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세희 연구소 안뜰은 평소처럼 미니 사신과 함께 점심시간을 즐기기 위해 모인 연구원들로 북적였다.
연구원들은 안뜰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트리케라톱스 황금상을 구경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왜 트리케라톱스 황금상이 여기 있는 거지?”
한 연구원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아마 세희 연구소장이 설치한 거 아닐까?”
옆에 있던 다른 연구원이 가장 확률이 높아 보이는 가설을 세웠다.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은 대부분은 세희가 한 일이었으니, 타당한 추측이었다.
게다가 저만한 황금 덩어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세희뿐이리라.
그때, 연구원들 사이로 세희와 서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서아는 트리케라톱스 황금상을 보자마자, 표정을 확 찌그러트렸다.
그리고 설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세희 쪽으로 휙 돌렸다.
그러자 세희는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세희의 표정은 “나는 아니야!”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희가 평소 거짓말을 너무 자주 해서 그런지, 서아는 별로 믿는 표정이 아니었다.
히히.
나는 그 모습을 트리케라톱스의 프릴이 만드는 아늑한 그늘 밑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뀨.
내 옆에는 붉은 사신과 그 붉은 사신에게 강제로 붙잡힌 하얀 아귀가 있었다.
붉은 사신은 마치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처럼 트리케라톱스 황금상을 향해 손 카메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도대체 뭘 보고 이러는 건지, 입에는 파이프 담배 모양 불을 불덩어리를 물었고, 손에는 불로 만든 조각칼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트리케라톱스를 구경하던 붉은 사신은 잔뜩 겉멋 든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과감한 동작으로 조각칼을 하얀 아귀에게 쑤셔 넣었다.
뀨힝힝!
붉은 사신은 하얀 아귀의 목덜미를 깎아내서 트리케라톱스의 프릴을 만들려고 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힘이 너무 들어가서 그런지, 불로 만든 조각칼은 하얀 아귀의 목을 관통해 버렸다.
‘앗!’
붉은 사신이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당황하자, 하얀 아귀는 그 틈을 노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도망가는 하얀 아귀와 즐거워 보이는 붉은 사신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
태양이 지평선으로 기울어져 가는 늦은 오후.
끊임없이 들어오던 물자 운송 차량의 행렬이 끊기고, 주차장으로 물자를 나르던 협회 인형들이 하나둘씩 사라지자, 주차장에는 고요함만이 남았다.
그렇게 적막 속에 잠긴 주차장 구석에는 제임스의 임시 격리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브젝트를 가두는 격리실과 그 내부를 관찰하고 원격으로 실험할 수 있는 관찰실로 이루어진 간이 시설이었다.
관찰실 내부에는 실험복을 차려입은 제임스와 그 부하직원들이 자리 잡고, 격리실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 격리실에는 협회 인형들이 강철로 된 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협회에서 종류별로 구매한 온갖 종류의 인형들이었다.
제임스는 투명한 격벽을 사이에 두고, 협회 인형들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때, 제임스와 달리 방탄조끼와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역시 타워 내부 시설을 이용하는 편이 안전하지 않을까요?”
기계 팔을 이용해서 협회 인형을 천천히 해체하고 있던 제임스는 조작 콘솔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 타워 내부 시설이 훨씬 안전하겠지. 알렉스.”
“그럼, 당장 내부 시설로 옮기도록 하죠! 여기는 사용할 수 있는 보안 옵션이 너무 부족합니다.”
제임스가 자기 말에 동의하자, 알렉스는 곧장 대답했다.
“보안 시설로만 판단하면 당연히 그게 좋겠지. 하지만 옮기지 않을 거야.”
하지만 제임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거부했다.
“협회 인형이 자꾸 타워 내부로 들어오려고 하니까. 사태가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인형을 타워 내부로 들이지 않는 게 좋겠어.”
그리고 제임스는 ‘이제부터 제임스 타워는 실험실이라기보다는 요새처럼 생각하기로 하자고.’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인형을 해체하던 제임스는 콘솔에서 눈을 떼고 일어섰다.
“인형의 구조는 대략적으로 알았지만,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을 알 수가 없군.”
원격 콘솔로 너무 오래 작업을 해서 그런지, 제임스는 눈이 피로한 것처럼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알렉스는 미국 최고의 오브젝트 전문가인 제임스가 ‘모른다’고 한 것에 살짝 놀란 것처럼 보였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오늘은 이만해야겠어.”
제임스는 태양이 사라져서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창문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황금 사신을 보면서 말했다.
황금 사신의 손에는 접착제로 끈적끈적한 메카 티라노 그림이 들려있었다.
“벌써 6시간이 지났으니, 슬슬 자네도 교대하고 퇴근하게.”
그런 말을 하는 제임스의 실험실 가운에는 벌써 5장의 메카 티라노 그림이 붙어있었다.
***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 예린은 황금 사신의 뒤를 따라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뚜방뚜방.
당당한 황금 사신의 발걸음은 언제나처럼 뚜방했고, 물로 만든 창과 투구는 달빛에 반짝였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가끔 뒤를 돌아보며 시선을 맞추고, 배시시 웃곤 했다.
아무래도 예린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려는 행동으로 보였다.
건물 공동 현관에 다다르자, 협회 인형이 건물 주민인 예린을 반갑게 맞이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인형이 친절하게 인사했지만, 예린은 보기 싫은 것처럼 시선도 주지 않고 서둘러서 지나쳤다.
그리고 예린은 복도를 지나서, 집에 들어설 수 있었다.
“도착!”
현관문을 열자마자 예린이 즐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현관에 놓인 과자 통에서 동그란 황금색 젤리를 꺼내 황금 사신에게 건네주었다.
“에스코트 고마워!”
예린의 감사를 받은 황금 사신은 배시시 웃으며, 젤리를 조금씩 뜯어 먹기 시작했다.
옴뇸뇸.
황금 사신은 작은 입으로 젤리를 오물거리며 먹었다.
예린이 뿜어내는 감정과 젤리의 달콤한 맛에 황금 사신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젤리를 다 먹은 황금 사신은 손을 번쩍 들고 바이바이 흔들더니, 유령화를 통해서 훌쩍 사라져 버렸다.
황금 사신을 배웅한 예린이 방으로 들어서자, 의아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스쳤다.
‘?’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방을 나서기 전, 납 인형의 무릎 위에 하얀 아귀를 올려두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지금 납 인형은 마치 하얀 아귀를 꼭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납 인형은 자세를 잡을 수 있는 인형들처럼 관절이 약간 뻣뻣해서, 움직이는 대로 자세를 고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납 인형의 팔은 하얀 아귀를 감싸 안은 채로 굳어 있었다.
‘아귀가 직접 자세를 조정한 건가?’
예린이 보기에 하얀 아귀가 스스로 기어들어가, 납 인형의 팔을 움직이고 품에 안긴 것 같았다.
품에 안긴 하얀 아귀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납 인형의 차가운 온도에서 평온함을 느꼈는지, 그 작은 얼굴은 이전보다 더 생기 있어 보였다.
‘납 인형, 꽤 차가울 텐데,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네.’
예린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싱긋 웃었다.
아귀는 언제나 억울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행복해 보였다.
예린은 천천히 다가가서 아귀의 볼을 콕콕 찌르고, 납 인형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
하지만 예린은 납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따뜻하네?”
예린은 자기 손에 남은 온기를 느끼려는 것처럼 주먹을 쥐었다가 피며 중얼거렸다.
***
늦은 밤, 제임스 타워 보안실.
제임스는 불안한 마음에 여전히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인형 박람회까지 이틀.’
제임스에게는 그 이틀이 마지막 남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전까지 협회 인형이 문제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으면 좋겠군.’
제임스는 모니터에 CCTV 영상을 띄워놓고 분석하고 있었다.
협회 인형의 이상 행동을 이어 붙여서 만든 동영상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모니터에서는 일정한 박자를 가진 격철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협회 인형이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였다.
똑같은 박자와 똑같은 크기의 소리.
협회 인형이 제임스 타워로 들어오려고 하는 이상 행동을 보일 때마다 그랬다.
[철컥. 철컥. 철컥.]
언제나 협회 인형은 똑같은 박자로 문고리를 세 번 돌리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보안실에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던 제임스의 귀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삐-. 삐-.
보안실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접근 경고였다.
화면을 전환하자, 퇴근했던 알렉스가 보안실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뭔가 놓고 간 거라도 있는 건가?’
그리고 보안실에 도착한 알렉스가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
그리고 알렉스는 보안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장님. 문 좀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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