 뽕이 장난이 아니네.
지금이라면 칼이 전력을 다해 내지르는 검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튜토리얼을 클리어함에 따라 보상이 지급됩니다!]
[‘방패의 달인’ 스킬의 효과가 소폭 증가합니다!]
뭐?
아니 안 그래도 좋았던 스킬의 성능이 더 좋아진다고요?!
저 재미난 튜토리얼을 만들어주신 것도 고마운데 거기에 추가적인 보상까지 지급되다니!
아아!
신앙심이 차오르는 게 느껴져!
자비로우시며 선하시고 전지하시며 전능하신 아르마디시여!
감사합니다!
예전부터 이래 주셨다면 진즉에 독실한 신도가 되었을 텐데!
첫 튜토리얼의 경험이 너무 좋았던지라 난 바로 다른 스킬의 튜토리얼을 실행하려 했다.
[‘영웅의 기백’ 튜토리얼]
[전제조건 1.???(미달성) 2.???(미달성)]
[튜토리얼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아직 안 되는 건가?
아쉽네. 최소한 전제조건이 뭔지라도 알려주면 좋을 텐데.
뭐. 그래도 아직 시험할 건 남아 있으니까.
[‘용사의 혼’은 튜토리얼 대상이 아닙니다.]
아. 역시나. 이건 루엘의 메이스에 붙어있는 기능이지 스킬이 아니니까.
튜토리얼을 할 수도 없는 건가.
그렇다면 이건 결국 직접 움직이면서 검증을 해보는 수밖에 없겠네.
그럼 다른 건…
어라? 이번에 얻은 거 이걸로 끝 아닌가?
그럼 내가 체험할 수 있는 튜토리얼은 방금 전의 하나 뿐!?
으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르마디님께서 제약을 건데는 다 의미가 있을 테니까. 거기에 투정을 부리지 말자.
나머지는 할배랑 시험을 하면서 차차 알아가면.
아니 잠시만.
분명 처음 튜토리얼을 설명할 때 내가 지니고 있는 스킬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었나?
새롭게 얻은 스킬이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잖아.
그렇다는 건 설마.
‘철벽의 튜토리얼을 진행하고 싶어요.’
[‘철벽’ 튜토리얼]
[전제조건 1.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1천 회 이상 막을 것(달성!)]
[지금 바로 튜토리얼을 진행하시겠습니까?]
…흐흫.
흐흐흫!
이거지! 이래야지!
그래! 하나만 주고 끝이라는 건 너무 정이 없잖아!
아아. 기존에 있는 스킬 모두 튜토리얼을 경험할 수 있다면 이거만 해도 몇 개야!
“여아야. 무슨 기쁜 일이 있느냐? 왜 그리 사납게 웃는 게야?”
‘제가 깨어날 때까지 심심한 일은 없을 것 같아서요!’
할배에게 대답을 한 나는 바로 튜토리얼을 진행하겠단 의사를 비쳤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뒤바뀐다.
자아. 이 다음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으려나.
방금 전처럼 재미난 장난감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야 가지고 노는 보람이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